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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의 흑백사진, 추억도 역사가 된다

by 이윤기 2011.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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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글) 한 편을 쓰는 데는 보통 5~6장의 그림이 필요하다."

몇 년 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부산 경남지역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과 만나는 지역투어 특강 때 한 말입니다.

글쓰기는 쓰는 사람의 머리 속에 여러 장의 그림들이 있을 때 비로소 생생한 묘사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실제로 머리 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면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을 저도 여러 번 경험하였습니다. 블로그 포스팅의 경우도 사진 5~6장이 있으면 어렵지 않게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얼마 전에 창원의 모 초등학교 폐교에서 본 오래 된 흑백 사진들에 담긴 이야기를 한 번 상상해 보려고 합니다. 낡은 폐교의 중앙 현관에 붙어있는 오래된 흑백 사진들인데,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 같아 카메라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날 본 10여장의 사진 중에서 가장 인상에 깊이 남은 세 장의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불과 40 ~50년 전의 사진들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사이 우리나라가 참 많이 변하였습니다.



삼륜차 타 보셨나요?

저 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다 기억하는 삼륜차입니다. 가끔 드라마 같은데 이 차가 나오더군요. 우리나라에 두 대가 남아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1970년 대 중반) 엔 저 삼륜차를 용달 화물차로 많이 사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그 중에 한 번 저런 용달차에 이삿짐을 싣고 이사를 갔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자동차가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삿짐을 싣고 내리는 동안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저 사진도 1960년대 혹은 70년대쯤 찍은 사진인 것 같습니다.

화물과 사람의 구분이 없던 시절이라 짐칸에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의 주인공들은 단 번에 자신을 알아 볼 수 있겠지요.



그 시절 시외버스의 추억

두 번째 사진은 부산에서 충무로 가는 시외버스인 모양입니다. 중간에 마산과 고성을 들러가는 버스인데, 지금도 저 코스로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저는 큰 보따리를 가진 저 많은 승객들이 저 타에 모두 타고 갈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저 시절만 하여도 버스 지붕위에 사람이 타고 다니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지금은 합성동과 댓거리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지만, 원래는 서성동에 터미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315탑과 KT 사이에 터미널이 있었답니다.

저 사진 속 버스가 정차한 장소가 옛마산시외버스터미널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 시절에는 터미널에만 차가 서는 것이 아니라 시내 여러 곳에서 승객을 태우고 다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외버스 차량은 훨씬 좋아졌지만 부산을 출발한 시외버스가 마산남부터미널과 고성을 거쳐서 통영까지 가는 운행 코스는 여전히 그대로인듯 합니다.

저 시절에는 버스가 늘 만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퇴근 시간이면 시내버스도 안내양이 사람을 꽉꽉 다져넣을 정도로 복잡하였고, 시외버스도 늘 사람이 넘쳐났던 것 같습니다.

요즘이야 어림도 없는 이야기겠지만 시외버스도 좌석이 없으면 목적지까지 서서 가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닌 80년대에도 대구-마산, 부산-마산을 고속도로로 운행하는 시외버스들도 모두 입석으로 승객을 태우고 다녔지요.

명절에 큰 집에 가기 위하여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5~6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렸던 기억들도 남아있습니다. 부산과 대구로 가는 차가 특히 승객이 많았는데, 터미널 승강장을 2~3 바퀴씩 뺑뺑 돌아 줄을 섰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막혀서 귀성 전쟁이지만, 그 때는 기차표, 버스표를 구하는 것이 귀성전쟁이었지요. 고속버스와 기차는 사전 예매를 했기 때문에 저렇게 혼잡하지는 않았는데, 시외버스는 늘 당일 예매였기 때문에 명절만 되면 터미널이 북새통이 되곤 하였습니다.

하기야 마산의 경우 극장이 좌석제로 바뀐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인기있는 영화는 표를 사고도 극장 문앞에 사람들이 몰려 서로 먼저 자리를 잡으려고 밀고 당기는 몸싸움을 벌이곤 하였지요.



베트남으로 가는 배 아닐까요?

세번 째 사진은 저에게도 아주 낯선 장면입니다. 군함으로 보이는 큰 배가 정박한 것을 보면 진해인 것 같고, 제 짐작으로는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군인들을 환송하는 장면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배 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고 배 아래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본 '배달의 기수' 혹은 '대한뉴스' 같은 곳에서 저런 장면을 봤던 것 같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1975년 4월에 끝이 났으니 만약 베트남으로 가는 배였다고 한다면, 1960년대 중반의 사진인 모양입니다. 베트남 파병이 1965년, 1966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니 만약 월남 파병 사진이라면 제가 태어날 무렵의 사진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오래 된 사진들을 보니 사람들의 생활사가 곧 역사가 되고,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진 추억이 곧 역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