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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자전거 세계 여행, 이렇게도 할 수 있네요

by 이윤기 2011.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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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성국이 쓴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 세계여행>

벌써 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만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홍은택의 미국 자전거횡단' 기사를 보며, 막연하게 '나도 자전거로 여행 한 번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그런 관심 덕분에 좋은 기회를 만나서 큰 아이와 함께 임진각까지 자전거 종주 행사에 참여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작은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였지요.

사실 자전거 여행에 대한 이런 저런 궁리를 하던 차에 바로 오늘 소개하는 <자전거 세계여행>을 읽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설프고 무모한 듯 보이는 출발로 시작하는 <자전거 세계여행>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김성국과 그의 여행친구인 김자영이 경험한 중국과 동남아시아 자전거여행기입니다.

이들 두 남녀는 월드컵이 끝난 후, 2002년 10월에 한국을 출발해서 중국과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를 거쳐서 2004년 말 영국에 도착하였다. 그들의 자전거 주행 거리는 1만3500km에 달합니다.

서울 - 부산 거리를 대략 500km라고 보면, 서울 부산을 13번 왕복한 셈인데요. 책을 처음 받아들고 도대체 이들의 자전거 여행 모습이 어떠했을까하는 궁금함을 풀기 위하여 사진을 모두 넘겨보았습니다. 책에 나오는 사진만 봐서는 이들의 자전거 여행은 굉장히 어설퍼 보이더군요

홍은택의 자전거 여행 사진을 보면, 멋진 라이더 의상과 헬멧, 날렵하고 성능 좋은 자전거 그리고 자전거보다 더 멋있게 보이는 자전거 트레일러가 인상적이었답니다. 실제로 홍은택의 자전거 여행이 알려진 후에 국내에는 그가 사용했던 자전거 트레일러 수입 판매가 부쩍 늘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국이랑 영아 두 사람의 여행 사진에는 그냥 보기에도 너무 둔해 보일 만큼 자전거 앞뒤바퀴에 커다란 여행 가방이 달려있습니다. 저 정도 여행가방을 매달고 달리려면 중심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책을 읽어보니 처음에는 짐을 싸는 데만 1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고 하더군요. 밤을 새워 인천으로 이동하여 중국행 배를 타기로 했으나 100m도 못가서 김자영이 넘어졌고, 한 꾸러미의 짐은 한강변에 버려야 했답니다. 밤을 새워 인천에 가서 중국행 배를 타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이틀 후에야 중국 가는 배에 오를 수 있었다네요.

한 마디로 참 무모하게 떠난 듯이 보이는 여행입니다. 2년 동안 국립도서관 자료실을 아지트 삼아 여행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자전거 타기를 위한 준비는 제대로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여행 초반에 장거리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심지어 트럭 뒤에 자전거를 매달고 가는 위험천만한 사고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문화는 국경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첫 여행지 중국을 떠나 라오스로 이동하면서 육로로 국경을 지나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을 전해줍니다. 라오스로 가까이 갈수록 중국 땅임에도 불구하고 동남아분위기로 바뀌어가는 모습. 서서히 변해가는 현지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문화 완충지대임을 실감하게 되었답니다.

"비록 선 하나를 그어 국경이라 칭하고, 이 선의 안과 밖을 서로 다른 나라의 국경으로 정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국적 또한 갈라놓았지만 실로 이들의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국적은 중국인이지만, 이들의 방언은 라오스어에 가깝고, 이들의 주거 방식과 문화와 종교는 라오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 본문 중에서

이러한 문화의 완충지대는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하동이나 광양 혹은 섬진강 줄기 따라 하동사람과 구례사람이 모이던 화개장터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 입니다. 하동 사람들 억양은 경상도 사람들이 듣기에 전라도 말에 가깝고, 구례 사람들 억양은 전라도 사람들이 듣기에 경상도 말에 가깝습니다.

말 뿐만 아니라 풍습이나 생활습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문화가 만나는 완충지대는 나라 안에서 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사이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모양입니다. 책을 보면, 실제로 라오스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가는 국경근처에서도 똑같이 경계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들과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피부는 점점 더 검어지고, 하나둘씩 수염을 기른 무슬림들이 늘어난다. 점점 더 이슬람 문화권으로 다가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영아의 짧은 반바지 차림을 이제까지 태국인들과는 달리 곱지 않게 쳐다보는 시선들." - 본문 중에서

나라와 나라를 잇는 접경지대에는 어디나 조금씩 달라지는 문화 완충지대가 존재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자전거가 기차나 자동차보다 좋은 점

비행기나 자동차에 비하여 월등하게 느린 자전거 여행은 그곳 사람이 사는 흔적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자동차 역시 육로를 통해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만난다는 점에서 자동차는 많은 것을 놓칠 수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빠른 속도에 익숙한 많은 여행자들은 자동차로 여행을 하더라도 고속도로를 주행하게 됩니다. 고속도로 주변의 풍경은 산과 들을 지겹도록 만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고 듣고 체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전거 여행은 철저하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여행하게 됩니다. 우선 자전거는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옛날 사람들이 걸어서 다니면서 만들어 놓았던 도시와 도시를 잇는 옛 길을 선택해만 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어김없이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의 삶을 만나게 됩니다.

다른 여행 책에는 없는, 이 책이 가진 장점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유명한 관광지나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세계문화유산과 같은 유적에 대한 꼼꼼한 설명 같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대신에 국도를 따라 이어진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여행지 곳곳에서 만나는 현지 사람들의 '생활세계'를 엿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지은이가 소개하는 자전거 여행의 좋은 점입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 '페차부리'(태국의 도시 이름)는 당신의 페차부리와 다르다. 우리의 페차부리는 강렬한 햇빛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언제 도착하지, 언제 도착하지'를 수십 번 수백 번 되뇌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낯설지만 묘한 친근감을 느낀다."

그렇게 페차부리(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고향에라도 온 듯,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들떠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스스럼없이 길도 물어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쁨과 친밀감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은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종주를 끝낸 날,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들떠서" 지나가며 만난 사람들에게 히죽 히죽 반가운 인사를 건네 본적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김성국과 김자영의 자전거 여행을 기록한 <자전거 세계여행>을 읽다보면, 어쩐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자신감 같은 것이 생깁니다.

100m를 못가서 넘어졌다 일어나는 출발을 보며 함께 걱정하던 독자들은 길 위에서, 길 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풋풋한 삶을 나누는 느릿느릿한 여행기록을 읽다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알고 보면 두 사람은 사실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난 여행이지만, 마치 일기를 옮겨 놓은 듯한 소박한 글쓰기가 읽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쉽고 편안하게 다가서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말레시아에서 자전거로 건널 수 없는 피낭대교 앞에 섰을 때, 인도인 할아버지는 "원한다면 한 번 시도해 봐라"고 충고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자전거로 그 다리를 건넙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싶은 독자들도 '원한다면 한 번 시도해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다소 무모하다 싶은 출발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잔뜩 전해주는 그런 책입니다.




국이와 영아의 자전거 세계 여행 1 - 10점
김성국 지음/기파랑(기파랑에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