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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진보주의 프레임으로 대선판을 다시 짜라

by 이윤기 201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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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레이코프는 <도덕의 정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인지언어학자이다. 그는  MIT 시절 스승이었던 노엄 촘스키의 생성언어학을 비판하면서, 인지언어학을 창시했다.

 

그의 인지언어학은 수학과 정치, 신경과학 등 다른 분야로 확장되고 있는데, 앞서 소개한 책들과 <프레임 전쟁>은 인지언어학을 통해 미국정치를 분석하고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와 <프레임 전쟁>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프레임(frame)'은 레이코프의 동료교수이자 세계적 언어학자인 필모어가 언어 표현의 의미를 설명하고 기술하기 위해 언어학에 도입한 개념이다.

 

프레임은 "문화적 관례나 세상에 대한 믿음, 일을 처리하는 익숙한 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등에 대해 특정하게 구조화된 심적 체계"를 말한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우리의 구조화된 정신 체계로, 프레임을 장악한다는 것은 그 세력이 우리 세계의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여전히 보수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라크 전쟁'은 그들도, 진보주의자들도, 언론도, 한국 독자들도 여전히 '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프레임은 "미국이 오직 선한 싸움만을 한다는 일상적 이론을 고려할 때 매우 사실적인 함축"을 갖는다고 한다.

 

지금처럼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전쟁'으로 간주된다면,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그리고 왜 참전했는지에 상관없이 그것은 정당한 전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비겁한 겁쟁이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무리 힘들다 해도 최후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 프레임에서는 '황급히 도망치는' 사람들은 도덕적 대의가 아니라 그들은 겁쟁이다. 황급히 도망치기 방식은 도덕적 명분은 물론 이 명분을 위해 싸우고 있는 대원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

 

이라크전에 관한 한 미국에서는 전쟁 프레임이 아직까지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전쟁 프레임은 미국인들에게 이와 같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쟁 프레임은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정의할 뿐만 아니라 그 해결책을 통제한다. 전쟁에서 황급히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고 부도덕한 행동이다." (본문 중에서 )

 

이라크 철군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은 '황급히 도망친다'는 비난에 '그대로 있다가 누워서 댓가를 치러라', '누워서 죽어라'로 대응했다. 그리고 그 대응은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보수주의자들의 프레임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레이코프'의 주장이다.

 

이라크, '전쟁' 프레임과 '점령' 프레임의 차이

 

레이코프는 앞서 내놓은 책에서 프레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화당의 상징인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주장하였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새로운 코끼리(전쟁)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점령)을 짜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한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점령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이라크 점령'이라는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이라크 전쟁'이라는 프레임으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치와 개념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환영받는가? 우리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이익보다 손해를 더 많이 끼치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심한 부상을 입고 있는가? 문제는 철수의 여부가 아니라, 철수 시기다. 점령에서는 악한 적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 떠날지 그 시기가 문제이다." (본문 중에서)

 

2003년 전쟁 직후 싸담 후세인의 군사기구를 제압하고, 군사작전 종료를 선포했을 때, 전쟁은 이미 끝났다. 그 다음에는 점령에 들어갔다. 미군은 전재에서 싸우도록 훈련받았을 뿐이지 언어와 문화도 모르는, 내전이 진행 중인 이라크에서 점령 반대 폭동에 맞서며 지내도록 훈련받지 않았다. 따라서 미군은 신속히 이라크에서 철군하여야 한다는 것이 레이코프가 주장하는 새로운 프레임이다.

 

레이코프는 레이건 이후 거듭 되는 진보진영의 실패 원인을 '프레임의 실패'라고 진단한다. 지은이는 <프레임 전쟁>을 통해 진보주의자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진보적 비전은 무엇인지, 근본적인 도덕적 가치와 원리는 무엇인지, 어떻게 그 가치를 명확히 드러내고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그 비결은 바로 효과적 의사소통이다. 즉 진보주의자의 탄탄한 신념에 부합하는 낱말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어떠한 진실도 효과적인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으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으며, 이성과 합리성만, 좋은 정책만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가치관이 다르다


한편, 레이코프는 공정성, 평등, 책임, 자유, 신뢰성, 안보와 같은 근본적 가치들이 어떻게 프레임으로 작동하는지를 <프레임 전쟁>을 통해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의미로 이해될 것처럼 느껴지는 근본적 가치를 나타내는 '공정성', '평등'과 같은 가치들이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에게 얼마나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이해시킨다.

 

'공정성'의 가치를 말하자면, 진보주의자에게 소수자 우대조치는 공정성과 관련이 있으며, 광범위한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한 정책이다. 그러나 보주주의자들에게 소수자 우대 조치는 단순히 불공정하며 비도덕적일 뿐이다.

 

'자유'라는 가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인간존엄성의 원칙에 근거하여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근본적인 자유라고 인정하며, 사회보장제도나 복지사업, 전국민의료보험이 자유를 신장한다고 본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전국민의료보험 같은데 쓰이는 세금은 납세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평등, 책임, 신뢰성, 안보와 같은 미국인들의 근본적인 가치들에 대하여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이 얼마나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진보진영, 이중개념주의자를 설득하라

 

특히, 레이코프가 이번 책 <프레임 전쟁>에서 새롭게 주목하는 것은 '이중개념주의자'이다. 그는 인간은 모두 '개념적으로 이중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즉, 보수주의적 세계관과 진보주의적 세계관은 서로 배타적이지만, 우리 두뇌 속에는 이 두 세계관이 함께 존재하며, 문화적으로도 그렇다는 것. 현실 세계에서 모든 측면에서 완전한 보수주의자나 완전한 진보주의자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다수의 대중들은 '이중개념주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보수적이고, 진보적인 국내 정책을 지지하면서 보수적인 대외 정책을 지지하며, 시장에 대해서 보수적 견해를 가지지만 시민적 자유에 대해서는 진보적 견해를 나타내는 등 삶의 측면에 따라 같은 사람이 두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다." (본문 중에서 )

 

레이코프는 이러한 '이중개념주의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이 실패하였다고 진단한다. 즉 진보주의자들이 이중개념주의자들을 '중도주의자'로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표를 얻기 위하여 정책을 수정하고, 어설픈 타협을 시도함으로써 진보적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실수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중도주의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진보적 가치'를 포기하고 타협을 시도하는 것은, 스스로 진보적 가치가 틀렸음을 자인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은 이중개념주의자들에게도 원래의 지지자들에게 말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말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것.

 

진보주의자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신념을 진정성 있게 설파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구성하여, 이중개념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진보적 가치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레이코프의 주장이다.

레이코프는 진보주의자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보수주의자들의 프레임을 그대로 둔 채 공격을 가하는 방식이나 보수주의자들의 가치관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이중개념주의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이중개념주의자들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은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이것은 늘 역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이동함으로써 진보주의자들은 실제로 우파의 가치를 활성화시키고 자신들의 고유 가치를 포기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정치적 지지자들을 소외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레이코프의 이론에 따르면, 오른쪽으로 이동한 한국 참여정부의 실패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보수정당에 대한 연정시도, 보수파 인사의 주미대사 임명, 아파트 분양원가 반대, 성급한 FTA 추진과 같은 오른쪽 이동이 지지자들을 잃어버린 요인이 된 것이다.

 

레이코프가 쓴 <프레임 전쟁>에는 친절하게도 '깨끗한 선거와 건강한 식품', '윤리적 기업', '대중교통'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전략적 의안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사례를 통하여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주의자들의 승리가 가능성이 우세한 현재 시점에서 진보주의자들의 새 프레임 짜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프레임 전쟁 - 10점
조지 레이코프.로크리지연구소 지음, 나익주 옮김/창비(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