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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재수없는 주민번호는 바꿔준다구요?

by 이윤기 201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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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종자치시가 본격 출범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재수 없는 주민등록번호 변경 민원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기분 나쁘고 재수 없는 4자가 많이 들어간 주민등록번호 변경 논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최근 모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세종시에 출생 신고한 여자 아이들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4444로 4자 네자리가 연속으로 이어지자 ‘죽을 사자를 연상 시킨다’는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정부가 이례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썼다고 하는 소식입니다.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게 된 것은 지난 7월 1일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주민등록번호 조합 규칙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부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행 주민번호 뒷자리는 남자 아이는 3, 여자 아이는 4번으로 되어 있는 성별과 지역번호 네자리, 신고 순서와 검증 번호로 이뤄져 있는데, 세종시에서 출생하는 경우 4444번으로 이어지는 주민번호를 부여받는 경우가 생길 수 밖에 없도록 되어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종시에 사는 어떤 주민이 딸아이 주민번호가 4444 연번으로 되어 있어 기분이 나쁘다고 민원을 제기하자, 민원을 접수한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25일 세종시에 추가 번호를 보내서 앞으로 세종시에 출생신고를 하더라도 4444 연번이 나오는 경우는 없도록 조치하였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예외적인 이런 신속한 조처에도 불구하고 이미 주민번호를 부여 받은 민원인 박모씨와 같은 200여명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4444로 이어지는 주민번호를 그냥 사용할 수밖에 없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4444번으로 주민번호를 부여 받은 피해자들도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민원을 받아들여 주민등록번호 부여 규칙을 바꾼 것도 처음있는 일이라면서 이미 부여된 주민번호는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 일부 법률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미 예외적으로 주민번호 조합 지침을 변경하였기 때문에 부모 등 친권자가 행정관서에 민원을 제기하면 정정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 같은 주민등록번호 정정이 현실화 되면 주민등록법 시행 이후에 처음으로 주민번호를 변경하는 사례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이루어지면 앞으로 개인정보 유출로 피해를 당하고 있는 국민들의 주민번호 변경 요구도 빗발치게 될 것입니다.

 

 

재수없는 주민번호는 바꿔주고... 도용 위험에 처한 번호는 왜 안 바꿔주나?

 

국가가 국민에게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단체의 요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 실명제를 비롯하여 개인정보 수집을 마구잡이로 할 수 있게 해놓은 인터넷 회원가입 제도와 부실한 관리 때문에 국민들의 주민등록번호 다 새 나갔습니다. 

 

또 택배회사, 통신회사 등 불특정 다수의 개인정보를 수집 보관하는 기업들의 부실한 관리로 인하여 수천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주민등록번호가 한꺼번에 유출되어 중국 등 외국에서 개당 몇십 원씩의 헐값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뒤늦게,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는 경우 엄하게 처벌하도록 관련법규를 개정하였지만, 이미 한 번 새어나간 개인정보를 주워 담을 길이 없습니다. 아울러 해외에서 불법으로 거래되고 도용되는 경우 국내법은 속수무책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만 하여도 중학교, 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모두 외우고 있습니다.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면서 부모 동의를 받는 정도는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쉽게 해치웠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서 집전화로 게임 사이트에 결재를 하는 바람에 여러 날 싸워서 게임회사로부터 이미 결재된 돈을 힘들게 돌려받은 일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기억된 주민등록번호를 지울 수는 없기 때문에 그 후에는 제 주민등록번호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었고 다행히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름도 바꾸고 얼굴도 바꾸는 세상인데...주민번호는 왜 못 바꾸나?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 수없이 빠져나간 제 주민등록번호를 다시 회수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범죄에 악용될지 모르는 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법원에 요청하면 사람들이 날마다 부르는 자신의 이름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성형 수술을 받아 얼굴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인데,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한 일련번호는 죽을 때까지 영원히 바꿀 수 없도록 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정편의주의 입니다.

 

더군다나 그 일련번호를 국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해외 범죄조직들에게까지 넘어가 버젓이 사고 팔리는 상황인데도, 오로지 주민번호는 변경할 수 없다는 막무가내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4444로 이어지는 주민번호가 기분 나쁘다는 민원은 받아들이면서, 남들에게 도용당할 위험에 노출된 주민번호는 바꿔줄 수 없다는 정부 방침은 차라리 괴변에 가깝습니다.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다른 선진국들처럼 주민번호 제도를 없애버리던지, 아니면 위험에 노출된 주민번호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변경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