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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자전거 국토순례

으악 수도물이잖아, 수도물 불신 원인은?

by 이윤기 201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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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순례 이제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이번 이야기를 끝으로 무더위와 폭우를 피해가며 청소년들과 함께 전남 강진에서 임진각까지 620km를 달렸던 7박 8일 국토순례이야기를 마무리 합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물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9월 2일) 아산 외암민속마을에서 자전거국토순례에 참가하였던 전국의 실무자들이 다시 모여 1박 2일 평가회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받은 소감문을 읽어보았더니 가장 힘든 것이 '물'을 실컷 못 먹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되어 있더랍니다. 여러 지역에서 참가하였기 때문에 지역별로 차이는 좀 있지만, 아무튼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는 것도 힘들었지만 '목마름'이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원한는대로 마음껏 물을 먹을 수 없었던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은 아무리 물을 먹어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으며, 1시간 마다 10여분의 휴식 시간으로는 원하는 만큼 충분히 물을 마실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토순례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공급한 물은 생수입니다. 지방정부의 후원을 받아 생수 처럼 펫트병에 담긴 수도물도 일부 공급하였지만 대부분은 생수를 구입하여 공급하였습니다.


규칙, 자전거 탈 때는 물 먹을 수 없음

처음 강진을 출발할 때는 0.5리터 생수와 수도물을 아무 조건없이 제공하였는데, 아이들은 생수를 들고 가서 물을 반쯤만 먹고 버려버리거나 빈 펫트병을 아무데나 버리더군요. 참가자와 진행자를 포함하면 160명이 넘는데, 휴식시간 마다 생수를 지급하면 평균 하루 8번 하루 1200개가 넘는 빈병이 만들어기겠더군요.

또 하나의 문제는 생수병에 담긴 물을 무제한으로 공급하는 경우 아이들이 생수병을 들고 자전거를 타다가 주행 중에 병을 꺼내 물을 먹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면서 물을 먹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병뚜껑을 열고 닫는 일은 자칫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생수병이야 기본적으로 재활용품에 속하지만 아이들이 물병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나 빈병을 아무곳에나 버리는 문제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실무자들은 고민 끝에 생수병을 1루씩 사용하기로 하고 큰 말통으로 생수를 공급해주기로 하였습니다.

휴식시간이 되면 아이스박스에 담겨있는 조별로 생수를 가져다가 먹고 난후, 다시 이름이 쓰인 빈병에 생수를 담아 아이스박스에 채워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동안 하루에 버려지는 펫트병이 1인당 1개면 충분하였기 때문에 환경에 부담을 적게 주는 대안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배는 고파 본 일이 있지만, 물까지 고파 본 일은 처음이라고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장 큰 불만을 생수병을 가지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휴식시간에는 물을 모자라지 않게 공급해주지만, 정작 자전거를 탈 때 목이 더 마른데 그 때는 물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 문제는 실무자들이 끝까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나중에 아이들과 생수병을 아무곳에나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말통대신 1회용 생수를 하루 종일 공급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때도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물을 먹을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생수 충분히 줘도 아이들은 항상 목이 마르다

따라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는 동안은 원칙적으로 목마름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빨대가 연결된 배낭을 메고 다니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1시간 동안을 목이 말라도 그냥 참고 달릴 수 밖에 없는 구조였지요.

아무튼 휴식 시간에는 충분히 물을 공급해주어도 아이들의 심리적 목마름은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물만 보면 비축(?)해두고 싶어하고 자전거유니폼에 달린 주머니에 항상 물병 3개를 꽂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물병을 3개나 등에 꽂고 자전거를 타면 그 무게도 적지 않고 불편할텐데 끝까지 물병을 포기하지 않고 휴식 시간이 되면 물당번이 지원차량에 실린 아이스박스에서 물을 들고 오기 전에 물을 마시는 기쁨을 만끽(?)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고작 1~2분 차이인데도 이 기쁨(?)을 포기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더군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읍을 출발하여 군산으로 가는 날 오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산체련공원에서 휴식시간이었습니다. 체육공원 정자에 앉아서 물과 함께 오전 간식을 나눠먹고 있었습니다. 마침 정자 근처 수도꼭지가 있었는데 멀리있는 보급차량까지 가기 싫은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수도꼭지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선생님, 여기 수도 꼭지 있는데 이 물 먹어도 돼요?"

"글쎄? 수도물이니까 먹어도 되겠지?"

"에잉 수도물 그럼 난 안 먹을래"
"수도물이면 세수해도 되겠다" (여기 저기서)

"아 얘들아 여기는 시골이라서 지하수 일지도 모르겠다. 지하수라면 우리가 먹는 생수랑 비슷할 껄"

"얘들아 선생님이 지하수일지도 모른데?"
"지하수? 그럼 우리 여기서 물 더 먹을래?"
"그래, 지하수면 먹어보자"

(잠시 후) 아이 하나가 먼저 수도 꼭지를 틀어서 생수병 가득 물을 받아서 한 모금 마셨습니다.

"으악, 수도물이잖아 ~" (입속에 있는 물을 모두 바닥에 밷았습니다)



입속에 있는 물을 모두 바닥에 밷어낸 후에도 마치 입에 넣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머금었던 것처럼 "퇘~ 퇘~"하고 침을 밷더군요.

이게 무슨 일일까요? "으악 수돗물이잖아" 참 기가 막힌 노릇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수도물을 몸이나 씻는 물이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수도물에 대한 불신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낙동강 '페놀' 사건이후에 수도물에 대한 불신이 커졌습니다만, 그래도 수도물은 고도정수 시설을 거친 깨끗한 물입니다. 돈을 받고 물을 파는 생수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수도물을 정수해서 먹는 물을 만드는 정수기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수도물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진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수질 전문가, 수도물 그냥 먹어도 된다던데?

지금처럼 생수와 정수기가 많지 않았을 때는 대부분 수도물을 끓여 먹었습니다. 볶은 보리를 넣은 보리차나 볶은 옥수수, 결명자 같은 것을 넣어 물을 끓여 먹었지요. 그러나 집에서나 끓인 물을 먹었고, 밖에서 뛰어 놀 때나 학교 운동장에서는 그냥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수도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 때도 수도물에는 소독약인 '염소' 냄새가 좀 났습니다만 별로 개의치 않고 그냥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희 아이들은 수도물에 섞인 약품 냄새를 맡고는 기겁을 하더군요. 열 두세살 된 아이들은 아마 태어나서 한 번도 수도물을 그냥 먹어본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에 있는 정수기로 고도정수처리된 물을 먹었을 것이고, 정수기가 없는 곳에서는 페트병에 담아 파는 생수를 먹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이 마르다고, 갈증을 참을 수가 없다고, 물을 더 먹겠다고 하던 아이들이 수도물 한 모금을 먹고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니 기가 딱 막히더군요.


제가 가깝게 지내는 시민환경연구소에서 일하는 활동가분이 방송에 출연하여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생수나 정수기 대신 그냥 수도물을 끓여 먹거나 물을 받아 하루 밤 정도 재워 먹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수도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도정수처리를 거친 믿을 만한 물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수도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도물에 대하여 이토록 깊은 불신을 가진 것을 보니 안타깝더군요. 수도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막연한 불신과 불안을 가지고 있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소독약 냄새에 기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수도물을 그냥 먹어도 큰 탈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만, 아이들은 모두 생수가 있는 보급차로 몰려가 버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수도물을 그냥 몸이나 씻는 물이지 사람이 먹는 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수도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기겁하던 아이들 모습을 떠 올리며, 생수회사와 정수기 회사가 앞장서서 만들어 낸 수도물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회복시킬 수 있는 준비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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