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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제주 여행

자연을 영혼에 인화한 사진작가 김영갑

by 이윤기 201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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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연수 사흘째는 가장 바쁘게 움직인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성산 일출봉에 일출을 보러 갔다가 실패하고

아침 밥으로 조개죽을 먹고 우도를 다녀왔습니다.

우도를 다녀와서 늦은 점심으로 '춘자싸롱'에서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김영갑 갤러리를 찾아갔습니다.

 

제주에 오기 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주편>을 읽으면서

꼭 가고 싶은 장소로 세 곳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한라산 영실 코스, 다랑쉬 오름과 김영갑 갤러리 그리고 추사관과 추사유적지입니다.

여럿이 떠넌 연수라 가고 싶은 곳을 모두 갈 수는 없었습니다.

 

한라산은 영실 대신 성판악 코스로 백록담까지 다녀왔습니다.

일행 중 한라산을 처음 오르는 후배들이 대부분이라 백록담이 있는 정상을 밟으러 갔습니다.

 

다랑쉬오름은 우도를 다녀오느라 시간이 모자라 빼먹고 김영갑 갤러리로 갔습니다.

추사관이 있는 대정쪽은 아예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랑쉬오름과 용눈이오름은 다음 제주 여행을 위해 남겨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라산 영실 코스와 추사관과 추사유적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이번에 김영갑 갤러리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오래 전부터 김영갑 갤러리의 명성(?)을 들어왔습니다만,

몇 차례 제주 여행을 갔어도 인영이 닿지 않았습니다.

지난 여름 제주에 갔을 때도 단체 일정을 맞추다보니

짧은 시간도 따로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오후 4시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 김영갑 갤러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제는 제주 여행의 명소가 되었는지 주차장에 차가 가득하였고,

매표소에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김영갑 갤러리는 2002년 폐교를 개조하여 개관하였습니다.

 

 

1957년 충남부여에서 태어난 작가는

홍산중학교와 한양공고를 졸업하였으며

1982년부터 제주에서사진 작업을 시작하였고,

1995년에 제주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제주 사진을 찍기시작하였습니다.

 

2002년 여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개관하였으나

2005년 5월 29일 '루게릭 병'으로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합니다.

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일출과 석양, 들판과 구름, 억새와 풀, 나무 등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몰래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고 합니다.

제주의 자연을 사진에 담는 그의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혼신 모두 바친 노력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부턴가 사직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였고,

2001년 겨울무렵 오십견인줄 알았던 통증이 '루게릭 병'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3년을 더 살 면 잘사는 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굳어가는 몸을 이끌고 손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전시실에는

그의 생명과 맞바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인생과 맞바꾼 황홀하고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김영갑 갤러리의 작품은 1년에 두 번 정도 교체된다고 합니다.

이번에 갔을 때는 제주의 바람을 담은 사진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풀들이 사진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김수영의 시에 나오는 그런 풀들이

김수영의 시에 나오는 그런 바람이

김영갑이 찍은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바람을 담은 그의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사진인줄 알고 보는데도 자꾸만 그림처럼 보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들판의 풀들이

마치 붓으로 그린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김영갑 갤러리는 원래 '삼달국민학교'가 있던 폐교터에 만들어졌습니다.

루게릭병 선고를 받은 작가는 세계적인 수준의 갤러리를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주의 상징인 바람과 돌과 사람을 주제로 만든 정원은 모두

그의 손길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육신을 태워 이 정원의 일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갤러리 뒤편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이 있습니다.

전시실을 오래 둘러 보느라 시간이 늦어 찾집에는 들어가보지 못하였습니다.

갤러리와 마당에 가꾼 정원에 잘 어울리는 찻집이었습니다.

갤러리와 마당에 가꾼 정원으로부터 비켜 난 건물 뒤쪽 구석자리에 물러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으로 나오면 계절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원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더군요.

많은 사람들은 정원을 꾸미고 있는 아기자기한 장식품들

제주 자연을 축소판 처럼 옮겨놓은 정원에서 자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갤러리 마당에 있는 자연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막, 제주의 자연을 사진 속에 옮겨놓은 작가의 작품을 보고 나온 여운 때문일까요?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을 보고 나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마당 정원을 꾸민 돌과 나무와 풀들이

다르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다르게 보려고 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흑백 사진처럼 흐린 하늘이

살아 있던 그때, 늘 허전하고 외롭게 지냈던 작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필름과 인화지를 마련하기 위해

배고픔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그는 늘 혼자이길 원했다고 합니다.

그는 일(사진)에 중독되어 살았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면서

'명상'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불행은 궁핍할 때 찾아온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끼니 걱정은 면하고 필름값과 인화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

그에게 병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병이 깊어지면서 사진을 찍지 못할 때가 되어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에 하던 그 때가 행복한 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리워지더라는 것입니다.

 

 

파랑새를 품에 안고 파랑새를 찾아다녔었다는 것이지요.

몸이 아파 셔터를 누를 수 없을 때가 되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일에 중독되어 아무 것도 살피지 않고 사진을 찍으며 살았던 시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 이곳을 찾은 날 전시실에는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주편>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은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을 찍은 사진을 전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1년에 두 번 전시작품이 바뀐다고 하니,

제주에 갈 때마다 들러도 그의 작품을 모두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장소입니다.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우도는 모두 처음이 아니었는데,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첫 만남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다시 가고 싶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김영갑 작가가 자서전처럼 쓴 책<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사 왔습니다.

책을 읽고 책에 담긴 사진을 보노라면

또 다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고 싶을 것이 분명합니다.

 

 

고집불통의 사진 작가 김영갑은 '순교자'입니다.

그는 스스로 '사진을 찍다가 순교하겠다.

여한 없이 사진을 찍다가  웃으며 죽고 싶다'고 하였답니다.

20만장의 사진 원고를 남긴 그는 여한 없이 사진을 찍었을까요?

 

 

김영갑 갤러리는 두모악,

2013년 전시는,

하날오름관에서는 5월까지 <유작展>

 

두모악관에서는 

 <상설展 - 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

전시회가 1년 내내 열립니다.

 

똑딱이 카메라로부터 DSLR까지, 하다못해 스마트폰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제주로 여행을 떠나시는 모든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곳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