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덕혜옹주, 다시 생각해보는 저작권

by 이윤기 2010. 10. 26.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한, 일 작가들 사이에 소설 덕혜옹주를 둘러싼 표절시비가 벌어진 모양입니다. 지난달 일본 작가 혼마 야스코가 한겨레 신문에 한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덕혜옹주>가 자신이 쓴 <덕혜희>를 표절하였다는 주장을 제기하였습니다.

자신이 많은 노력을 들여 해석해 낸 덕혜옹주 남편이었던 ‘소 다케유키’의 고어로 쓴 난해한 시를 비롯하여, 책의 내용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단 차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표현을 바꾸는 식으로 저작권법상의 그물망을 피하려하고 있으며, 타인의 저작을 이용하는 것치고는 상식의 도를 넘어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한편, 소설 <덕혜옹주>를 쓴 권비영 작가 역시 같은 신문에 반론을 게재하였습니다. 그는 “덕혜옹주는 역사속 인물”이고, “<덕혜희> 역시 다른 이들의 문헌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 전기문”이라는 주장합니다.

아울러 “혼마 야스코가 덕혜옹주의 삶 자체를 창조한 것이 아닌 이상, 그 분의 삶과 황실가족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그 누구의 귀속물도 아니다”는 주장을 덧붙입니다.

같은 이유 때무네 “작가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범위도 ‘역사적 사실이나 사상을 서술한 부분’이 아닌 ‘창작적으로 표현한 문장’에 국한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소설 <덕혜옹주>와 <덕혜희>를 아무리 비교해보아도 역사적 사실을 제외한 어떤 부분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역사적 사실이 담지 못하는 부분들을 말하기 위해 소설을 썼고, 그렇기에 그녀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역사적 사실이 개인 소유물’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논란에는 우리황실사랑회의 이승욱씨도 입장을 피력하였는데, “덕혜옹주는 혼마씨의 창작물이 아닌, 대한제국의 실존 옹주”이며, “그녀의 삶은 혼마씨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관련하여 그 캐릭터를 참조하고, 작가가 재창작한 것이 ‘표절’이라 매도된다면 우리네 시대극이나 역사소설 모두가 표절”에 해당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권비영 작가와 이승욱씨의 글을 읽어보면, <덕혜희>뿐만 아니라 소설 <덕혜옹주>역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소설 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재창작을 어떻게 구분하여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덕혜옹주의 삶, 누가 저작권을 가질 수 있나?

저는 논란이 벌어진 이 기사를 보면서, 역사적 사실, 개인 혹은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작품의 ‘저작권’은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실제로 덕혜옹주의 삶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삶을 담아내는 휴먼다큐멘터리 혹은 아름다운 미담 등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나 TV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그런 삶을 사는 삶의 주인공과 기자나 방송제작자 중 누가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이 더 옳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해 저는 아이와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온 이야기를 몇 차례로 나누어 블로그에 포스팅하였습니다. 제가 쓴 글을 읽은 방송국에서 ‘에니메이션’으로 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제작된 프로그램은 지상파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과 관련하여 저는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을 제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는 것조차도 모두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더군요.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세상에 순수한 창작물이 존재하는가?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과 정보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순수한 창작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정보공유연대와 진보넷 등 국내인권단체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유럽의회 의원 아멜리아 안데르스도체르의원을 취재한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면서 저작권에 대한 그들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작권법 개혁, 특허 철폐를 주장’하며, 정보 공유운동을 펼치는 유럽의회의 해적당(Pirate Party) 활동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럽 해적당, "저작권은 창작물 공표 이후 5년으로 줄이자"

“해적당은 현재 저작권자의 사망 이후 70년간 보장되는 저작권의 효력을 창작물 공표 이후 5년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특히 제약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기존의 특허제도를 전면개편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하더군요.

이들은 2005년 스웨덴 정부가 저작권이 있는 자료의 다운로드를 불법화한 법률을 제정한 것을 계기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고, 저작권법 개혁, 특허철폐, 정보공유를 내걸고 선거에서 당선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창작물을 대하여 노동력의 산물로 정도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였고, 저작권자가 생존하는 동안만 저작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럽의회 해적당은 아예 창작물 공표이후 5년간만 인정하자는 주장을 하였더군요.

아울러,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국 같은 곳에서 만든 저작물의 일부를 비영리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도 똑같이 저작권을 보호하는 것이 옳은지, 혹은 저작권법 때문에 좋은 작품의 유통이 제한되는 것은 바람직한지도 다시 생각해 볼 부분이라고 봅니다.

다섯 살 여자아이가 손담비 노래를 따라 부른 동영상도 저작권 침해라고 판단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는 생각이듭니다.

현재의 저작권법을 적용하면 이 글에 포함된 혼마 야스코와 권비영이 쓴 책 표지 사진도 모두 저작권 위반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제가 블로그를 통해 포스팅하고 있는 서평과 책리뷰에 사용한 표지 사진들도 모두 저작권 위반이라고 하는군요.

<덕혜희>와 소설 <덕혜옹주>는 모두 실존인물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이 없었다면 씌어질 수 없었던 작품입니다. 이들 작품을 쓴 작가들의 배타적 권리는 어디까지 인정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고민과 토론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