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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오키나와 역사기행

천연설탕에는 벌레도 생긴다?

by 이윤기 2011.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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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여행 이야기 열 한 번째 입니다. 오늘은 오키나와 천연설탕이야기입니다. 오키나와 여행객들은 섬 어디를 가도 천연설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관광지의 기념품 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나하 시내의 국제거리, 동네 쇼핑센터 등 어디를 가도 천연설탕을 팔고 있습니다.

여행 중에 다녔던 식당 중에도 천연설탕을 디저트로 제공하거나 판매하는 곳이 있었답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저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부모님, 형제들을 위한 선물로 천연설탕을 사왔습니다.

사진으로 보시는 것처럼 여러 종류의 천연설탕을 사와서 나누었습니다만 선물을 주는 제 마음과는 달리 받는 사람들 중에는 좀 심드렁한 경우도 있더군요.

아마 기대했던 그런 선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오키나와 여행을 하는 동안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특산품이면서 몸에도 좋은 '천연설탕'이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마음과 달랐던 모양입니다.

저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정제 백설탕이나 백설탕에 색깔을 입힌 황설탕이나 흑설탕을 먹지 않습니다. 설탕과 물엿 등 정제당의 폐해를 알고 난 후부터 집에서는 값이 조금 비싸도 유기농 설탕을 사서 먹거나 혹은 꿀, 조청 등 대체품을 이용합니다.

그런 제 경험 때문에 오키나와 천연설탕을 제 딴에는 좀 넉넉하게 사왔습니다. 사실, 오키나와는 일본이기 때문에 환율도 비싸고 물가도 비싸 충분한 양을 사올 수는 없었습니다.



설탕에도 벌레가 생긴다?

몇 년 전에 발리에 갔을 때는 그곳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천연 설탕인 '굴라'를 커다란 등산 배낭에 가득 사온 적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도 제법 많은 양이 남아 2년 동안 두고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2년 째 되던 해, 냉장고에 보관하던 천연설탕 '굴라' 덩어리를 냉장고 밖에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더군요. 슈퍼에 파는 정제 설탕은 아무리 오래 두어도 벌레가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설탕 덩어리에서 벌레가 생기는 것을 그 때 처음 보았습니다.

벌레가 생기는 설탕은 영양분이 살아있는 설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는 블로그 같은 것을 할 때가 아니라 '굴라' 덩어리에 벌레가 생긴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분면히 인증샷을 남겨두었을 텐데요.

단맛만 나는 정제당은 아무런 영양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 몸에서 당 대사를 교란시키는 대표적인 정크푸드이지요. 이야기가 조금 딴 대로 샜군요.

오키나와 전통 방식 제당법


아무튼 이번 오키나와 여행에서는 '천연설탕'도 많이 먹고, 많이 사왔지만, 오키나와에서 전통 방식으로 천연설탕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여행을 다녀온 유장근(경남대 사학과) 교수께서 준비하신 자료 덕분에 오키나와의 전통 설탕 제조 과정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지요.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흑설탕이 처음으로 오키나와에서 만들어진 것은 1623년이며 그 이래로 383년간 사탕수수를 원료로 하는 흑설탕은 오키나와의 특산물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주목 받고 있으며, 오키나와 현민 가운데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지금까지 천연설탕을 먹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진은 전통방식의 제당법으로 설탕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설탕의 종류는 비정제 설탕과 정제 설탕으로 크게 나뉘며, 전자는 사탕수수의 모든 성분을 그대로 졸인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천연 흑설탕입니다.
 
오키나와식 천연 설탕 제조법은 사탕수수를 수직형 압착기에 넣고 소나 말을 이용하여 즙을 내는 방식으로 설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당업은 류큐(오키나와)의 주산업으로 조선 정부에서도 이곳의 설탕을 수입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압착 작업은 동물과 함께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하였답니다.  여기 소개하는 사진들은 1990년대 '운남의 시솽빤나 타이족' 농민들이 사용하는 전통적 제당 방식이라고 합니다. 오키나와의 경우에도 1623년에 본토에서 제당법이 전해졌다고 하니 사진에 소개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탕수수를 압착기넣고 짜면 흘러나오는 사탕즙입니다.


사탕즙을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 모습입니다.



적당한 정도로 끓여 수분을 일부 증발시킨 다음 설탕을 액상으로 마셨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제가 '발리'에서 사온 천연 설탕 '굴라' 덩어리는 수분을 제거한 후에 사진에서 보시는 그릇 같은 곳에 담아 덩어리로 만들어 팔더군요. '굴라' 덩어리가 꼭 대접 같은 그릇을 엎어놓은 것과 모양이 같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니, 저는 가 본 곳이 아닌데 오키나와의 '류큐무라' 민속촌(사진을 보시려면 여기 카페로)에 가면 천연 설탕 제당법을 재현하고 있답니다. 이곳에 있는 자료에 따르면 1623년에 기마신죠(儀間眞常)라는 사람이 중국 후첸성에서 제당법을 배워왔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사탕수수를 짜낸 뒤에 맷돌밑으 지하 파이프를 통해 가마솥으로 모아지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큰 솥에 모아 약 5시간 동안 120도로 가열시켜 물엿 상태에서 냉각시키면 오키나와 흑설탕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초기 제당법은 위에 소개한 '운남의 시솽빤나 타이족' 농민들의 제당법과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류큐무라' 민속촌에 있는 제당시설은 1623년이래 제당 기술이 훨씬 더 개량된 모습이겠지요

류큐(오키나와)의 설탕 수탈 역사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오키나와 천연 설탕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또 다른
자료도 있습니다.

1620년대 일본의 경우탕은 중국이나 남방 국가에서 수입하는 고가품이었으므로 오키나와에서 설탕이 생산되기 시작하자 막대한 수탈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오키나와에서 생산된 설탕은 일부는 조세로 거둬졌고, 대부분은 류큐왕부가 사들여 되파는 방법으로 사쓰마 번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사쓰마는 류큐왕부를 통해 오사카 시장에서 거래되는 설탕 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금액으로 설탕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오사카에서 거래되는 설탕 가격의 3할도 안되는 몫이 농민에게, 2할이 조금 넘는 몫이 류큐왕부에게, 그리고 5할 이상이 사쓰마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특히 설탕 생산으로 말미암아 가장 고통받는 것은 사쓰마 번주 시마즈씨의 직할 식민지였던 아마미 제도의 농민들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미 제도에서도 18세기 초부터 설탕 수매가 시작되었는데, 18세기말 에는 공물을 전부 설탕으로 대신 내게 했다고 합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관리가 감시하는 가운데 농민을 노예처럼 강제노동에 동원하여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설탕을 생산한 후, 생산된 설탕의 전량을 싸게 사들이는 정책을 취하였다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아마미에서는 쌀과 기타 모든 생활필수품을 가고시마에서 수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마즈씨는 아마미 제도의 농민들이 생산한 설탕을 싸게 사들여 오사카 시장에 되파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을 뿐 아니라, 아마미에서 생산할 수 없게 된 쌀 등 일용 필수품을 비싸게 팔아 이중으로 폭리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류큐는 이로 인해 고통받았지만, 사쓰마藩은 설탕을 수탈한 재원으로 명치유신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막강한 경제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나 카카오 같은 상품들이 그 나라 국민들을 수탈하는 특산품인 것 처럼, 당시 힘없는 나라의 류큐의 특산품인 '설탕'은 사쓰마번이 가장 탐낸 수탈품이었던 것입니다.

<오키나와 여행기>
2011/03/06 - [여행 연수] - 천연설탕에는 벌레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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