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지승호가 인터뷰한 박노자의 <좌파하라>
4·11 총선이 끝난 지 석 달이 다 지나가고 제 19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었지만, 이른바 진보진영의 내홍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 과정의 부정과 부실은 이른바 종북 논란으로 확장되고 대선을 앞두고 있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입니다.
총선과정에서 첨예한 갈등으로 표면화 되었던 진보정당의 분당과 진보진영의 분열, 그리고 예상을 뒤엎은 총선 패배, 검찰의 통합진보당 압수 수색 같은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주의 실패,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선동하는 좌파의 시선으로 세상을 직시하는 박노자를 인터뷰 한 책이 나왔습니다.
'학벌, 재벌, 족벌, 파벌' 등으로 얼룩진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까발린 사회주의 러시아출신의 한국인 박노자가 '언설로는 모두 진보를 말하는 좌 클릭을 행하면서도 정작 몸은 리버럴들의 품에 안기는 우 클릭의 시대'를 또 한 번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책입니다.
<닥치고 정치>의 김어준, <희망을 심다> 박원순, <괜찮아 다 괜찮아> 공지영,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김규항 등을 인터뷰한 자칭 전업 인터뷰어(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박노자를 인터뷰 하였스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국회 진출'을 위하여 진보신당 비례대표 출마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민족주의 좌파의 불치병을 대놓고 비판하는 박노자를 인터뷰한 책이 바로 <좌파하라>입니다.
박노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진짜 진보인가요?"
대선, 총선 따위의 정치 지형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본주의는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안철수의 정직함이 통하는 것은 상식없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이 좌파, 아니 진보인가요?"하는 반문을 거침없이 던지는 박노자의 박원순 평가는 이렇습니다.
"포스코, 풀무원 등 사외이사 출신이며 코오롱 등 재벌의 후원을 따는 데에 수완이 비상한 '재벌가의 친구'이고, 부하들에게는 거의 '독재자'로 인식되는 스타일의 리더지만, 대다수의 중도적 유권자들에게는 '참신한 얼굴'이자 거의 '진보'로 다가왔잖아요?"
박원순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대놓고 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박노자는 '참신하고 깨끗한 리버럴'에 다시 속아 넘어 가지 않으려면 진짜 진보가 피나는 노력을 통해 이 사회의 계급적 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원칙과 상식을 내걸었지만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이파크 파병이라는 범죄를 저질렀고, 국가보안법조차 폐지하지 못했으며, 자본의 입장만 반영되어 쌍용차 매각이 이루어졌으며, 한미FTA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력한 야권 대선 후보인 문재인에 대한 평가 역시 조금도 후하지 않습니다. 문재인의 <운명>을 보면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에 대하여 불가피했다고 변명하고 있으며, 무상보육, 무상교육을 말하지만 실현 방안에 대해서는 별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에 따르면 무상보육, 무상교육은 현대와 삼성 같은 재벌들로부터 북유럽 수준으로 세금을 걷어 들이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습니다.
얼치기 진보 비켜라, 좌파 좀 제대로 하자
박노자는 대통령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민중에게 가장 해로운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부르주아 정객 중에서는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한국사회의 기본 모순을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되든 간에 우리의 과제는 하나밖에 없는 거죠. 민중들을 조직하고, 반신자유주의적인 정서를 만들고, 대중들한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이야기하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여론을 확산시키고, 그 다음에는 그것에 대한 투쟁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박노자가 긴 인터뷰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좌파가 가야 할 길을 <나는 꼼수다>에서 찾을 수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나꼼수의 장점 하나는 말하자면 패러디, 웃음, 카니발의 에너지를 많이 풀어주는 것 같아요… 문제는 뭐냐 하면 웃고 패러디하고 적당히 욕하고 이런 것까지는 좋게 볼 수 있는데, 욕만 가지고는 체제를 무너뜨리기가 어렵습니다."
"젊은이들한테 나꼼수나 진중권은 신선한 음료수 같은 존재죠. 콜라 같은 겁니다. 마시면 왠지 시원하잖아요. 나꼼수의 욕설 같은 것을 들으면 한국사회에서 쌓일 수밖에 없는 모든 원한이 풀리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는 거죠."
그러나 나꼼수 방식으로는 한국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박노자 생각입니다. 이명박을 바꿀 수는 있지만, 아니 결국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으로 바뀔 수밖에 없지만 이건희,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자본 권력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꼼수'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박노자는 이건희, 이재용에게 맞서려면 취약하고 미숙한 한국 좌파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기업노동조합 중심의 취약한 조직 기반과 활동기반을 극복해야 하며, 전체 노동인구의 56~57퍼센트에 이르는 비정규직에 대한 조직화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노동자 정치와 멀어져가면서 명망가 정치로 국회 행을 노렸던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같은 정치인들을 향해 '한 계급의 지도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평가합니다. 그들이 "국회에 들어가서 국회를 바꿀 수도 있지만, 또 국회가 사람들을 그만큼 바꾸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예컨대 노회찬, 심상정이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룰라나 차베스 같은 계급의 지도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는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은 약자들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경쟁사회에서 경재의 법칙으로 생존할 수 없는 약자들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청년, 살인적인 등록금에 고통받는 학생, 명퇴 이후 자영업자로 내몰리지만 숨통을 조이는 대자본에 치여 줄도산 당하는 자영업자들, 노점상들이 모두 약자들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상위 1퍼센트의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복지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복지를 실천하려면 자본가들에게는 훨씬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하고요. 부유세를 어떻게 도입해야 할 것인지 얘기해야 합니다. 복지라는 것이 재분배인데, 재분배하자면 상위 1퍼센트 내지 최고 5퍼센트의 돈을 가져와서 그 돈을 나눠줘야 합니다."
복지문제는 기본적으로 계급갈등이기 때문에 계급갈등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좌파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복지는 국가가 베풀어 주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공공성의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박노자가 들려주는 복지국가 노르웨이의 모습은 여전히 꿈같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출산유급휴가 46~56주, 출산과 산후조리 무상의료, 심지어 병원 왕래 택시비도 일정부분 보상,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 예술인, 미술인에게 기본소득보장 같은 사례들입니다.
이런 복지를 실현하려면 부자들의 세율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고 부자들의 경우 노르웨이처럼 60~70퍼센트 정도 돼야 하고 법인세 역시 일본 정도(40%)는 되어야 복지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무상급식, 무상교육, 복지는 '계급갈등'이 본질
아울러 이런 복지가 실현되려면 재벌들이 민주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박노자의 생각입니다. 재벌을 민주화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경영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업의 의사결정에 사회, 국가, 노동자들이 골고루 참여해야 하는 것이죠. 독일식으로 기업 이사회의 3분의 1 의석을 노동자 대표들이 차지해야 하는 것이고요. 국가와 시민사회, 예를 들어서 환경단체, 전국적인 노동단체의 대표들도 약 3분의 1 정도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요."
박노자 교수는 이 정도 변화는 일어나야 기본적인 기업의 민주화가 가능한데, 한국사회에서는 혁명적인 일로 받아들이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그는 노동자 자주기업 같은 사례가 매우 중요하지만, 체제가 자본주의로 남아있는 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법칙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좌파하라>입니다. 박노자는 좌파답게 한다는 것을 유럽 좌파들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좌파답게 한다는 것은 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 유럽연합에 대한 반대, 민영화에 대한 절대 반대와 자원과 에너지 등 핵심 부문 대기업과 은행의 국유화지지, 그리고 노동계급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대한 우선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좌파가 노동계급을 우선시 하지 않으면 노동계급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극우가 파고드는 틈을 만들어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온건 좌파들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처지가 어려워지고 있고, 반이민자 정책같은 극우들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노자 교수는 자본주의 종말의 징후가 뚜렷하다고 강조합니다. "저임금 노동의 과도한 착취에 의한 초과 이윤 수취"가 한계에 다다랐고, "기술 혁신에 의한 신상품 개발과 새로운 상품 시장의 창출"도 과잉생산, 과잉경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위기, 종말 징후 뚜렷하다
아울러 "산업부문에서 금융부문으로의 자본 유출"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고, 의료, 교육 같은 "비시장 부문의 시장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A급 좌파(이리 불러도 될지) 박노자는 사회주의가 아니면 이런 구조적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신자유주의의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장기공황으로 가고 있는 자본주의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지금 자본주의의 문제는 과잉 생산의 위기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자면 사회주의로 가야죠. 노동시간을 법적으로 줄여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젊은이의 구매력을 높이고, 이렇게 하면 해결의 실마리가보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2008년에 시작된 공황이 장기공황으로 가고 있으며, 2009년, 2010년 잠시 상황이 좋아진 것은 막대한 공적 자금으로 은행의 파산을 막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은행을 살리는 대신 국가 채무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유로존 사태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예측이 빗나가 이번 공황은 해결되고 수습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은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환경위기, 환경참사로 이어질 것이고 인류 공멸로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극복은 인류의 공멸을 막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월가 시위'와 같은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박노자의 생각입니다. 미래가 없어진 젊은이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산발적인 운동이 아니라 자본체제를 멈춰 세울 수 있는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운동과 힘을 합치고, 훨씬 더 거센 저항을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왜 자본주의를 폐기해야 하는지 이론적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몽둥이 들고 약탈하는 것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박노자 교수는 남한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북조선 체제가 사회주의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은 분명히 합니다.
"국가 관료들이 인민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인권이 억압되고, 인민들의 권리가 실시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북한 나름의 역사성, 대외적 상황논리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평양군중보다 나꼼수 팬들이 더 한심해 보인다
그는 오히려 남한의 진보를 향하여 북한이라는 거울에 남한을 잘 비춰보라고 설파합니다. 김정일 죽음에 오열하는 평양 군중과 노무현 대통령이 비명에 죽었을 때 분향소를 가득 메운 군중들에게는 분명 닮은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핏줄에 따르는 소속감부터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격차, 각종 계급적 모순들, 그리고 영어 열풍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대다수 문제들은 북조선 사회도 갖고 있습니다."
'수령'과 '노짱'을 완전무결한 인격의 소유자로 추앙하는 분위기가 있고, "짱의 위대한 령도를 받아 한 일에 대해서는, 그들은 원천적으로 자기비판을 할 줄 모른"다는 것도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평양 군중들은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빠'가 되었다고 할 수라도 있지만, 남한의 '빠'들은 스스로 가신의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가카를 씹을 대로 씹으면서도 아키히로(明搏)의 왕좌를 박원순이나 유시민이 차지한다 해도 이 나라 노동자들이 그대로 죽어날 거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나꼼수의 팬들이 평양의 군중보다 훨씬 더 한심해 보입니다."
위험한 발언이지요. 나꼼수 팬들이 평양의 군중들보다 더 한심하다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깊이 새겨야 할 이야기입니다. 긴 시간 박노자 교수와 영상 인터뷰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한 지승호는 에필로그에 "자본에 상처 받은 우리에게 소금을 뿌려대는 것" 같더라고 썼습니다.
그는 이 책의 맨 마지막 문장으로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읽고 정치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고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좌파하라 - 박노자.지승호 지음/꾸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