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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자전거 국토순례

물건 잃어버려도 절대 안 찾아가는 아이들

by 이윤기 201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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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순례 이야기 이어갑니다. 초등5학년부터 고등학생들까지 청소년들과 함께 7박 8일을 지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자기 물건을 챙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전거 국토순례의 특성상 매일 매일 숙박장소가 바뀌는데, 하루밤 자고나면 수 많은 '분실물'이 생긴다는 겁니다. 숙박 장소가 아니어도 아이들이 머물렀던 장소에는 반드시 두고가는 물건이 생깁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찾아도 물건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숙소를 빠져나오면 진행팀 실무자들이 커다란 비닐봉투를 들고 숙소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아이들이 흘리고 간 물건을 담아 나옵니다. 양말, 수건 같은 것은 기본이고 팬티, 티셔츠, 바지, 샴푸 같은 생활용품은 수 없이 버리고 가더군요. 

어떤 날은 매일매일 자전거 탈 때 입는 단체복을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국토순례 출발을 앞두고 아이들이 모두 모이면 분실물을 꺼내놓고 '주인찾기'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잃어버린 물건은 잔뜩인데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분실물을 찾아나서거나 금새 주인이 나타나는 품목은 딱 세가지 뿐입니다. 바로 휴대전화, 자전거 헬멧 그리고 장갑입니다. 다른 물건은 잃어버려도 찾아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진행실무자들에게 분실 사실을 알리고 스스로 찾아다닙니다.

또 자전거 탈 때 없어서는 안 되는 헬멧과 장갑을 아무곳에나 두고 다니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다행히 출발을 앞두고 주인을 찾으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챙겨갑니다. 헬멧과 장갑이 없으면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아무리 귀찮아도 두 가지는 챙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물건은 휴대전화 뿐?

그러고보면 아이들이 정말 애착을 가지고 소중히 여기는 물건은 '휴대전화' 밖에는 없는 셈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국토순례에 가지고 온 물건들 중에 여분이 없고 동료들에게 빌릴 수도 없는 물건은 바로 휴대전화와 헬멧, 장갑 뿐이더군요.


그 외 대부분은 자기 물건을 챙기지 않아도 별로 불편할 일이 없어보였습니다. 수건, 양말, 속옷, 티셔츠 같은 물건들은 여유분을 충분히 챙겨왔기 때문에 한 번 잃어버리고 나면 실무자들이 들고와서 주인을 애타게 불러도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또 아이들 대부분은 스스로 자기 짐을 챙겨오지 않았기 때문에 세면도구 같은 것들은 한 번 잃어버리고 나면 자기물건인지 아닌지 구분도 할 줄 몰랐습니다. 잃어버려도 별로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온 샴푸, 치약 같은 것들이 넉넉하니 빌려쓰면 그만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자기 물건이라고 애착을 가지는 것은 휴대전화가 유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휴대전화를 제외한 어떤 물건도 아이들에게는 애착관계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잃어버리지 않고 챙겨야 할 만큼 소중한 물건도 아이었던 것입니다.



유치원에서부터 단체 활동을 할 때는 자기물건에 이름을 써라고 가르치고, 국토순례를 시작하는 첫날 네임펜과 매직펜을 나눠주며 이름을 써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아이들이 버리고 간 물건에는 대부분 이름이 씌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주인이라고 나서지 않으면 찾아줄 수 없는 것이지요. 국토순례를 마치고나니 이렇게 아이들이 버리고 간 물건이 커다란 상자에 한 박스가 넘더군요.

의식주 생활 교육도 한심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 아이들이 샤워를 하고 그날 입었던 유니폼을 세탁하여 탈수를 시키도록 생활지도를 하였습니다. 아이들 샤워가 끝나갈 무렵 탈수를 할 수 있는 세탁기가 설치된 곳으로 갔더니 줄을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수두룩 하였습니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숙소에 도착하면 밥 먹고, 씻고, 세탁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빠듯한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안타까워 세탁기가 설치된 곳으로 가서 어찌된 일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참으로 어이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 타면서 입었던 상, 하의 한 번을 놓고 탈수 버튼을 눌러놓고 저절로 세탁기가 멈출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세탁기에 탈수 버튼을 누르고 저절로 멈출 때까지 기다리면 대략 8분 정도가 걸립니다. 



댁의 아이는 세탁기 돌릴 줄 알까요?

자전거 국토순례 참가자가 160여명인데 한 사람당 8분씩 탈수를 하면 하룻 밤을 꼬박 새워도 모두 탈수를 시킬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 중 아무도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더군요. 그냥 줄을 서서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어른들이야 다 아시겠지만, 자전거 탈 때 입는 유니폼은 쿨맥스 소재로 되어있기 때문에 탈수기에서는 1분 정도만 돌려도 수분이 대부분 빠져나갑니다. 따라서 1분씩만 돌려도 충분할 뿐만 아니라 용량이 큰 세탁기였기 때문에 한꺼번에 10명, 20명 분을 넣고 돌려도 탈수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40분 동안 세탁기 앞에서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 세탁물을 남, 여로 구분하여 한 번에 20여명씩 넣고 2분씩 탈수를 시켜서 보냈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아예 조별로 모아서만 탈수를 하도록 시켰지요. 옷 한 벌씩 넣고 8분씩 탈수하는 아이들을 보며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희 아들도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나중에 중학교 2학년인 저희 아이와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녀석도 세탁기 사용법을 모르더군요. 집에서 밥 하고 라면 끓이고 주말마다 청소는 해봤지만 빨래는 한 번도 해 본일이 없다는 겁니다. 밥도 안 해보고 청소기도 사용해 본일이 없는 아이들이 더 많을거라고 하더군요.

아이들이 쓴 소감문을 읽어봐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아이들은 없습니다. 어려운 국토순례를 마친 아이들 대부분은 힘든 일을 이겨 낸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거나 자기의 꿈을 이루겠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지요. 뿐만 아니라 배가 고픈 경험도, 목이 마른데 물을 실컷 먹을 수 없는 경험도 이번이 난생 처음이라는 아이들도 수두룩 하였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이들의 몸에 베인 삶의 습관을 바꿀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물건도 못 챙기고, 세탁기 조차 사용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쉽게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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