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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정글> 이후 100년, 시간이 세상을 바꾸어주지 않는다.

by 이윤기 2009.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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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업튼 싱클레어가 쓴 <정글>

제인 구달이 쓴 <희망의 밥상>을 비롯하여 <육식의 종말>, <죽음의 밥상>같은 육식의 폐해를 다룬 여러 책들을 읽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책이 있었는데 바로 업튼 싱클레어가 쓴 <정글>입니다.

육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뿐만 아니라 음식 혹은 채식을 때로는 환경을 주제로 한 책들도 <정글>을 자주 인용하더군요.

수많은 책에 자주 등장하는 ‘고전’ <정글>을 꼭 한 번 읽어보려고 인터넷 서점을 여러 번 검색해 봤지만, 늘 ‘절판’으로 표시되더군요. 그런데, 얼마 전 출판사 페이퍼로드에서 업튼 싱클레어가 쓴 <정글> 완역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오래 전, 미국작가 잭 런던이 쓴 <강철군화>를 읽으면서 치열했던 미국 노동운동 역사를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업튼 싱클레어가 쓴 <정글> 역시 도살공장에서 일 하는 이주노동자 유르기스의 삶을 다룬 과격(?)하고 치열한 소설이더군요.

<정글>은 1906년 2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미국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원래 이 책은 주인공인 리투아니아 출신 이주노동자 유르기스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와서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처절하게 무너지는 과정과 오랜 방랑 끝에 사회주의자로 깨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에 묘사된 육가공 공장의 위상 상태에 분노한 미국인들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앞으로 무수한 항의 편지를 보내 육가공업의 개선을 촉구하였고, 지금과 같이 언론과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지만 당시 미국에서 소시지 판매는 절반으로 곤두박질 쳤다고 합니다.

루스벨트는 직접 조사관을 시카고로 파견하였고, 업튼 싱클레어를 백악관으로 초대하여 면담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책이 출간 된지 4개월 만에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이 제정되었고 이어 유명한 미국식품의약국(FDA)가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식품과 의약품에 있어서 세계기준을 정하는 FDA가 <정글>이 불러일으킨 반향으로 설립된 것이지요.

한국 서점에 <정글>이 없었던 이유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은 미국문학사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이후 미국 사회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고 합니다. 훗날 싱클레어는 “나는 사람들의 심장을 겨냥했는데, 어쩌다보니 위에 명중하고 말았다”고 표현한 적이 있답니다.

도축 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비극적인 삶을 조명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더럽고 비위생적 현실에 대한 대중적 관심으로 폭발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지요. 실제로 정치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회운동가였던 싱클레어는 <정글>의 주인공 ‘유르기스’가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으로 자신의 이념적 지향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정글>은 1979년 이래 여러 번 출간되었지만,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1979년, 광민사에서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이었던 채광석의 번역으로 처음 <정글>을 출간하였는데, 이내 판매금지 도서가 되어 아름아름 몰래 읽히는 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우여곡절을 거쳐 1982년 동녘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고, 1991년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완역본을 출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정글>이라는 책에 관심을 갖게 된 2000년 이후에도 서점에서는 물론이고, 가까운 도서관에서도 이 책을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1906년 업튼 싱클레어가 미국에서 책을 출간 한 후 100여 년을 훌쩍 넘기고,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채광석이 1979년 우리말로 처음 번역한 후 30여 년 만에 자유롭게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도축공장, 100년 동안 얼마나 달라졌나?

“도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새끼를 낳으려고 하거나 갓 새끼를 낳은 암소의 고기는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매일 이런 암소들이 상당수 도살장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송아지나 다른 소들 또 숨겨 두었던 조산된 송아지를 도살해서 식용육으로 만들었고, 게다가 그 송아지의 가죽까지도 이용했다.” (본문중에서)

“다리가 부러지거나 배가 찢어진 소는 물론 이미 죽은 소들도 섞여 있었다.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소들이 이 어둠과 고요 속에서 처리되었던 것이다. 상처입거나 죽은 소들을 처리하는 사람들은 그런 소들을 ‘다우너’라고 불렀다.......유르기스는 그것들이 냉동실로 옮겨져 다른 고기들과 구별되지 않도록 이곳저곳으로 분산되어 매달리는 것을 보았다.”(본문 중에서)

“마치 요원들을 일부러 전국에 파견해서 절뚝거리고 늙고 병든 소들만을 통조림용으로 끌고 오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찌꺼기로 사육되는 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황소 비슷한 놈’이라고 불렀다. 온통 종기로 뒤덮여 차마 황소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도살하는 일은 아주 지겨운 일이었다. 칼로 그런 소를 찌르면 얼굴에 온통 더러운 고름이 튀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이런 현실은 100년이 지난 뒤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TV 프로그램과 책에 나온 자료를 보면 미국 도축공장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다우너’소가 섞여서 도살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또한 술찌꺼기 보다 더 해로운 골육분 사료를 먹은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들을 24개월 이전에 도살하여 ‘안전한’ 쇠고기로 판매하는 일이 버젓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료를 살펴보면 <정글> 출간 후 10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에게 투여하는 항생제의 양은 연간 300만 파운드, 가축에게 투여하는 항생제의 양은 연간 2460만 파운드에 달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사육하는 닭이 캄필로박터균에 감염되는 비율은 70%이고,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달걀을 먹고 질병에 걸리는 사람은 연간 65만 명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도살당할 때 폐렴에 걸려 있는 돼지의 비율은 70%이라고 합니다. 100년 후에 존 로빈슨이 쓴 <음식혁명>에 인용된 자료들입니다.

진보신당 천막 앞 by Meryl Ko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썩은 고기가 햄과 소시지로 만들어지는 기적(?)

“화학적인 기적은 어떤 종류의 고기라도 즉, 신선한 고기나 소금에 절인 고기나, 큰 덩어리나, 잘게 썬 것이나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원하는 색깔과 향기 그리고 맛을 낼 수 있다.고 했다.......가끔 상한 햄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는 냄새가 하도 고약해서 도저히 방안에 둘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럴 때는 더 강한 화학 약품을 푼 물통에 집어넣어 냄새를 제거시키면 그만이었다.” (본문 중에서)

“소시지용으로 어떤 고기가 사용되는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불합격품과 오래 되어 허옇게 곰팡이가 슨 소시지가 유럽에서부터 모두 되돌려져 왔는데, 거기에 붕사나 글리세린을 섞어 넣은 후 다른 소시지와 함께 다시 국내시장으로 내보냈다.”(본문 중에서)

“고기가 마룻바닥에 굴러 떨어져 먼지나 톱밥이 묻기도 했다. 그 바닥은 일꾼들이 쿵쿵거리며 밟고 다니고 침을 뱉어내고 하여 병균이 우글거렸다. 몇몇 방에는 고기를 산더미같이 쌓아놓았다. 그러나 말이 창고지 늘 지붕이 새어 빗물이 떨어지고 쥐들이 들락날락거리는 그런 곳이었다........손으로 고기더미를 휙 쓸어 보면 마른 쥐똥이 한 줌씩 묻어 나왔다. 쥐들이 하도 귀찮게 굴어 쥐약을 놓곤 했는데 죽은 쥐와 쥐약 묻은 빵이 고기와 함께 깔때기 속으로 들어갔다.” (본문 중에서)

화학약품을 사용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가공식품 산업은 점점 더 발달하고 있습니다. 소시지와 햄을 만드는 작업장은 깨끗하게 위생 처리되는 공장으로 바뀌었지만, 햄과 소시지의 빛깔을 좋게 하고 식감과 맛, 향을 더하기 위하여 100년 전보다 더 많은 식품첨가물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햄과 소시지의 원재료가 되는 가축들은 100년 전보다 훨씬 더 열악한 공장식 사육장에서 길러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가축공장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하여  100년 전보다 더 빨리 자랄 수 있도록 품종을 개량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사료와 약품을 함께 먹이고 있습니다.

100년 전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이 미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았지만, 100년이 지난 후에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공장식 사육으로 인하여 O157, 광우병, 조류독감, 구제역 같은 가축질병이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축을 위한 새로운 약품이 개발되고 의료 기술이 발전 하는데도 불구하고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업튼 싱클레어는 모든 원인이 바로 자본의 끊임없는 욕망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글> 이후 100년, 시간이 세상을 바꾸어주지 않는다.

“그 세계는 바로 가지지 못한 자들을 예속시키기 위해 가진 자들이 만든 야만적 질서만이 중요시되는 세계였다. 그는 가지지 못한 자였다. 그에게는 모든 바깥세상과 모든 인생이 하나의 커다란 감옥이었다.” (본문 중에서)

아울러 업튼 싱클레어는 주인공 유르기스와 그 가족들의 삶을 통해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결코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패킹타운에 도착하여 건장한 몸으로 누구보다도 부지런했던 유르기스는 자신감에 충만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신과 가족들은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들은 철저하게 하나도 남김없이 유르기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갑니다. 열심히 일을 하는 만큼 몸이 병들어 가기 때문에 늙은 아버지도, 젊고 아름다웠던 아내도, 가족들도 그리고 마침내 어린 아들마저도 잃게 됩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온 가족을 이끌고 미국 땅을 밟은 이주노동자는 불과 몇 년 사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본가들에게 빼앗기는 처절한 고통과 절망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패킹타운에 도착한 첫날에 구경한 거대한 오물 처리장도 바로 스컬리의 것이었다. 그는 오물처리장뿐만 아니라 벽돌 공장도 소유하고 있었는데......벽돌 공장에서는 진흙을 파내 벽돌을 만든 다음 쓰레기를 가져다 진흙 파낸 자리를 메우게 하고 그 위에 집을 지어 팔아먹었다....... 그는 또 썩은 물이 고여 있는 깊게 파인 공터도 소유했는데 겨울에 그 썩은 물이 얼어붙으면 이를 베어다 팔아먹었으며... ” (본문 중에서)

가축공장과 소시지공장 뿐만 아니라 오물처리장과 벽돌공장 그리고 오물 처리장 위에 지어진 집들까지 모든 것이 자본가들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유르기스가 가진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업튼 싱클레어는 사회주의자가 된 유르기스와 그 동지들을 통해 ‘노동이 자유로운 세상’의 단초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는 것 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의학지식을 버려진 사람들에게 적용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입니다.

소설가 방현석은 이 책에 실린 ‘작품해설’에서 “시간이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것을 강조합니다. 업튼 싱클레어가 쓴 <정글>이 100년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자유롭게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일들이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말한 대로 ‘야만적인 실업’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탐욕’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정글 - 10점
업튼 싱클레어 지음, 채광석 옮김/페이퍼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