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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계모임 비석도 역사가 된다

by 이윤기 2011.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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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오후에 유장근 교수(경남대)의 도시탐방대, 그리고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진행한 '임항선 그린웨이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는 제 16차 탐방이었는데, 이번에는 서원골(서원곡)일대를 탐방하였습니다. 행정 명칭이 서원곡인데도 불구하고 '서원골'이라고 한 것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있기 전까지 관해정 근처에 서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관해정은 남명 조식의 제자인 한강 정구(1543-1620)가 임진왜란 이후 처음엔 초가로 정자를 세웠다가 10여년이 지난 후에 제자 장문재가 와가를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구가 죽고 난 후, 1634년에 정구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관해정이 있던 부근에 회원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회원서원이 들어 선 후에 이곳을 '서원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날 도시탐방대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자신들이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다 서원골이라고 불렀다는 증언을 하시더군요. 제가 어렸을 때도 어른들이 '서원골'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시탐방대의 이번 16차 탐방 주제는 '다종교가 공존하는 현장을 찾다' 였습니다. 아쉽게도 '임항선 그린웨이 답사' 일정과 시간이 겹쳐 전체 탐방 일정을 함께 하지는 못하였습니만, 무학산 서원골 일대에 다종교가 공존하는 현장의 일부는 확인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원골에서 만날재 방향으로 이어지는 들머리에서는 OO교회에서 나와 등산객들에게 나눠주는 차(茶)도 한 잔 얻어 먹었으니 다종교가 공존하는 현장 체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네 계모임이 비석이라고?
왜, 요즘 라이온스, 로타리도 비석 많이 세우잖아...


'웬 계비? 계비가 무슨 역사 유적이야?' 저도 이렇게 생각하였는데, 유장근 교수가 나눠 준 자료에도 '계비가 뭐야? 이렇게 되어있더군요.

이날 도시탐방대의 주제는 '다종교가 공존하는 현장을 찾다'였는데, 전체 일정을 모두 참가하지 않은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바로 원각사 아래 '계비'가 있는 장소였습니다.

1918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 원각사 바로 아래 너럭바위에는 모두 세 개의 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이 1962년에 세워진 <마산동락계원회유장>비 이고, 바로 옆에 <마산동락계>비 그리고 뒤편에 <병진친목회 기념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마산동락계원회유장>이라고 새겨진 비석과 <마산동락계>비는 같은 모임에서 세운 비석입니다. 전자는 1962년에 새운 비석이고 후자는 10년 후인 1972년에 세운 비석입니다.

27명의 동락계원들이 만든 1962년 비석에는 계원 명단과 함께 멋진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산 높고/ 물 맑으니/ 산수일색/ 명승지라/ 동락형제/ 우리 정의/ 이 강산과 더불어/ 변치 않으리"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1972년 비석에는 유귀남 이라는 대표 명단과 함께 1962년 명단에 없는 새로운 계원들의 이름이 많이 새겨져 있고, 옛 비석과 이름이 중복되는 사람들도 몇몇이 있습니다. 1972년의 계원 명단이기 때문이겠지요.

나란히 서 있는 두 비석은 오래 된 것이 좀 더 멋스럽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체, 그리고 자연석의 모양을 그대로 살린 비석의 모양, 글씨가 새겨진 부분을 파낸 모양이나 함께 새겨진 싯귀 등이 훨씬 멋스럽게 보입니다. 10년 후에 새겨진 비석에는 풍류의 느낌이 훨씬 덜 합니다.

아무튼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경구를 다시 한 번 떠 올리게 되더군요. 동네 계모임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이렇게 역사학자와 탐방객들의 눈에 뛰어 이젠 다시  디지털 기록으로도 남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인생 뭐 있어? 같이 즐겁게 놀자

서원골계곡에 커다란 너럭 바위가 있는 이곳이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놀기에 좋은 장소였던 모양입니다. 1962년에 세운 비석에 서원골을 회유장이라고 새겨놓으니 말입니다. 원각사 아래 커다란 바위들이 있는 이곳에서 계모임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명칭부터가 유별나게 놀았던 흔적이 가득합니다.

동락계? 유장근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인생 뭐 있어? 같이 즐겁게 놀자!!"라는 뜻이 깊이 담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함께 세워진 다른 두 비석에 비하면 맨 처음 세워진 동락계비는 글자체, 싯귀, 그리고 비석의 새김 등에 매우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겠더군요.

아울러 지금부터 50년 전, 참 어렵고 힘든 시절에 이곳에서 풍류를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하는 궁금증도 자아내더군요. 어쨌든 동네 계모임도 기록으로 남으면 역사가 되고 유물이 된다는 것이 참 흥미롭더군요.

나란히 세워진 <마산동락계>비는 10년 뒤인 1972년에 세운 것으로 같은 계에서 세운 비석인데, 10년 전 비석과 중복되는 이름도 있고 새로운 이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산동락계의 1972년 회원 명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뒤편에 세원진 <병진친목회기념비>는 1916년 병진생 동갑계원들이 1976년에 세운 비입니다. 태어나서 60년이 되는 해인 환갑년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었습니다. 1956년에 45명의 용띠 사나이들이 모여서 만든 계모임이라고 합니다. 



비석을 보니 라이온스, 로타리, 와이즈멘 같은 현대적 계모임이 생각나더군요. 시내 곳곳에 가면 이들 클럽에서 세운 비석들이 여러 곳에 있는데, 당시 <마산동락계>나 <병진친목회> 같은 모임이 오늘날 라이온스나 로타리 같은 모임과 비슷한 분들이 모이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해보았지요.

이 비석 뒤편에는 노래가사 끝 구절에 '한조각 푸른 돌에 사연실으니 그 이름 자손만대 길이 빛내리'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자손만대에 길이 빛나지는 못해도 3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 누군가 비석을 관심있게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돈들인 값은 하는 것 같습니다.

벚꽃이 활짝 핀 서원골은 경관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아마 지금 같은 계절, 활짝 핀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때,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푸른 바다 마산만이 보이는 서원골에서 이 분들이 '계모임"을 하였겠지요.

이날 탐방 활동의 중간쯤 휴식 시간에 허정도 선생이 중학교 소풍 때, 선생님께 들었던 최치원에 얽힌 야사(?)를 아주 재미나게 들려주었습니다.

옛이야기 책에서 흔히 읽었던 내용과 흡사하기는 하였지만, 워낙 구라(?)가 뛰어나기 때문에 아마 중학시절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보다 훨씬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참가자들 모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들었을 뿐만 아니라 길을 가던 등산객도 멈춰서서 이야기를 함께 들었으니까요.


사실, 이날 도시탐방대가 갔던 곳은 처음 가본 곳이 아닙니다. 서원골을 따라 무학산에 오른 횟수는 수십회가 넘을 것이고, <동락계비>를 비롯한 비석들이 서 있던 자리를 지나친 일도 서너 번은 더 됩니다만 역사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이날이 처음입니다.

동네 계모임 비석도 기록으로 남기니 역사가 되고, 늘 가던 길도 역사학자와 함께 걸으니 유적지가 되더군요. 다음 도시탐방대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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