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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오키나와 역사기행

오키나와 전쟁, 한국인 희생자 1만 여명

by 이윤기 2011.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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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여행 열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오키나와평화 자료관과 평화공원을 몇 번으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가급적 이번주 안으로 오키나와 여행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희 여행은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3박 4일이었는데, 오키나와 현립박물관과 오키나와 평화공원과 평화자료관 관람 일정이 월요일 오후로 잡혀있었습니다.

처음엔 현지여행사에서도 저희 일행들도 일반적으로 박물관, 미술관 등이 월요일에 휴관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투어를 시작하면서 일정을 확인하는데, “어떤 분이 월요일인데 박물관 볼 수 있나?”하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가이드가 갈피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평화자료관에도 전화를 하고, 오키나와 현립박물관에도 전화로 확인을 하였습니다. 확인 결과 역시 오키나와 현립박물관은 휴관일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일정을 급히 수정하였습니다.

오전에 카데나 기지를 볼 수 있는 '미치노에끼 카데나' 전망대와 찌비치리 동굴을 견학하고, 오후에는 오키나와 현립박물관 일정을 다음날로 미루고 히메유리탑과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을 둘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대신 넷째 날 오전에 둘러보기로 하였던 나하 국제거리를 평화기념공원에서 돌아오면서 밤 시간에 들러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하였습니다. 일정을 바꿔놓고보니 딱 맞게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오키나와 최고의 번화가인 나하국제거리를 넷째 날 오전에 둘러보는 것은 좀 싱거운 일정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셋째 날, 오후 일정에 들어있는 오키나와 현립박물관 견학을 마지막 날 오전으로 바꿨습니다.

앞서 오키나와 여행 맛집 소개에서 밝혔듯이 이렇게 일정이 조정되면서 나하 시내에 있는 자연식당 시마나(島菜)에 (오키나와 자연식당 시마나(島菜)) 두 번째로 가게 되었지요. 이야기가 딴대로 많이 샜네요. 자, 이제부터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이야기입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기원이 담긴 곳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과 평화기념 자료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오후 6시까지 약 세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물렀는데, 세 시간만에 둘러보기에는 너무 넓고 볼 것이 많은 장소였습니다.

만약 오키나와 여행을 간다면 평화기념공원과 자료관을 둘러보는데 적어도 한 나절은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평화, 역사를 주제로 한 이번 여행의 일행들은 대부분 자료관을 꼼꼼히 둘러보았기 때문에 탁트인 바다를 앞에 두고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 쌓인 평화공원을 산책할 시간이 많이 부족하더군요.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 도착하면 맨 먼저 한국인 위령탑을 찾게 됩니다. 저희 일행이 한국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입구쪽에 내려서 자료관으로 향하기 전에 위령탑을 먼저 둘러보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 입구에는 위령탑 건립의 취지를 새겨놓았습니다. 위령탑 건립 취지를 담은 이 비석에 새겨진 징병, 징용으로 끌려와 희생된 한국인의 숫자는 1만 여명이라고 합니다.



한반도 출신 희생자 1만 여명, 비석에 새겨진 명단은 남북한을 합쳐도 600명 못 채워

오키나와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20만 여명인데, 그 중 오키나와 출신자가 12만 여명, 일반 현민이 약 9만 4천 여명, 군인 군속이 2만 8천 여명, 미군 1만 2천 여명, 그리고 기타 희생자가 6만 5천 여명인데, 그 중에 1만 여명이 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무려 1만명이 (오키나와로) 끌려와 진지구축과 탄약운반에 동원됐고, 100개가 넘는 오키나와의 군 '위안소'에 조선 여성 다수가 일본군 위안부로 수용었다고 합니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위령탑이라고 하는데, 1975년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건립 취지문이 새겨진 바로 오른쪽에는 노산 이은상이 쓴 '영령들에게 바치는 노래'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키나와현 평화기념자료관과 기념공원을 둘러 보기에 앞서 한국인 위령탑 앞에서 잠깐 묵념을 올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였습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 공원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없이 오키나와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넣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평화의 주춧돌'이라고 부르는 이 사업은 매년 1차례씩 추가로 확인된 희생자 명단을 비석에 새겨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 희생자 명단이 새겨진 비석을 찾아보았습니다. 가이드의 안내 덕분에 수 많은 비석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비석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희생자가 1만 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비석에 새겨진 이름은 채 500명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새겨진 비석에도 80여명의 희생자 이름 뿐입니다.


오키나와 전쟁, 희생자 위렵탑도 남, 북으로 분단

비석을 보시면 매년 추가 각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 중 하나는 전쟁의 아픈 상처를 딛고 평화를 지향하는 이곳에서도 남, 북한 희생자들은 분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거리이기는 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희생자 탑과 대한민국 희생자탑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여기 이름이 새겨진 희생자들은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생기기전에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일본제국주의에 강제 합방을 당하였지만 한반도 두 개의 국가가 생긴 이후에도 일본에서 조선국적으로 살아가는 동포들이 있는 것처럼 그들도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올 때는 '조선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훗날 희생자들의 뜻과 상관없이 두 개로 나위어진 조국으로 그들도 나누어지게 된 것이지요.

아울러 한국인 희생자들을 추가로 찾아내는 노력이 지지부진하다는 것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2009년에는 비석에 추가로 각인된 명단이 없으며, 2010년에도 딱 1명 뿐이더군요.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노력에 소극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앞서 소개한 것 처럼 여고 동창회가 앞장서서 히메유리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히메유리 탑과 기념공원 만들어낸 것과 비교하면(그들이 꽃다운 소녀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유는?)  한국정부의 노력이 미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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