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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토론

일제고사, 원래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

by 이윤기 2009.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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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너무 일찍 일이 터졌습니다.  ‘임실의 기적’이 조작이라는 뉴스가 일제히 쏟아져 나왔더군요. 엊그제 전국 일제고사 성적이 발표된 것을 보며 곧 '엉터리 시험'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내와 나누었는데 예상보다 더 빨리 판이 엎어졌습니다. 

앞으로 일제고사 성적을 계속 공개하고, 교장이나 교감 승진에 아이들이 학업성취도 결과를 반영하는 일이 계속되면 다음 시험부터 일제고사는 분명 ‘짜고치는 고스톱'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제고사 반대 4번째 이유가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30여 년 전, 일제고사에 대한 추억

30여 년 전 저의 일제고사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번 일은 초 읽기에 들어간 시한폭탄이 터진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일제고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 시험인지도 잘 몰랐던 30여 년 전 중학교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렇습니다. 당시는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에 진학 할 때였고 내신 성적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때였습니다.

그때도 학적부에 기록으로 남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이외에 시내의 모든 학교가 똑같은 시험문제로 시험을 치르는 학력 진단 일제고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시내 모든 학교가 같은 시험을 치르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국 모든 학교가 같은 시험을 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학력진단 일제고사가 치르질 즈음엔 담임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번 시험은 학적부에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개인별로 성적결과도 발표하지 않고, 다른 학교와 학업성취도를 비교하는 시험일뿐이다.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시험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 시험은 학급 친구들과 별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뜻 입니다. 옆에 친구가 슬쩍 커닝을 하거나 모르는 문제의 답을 알려 달라고 옆구리를 찌르면 슬쩍 답안지를 보여줘도 상관없는 시험이라는 뜻입니다.

과목에 따라서는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던 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석차를 매기지 않으니 너희들 개인 점수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학교 전체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시험이야. 우리 학교가 시내에서 꼴찌를 하면 안 돼잖아. !”

이 시험을 치르는 날, 시험 감독을 들어 온 선생님은 교탁 앞에 앉아서 계시거나 신문이나 읽을거리를 들고 오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른 시험 때처럼 교실 앞뒤로 왔다갔다하며 적극적으로 시험 감독을 하지 않았습니다.

커닝해도 봐주고, 성적 나빠도 안 때리는 시험

아예 좀 더 적극적인(?) 선생님들 중에는 시험 감독을 들어오셔서, 한 두 문제에 대하여 아예 노골적으로 힌트(정답을 알려 주는)를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중학생이었던 우리는 부담 없이 이 시험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중학시절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과목마다 체벌이 뒤따랐습니다. 선생님마다 체벌의 기준이 달랐지만 다수의 선생님이 성적에 따라서 손바닥을 때리거나 엉덩이를 때렸습니다. 물론 더 기발하고 가혹한 체벌을 가하는 선생님도 있었구요.

부담이 없었던 것은 일제고사는 체벌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슬쩍 슬쩍 커닝을 해도 눈감아주고 시험을 못 쳐도 체벌이 따르지 않는 시험,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시험이었습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은 들키면 판을 엎어야 하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입니다.

중학시절 저는 이 시험이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의 승진이나 전보에 영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저는 지금도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지금 ‘전국 일제 고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벌어지는 일련이 사태를 보면서 “아~ 그 시절도 이랬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 입니다.

다음 전국 일제고사부터는 전북 임실과 같은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저의 순진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10년 만에 부활한 일제고사는 첫 번째 시험부터 ‘순위 경쟁의 망령’이 되살아났더군요. 짜고 친 고스톱이 재수없게 들통 났을 뿐이지만요.

이미, 학교는 일제고사가 아니어도 대학입시에서 이른바 명문대학에 얼마나 합격하였는가에 따라서, 과학고, 외국어고를 비롯한 특목고에 얼마나 입학시켰는가에 따라서 철저하게 서열화 되어 있습니다. 

교과부 당국자들은 일제고사가 옛날부터 짜고 치는 고스톱과 다름 없는 시험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요? 아니면, 일제고사를 부활시키면 당연히 반대하고 나설 전교조를 탄압하기 위하여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뻔히 알면서도 일제고사를 부활시킨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