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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국전쟁 희생자, 죽음을 차별 하지 마시라 !

by 이윤기 201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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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한국전쟁 61돌이 지나갔습니다. 정부는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전쟁 전자사 유해발굴 사업은  2002년에 시작 되어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으며 대통령과 정부의 관심 속에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은 2010년을 끝으로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오늘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사업과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을 연관지어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적어도 500만 명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고 1000만 명이 넘는 가족이 이산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정부는 전사자 유해발굴이 시작된 2000년부터 10년 동안 5576명의 유해를 발굴하였지만, 아직도 13만 여명의 유해가 미발굴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전사자 유해 발굴을 추진하고 이미 나이가 70~80세에 이른 고령화된 관련자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현장 제보를 최대한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계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사자 유해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탓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군 전사자 유해발굴 최후의 한 사람까지, 민간인 유해발굴은 왜 중단?

그런데,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유해 발굴 사업은 2010년 말에 완전히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한시적으로 구성되었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가 약 6개월 전에 해산된 이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5년 동안 활동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에는 총 1만 860건의 진실규명 민원이 접수되었는데, 그중 88%가 민간인 집단 희생과 적대세력 관련 사건이라고 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년 동안 6000여구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였지만, 아직도 100만 명이나 되는 희생자 시신이 땅 속에 묻혀있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을 전면 중단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지만, 민간인 유해발굴사업을 맡았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 해산을 내버려두었고, 더 이상 추가 발굴사업도 추진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인 희생자 유해 6000여구, 충북대 가건물에 방치

심지어 지난 5년 동안 발굴한 6000여구의 민간인 희생자 시신은 창고와 다름없는 충북대학교 가건물에 방치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국의 100여 개 유족회로 구성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는 한국전쟁 당시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46년에서 1950년 사이에 대구, 제주, 여수, 순천에서 이미 10만 명 이상 학살되었고, 그 이후 보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순천, 경주, 산청 등에서 30만 명 이상, 경남 산청을 비롯한 지리산 인근에서 빨치산을 토벌한다며 10만 명 이상, 미군 폭격에 의해 10만 명, 북한 인민군에 의해 10만 명 등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학살당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찾겠다고 나선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이념 대립 과정에서 남북한의 군인과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100만 명이나 되는 희생자들의 유해발굴은 완전히 중단하고 아예 모른 채 하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가 희생당한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그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 당연한 국가의 책무라면, 마찬가지로 전쟁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 역시 국가의 책무입니다.

한국 전쟁기간 동안 국가 공권력의 범죄행위로 희생된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희생자의 유해를 그대로 땅속에 남겨 두고 ‘진실과 화해’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KBS 창원 방송 생방송 경남 청취자 칼럼의 내용을 일부 수정, 보완 하였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에 청취자 한 분으로부터 항의 전화을 받았습니다. 제 방송을 라디오로 직접 들은 손모 선생님이신데 화요일에 방송을 듣고 연락처를 확인하여 목요일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자신은 경주 보도연맹 사건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인데, 보도연맹원 중에는 실제 빨갱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군전사자와 같이 유해를 발굴하고 희생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통 이런 전화는 자신을 밝히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화를 주신 손선생님은 시종일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생각이 틀렸으니 고치라고 강요하시지도 않으셨고, 다만 자신과 같이 '완장'을 찼던 보도연맹원으로부터 핍박 받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조사를 해 봤더니 보도연맹원 중에는 억울한 희생자들이 많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실제 좌익 활동의 핵심 인물들은 대부분 빠져나갔을 뿐만 아니라 재판과 같은 법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말씀도 전해드렸습니다.

전화를 끊고나니 다 못해드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완장'을 찼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서로 화해를 해야하지 않겠냐는 말씀을 못드렸습니다.  과거사 정리는 진실과 화해로 나아가기 위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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