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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제주 여행

제주 4.3사건을 바라보는 두 개의 다른 시선

by 이윤기 201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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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된 것은 1985년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주 현지에서도 4.3사건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발언하기 전이었는데, 제가 일하던 대학교지에 4.3사건을 취재하는 르포 기사를 실었던 일이 있습니다.

 

4.3사건 르포기사를 비롯하여 군사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여러 기사들로 '배포금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으로 만든 교지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배포되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을 떠올리자 그 시절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충격적 진실을 전해 준 <해방전후사의 인식>그리고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에 대한 기억이 돋아났습니다.

 

이번 제주여행에서 4.3 평화공원과 기념관을 찾았을 때 대학시절 4.3 항쟁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되었던 그 시절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4.3사건을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고,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말 할 수 있게 된 것만 하더라도 참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전시관을 둘러보도 정말 안타깝고 기가 막히는 전시물을 만났습니다. 바로 '제주 4.3사건'을 규정하는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서로 다른 내용이 담긴 두 개의 전시 판넬이었습니다.

 

 

첫 번째 판넬은 4.3평화공원과 기념관이 만들어질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 판넬에 새겨진 '제주 4.3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주 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5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발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판넬 바로 아래에는 최근(2012년)에 새로 만들어진 판넬이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그 판낼에 새겨진 '제주 4.3 사건'은 조금 다릅니다.

 

"제주 4.3 사건이란"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을 계기로 제주사회에 긴장 상황이 있었고, 그 이후 외지출신 도지사에 의한 편향적 행정 집행과 경찰 서청에 듸한 검거선풍, 테러, 고문 치사 사건등이 있었다.

이런 긴장상황을 조직의 노출로 수세에 몰린 남도로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군 경을 비롯하여 선거관리 요원과 경찰가족 등 민간인을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이다."

 

얼핏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위에 있는 판넬과 아래에 있는 판넬은 4.3사건의 발발과 책임 소재를 상당히 다르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개관 당시 처음 만들어진 위의 판넬은 4.3사건의 시작을 47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고,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만들어진 아래 판넬은 1948년 4월 3일 무장대 봉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고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군 경을 비롯하여 선거관리 요원과 경찰가족 등 민간인을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일어난 민간인 희생에 대해서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판넬을 그냥 둔채로 두 번째 판넬을 부착한 것은 첫 번째 판넬에 나와있는 내용을 보완(?)하기 위한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판넬을 부착한 사람들은 첫 번째 판넬의 내용이 군경의 책임을 강조하였다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참 안타까운 것은 어쨌든 제주에서는 4.3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위에 있는 두 개의 4.3사건 정의가 공식 문서인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기록된으로 남아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매듭을 짓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안타까운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