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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3.03.15 국론이 '분열'되어야 그것이 민주주의다 (1)
  2. 2013.03.04 진보를 자처하는 당신 동네에 화장장이 들어선다면?
  3. 2012.11.15 학살-폭력 현장 누빈 그의 혈액형은 G형
  4. 2011.11.23 김두관지사, 정권교체 실감나게 좀 해주세요 (2)
  5. 2011.08.18 창원 명예시민은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봤더니... (6)
  6. 2011.08.04 고종황제가 망명정부를 세웠더라면? (7)
  7. 2011.04.20 책에서만 보던 혁명이 현실이 되었을 때
  8. 2011.02.08 진보가 밥 먹여준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4)
  9. 2011.01.24 유쾌한 100만 민란, 나부터 '민주화'되자 (8)
  10. 2010.11.16 뇌물, 주는자만 느끼는 쾌감이 있다는데? (7)
  11. 2010.04.17 1960년3월15일 난 마산시 평화동 4-2번지에 살았다
  12. 2010.04.16 이승만 독재정권 무너뜨린 1960년 마산 (2)
  13. 2009.12.07 30년 전 청년Y 운동 선배들이 돌아오다
  14. 2009.05.08 정당공천제 폐지?, 무슨 말인지 몰라? (6)
  15. 2009.03.28 한나라당 목엔 누가 방울을 달것인가? (2)
  16. 2009.03.25 정당공천제 폐지 1천 만명 서명운동 시작 ! (10)
  17. 2009.02.24 독재와 분단의 상처를 뛰어넘은 평화의 노래
  18. 2008.11.26 "수구세력에게 5년을 더 내줄 순 없다."
  19. 2008.10.09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긴다

국론이 '분열'되어야 그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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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을 인터뷰한 것을 묶어 낸 책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시대의 창 펴냄). (관련포스팅 : 2013/02/13 - [책과 세상 - 시사, 사회] - 88만원 세대에게 이명박 정부는 희망이었나? )

 

우석훈은 스스로 "낯가림이 심하고 남들 앞에 공개되어 서는 것을 싫어"한다면서도 결국 지승호와 인터뷰를 하게된 이유로 그가 지승호였기 때문이며, 처음 인터뷰 했던 매체가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지승호와 강준만 두 사람 이름에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당위' 같은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우석훈은 지승호가 가진 장점이자 무기인 인터뷰를 책으로 출간하는 새로운 개척자라는 점에 주목했다. '인터뷰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한국에서 개척한 사람이 바로 지승호고, 그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난 후 매달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동서고금을 통해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을 시도하는 지승호가 요청한 인터뷰이기 때문에 과묵한 '우석훈'이 입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보면, 지승호와 우석훈에게tj '과묵함'을 발견할 수는 없다.

 

지승호는 과묵한 우석훈의 입을 열어 그가 앞서 썼던 여러 책에 담지 못했던 '거침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도록 하는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탁월한' 솜씨와 감각을 보여준다. 지승호는 과묵하지만 거침없는 우석훈의 말문을 열어 한미FTA, 삼성, 경부운하, 88만원세대와 같은 현재 우리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과묵한 두 남자의 거침없는 입담

 

지난해 출간되어 사회과학분야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 우석훈의 책 제목 <88만원 세대>는 이제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는 이대로는 88만원 세대에게 희망이 없다며 토플 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야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우석훈에게 지승호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보느냐고?

 

"희망은 거저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는 거죠. 가끔 저는 일제 강점기 1920~30년대에 제가 지식인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거든요. 20대가 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정 때 생각해보면 그렇게 절박한 것은 아니잖아요. 하자고 하고, 필요하다고 사람들이 공감하면 답을 찾을 수 있거든요." - 본문 중에서, 우석훈

 

20대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세대 착취 고리를 끊으려면, 우선 힘들다고 말하고 소리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는데 알아서 챙겨주는 일은 없다는 것. 원래 자본이라는 게 달라고 하지 않으면 안 준다는 것, 수요에는 '요구(demand)'란 뜻도 들어있다는 것, 그래서 달라고 그런다고 해서 '수요'라는 것이다.

 

또, 우석훈은 수능 총파업이 10대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이 딱 나올 시점"이라며 가장 평화로운 해결책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집회를 할 필요도 없고, 전체적으로 누가 조율해줄 필요도 없고, 서로 얘기하다가 조금 희생하면 되는" 것이라고, 집단으로 재수 한 번 하는 셈 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

 

올해 들어 등록금 문제를 시민운동과 진보개혁세력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데, 우석훈은 제대로 "확 깎아 달라고 하려면 수능 총파업 같은 것"을 해야 뭔가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요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우리 사회에 '희망'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미FTA와 한반도운하, 국민투표로 결정했어야 한다

 

그는 노무현 전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의 위기를 부동산 거품과 경제의 대외의존도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 책임이 노무현 정부에게 있고, 건설 자본을 먹여 살리느라고 지난 10년 동안 재원을 다 썼다는 것.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 놓은 국책사업과 공공건설만 해도 앞으로 5년간 사용할 재원을 넘어서 버렸다고 한다.

 

결국 우리 경제를 수출만으로 유지하고 성장 시키려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점차적으로 제국주의 경제로 나갈 수밖에 없으며, '동시다발적 FTA'도 뒤집어보면 미국을 등에 업고 작은 제국주의를 하겠다는 노선에 불과하다는 것.

 

"부동산 거품으로 무너진 국민경제의 기반을 개방이라는 형식을 띤 공격적인 해외진출로 메우려 하겠지만, 현 시스템에서는 2~3년 이상 못 버팁니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주기적 우기가 맞물리는 시점에서 마치 1970년대의 아르헨티나가 붕괴했던 것과 같은 큰 붕괴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거든요." - 본문 중에서

 

그는 향후 2~3년 후에 버블 공황이 찾아오면 원화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수출 주도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FTA는 결국 IMF와 같은 버블 공황으로 이어질 것이고, 4인 가족 기준 연봉 6000만원 미만 소득자들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특히, 우석훈은 참여정부가 단기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방개발도시를 만들겠다고 해놓은 게 100개가 넘고, 골프장은 300개가 넘는다"는 것.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건설자본의 전성기가 펼쳐진다면 국책사업은 물론이고 각 지자체마다 벌이는 관광중심의 건설 경제까지 덧씌워져 버블공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인터뷰에서 우석훈은 참여정부는 물론이고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 중 하나는 '국론분열을 못 견뎌하는 점'이라고 한다. 그는 환경부와 건교부가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싸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서로 조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부처 간에 이견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한다.

 

"이견이 나온다는 건 당연한 거거든요. 그런데 좌파나 우파나 이견이 많은 것을 국론분열이라고 해서 싫어하거든요. 원래 국론은 많을수록 좋은 거거든요. 그걸 많게 하자고 하는 것이 민주주의잖아요." - 본문 중에서

 

그래서 한미FTA건, 대운하 문제건 국론을 분열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핑계로 인위적으로 무조건 한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국론이 '분열'되어야 민주주의다

 

우석훈은 한미FTA와 같이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것은 87년 체제의 모순이라고 한다. 그는 헌법에 구멍이 뚫렸다고 본다. 외국에서는 헌법에서 국민투표가 명시되어 하위 법률로 내려갔는데, 우리나라는 하부 단위에는 정착되어 가는데 국가단위만 비어 있는 형국이란다.

 

부안 방폐장 문제와 같은 경우도 국민투표와 같은 제도가 없기 때문에 힘과 힘이 부딪히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되었던 사례라는 것. 그는 경주처럼 주민 투표를 하는 것이 합리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지자체에서 방폐장을 할 것인지, 화장장이나 장의시설, 매립장과 같은 것을 설치할 때도 주민투표를 하는데, 국가 단위에서만 '투표제도'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결국 국민투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부의권'을 대통령에게만 준 것이 87년 체제가 가진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직선제로 뽑은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87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인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는 것.

 

우석훈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칸 하나만 더 만들어서 FTA 찬반 투표를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FTA도 경부운하도 선거의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국민여론이 부정적으로 돌아서자 총선 공약에서 경부운하 공약을 빼겠다고 하는 얄팍한 수를 내놓고 있다.

 

책 많이 내는 사회에 '희망'이 있다

 

지승호의 인터뷰를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책을 내는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우석훈은 우리 사회 희망의 단초 가운데 하나로, 어떤 이유로 무슨 책을 읽고 있던, 지금 10대들의 독서량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책은 생각을 만드는 장치, 한 사회가 가장 점잖게 토론하는 장치라고 평가한다. 책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그 과정에서 지식을 만들고, 그것이 예술에 반영되는 선순환 고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

 

"책이 제일 싸잖아요. 영화는 돈 많이 들잖아요. 영화 한 편 찍을 돈으로, 가령 심형래 감독이 썼던 돈 정도면 20대의 1만 명 정도가 책을 낼 수 있게 지원해줄 수 있을 거라구요. 어떤 지식에 대한 생산이나 논의 중에서는 책이 제일 싸거든요." - 본문 중에서

 

책을 낼 때 책 쓰는 사람은 성실해지기 마련이며, 우파든 좌파든 자기가 알고 있는 제일 정확한 것을 끄집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양식이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고 나서 그 글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것과 대비해 볼 수 있다는 것.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얕기도 하고 폭도 좁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한국 사회는 우파는 아는 것도 없이 게으르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좌파가 예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지런할 필요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우파와 좌파 가릴 것 없이 모두 더 많이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경제학자로서 그는 한국 경제는 미국이라도 제대로 보고 배워야 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금융 강국 미국이 자동차뿐만 아니라 쇠고기와 옥수수를 팔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반도체와 휴대전화만 팔아서 살 수 없다는 것은 미국만 잘 쳐다봐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일이란 거다.

 

또 토건국가로 유명한 일본보다도 건설업 비중이 높은 것과 삼성 같은 재벌기업이 에버랜드와 같은 리스크가 없는 돈 모으는 산업에 투자하는 것 이런 것들이 한국경제를 미래를 어둡게하는 요인이라고 한다.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하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우석훈의 진단을 들어봐도, 대통령조차도 '이런 경제 상황을 본 적이 없다'는 최근의 경제 상황을 보아도 희망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은 있을까? 우석훈은 자본주의를 좀 더 따뜻하게 고쳐 쓰자고 제안한다. 가령 '신뢰자본주의'라든가 하는 따뜻한 자본주의를 해보자고 한다. "사람들의 욕구를 문화라든가 하는 비물질적인 것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는 많이 사용하되 자원은 덜 사용하고, 한가로운 시간은 많은데 욕심은 좀 절제되어 있는 정도의 사회는 자본주의에서도 오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꼭 사회주의혁명이 되어야만 오는 게 아니고, 한국자본주의에서도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본문 중에서

 

그는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맹아 단계에 있지만, 우리 사회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본다. 조금 더 커지고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자본주의도 상부상조라든가, 협동과 같은 가치 없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

 

자본주의는 굉장히 문제가 많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해줄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가 우리보다 더 발달한 나라들 모두 '생활협동조합'과 '지역공동체'와 같은 장치들이 더 발달해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승호는 우석훈을 일컬어 "포기할 뻔한 좋은 세상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불태우게" 해준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세상을 다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서로 지적하고 돌아보고 고민하며 우리 같이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시도라고 한다. 지승호와 우석훈의 거침없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독자들 역시 희망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 10점
우석훈.지승호 지음/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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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모니 2013.03.15 10:11 address edit & del reply

    국민들이 정부의 인사권만 행사하면 됐지
    정치안건에 대해 일일히 간섭하는 건 너무 단순한 발상입니다.
    무엇보다 다수결에 의한 압살이라는 독재가 행해질 수 있습니다.
    통치자가 독재하면 투표를 통해 사람을 바꾸면 되지만
    정치안건에 대해 투표하면 정치안건 자체에 의한 독재가 행해지게 됩니다.
    한미fta는 앞으로 대통령이 바뀌면 그 대통령이 폐기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가 되버리면 거의 평생 못바꾸게 됩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국민투표 또하면 되는거 아니냐?
    근데 그런식이면 국민들이 투표해야 할 안건이 너무 많아져서 넘 비효율적이게 됩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당신 동네에 화장장이 들어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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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은 몇 개일까? 보통, 사람들은 남들처럼 세상을 보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도 ‘대세’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선거에는 이른바 ‘대세론’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된다. 대세를 거부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를 쓴 김갑수가 바로 대세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는 “진보 술자리에 섞이면 독야청청 보수 노릇하고, 보수 아저씨들 자리에서는 급진의 꽹가리를 쳐대는 성벽이 내게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바로 대세를 거부하는 김갑수가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그는 대세를 따르는 사람들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사는 동네에 화장장이 들어선다면 나는 앞장서서 환영할 것이다. 중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망자의 추모공원 곁에서 자라난다면 내 아이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또한 동네에 장애자 특수학교가 들어선다면 그 역시 앞장서서 환영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는 동네에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이 생긴다면 그 역시 앞장서서 환영할 것이다.”(본문 중에서)

 

그는 자기 아이가 특수학교 아이들과 섞여 놀면서 편견 없는 세상을 꿈꾸는 휴머니스트가 될 수 있으리라고, 쓰레기 문제를 겪으며 생활문제, 환경과 문명에 대하여 남다른 통찰력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쓰레기 소각장’이 남다른 통찰력을 키워준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 쓰레기 매립장 혹은 소각장이 들어선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진보운동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라면 주민들과 함께 '반대 운동’을 열심히 할 것이다. 환경적인 피해를 막기 위한 측면에서 ‘다이옥신 피해’를 우려하며 문제를 제기하겠지만만 결국은 금전적 보상이나 지역 개발사업으로 협상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사실 나도 별 수 없을 것 같다.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나는 왜 나여야만 하는가?>를 쓴 김갑수처럼 ‘앞장서서’ 환영 할 자신은 전혀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에게는 ‘독야청청’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그렇다. 이 책은 지은이가 2년 반 동안 한겨레에 기고한 ‘세상읽기’ 원고가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칼럼집이 “세상의 겉은 초절정 메가패스 속도로 흘러가고, 그래서 불과 몇 해 전 황우석 교수 일도, 몇 달 전 조승희의 어두운 눈빛도 금방 옛날 일처럼 여겨지건만, 그에 반응하는 우리 자신은 별로 변함이 없다는 문제제기”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는 권력을 가진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칼럼을 통해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짓밟고 권력층, 부유층에게 침을 뱉는 정의의 목청 뒤에 국민 스스로의 자기 책임성, 자기 변화의 절박성은 슬그머니 감춰진다. 아울러 그 감춰진 면을 드러내려는 목소리에는 이른바 ‘가진 자’ 편이라는 편 가르기 멍에가 덧씌워진다.”(본문 중에서)

 

김갑수는 민주화는 민중의 집단적 열망으로 이룩했지만, 선진사회 도약은 국민소득이 두 배 세배로 늘어난다고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구성원으로 개개인의 자기 각성과 책임감의 공유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남 탓만 하는 국민’들에게 감춰진 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집단적 광기, <디워>의 애국주의

 

그래서 심형래 감독이 만든 영화 <디워> 논란이나 ‘유승준 파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대중을 향해 빛나고 있다. 그는 이른바 ‘진중권 논란’을 ‘황우석 사태’와 다름없다고 인식한다. 진중권 논란이란, 좌파 이론가 진중권이 백분토론에 나와 영화 <디워>가 “애국심과 동정심에 호소해서 인구몰이를 한 싸구려 흥행물”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하여,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무섭고 거셌던 성토 분위기를 말한다.

 

김갑수는 여기서 ‘나라사랑’, ‘국가 또는 조국’을 너무나도 소중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그들에게 집단적 광기와 민주적 여론의 차이를 성찰해 보라고 권유한다. 그는 “‘<디워>의 애국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애국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기는커녕 국방의 의무조차 피하고자 할 것이 틀림없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집단의 광기가 개인의 행불행을 좌우하고 대재앙을 일으켰던 기억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군 입대를 공언하며 인기를 누리다가 국적을 바꿔버린 ‘유승준 파문’에 대한 그의 인식 역시 대중적이지 않다. 유승준 역시, 대중들에게 애국심, 공인, 병역의무와 같은 가치를 기준으로 집단적인 공격을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입국 금지를 당하기까지 하였다. 유승준 파문에 대하여 김갑수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적을 변경, 선택하는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둘째, 개인의거주지 이전, 선택, 방문 등의 행위를 법률을 뛰어넘어 도덕적 사유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 병역의무는 천부적이고 절대적인 인간의 가치실현인가.”(본문 중에서)

 

이 세 가지 질문에서 유승준이라는 특정인을 배제하고,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또 다시 권유한다. 김갑수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 당시의 여론과는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즉, 국적 선택과 거주이전은 당연히 ‘자유’이며, 병역의무 역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수준의 의무일 뿐이라고 한다.

 

유승준 사태의 본질은 ‘대중적 박탈감’

 

유승준 사태의 본질은 그가 ‘대중의 박탈감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박탈감은 남들은 모두 부당한 방법으로 잘되었는데 나만 손해보고 있어 억울하다”는 심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적당히 때 묻은 보통사람에게 애국자”가 되라고 요구하지도 말고, 나만 억울하다고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서도 벗어나야 낡고 병든 도덕주의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세를 거부하는 김갑수는 이것이 ‘유승준 사태’의 본질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이제는 많이 잊혀졌지만, 그래도 ‘줄기세포’ 이야기만 나오면 떠올리는 황우석 사태를 김갑수는 어떻게 보았을까? 한 마디로 ‘사기도 음모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나는 이 사태가 황 교수에게 최고 과학자 운운의 과도한 영예를 얹어준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의 연구는 마치 삼성전자의 반도체 개발처럼 세계적인 경쟁이 붙은 첨단 분야의 기술개발 차원으로 보아야 한다… 돈 되는 기술개발 경쟁과정에서 불거진 이해다툼으로 사안을 바라보면, 누가 사기 친 것도, 음모를 꾸민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전망이 생겨난다.”(본문 중에서)

 

황우석 사태를 바라보는 지은이의 이러한 관점은 ‘진보 술자리에서 보수, 보수 아저씨들 자리에서는 급진의 모습’을 보이는 그의 성벽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흔히 주류 입장에 가까운 사람들과 대부분 언론들은 ‘사기론’이라는 대세에 매달렸고, 열광적 기대를 나타냈던 소위 ‘황빠’들은 음모론으로 날을 세울 때, 그는 ‘독야청정’ 기술 개발과정에서 불거진 이해다툼일 뿐이라고 전혀 다른 눈으로 사태를 바라보았다.

 

김갑수는 젊은 시절에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출판사 편집부장을 거쳐서 라디오 진행자가 되었다. 방송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시와 책과 음악이 그의 삶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듯이 보인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운동을 기피하는 아이였으며, 지금도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떻게 축구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축구에 열광하는 진보적 지식인

 

소위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5공 시절에 시작된 프로스포츠에 대한 반감이 있다. 그 역시 스포츠에 대한 열기 때문에 반감을 넘어 증오하는 시절이 있었으며, ‘3S로 국민을 마비시키는 독재정권에 굴복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졌다고 한다. 가르치던 아이들에게도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바보 멍청이나 할 짓이라는 주장을 설파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2006년 월드컵 즈음엔 스포츠에 대하여 다른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국민들처럼 손에 땀을 쥐고 발을 구르며 환호와 탄식을 내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박지성에 대한 범국민적인 인기가 그의 외모나 말솜씨 때문이겠는가. 2006년 월드컵의 16강 탈락이 우리 국력이 모자라서였겠는가. 모든 것이 실력과 노력, 때로는 운에 맞춰 펼쳐지며 우리는 거기에 흥분하고 실망하고 기대하고 또 좌절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생사, 삶의 진면목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본문 중에서)

 

대중심리를 이용한 돈 놀음에 치우쳐 있는 다른 대중 오락물에서 스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는 다른 “거짓과 꾸밈이 없는 승패의 진실, 계산되거나 연출되지 않은 알몸의 몸짓” 때문에 스포츠에 진실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스포츠는 군대와 경찰의 통제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동물 본연의 야수성, 공격성을 해소할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축구를 사랑하는 팬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대중적으로 열광하는 월드컵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태도는 옹호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되는 것처럼, 열광하지 않을 권리도 옹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를 읽어보면 서평기사를 통해 다 소개할 수 없는 톡톡 튀는 다른 생각과 발상을 만날 수 있다. 가끔 추문에 휩싸인 인물을 봐도 그 죄질(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으며 ‘오직 운이 없다고 여겨질 뿐’이라는 결혼, 사랑 그리고 이혼 에 대한 김갑수의 세상읽기, 3만여 장이 넘는 음반을 소유한 그의 음악에 대한 생각도 만날 수 있다.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를 쓴 김갑수는 독자들에게, 그리고 대중들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제발 남 탓 하지 말라’고, 그리고 ‘제발 대세만 쫒아가지 말라’고. 지은이의 탁월함은 그가 사물을 비판적으로만 보는 차원을 넘어섰다는 데 있다. ‘남탓’만 하는 비판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상 읽는 방법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책을 읽는 동안 홍순관이 부른 노래 '나처럼 사는 건 나 밖에 없지'라는 노래가사가 자꾸 떠올랐다. 책읽기를 싫어하는 독자들이라면, 우선 그가 진행하거나 고정패널로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채널을 맞춰보시면 어떨까? 어느 방송이냐고? 인터넷 검색 창에 그의 이름을 입력하고 검색해보시기 바란다.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 10점
김갑수 지음/프로네시스(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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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폭력 현장 누빈 그의 혈액형은 G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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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에서 30년이면 충분하다!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을 쓴 저널리스트 이유경이 국제분쟁 현장을 찾아 떠날 때의 생각이다.

 

한 나라는 고사하고 지난 30년 동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한 도시 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내가 보기에 마음먹은 대로 사는 그이가 참 부럽다. 깊숙한 밀림 같은 아시아의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는 그녀의 혈액형은 G(Gypsi)형이다.

 

한반도 남쪽 섬나라에서 사는 우리는,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아가는 다수의 한국인은, 근·현대 역사를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픔과 가장 큰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라고 믿어왔다.

 

일제 식민지배와 민족해방투쟁, 그리고 한국전쟁과 지난했던 민주화운동의 역사, ‘화려한 휴가’ 광주항쟁과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무고한 희생을 낳은 역사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동티모르 사태와 간간히 들려오는 동남아시아의 쿠데타 소식을 무관심하게 접하면서 아시아 분쟁 현장은 ‘강 건너 불구경’ 거리도 안 되었던 것 같다. 내 발등의 불도 끄기 힘든 분단 모순, 민족 모순, 계급 모순을 한꺼번에 안고 한반도 남쪽에 살면서 바다 건너에 언제 불이 났는지, 불이 꺼졌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미흡하지만 최근 버마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혈진압에 항의하는 집회가 한국에서 열렸고,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침공에 대한 분명한 반대 목소리가 한국 시민사회에서 터져 나온 것은 참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아시아에 대하여 잘 모른다.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으니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어디 문화유산뿐이겠는가?

 

‘30년 살았으니 충분하다’고 이 나라를 떠난 이유경이 전해주는 아시아의 전쟁, 분쟁 현장  이야기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은 그래서 소중하다.

 

이유경은 버마와 타이의 국경지대, 버마 민주화운동 현장, 죽음을 부르는 인도의 계급 차별, 종교분쟁 그리고 파키스탄과의 영토분쟁, 실론섬의 타밀 타이거 게릴라, 인민 혁명를 꿈꾸는 네팔 게릴라, 인도와 파키스탄 점령지역 카슈미르 등 낯설고 생소한 지역에 관하여 때로 가슴 아프게, 때로 담담하게 전해준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는 광주항쟁 소식이 외신에 보도된 것을 보고, “이제 됐어! 며칠만 더 버티면 돼”라고 희망을 품는 장면이 나온다. 아시아 분쟁지역 곳곳에서 만난 게릴라들, 반군, 테러리스트들, 핍박받는 달리트들, 죽음에 내몰린 이교도들도 이유경과의 만남에서 이런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고통스런 상황을 외지인들이 좀 알아줬으면, 그 고통에 누군가 연대의 손길을 좀 보내주었으면, 그 지긋지긋한 분쟁이 누군가의 중재로 제발 좀 빨리 끝나줬으면 그래서 발 뻗고 잠 한번 실컷 자봤으면,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의 소망이었다.” - 본문 중에서

 

핍박받는 자들이 전하는 낮은 목소리에는, 절규하는 외침에는 늘 이런 바람이 담겨있었다. “고통스런 상황은 누군가 좀 알아줬으면”하는 바람 말이다. 그래서 핍박과 고통의 삶을 살았거나 아직도 핍박과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서로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88항쟁이후 20년, 노쇠한 버마 민주화운동

 

지금부터 3년 전, 버마민주화운동을 취재했던 이유경은 일찌감치 ‘버마 민주화운동’이 한계에 봉착하였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3년 후 오늘 대규모 시위는 군사독재정부의 강경진압에 무력하게 사그라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3년이란 시차에도 불구하고 주로 짤막한 소식으로 전하는 일간신문 버마민주화시위 기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정확한 분석기사가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에는 이미 실려있다.

 

버마사태 해결을 위해 파견된 UN대표가 찾아갔던 버마 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 그리고 그녀가 이끄는 버마 제 1야당인 민족민주동맹 대변인과의 3년 전 인터뷰 기사에는 "노쇠하고 냉소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군사정권의 전복 없이도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난 결코 그런 군사적 운동에 고무된 적도 없고, 처음부터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았어. 대신 평화적 운동에 대해 고민해.” - 본문 중에서

 

이유경은 버마 민주화운동을 “노선과 진보적 이념은 부재한 채 ‘친서방’ 코드로 한정되어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88항쟁 이후 20년 동안 ‘대화 좀 하자’고 반복해온 이른바 평화운동 방식”은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그가 만난 정치적 협상력도 투쟁의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하는 무력한 버마 인민의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뿐만 아니라 태국 국경에는 버마 군부로부터 투옥과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정치범과 활동가들이 넘쳐나고 그들이 이름값을 하느라 운동도 넘쳐난다고 한다. 그렇지만 넘쳐나는 운동들도 뒤집어 보면 자생력의 한계를 방증하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진단한다.

 

2004년 취재 당시 버마 민주전선 간부는 “군부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버마 내부의 ‘민중봉기’와 국경의 ‘무장투쟁’ 두 가지라고 분석”하였지만, 이미 당시 이유경이 지적했듯이 2007년 내부에서 촉발된 민주화시위를 운동과 투쟁으로 이어가기 위한 동력이 남아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21세기 인도에 성자는 없었다

 

채식, 요가, 명상으로 잘 알려진 영성의 나라, 그리고 최근에는 실리콘 벨리를 이끄는 IT 강국, 또는 ‘국외 펀드’ 투자 지역으로 각광을 받는 나라 인도가 이유경의 두 번째 취재지역이다. 지은이는 인도의 제도화된 차별 카스트, 카스트에도 끼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달리트 문제와 힌두 극우주의자들의 광기어린 폭력 현장을 밀착하여 취재하였다. 이중, 삼중고를 지고 살아가는 불가촉천민 달리트의 모습은 이렇다.

 

“신분을 차별하는 카스트 제도에 맞서, 애어른 가리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해 온 지주들의 폭력과 횡포에 맞서, 그리고 콜라 팔아먹겠다고 주민들이 먹을 물을 바닥낸 다국적 기업 코카콜라에 맞서 손을 뻗쳐드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인구의 15%를 차지한다는 1억 6000만명의 달리트들이다.” - 본문 중에서

 

인도에서 가장 많은 달리트들이 살고 있는 비하르에서는 2004년을 기준으로 이전 15년 동안 지주 사병조직에 의하여 무려 1000명의 달리트들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달리트 운동은 좌파운동, 좌파정당으로부터도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경은 달리트들에게서 인도민주주의의 ‘낯선 희망’을 발견했다.

 

또 다른 폭력과 죽음의 현장 구자라트, 이곳에서는 2002년 3월부터 단 3개월 만에 2000명의 무슬림들이 힌두극우주의자들에 의해 학살된 곳이다. 이유경은 구자라트 학살을 통해 종교가 내포한 분쟁의 잠재력을 뼈저리게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분쟁이 단순한 종교분쟁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구자라트 학살은 종교로서는 힌두 근본주의가 ‘우월성’을 내세우는 극우민족주의를 만나고 천년 묵은 카스트 차별 관습을 이용하면서 빚어낸 소름끼치는 야만이었다. 힌두 근본주의, 극우민족주의, 카스트차별 관습 그 최악의 3박자가 빚어낸 학살은 단순히 종교에 미친 신도들의 폭동이 아니었다.” - 본문 중에서

 

그는 구자라트에서 종교와 신분이 모두 지배계급인 힌두 조직 엘리트들이 그 종교와 신분으로 억압해온 달리트와 무슬림을 어떤 식으로 이간질시켜 폭동이나 학살에 이용해왔는지를 밀착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

 

이유경의 세 번째 취재지역은 남아시아의 ‘진주’ 스리랑카이다. 20여 년 동안 내전으로 흐느끼고 있는 흐느끼고 있는 아시아의 ‘가자지구’라고 불리는 곳, 다수 인종인 싱할라족의 극우 민족주의와 불교 근본주의가 국가 권력의 뒷심을 얻어 일으킨 폭력은 1983년 7월, 3000여명의 타밀인들을 집단학살하였고, 마침낸 20년간 계속된 내전이 시작되었다.

 

게릴라 생활이 더 안전하다

 

이유경은 휴전 상태인 스리랑카에서 20년간 해방투쟁을 이끌어오다 자치체제를 꾸려가고 있는 이른바 타밀반군, 혹은 타밀 타이거 독립투쟁 조직 전사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중 타밀 타이거 여성 전사들을 인터뷰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자살공격까지 감행하는 테러리스트’라는 악명과 ‘인종차별 철폐와 민족해방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여전사들’이라는 양 극단의 호칭으로 불리는 그녀들은 차별 없는 훈련과 전투로 유명하다.

 

“우리 가족은 반대하지 않았어. 우린 어부공동체에 속했고 북부 해안 어부들은 스리랑카 해군의 폭력에 직접 노출돼 있었거든. 특히 강간당할 위험이 높았던 여성들은 타밀 타이거로 활동하는 게 오히려 안전했으니까.” - 본문 중에서

 

두 다리에 총상을 입어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여성전사 타미래발의 이야기이다. 남성과 견주어 조금도 뒤지지 않는 전투력으로 타밀 타이거 민족해방전선에서는 남녀간의 차별도 카스트 계급 구분도 조금씩 쇠퇴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경이 쓴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취재는 바로 언론에 대한 비평이다. 지은이의 전직이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였다는 강점이 녹아있는 취재기사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스리랑카의 내전을 부추기는 언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취재는 탁월하다.

 

이 밖에도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에는 G형 혈액형을 가진 지은이 이유경이 분쟁의 현장을 두 발로 누비며 기록한 왕의 권력에 도전하는 네팔 민주화운동의 생생한 현장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요원해 보이는 자주독립을 꿈꾸지만 지금도 인도 점령지역과 파키스탄 점령지역으로 나누어진 ‘카슈미르’ 분쟁 현장과 ‘길깃 발티스탄’이라는 생소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수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소수에 대한 폭력과 학살 현장도 상세히 전하고 있다.

 

종교 근본주의에서 비롯된 학살이든, 외세의 점령이든, 종족 간 분쟁현장이든, 민주화투쟁 현장이든 파괴와 학살 현장에서 최대 피해자는 늘 민간인들이다. 이유경은 바로 그들의 목소리를 그들의 간절한 바람대로 외지인들에게 생생하게 전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은 <시민의신문>에 ‘비자 없는 세상을 꿈꾸며’라는 제목으로 2년 반 동안 연재했던 글을 밑천 삼아 썼다고 한다. 이유경이 쓴 이 책은 아시아에 대하여 낯선 한반도 남쪽 섬나라에 사는 우리들이, 새로운 눈으로 아시아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 10점
이유경 지음/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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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지사, 정권교체 실감나게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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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4일(월)에 있었던 김두관 지사 블로거 간담회 두 번째 포스팅 입니다.

사실 1주일도 넘게 블로그에 포스팅을 미루고 있었던 것은 정말 확 끌리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이겠지만, 김두관 도시자 취임 이후 1년 4개월이 지나는 동안 '야권단일후보' 도지사로서 뭔가 개혁적인 모습이나 정책을 보여주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첫 번째 포스팅에서는 김두관 지사 취임 후 경상남도의 청소년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포스팅하였구요.

2011/11/17 - [세상읽기] - 김두관지사, 화끈한 정책 좀 없을까?

블로거 간담회에서 저에게 두 가지 질문의 기회가 있었는데요. 야권단일후보 도지사로에게 기대하였던 뭔가 좀 다른 답을 듣지는 못하였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저의 질문과 김두관 도지사의 답변을 정리해 봅니다. 우선 제가 김두관 지사에게 했던 질문 요지는 이렇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하였습니다. 경남의 경우 오랜 동안 한나라당이 집권하였기 때문에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다른 시, 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시민교육이 취약하였습니다. 김두관 지사께서는 범야권을 대표해서 당선되었는데, 시민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남다른 노력을 좀 기울이셔야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주시민교육 활성화에 대한 지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현장에서 김두관지사에게 질문 할 때는 요렇게 조리 있게 하지는 못했는데요. 아무튼 제가 서면 질문지는 요런 취지를 담아 작성을 하여 사전에 보냈기 때문에 제가 좀 두서없이 질문하였지만 지사께서는 잘 이해하셨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김두관 지사께서는 먼저 공무원 교육을 하고 있는 사례를 말씀해주시더군요. 도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매월 1회 시사, 교양강좌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김 지사는 매월 1회 실시하는 공무원 교육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계시더군요.

시민교육은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아울러 지방정부의 역할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시민단체의 역할을 기대하시더군요. 시민단체의 역할과 관련하여 남해군수 시절의 경험도 이야기 하시더군요.

“지방정부가 모든 역할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NGO가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가 군의 보조금을 받고 일정하게 시민교육을 맡아 주었는데 막상 공직에 계신 분들 중에는 시민단체에 적대적인 분들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기반이 안 되기 때문에 ‘저 사람들 지원해줘도 도움이 안 된다’ 뭐 이런 평가들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경남 전체적으로 보면 지방정부가 오른 쪽으로 많이 가 있으니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사실 작은 건의는 주로 지원하였습니다. 통일마라톤이나 평화행사 같은 좋은 행사는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경남도에서 주민 참여 예산제를 시행해보니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지만, 참여하시는 분들이 직능 단체를 중심으로 참여하시기 때문에 자기 단체 예산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당초 취지와는 조금 엇나가는 것 같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민주시민 교육은 YMCA 같은 NGO에서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외국의 경우는 정당들이 많이 하던데, 우리나라 상황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독일은 나치의 폐해에 대해 역사교육을 굉장히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독일의 경우 시민교육을 위해 사민당, 녹색당 같은 곳에서 청소년,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더군요. 국민을 섬기고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이런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정당에서 이런 역할을 하기가 힘들잖아요.”

김두관 지사께서 한 답변은 이렇습니다. 뭐 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기도 합니다. 시민단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달라는 것 말고도, 지방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한 일들이 있을텐데 그런 접근은 시도 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남의 경우에도 다양한 민주화운동의 전통이 남아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부산의 민주공원이나 시민센터, 광주의 518재단 같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계승하고, 시민사회의 인프라를 만드는 사업을 추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방정부 정권교체 실감 안 나는데... 원래 이런 것인가?

518 재단 설립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고 윤한봉 선생은 오랫 동안 미국 망명생활을 하면서 사회운동이 하루, 이틀하고 끝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재단 설립을 추진하였다고 하더군요.

이명박 대통령 임기 4년을 보내면서 시민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뚜렷하게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은 정치권력을 바꾸는 것과 상관없이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토대를 확장하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그동안 한나라당 출신 도지사들이 기피하였거나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범야권 단일후보로 당선된 김두관지사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했던 질문의 답속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사실 경남에서 김두관 지사의 당선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못지 않은 역사적인 사건 입니다. 비록 무소속이긴 하지만 경남에서 처음으로 한나라당이 아닌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아마 김두관 지사가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 일 것입니다.

실제로 김두관지사 이전에 경남에서는 단 한 번도 야당 도지사가 당선된 일이 없었으며,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경남은 사실상 도지사와 의회를 한나라당이 장악하였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여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김두관 도지사가 당선되면서 지방자치 이후 처음으로 (지방)민주정부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두관 도정에 대한 기대도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년 4개월 동안 경남도 정권이 바뀌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만한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도지사의 답변을 보면 개혁적인 도지사로서 시민사회단체가 요청하는 '통일', '평화' 등을 내세운 이런저런 사업에 대한 지원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1회성 행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김두관 도정을 대표하는 복지 정책으로 '어르신 틀니 보급, 보호자 없는 병원 운영,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또 대표적인 분권론자인 김두관 지사는 모자이크 프로젝트, 지역균형발전 조례 제정 등 남다른 정책도 펼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좀 아쉽고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당선된 도지사가 지지자들을 위한 정책만 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을 지지하였던 지지자들이 바라는 정책, 혹은 넓게 민주진영과 시민사회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정책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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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24 06:10 address edit & del reply

    제가 정치는 잘 모르지만 김두관 지사님을 믿고있구요,
    지사님은 뚝배기처럼 천천히 열정적으로 뚝심있게 일 하고 계신다고 전 생각합니다.
    너무 제촉하지 말자구요.

    • 이윤기 2011.11.24 09:27 신고 address edit & del

      네...저도 믿습니다.
      그런데...박원순 시장과 자꾸 비교가 되네요.
      그래서........ 좀 아쉬워요

창원 명예시민은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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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시민증을 받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요? 지난 7월 초 통합 창원시 명예시민증 제 1호 중복 수여 논란이 벌어진 일이 있습니다.

당시 언론보도에 행정구역 통합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맹형규 행안부 장관에게 명예시민증 제 1호를 수여하였다고 보도가 크게 되었는데, 이미 3월에 노키아티엠시 티모 엘로넨 사장에게도 명예시민증 제 1호가 수여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 블로그와 페이스북 그리고 오마이뉴스와 지역의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서 명예시민증 제 1호 중복 수여 문제가 불거지자 그 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창원시는 맹형규 장관은 내국인 1호이고, 띠모 엘로넨 사장은 외국인 1호라고 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내놨습니다.

아울러 맹형규 장관은 통합창원시 명예시민증 결정 제 1호이고, 띠모 엘로넨 사장은 수여 제 1호라고 하는 더욱 기묘한 해명도 있었습니다.


2011/07/11 - 창원 명예시민증 제1호 2명은 과유불급
2011/07/08 - 맹형규장관 속았다, 창원 명예시민증 1호 아니다
2011/07/07 - 맹형규 장관이 왜 명예시민 1호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인 제 1호와 내국인 제 1호로 구분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은 이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그동안 옛 마산, 창원, 진해시 그리고 통합창원시에서 어떤 사람들이 명예시민증을 수여 받았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통합창원시의 명예시민증 제 1호 중복 수여 논란이 벌어진 직후에 창원시에 행정정보공개 청구를 하였습니다. 정보공개 청구 내용은 통합전 마산, 창원, 진해시의 명예시민증 수여 현황과 발급대장 사본, 그리고 통합창원시의 명예시민증 수여 현황과 발급대장 그리고 명예시민증 수여 결정과 관련된 인사위원회 회의록을 청구하였습니다.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받은지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만 그동안 청소년들과 자전거 국토순례를 다녀오고 이런저런 밀린 일들을 정리하는라 며칠전에야 겨우 자료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1962년 옛마산시부터 통합 창원시까지 명예시민은 모두 36명

우선 통합전 마산, 창원, 진해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34명입니다. 그중에 6명은 내국인이고 28명은 외국인입니다.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들 중 80% 이상은 외국인입니다. 내국인은 6명인데 옛 창원시 명예시민이 5명이고, 진해시 명예시민이 1명입니다.

시기별로는 옛 창원시의 경우 2000년 이전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3명뿐입니다. 창원시와 자매시를 맺은 미국인 2사람과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 칼리만탄 산림 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한 최계월씨 등 3명입니다.

그외 10명은 모두 2000년 이후에 창원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도 2005년 이후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9명은 모두 박완수 시장 임기중에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민선 시장 중에서도 박완수 시장이 특히 명예시민증을 많이 수여한 것입니다. 

박완수 시장 취임 이후 명예시민증 수여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는데, 기업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2005년, 2008년, 2010년에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주) 사장 3명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습니다. 또 2006년에는 볼보그룹 코리아 사장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여 외국계 회사 기업인이 4명이나 됩니다.

그외 일본 야마구치시 시장, 국제 축구연맹 부회장(2009)이 창원시 명예시민증을 받았으며, 2010년에 한국인으로 오원철, 김광모, 강영택씨에게 '창원국가산업단지 조성' 공로를 인정하여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습니다. 이 분들의 공적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발급대장만으로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한편, 옛 마산시의 경우는 20명 명예시민증 수여 대상자가 모두 외국인입니다. 민선 시장을 선출하기 전인 2000년 이전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13명인데 태국, 영국, 미국, 일본, 프랑스, 인도네시아, 인도 등 국적과 공적내용이 다양합니다. 



명예시민증 수여 36명 중 절반은 '기업인'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인도네시아 해군 대령 3명과 인도 해군대령 1명을 포함해서 3명의 외국 군인에게 명예시민증이 수여되었습니다. 주요 공적에는 "우호증진, 경제협력 및 군사교류 기여"라고 되어 있는데, 4명의 인도와 인도네시아 현역 해군 대령들이 어떤 이유로 명예시민증을 받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62년에 한국전쟁 유공자로 명예시민증 1호를 받은 찬 앙슈촛트 주한 태국대사, 64년에 아동구호 활동 공적으로 명예시민증 2호를 받은 영연방 아동구호재단 해외원조 책임자인 호킨스씨, 성지여고를 세운 프랑스 신부 쥴레스 벨몽드씨, 지역의료봉사활동으로 명예시민증 11호를 받은 가포결핵진료소원장 영국인 패트슨씨 등의 명예시민증 수여는 지금 판단으로도 자격이 충분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김인규 전 시장 임기 중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5명인데 모두 기업인입니다. 한국 동광 전무이사, 한국일신 대표이사, 한국상모프라마그 대표이사, 한국 TSK 전무이사인데 모두 일본인이며, 협력적 노사관계 정착으로 산업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와 노사안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시민증을 받았습니다. 핀란드인 1명은 노키아 티엠시 기술 고문인 '알토넨 커리주 하니'라는 사람인데 수출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시민증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편 예상과 달리 황철곤 시장 임기 중에는 명예시민증 수여자가 많지 않습니다. 황철곤 시장 10년 임기 중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딱 2명인데, 2002년에 미국 국적을 가진 연변과학기술대학 김진경 총장은 애향심과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5년에 싱가폴 국적의 노키아 티엠시 구매 이사는 지역협력업체 성장 및 고용안정을 공로로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이 중에서 노키아 티엠시라는 회사도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논란이된 통합창원시 제 1호(?) 명예 시민증을 받은 띠모 엘로넨 사장까지 포함하면 노키아 티엠시 소속 기업인도  세 사람이나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2000년 노키아 티엠시 기술고문, 2005년 노키아 티엠시 구매이사, 2011년에는 노키아 티엠시 사장이 명예시민증을 받은 것입니다.
 
자료를 살펴보면 옛마산, 창원시 모두 명예시민증 수여는 기업인들에게 편중되어 있습니다. 옛마산, 창원, 진해시와 통합창원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36명 중에서 절반이 기업인입니다. 또 기업인이 아니라하더라도 경제협력을 공로로 명예시민증을 받은 외국인이 4명이나 더 있습니다. 

명예시민 중 민주화운동 유공자, 노동운동가는 왜 없을까?

명예시민증 수여의 법적 근거가 되는 '명예시민증 수여 조례'에는 기업인에 대한 우대 조항 같은 것이 없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경제발전과 고용증진, 노사안정에 기여(?) 기업인들에게 명예시민증이 편중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3.15와 10.18 민주화 정신을 내세우는 역사를 가진 마산이었지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일한 공로를 인정 받아 명예시민이된 경우는 한 명도 없습니다. 또 기업도시이자 동시에 노동자도시인 창원의 경우에도 경제발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익과 복지향상 혹은 노동운동을 발전을 위하여 일한 공을 인정 받아 명예시민이 된 경우도 없습니다.

또 명예시민 중에는 평화나 인권 혹은 통일을 위하여 일한 분들도 없습니다. 체육인이나 문화예술인도 없습니다. 현실이 이러니 편중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명예시민증 수여를 결정하는 창원시 인사위원들은 이런 분들 중에는 명예시민으로 추대할 만한 사람들이 없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지난 7월에 있었던 맹형규 장관과 티모 엘로넨 사장에 대한 명예시민 제 1호 중복 수여와 이후 창원시의 해명을 지켜보면서 앞으로는 시민들이 정말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시민 다수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분들 그리고 창원시 명예시민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들이 명예시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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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종만 2011.08.18 18:06 address edit & del reply

    시장 정치인이라고 자신을 정의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자신의 치적과 유관 할거고 유불리가 계산대에 올랐겠죠^^

    • 이윤기 2011.08.19 09:47 신고 address edit & del

      명예시민증 수여 결정을 공무원인사위원회에서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좀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분들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되어야 한 것 같습니다.

      가칭 '명예시민증 수여심사위원회' 같은 것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2. 김봉관 2011.08.19 10:01 address edit & del reply

    궁금한점이 있습니다. 명예시민이 되면 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있습니까? 가령 지방세 감면혜택이나 뭐 그런쪽으로....?

    • 이윤기 2011.08.19 14:26 신고 address edit & del

      명예시민은 외국인이나 타시도 거주자에게 수여하는 것이니...지방세 감면 같은 혜택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조례의 (예우) 규정에는 "시장은 이 조례에 따라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은 사람에게 시 주관 행사 등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 주관 행사에는 누구라도 참여할 수있으니...실제로는 혜택 같은 것은 없고...명예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3. 동피랑 2011.08.19 10:10 address edit & del reply

    명예시민이나 상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의 권위를 과시하는 것일 테고, 이제껏 행정가들의 사고방식이나 관행을 보면 시민전체를 대표해서 준다기보다 시장이나 행정관련 협의회 구성인사들이 공로가 있다고 인정되는 부분이 경제, 기업, 잘사는 것에 관심이 편중된 결과 아닐지...이제부터는 민주, 통일, 평화, 인권운동 문화예술분야로 인식이 확대되길 기대 해 봅니다.

    • 이윤기 2011.08.19 14:27 신고 address edit & del

      동피랑님 오랜만입니다.
      조례를 좀 뜯어고쳐서...명예시민증 수여를 행정가들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시민의 뜻이 반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종황제가 망명정부를 세웠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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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박종철 죽음이 은폐되었다면?

사람들이 이런 가정을 해보는 이유는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죽임을 당했고, 아웅산 테러는 실패하였으며, 박종철의 죽음이 알려져 세상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만약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하고 아무리 가정해봐야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역사는 늘 승리한 자, 성공한 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과거를 둘러싼 투쟁은 현재까지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같은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막상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혹은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가정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역사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는데 우리가 선택한 그 길 옆에는 늘 다른 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라고 하는 가정이 의미 있는 것은 현재의 우리 삶도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길을 알면 헤맬 필요가 없다. 타락의 길을 꼭 가봐야 아는가... 지난 100년 동안 다른 길도 있었음을, 그래서 더 나은 미래가 가능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약에 한국사>를 쓴 네 사람의 저자들은 우리가 살아 온 지난 100년을 성찰해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100년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만 일반 사람들처럼 막연한 가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시점에서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어떻게 결과가 달라졌을 것인가를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한겨레 21>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묶은 책이지만 내용을 대폭 수정하고 보완하여 더 풍부한 책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만약에 한국사>는 네 사람의 저자들이 모두 34개의 역사적 사건을 '만약에'라는 프리즘을 통해 살펴본 이야기들입니다.


아웅산 테러 만약 전두환이 죽었더라면?

한국근현대사에 큰 변화를 일으킨 역사적인 34개의 사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만약에'는 바로 아웅산 폭발 사건이었습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의 아웅산 묘지를 참배하려던 전두환이 5분 일찍 도착하여 테러가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은 이렇게 발휘될 겁니다.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고 어쩌면 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르지만 대신 통장 잔고가 29만 원 밖에 없다고 하면서 골프 투어를 다니는 꼴사나운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전두환은 광주학살의 원흉이니 그 때 죽었으면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두환에게 '5분의 기적'이 일어났고 그는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아웅산 테러 사건은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5명의 장관급이 목숨을 잃었고 청와대, 민정당, 언론사 등에 속한 민관 희생자가 21명이나 되었으며, 46명이 부상을 당하는 엄청난 참사였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5분의 기적으로 목숨을 건졌고 귀국과 동시에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겠다는 성명을 내고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는 등 단호한 응징을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암살단을 보내 김일성을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였지만, 실제 대응은 무력보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으며 전두환의 대응은 예상보다 훨씬 온건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한국 정부의 온건한 대응 배경에는 미국의 태도가 가장 크게 작용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은 전투준비 태세를 의미하는 데프콘3를 발령하는 등 겉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군사적 대응조치를 하였지만, 속으로는 무력 대응자제를 주문하였다는 것입니다.

대신 전두환 정권은 1982년 장영자 사건,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3년 김영삼의 민주화요구 단식 투쟁과 같은 불리한 정치, 사회적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기회를 얻었다고 평가합니다. 또 북한 정권 역시 경제개혁 실패로 인한 혼란을 잠재우고 내부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김정일 후계구도를 정착시키는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아웅산 테러사건은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 안보체제와 북중소 안보협력이 더욱 강화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아웅산 테러가 성공하여 전두환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자 함규진은 대통령 사망은 '보복-응전-전면전'의 형태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대통령까지 살해된 것과 각료들만 희생된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일부 부대는 무력 행동에 나서고....이런 혼란 속에서 제 2의 6.25는 아니더라도 제 2의 12.12 쿠데타가 일어나 새로운 정권의 수립을 기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남한 내부의 정변이 아니라 북한의 '공격'에 의한 남한의 혼란인 이상, 한반도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이 치안유지를 명목으로 사실상의 군정을 실시하려 들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만약 아웅산 테러가 성공했다면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평가합니다. 한편 북한이 처음부터 남한 대통령 테러라는 목표를 세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실패'한 테러만으로도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 같은 북한의 정치적 목표는 달성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당시 분석은 북한이 남한 대통령을 암살하고 전격 남침하려 했다고 나왔지만 실제로 남침을 준비하는 듯한 무력 동원 움직임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죽는 테러가 일어났다면 한반도가 극심한 혼란에 빠졌겠지만 애초부터 대통령을 살해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입니다.

박정희가 그날 김재규에게 죽지 않았다면?

한편, 북한에 의한 전두환 테러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남한 정보부장의 박정희 살해는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만약에'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살해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거듭나거나 그의 딸인 박근혜가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부상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기록적인 물가폭등과 세금인상, 부동산 투기가 서민의 불만을 샀다면 유신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중화학공업의 침체는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다. 1978년 제 10대 총선에서 여당인 공화당이 참패한 사실은 당시 민심 이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미 박정희는 1978년 총선을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심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물가인상과 빈부격차,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마이너스 경제 성장, 막대한 외채 부담 등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정권이 파산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결국 김재규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박정희의 말로가 순탄할 수 없었던 것이 객관적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저자는 10월 26일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로 오늘날 박정희의 망령이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는 하였지만, 당시 상황을 놓고 보면 더 큰 파국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이 책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오래된 과거 역사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원외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같은 주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입니다. 일제고사, 고교입시 부활, 고교평준화 폐지와 같은 정책들을 두고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남북교류와 관련이 있는 '금강산 관광이 5년 먼저 시작됐다면', '대북 쌀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신의주를 홍콩처럼 개방했다면' 같은 주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의 대북 봉쇄 정책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평화와 통일을 향한 남북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려면 눈여겨보아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 조문 슬기롭게 대처했다면' 같은 주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 사건입니다. 김일성 조문 정국이 남북관계를 벼랑으로 후퇴시켰다면 언젠가 닥칠 김정일 조문 정국은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와 같은 역사적 고민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새로운 사실들과 만나게 되는 것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묘미입니다. 저자는 전태일, 김주열, 박종철, 이한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처럼 시대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역사를 바꾸는 죽음으로 '고종 황제'의 죽음을 꼽습니다.

고종황제가 중국에 망명정부를 세웠다면?

1919년 1월 21일 6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고종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널리 퍼진 독살설에 따르면 총독부의 지령을 받은 이완용과 윤덕영이 어주도감 한상학, 어의 안상호 등에게 식혜에 독을 넣어 고종을 살해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종의 암살 배경은 더욱 놀랍습니다. 무기력하고 무능한 마지막 왕이라고 여겼던 고종이 사실은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등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종이 을사늑약 이래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비밀 후원해 왔을 뿐 아니라 해외망명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암살의 이유로 유력하다...1910년 한일합병 뒤 국내에서의 투쟁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중국에 망명해 있던 이회영, 이시영 등과 은밀히 연락해 중국으로 탈출할 계획을 추진했음이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고종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병합무효를 선언하였다면 일제로서는 훗날의 상해임시정부와는 비할 수 없는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암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만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지요. 불세출의 업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조선 최후의 군주로서 순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성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나 지식인들의 경우도 고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고종의 죽음과 독살설에 격앙된 민심을 도화선으로 대대적인 반일 독립운동을 일으킨 것이 바로 고종의 장례식을 이틀 앞두고 일어난 3.1운동 입니다. 고종의 죽음이 없었다면 1919년 3.1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고종은 정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초기 독립운동의 지주 역할도 하고 있었다. 1895년 을미의병, 1905년 을사의병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최익현, 이인영, 민종식, 신돌석, 정환직, 허위 등은 대부분 고종의 밀지를 받거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의병 활동을 벌였다. 1920년대까지 국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치고 직간접적으로 고종과 맥이 닿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실제로 고종의 막대한 비자금이 독립 투쟁 자금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대한제국의 주권자였던 고종이 직접 망명정부를 수립하였다면 새로운 국제관계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국제 사회에서 정통성을 인정받는 임시정부가 되었다면 해방정국의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이지만, '만약에' 라는 프리즘에 비추면 더 풍부하고 흥미롭게 역사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숙명이 아니라 매순간 다양한 선택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국사>는 과거에 가보지 않은 길을 살펴보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길잡이 책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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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모니 2011.08.04 17:41 address edit & del reply

    고종황제는 대한민국의 독립에는 사실 별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대한제국의 "황제자리"에만 관심이 있엇죠.. 독립운동을 후원한건 황제권 강화하기 위해 일본을 견제하려고 그런거지 백성을 위한 정책은 아니었습니다. 고종황제가 망명정부를 세웠다면, 해방후 한반도는 공산파, 민주파, 황제파 3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려고 피비린내나는 내전을 벌였겠죠...

    • 이윤기 2011.08.07 07:56 신고 address edit & del

      대한제국 황제자리를 계속지키려면...독립을 해야하지 않았을까요? 망명정부를 세웠으면 입헌군주국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고종의 장례식이 3.1운동의 도화선이 된건 분명한 것 같구요. 이책 저자들의 역사적 평가에 저는 더 공감이 됩니다.

  2. 만약에 2011.08.04 17:42 address edit & del reply

    역사에 만약에를 둔다면...다른 것 다 하지말고, 만약에 그날밤 자기 엄마 아빠가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것 부터 시작해라. 쓸데없는 것 말하지 말고.

    • 이윤기 2011.08.07 07:58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는 이책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한번 읽어보고 평가하시지요

  3. 무예인 2011.08.05 17:42 address edit & del reply

    이거 괜찬아보이는 책인데요

    • 이윤기 2011.08.07 07:57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만약에 라는 가정이 허무하지 않더군요.

  4. 마자 2011.08.22 19:47 address edit & del reply

    역사엔 만약이란게 없지만
    만약에란 책이 얼마나 가치있는지는
    역사란 돌고 돈다란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만 파악이 가능한 가치겠죠

책에서만 보던 혁명이 현실이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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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황광우가 쓴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사람을 빨아들이는 글쓰기는 황광우가 가진 남다른 재주이다.  저녁을 먹고 펼쳐든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어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단숨에 읽었다.

1985년 대학에 입학해, 가을 무렵에 황광우가 쓴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절망하고 분노하였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이듬해부터 많은 후배들에게 그가 쓴 책 '소삶'과 '들역'(우리는 그 때 이렇게 불렀다)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책을 읽었던 많은 후배들도 절망하고 분노하며 이른바 의식화 교육에 입문하였고, 거리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소위 '운동권'이 되었다.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대학 3학년이 되면서부터 노동야학에 참여하였다. 노동야학에서 청년 노동자들과 함께 읽었던 도서목록 맨 위에도 역시 황광우가 쓴 '소삶'과 '들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밖에 몰랐을 때다. 그가 쓴 두 권의 책은  의식화교육의 입문서였었다.

철학공부의 입문서였던 <철학에세이>를 쓴 사람도 황광우와 함께 활동하던, 조성오라는 사실도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황광우와 함께 활동하던 이들이 쏟아낸 숱한 번역서를 읽고 공부하였던 이들이 이른바 '386세대'다.

황광우를 통해 만나는 우리시대의 '전사'들

오늘까지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수많은 팸플릿과 정세분석 문건으로 그와 만났으며, 이제는 그와 함께 빛나는 80년대를 살았던 '전사'들의 무용담을 들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는 황광우의 개인사 같은 책이다.

개인사의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있을 만큼 편안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읽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단순한 자서전이나 개인사는 아니다.

어두운 과거와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은이 특유의 '혁명적 낭만주의'가 스며있기 때문인지 패배보다는 작은 승리를 읽으면서 기뻐할 수 있었다.

버스 환기통을 이용해서 유인물을 뿌리는 장면에서, 혹은 수배 중 어렵사리 경찰 검거를 피해 나가는 장면에서 그리고 마침내 87년 6월 100만 민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군사독재정권의 항복을 받아내는 승리의 장면들을 읽는 '기쁨'이 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를 읽으며 우리는, 황광우를 통해서 혹은 황광우의 동지들을 통해서 혹은 그가 찾아낸 역사의 기록물들을 통해서 그 시절 전사들, 운동가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가 남긴 시 '전사'처럼 살았던 김남주, 저항의 구심 윤한봉, 그리고 박기순, 박관현, 윤상원, 강용주, 권인숙, 박종철, 전희식과 같은 이들이다. 그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고, 지금도 치열하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특히, 윤한봉이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면서 읽은 <다산시문선>에서 얻은 깨달음은 지금 읽어도 충격적이다.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어요. 정약용은 식량 증산을 강조하지요. 놀리는 땅 없이 작물을 심고 개간하고, 저수지나 연못 같은 곳도 놀리지 말고 뗏목을 만들어 콩을 심으라고 해요. 그분은 민중들을 위한 생산적인 사고를 한 겁니다." - 본문 중에서

지난 봄 나온 <희망세상> 5월호를 보면, 그는 지금 폐기종으로 호흡량이 정상인의 11%밖에 안 되는 탓에 하루 15시간씩 산소 호흡기를 끼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미 1978년 무렵부터 그는 동지는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사이여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딱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사는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 시대에 대한 '기억'

6·10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여 지역 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 중 일부를 맡았었다. '기록'이 '기억'을 이긴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 시절이었다. 기록은 곧 국가보안법상 범죄의 증거가 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20년 전의 지역 운동의 한 꼭지를 정리하는 데도 참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20년 전 활동가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시도했더니 불과 20년 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다. 기억하는 과거 중에는 이미 '역사'가 아니라 '서사'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아주 작은 기록물 하나만 발견되어도 그것이 사실을 정확히 기록으로 남기는데 아주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정도 기록을 정리하는 데는 읽는 이들은 알 수 없는 어마 어마한 수고와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책을 읽는 이들은 마치 지은이가 소주잔을 마주 놓고 자신의 무용담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내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글을 쓴 이는 여러 사람들의 실명을 담아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야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으리라.

지은이가 책 쓰기를 마치고 중풍으로 쓰러진 것도 어쩌면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감으로 가득 찬 시대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부담 없이 읽히는 소설처럼 써내려 가는데,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황광우의 탁월한 기억과 지인들의 증언 그리고 여기 저기 흩어진 자료를 모아 엮어진 이 책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사,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를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실감나는 문장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또 다른 큰 성과라고 생각된다. 탁월한 감각을 지닌 어떤 영화감독이 이 책을 읽는다면, 감동적인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가 쓴 이 책은 1970년대 어느 때부터 민중의 힘으로 '항복 선언'을 받아 낸 87년 6월 29일, 그날까지의 기록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전사' 황광우가 전하는 6월 항쟁의 의미는 이렇다.

"1987년 6월 항쟁은 1919년 3.1 만세운동과 맞먹는 거국적 국민 항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87년 6월은 우리가 꿈꾸는 혁명의 시절이었다. 우리는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책에서만 봤지 현실에서 본 적은 없었다. 6월 항쟁이 끝나고 나서야 이런 게 혁명적 상황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엄청났고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 본문 중에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날로 기록될 1987년 6월을 뜨겁게 살았던 지은이에게도 고민이 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의 서문을 보면, 1958년생인 지은이와 1985년생인 그의 아들 사이에 역사를 인식하는 간극이 얼마나 큰가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80년 광주항쟁과 87년 6월 항쟁을 온몸으로 살았던 아버지와 그 형제들, 이한열을 보내는 시청 앞 노제에서 아버지 어깨위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사이의 간극 말이다.

역사 속에서 호흡하는 실천가가 쓴 '역사'

마산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한 토론회에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로부터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과제는 하나는 세대를 잇는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87년 6월 항쟁 당시 네 살배기 꼬마였던 후배 활동가와 함께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그 후배는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며 "솔직히 모르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책은 1958년생인 지은이와 1985년생인 그의 아들 사이에 있는 역사인식 간극을 메울 뿐만 아니라 나와 후배 사이, 세대간 간극을 메우는 책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대간 간극을 메우는 첫 시도로 내가 읽은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를 후배에게 권해볼 생각이다. 20~30여 년 전 그날, 그 사람들에게로 확 빨려 들어가 불과 서너 시간 만에 읽었던 책을 네 살배기 꼬마였던 후배는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치열하게 한 생애를 살아 온 황광우는 책을 읽는 다음 세대의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다.

"독자들이 우리의 젊은 날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처럼 삶의 호흡을 느끼면서, 철학처럼 삶의 근본을 사유하는 뜻있는 기회를 만난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 본문 중에서

이 말에는 자신들의 젊은 날 이야기를 통해 세대간 간극을 메워보고자 하는 지은이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다. 그래도 다행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우리 손으로 역사를 기록할 수 있으니.

지은이의 말처럼 "역사가는 역사 밖에서 역사를 보지만 실천가는 역사 속에서 역사를 만진다." 마오쩌둥은 대장정을 함께 한 작가 에드거 스노우가 그들의 호흡과 냄새를 기록하여 주었고, 김산은 님 웨일즈를 통해 <아리랑>을 남겼다는 그의 지적은 옳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역사를 만지는 실천가의 눈과 가슴으로 씌어진 책이다. 소설 같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지만, 이 시대 실천가로서 역사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만나게 된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10점
황광우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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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밥 먹여준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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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3년을 보내는 동안 민주정부 10년의 역사가 물거품이 되는 듯하여 답답하고 불쾌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촛불도 들고 거리에도 나서보았고, 길바닥에 드러누워도 보았지만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되었고, 4대강은 모두 파헤쳐졌으며 민주주의를 거꾸로 후퇴시키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연말 불쾌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실의에 빠진 386세대들에게 희망의 메신저를 전하는 두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오연호 기자와 조국 교수입니다.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한 <진보집권플랜>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서는 가치를 정립하고, 그 가치를 실현할 세력을 형성하여 세상을 바꾸자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그런 책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면 이미 절반은 성공하였습니다. 직업 좋고, 글 잘 쓰고, 키 크고 잘 생긴데다가 진보적이기까지 한 조국 교수는 단숨에 '스타 강사'가 되었고, 진보, 개혁세력의 집권 플랜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으며, <진보집권플랜> 북 콘서트는 전국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두 남자가 먼저 시작한 진보집권의 꿈

제가 좋아하는 대안학교 교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아름다운 꿈꾸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자고 하는 노래입니다. 오연호와 조국, 두 남자가 꾸기 시작한 진보집권의 꿈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조국 교수는 진보집권의 꿈은 '진보가 밥 먹여주냐?'는 질문에 진보가 밥 먹여 줄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밥의 문제라 함은 우리가 먹고 자고 입는 문제, 즉 보육과 교육, 일자리, 주택, 건강문제입니다. 진보 개혁 진영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비전, 정책,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진보가 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구, 보수보다 더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건강보험 개혁을 통한 준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대중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의 위기는 진보, 개혁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진보적 상상력을 키우는 것을 자제하면서 스스로 희망의 불씨를 꺼버렸기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진단합니다. 진보적 개혁의제를 포기하면서 상상력마저 쪼그라들었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진보, 개혁 진영이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보이던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했듯이 과거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마음으로 '생활좌파'를 제도화하는 운동을 선도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시장임금을 넘어 사회임금으로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확 띈 단어는 바로 '사회임금'입니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는 임금이라고 하면 직장에서 일하고 받는 시장임금만을 생각했습니다. 결국 시장임금을 많이 받기 위해서 일을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임금=시장임금'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노동조합운동의 경우에도 가장 1차적인 활동은 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국 교수는 '사회임금'을 주장합니다.

"유럽에서는 국민의 70~80퍼센트가 큰 부담없이 평생 임대 주택에서 살 수 있어요.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은 희귀한 일이고, 대학등록금도 매우 낮아서 교육비 부담이 적죠. 그리고 무상의료 범위가 넓기 때문에 중병이 들었다고 해서 집안이 의료비로 거들 나는 일은 없어요. 이들 나라의 시민은 시장임금 외에 사회임금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사회임금을 말하는 학자나 정치인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아주 절묘하다고 생각됩니다. 준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무상급식, 무상교육 이런 것들이 모두 사회임금에 해당되는 것들이지요.

오세훈 서울시장 덕분에 6·2 지방선거 이후에도 '무상급식'이 계속 정치, 사회적 이슈로 주목 받고 있으니 사회임금을 높이자는 <진보집권플랜>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구에서 이런 사회임금을 확보하고 복지국가를 이루었을 때보다 지금 우리의 경제수준이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예산이 없어서 복지수준을 높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4대강과 같은 예산을 줄이고, 중산층과 서민의 부담은 조금만 늘려도 부자들의 세금부담을 늘리고 탈세를 막아 세수를 높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민주화운동권은 권력이 없을 때에도 대중이 공감하는 가치를 가지고 권력에 맞서서 승리하였던 경험이 있으니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알리고 참여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일자리와 관련한 집권 플랜 역시 신선합니다. 2000년 벨기에가 실시한 '로제타 플랜'이라는 것도 솔깃합니다. 민간기업의 3퍼센트 청년의무고용제라고 하는데, 공공기관과 공기업으로부터 시작해 민간기업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혼모 출신 대통령의 눈에 띄는 보육정책

눈에 확 띄는 사례는 미첼 바첼리트 칠레 대통령의 보육정책입니다. 미혼모 출신이 어떻게 대통령까지 되었는지도 참 궁금합니다만, 재임기간에 참 엄청난 일을 했더군요.

"2006년 집권 후 0~4세 아동에 대한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임기 중 하루 2.5개씩 총 3500개의 국립보육시설을 만들었어요. 칠레는 1인당 GDP가 약 1만 5000달러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보육문제만 해결된 것이 아니라 국공립 보육시설이 늘어나면서 고용창출이 되었고, 소비가 늘어나고 경기도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출산율까지 늘었다는 겁니다. 복지정책으로 동시에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더군요.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합니다. 조국 교수는 '사회임금'을 확대하는 것과 동시에 비정규직 철폐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쟁취하자고 제안합니다.

"한국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양과 질의 노동을 해도 임금이 반 토막 나거든요.......법철학적으로 보더라도 이는 정의의 원칙에 반하는 겁니다."

또 기업 정책에 있어서는 공정한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재벌의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등은 엄정한 법 집행만으로도 상당부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업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미국의 엔론 분식회계 사건에서 분식회계 규모는 우리 돈으로 1조 5000억 원에 달했는데, 이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징역 24년 4월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미국 법체계가 반기업적이고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걸까요?"

그가 전해주는 미국 엔론 사례는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준법경영과 사회책임경영을 강조하는 것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재벌의 편법 상속 역시, 재산과 기업지배권을 자녀에게 넘겨주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였습니다. 막연하게 재벌해체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불법경영이나 불법상속을 철저하게 막고, 세습경영을 인정하는 대신에 노동조합이 경영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 진보집권플랜 북콘서트


노조의 경영참가, 산업민주주의 정착시켜야

특히 노조의 경영참가를 통해 '산업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는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나아가서 기업의 경영권과 자본이 노동자에게 있는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거대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주택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통해 주택가격을 떨어뜨려야 할 뿐만 아니라 진보, 개혁 세력의 재개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합니다.

"원주민 대다수를 쫓아내고 고급 아파트를 세우는 방식의 재개발이 옳은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재개발해야 옳은가에 대해서 미리미리 고민하고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중의 욕망을 직시하면서 욕망을 부정하지 말고 공정, 평등, 연대 등 진보의 가치에 따라 내용과 방향을 재설정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진보, 개혁진영이 집권하면 개혁입법과 사회, 경제적 민주화라고 하는 이중전선을 만들어야 하고, 진보, 개혁진영이 집권하면 교육, 일자리, 의료가 좋아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교육개혁을 위한 조국 교수의 플랜은 학력차별금지법 제정, 지역균형선발제와 계층균형 선발제를 도입을 강조합니다. 아울러 서울대 분할, 지방대학 통폐합, 반값 등록금, 사교육 축소 및 공교육 확대를 주장합니다.

정연주 사장 시절 KBS가 신입사원을 뽑을 때 대학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였더니 여러 대학 출신이 골고루 뽑히더라는 겁니다. 학력차별금지법을 민간기업으로까지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반값등록금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1년에 대학생들이 납부하는 등록금 총액이 13조 원인데, 장학금 수혜자와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학생들에게 정부가 3~4조원의 예산을 지원하면 등록금을 절반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소득별로 등록금을 차등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사학재단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력차별 금지법, 반값 등록금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을 완화시키는 것은 공교육을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접근하자고 합니다. 공교육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교사 수를 대폭 늘려 사교육 종사자들을 흡수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질적으로는 결국은 대학을 안 나와도 일자리를 구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남북관계를 바로 보는 시각은 아주 명쾌합니다. 이명박 정부와 같이 북한을 고립화시키는 등 비현실적은 강경책은 북한 경제를 중국에 편입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남측 중소기업 입장에서 개성공단은 수지맞는 장사였으며, 햇볕 정책은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선투자라는 것입니다.

돈을 줘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북한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남한은 북한의 시장과 인력이 꼭 필요하도록 하자더군요.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자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대미외교, FTA와 국제 무역, 그리고 검찰 개혁 등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만 모두 소개하기는 어렵네요. 또한 진보, 개혁진영에 속해있는 여러 예비 후보들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기억하시다시피, 진보, 개혁세력에게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이루어내지 못한 것을 제대로 이루어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꿈이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였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이렇게 하면 정말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가장 깊이 새기고 싶은 한 구절 더 소개합니다.

"진보 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보적 가치만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진보집권플랜 - 10점
조국.오연호 지음/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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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터킨더 2011.02.08 08:46 address edit & del reply

    유럽이 복지사회를 이루었을 때보다
    지금 한국이 훨씬더 경제 수준이 높다는 말씀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왜 복지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건지..
    누구를 위해서...
    정말 이제는 보여줄 수 있는 진보가 되었으면.....

    • 이윤기 2011.02.10 09:2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우리나라도 충분히 부자인데...왜 자꾸 더 부자가 될때까지 미루자고 하는지... 답답합니다.

      오늘 한겨레 신문에 김규항씨가 칼럼을 썼더군요.
      진보집권플랜이 아니라 민주집권플랜, 개혁집권플랜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더군요.
      책을 읽으며 흥분되었던 마음을 가라 앉히고...좀 더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준 것 같습니다.

  2. 무시기 2011.02.08 09:00 address edit & del reply

    싸우지나 마라. 지들도 밥그릇 싸움하는 주제에...

    • 이윤기 2011.02.10 09:24 신고 address edit & del

      차원이 좀 다른 싸움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유쾌한 100만 민란, 나부터 '민주화'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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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100만 민란이 마산 어시장에 왔습니다. 지난 주말 오후 2시, 마산 어시장 옛 극동예식장 앞에 문성근 대표와 회원들이 거리에서 100만 민란에 참여할 동지를 모으는 자리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창원 정우상가에서 민란을 벌였을 때도, 경남도민일보에서 문성근 대표 초청강연회를 할 때도 거듭 다른 일정이 겹쳐서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장소가 마산 어시장이고 주말 오후라 시간을 내어 들렀습니다.

오전에 다른 행사에 참석했었는데, 12시쯤 마칠 줄 알았던 행사가 2시가 다 되어 끝나는 바람에 조금 늦게 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주차를 하려고 지나가면서 보니 길 건너편에 100만 민란이 시작되었고, 언론사에서 취재도 나와있더군요. 아마 문성근 대표가 직접 참여한 행사이기 때문에 뉴스가 되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이 훨씬 많으니 100만 민란을 약간 소개해봅니다. 유쾌한 민란 <국민의 명령>은 국민 100만 명이 모여 5개로 분열되어 있는 야당을 불러모아 전국에서 골고루 지지받는 민주적인 야권단일정당을 만들어내자는 시민운동입니다.



문성근 대표가 마산 어시장 한 짧은 연설에 국민의 명령100만 민란을 벌이는 이유가 모두 담겨 있더군요.


왜 이런 일을 벌이냐구요?

"어떻게 이렇게 서민의 삶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야당이 다섯 개로 분열되서 힘이 없기 때문에 견제를 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다섯 개로 분열된 야당을 불러모아서, 국민의 힘으로 하나로 묶어내야만 내년 2012년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에서 제대로 의미있는 승부를 펼쳐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산시민 여러분, 시민의 힘으로 이 나라 잘못된 정당구조를 바꿔내고 2012년 민주진보정부를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100만 민란 프로젝트, 왜 시작했냐구요?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해서 우리 이명박 대통령님 뽑아 들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게 서민의 삶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요. 부자들 5년 동안 90조 세금 깍아준 거 아시죠. 지난 달에 예산안 처리했습니다. 거기 보니까 노인예산 깍아내리고, 밥 굶는 애들 밥 좀 먹이자는 예산 깍아내리고, 장애인 예산 깍아내리고, 그래서 형님 예산, 마누라 예산, 4대강 예산으로 쏟아 붓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들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다 잘했다는 것 아닙니다. 잘못한 거 많습니다. 서민의 삶을 충분히 보살피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반성을 토대로 잘 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야당이 다섯 개로 분열되어 있는 한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저도 영화배우하면서 편안하게 잘 살 수 있고, 또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정권 3년을 보면서 이건 너무하다. 어쩌면 이렇게 서민을 무시할 수 있을까? 서민도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회,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노릇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다시 배우 생활 접고 2년 동안 거리에 나서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남북관계는 파탄았났으며, 민생은 더욱 고달파졌지만, 야당이 다섯 개로 분열된 이대로는 2012년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섯 개로 분열된 야당이 하나로 묶어져야 국민을 무시하는 한나라당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다섯 개로 분열된 야당이 힘을 합치지 않으니, 국민들이 나서서 민란을 일으켜 야당을 하나로 만들자는 주장인 것입니다. 민주, 진보진영이 모든 정당 기득권을 털고 야권 단일 정당을 만들어서 2012년에 민주, 진보정부를 수집하자는 것이지요.



100만명 모이면 뭐가 달라지나?

서약자가 5만 명을 넘으면 매주 토요일 저녁에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 당사 앞에서 합류를 호소하는 촛불시위를 벌이겠다고 합니다. 서약자가 100만 명에 도달했는데도 이를 무시할 정파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국민의 힘으로 흩어진 야당을 불러모아 단일 정당을 만들어내자는 시민운동이라고 합니다. 


어젯밤에 홈페이지를 방문하였을 때 확인해보니 6만 2666명이 참여하였더군요. 지난 토요일 마산에서는 15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일요일 울산에서는 5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고 합니다. 울산에서 참여한 회원 숫자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사무국에서 세운 목표는 달성하였다고 하네요.

마산 어시장에서 유명한 영화배우인 문성근 대표가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듯 하여 마음이 무거웠는데, 사무국에서 세운 목표 인원을 달성하였다고 하니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됩니다.

시민들의 호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문성근 대표가 길을 건너 어시장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니는 곳으로 가서 시민들을 만나서 100만 민란을 설명하고 회원가입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냥 지나치는 시민들이 많았지만, 관심을 있게 살펴보고 회원으로 가입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문성근 대표가 시민들을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민들의 마음이 이 정부에서 돌아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노점상 하시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문성근 대표의 설명을 듣고는 선뜻 회원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시더군요.

 

최근, 오키나와를 다녀오면서 다시 읽은 더글러스 러미스가 쓴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국가의 폭력(전쟁)이나 환경문제 등 21세기는 그러한 정치활동에 참가하는 것이 당연시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그래서 참가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민사회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자기자신이 변하는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다섯 개로 흩어진 야당을 불러모아 하나로 묶어내는 100만 민란에 참여하는 일은 자기 자신이 변하는 '민주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이 변하는 민주화, 참가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민사회, 바로 깨어있는 시민이 되는 일이겠지요. 자기 자신의 민주화가 시민사회를 만드는 토대라고 생각됩니다.

유쾌한 100만 민란 홈페이지 (http://www.powertothepeople.kr
 


▲문성근 대표와 찍은 사진이 다음 메인에 떴네요. ㅋㅋ

문성근 대표가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 야 문성근 너 영화배우라고 하는데, 같이 사진 한 장 찍자하는 분들 계시면, 네 이 쪽으로 오셔서 같이 사진 찍으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른 달려와서 사진을 찍자는 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문 대표를 쳐다보며 망설이는 동안 제가 먼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유쾌한 민란이 성공하면 이 나라 민주주의가 또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유쾌한 민란이 성공한 시민혁명으로 꼭 기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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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터킨더 2011.01.24 09:58 address edit & del reply

    유쾌한 민란도 중요하긴 한데...
    근데 이윤기님 수염은 어디로 갔나요?
    완전 딴사람이....ㅎㅎㅎ

    • 이윤기 2011.01.25 18:25 address edit & del

      수염은 몇 달만 기르다가 깎았습니다.

      블로그 대문 사진으로 여러 날 걸어 둔 탓에 여전히 수염이 있는 줄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답니다.

      지난번 마산에서 무터킨더님 뵈었을 때도 수염이 없었답니다. ㅋㅋㅋ

  2. 저녁노을 2011.01.24 10:49 address edit & del reply

    유쾌한 반란이길 정말..바래봅니다.ㅎㅎ
    잘 보고가요.

    즐거운 한 주 되세요

    • 이윤기 2011.01.25 18:25 address edit & del

      내년에는 서민들이 살기 좋은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3. 구르다 2011.01.24 14:23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 확실히 제 입은 보살입니다.
    국민의 명령 홈에도 메인등극 소식을 알렸습니다,
    근데 사람들이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 이윤기 2011.01.25 18:24 address edit & del

      100만 민란에 아주 쬐끔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ㅋㅋ

      제가 싫어하는 그분이 마음을 바꾸는 그런 날도 한 번 빌어보시지요?

  4. 김영대 2011.01.30 13:32 address edit & del reply

    문성근얼굴만봐도ㅈ.ㅅ없다.....이윤기씨글잘보구있구요.근데이번글은안쓰셨으면좋았겠네요

    • 이윤기 2011.01.31 08:47 신고 address edit & del

      제 글 잘 봐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이 부분은 저와 생각이 다르신가봅니다.

뇌물, 주는자만 느끼는 쾌감이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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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조정래 장편소설 <허수아비춤>
모든 권력은 금고에서 나온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이 쓴 신간 <허수아비춤>이 출간되었습니다. 대학시절 태백산맥을 처음 읽으며 받은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태백산맥>을 읽은 후 지리산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산으로 기억되었고, 마지막 10권을 손에 들었을 때는 책을 다 읽어버리는 것이 아까워 여러 날 아껴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민운동을 함께하는 동료들과 중국의 독립운동 유적지와 백두산을 거쳐 러시아를 여행 할 때는 <아리랑> 전편을 읽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역사와 아직도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동포들의 삶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조정래 선생이 쓴 <아리랑>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은 북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여행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여행안내서'의 역할을 해주었지요. 아리랑은 모두 12권이나 되는 장편인데, 4명이 각 3권씩을 준비해서 여행하는 동안 나누어 읽고, 연해주에 있는 재외동포들이 모이는 '도서관'에 기증하였습니다.

<허수아비춤>은 조정래 선생이 3년 만에 발표한 신작이라고 합니다. 10여년 전 발표한 <한강>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허수아비춤은 한강 이후 10년간 품어온 경제민주화의 청사진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허수아비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사회의, 우리의 자화상을 똑바로 한 번 보자고 합니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 모습이 추하든 아름답든 그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 자화상을 똑바로 보길 게을리 할수록, 회피할수록 우리의 비극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이 시점에서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설 한 권으로 경제민주화를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경제민주화가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길로도 이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정치적 민주화를 완성하려면, 경제 민주화 이루어야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동안 부자들의 부도덕한 비리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경제민주화'에 대한 희망마저 내려놓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소설 <허수아비춤>은 일류를 다투는 재벌 기업 '일광'이 세상관리 조직을 만들고,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만들고 편법, 불법 상속을 처리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펼쳐 보이는 소설입니다. 일광그룹 남회장이 소유한 돈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치는 주인공 강기준과 박재우, 윤실장은 모두 돈을 하느님처럼 떠받드는 자들 입니다.

"돈은 살아있는 신이다, 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전지전능한 힘이 여기 어디든 안 통하는 곳이 없다 그거 아니가?"

"그렇습니다. 그 어떤 조직, 그 누구한테든 통하고, 먹히고, 효과가 납니다. 그건 돈이 생겨난 이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이 인간을 지배해 온 인간의 역사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돈 만큼 정직한 것도 없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지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그들은 권력은 금고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 세 사람이 일광그룹 남회장을 위하여 첫 번째로 만드는 '세상관리' 조직 작업은 바로 대학에 건물을 지어주는 일입니다. 대학에 기부하는 것을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남 회장에게 세상물정을  이렇게 알려줍니다.

대학을 관리하기 위하여 돈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학캠퍼스마다 건물을 지어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30억짜리 건물하나만 지어주면 대학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것보다 어 오랫동안 그리고 더 확실하게 기업의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대학, 연구비 지원보다 건물 하나씩 지어주는 것이 확실

재벌기업의 이름이 붙은 건물을 지어주고 이미지를 개선하고 사회 환원을 명분으로 세금감면도 받을 수 있으니 조금도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이것도 모자라 현실에는 재벌기업이 사립대학을 소유하여 소설보다 더 기막힌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뼛속까지 돈독이 오른 부자들은 재벌의 부도덕을 비판하고, 사회 환원과 사회적 책임과 같은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허수아비춤>의 일광그룹 남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운동선수가 신기록을 많이 세우면 박수를 쳐대고 상을 주고 하면서 왜 사업가가 돈을 많이 벌면 그렇게 생트집을 잡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 그건 적을 많이 무찔러 대승을 거둔 장군을 보고 흉악한 살인자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운동선수의 신기록과 다르게 사업가가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돌아갈  몫을 차지한 결과라는 것을 조금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많이 벌어도 세금은 적게 낼수록 좋다는 생각과도 다르지 않지요.

히틀러의 광기에 빠져있을 때 독일 사람들은 그를 대승을 거둔 '총통'이라고 추앙하였지만, 광기에서 벗어났을 때는 그와 그의 장군들이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흉악한 살인자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아무튼, 소설은 부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사회 환원이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신에 '세상관리'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정보기관의 고위직 공무원, 출세욕에 불타는 검사에서부터 권력의 요직에 있는 중하위직 공무원 그리고 언론, 방송사의 기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재벌 기업의 이런 '세상관리'가 더 이상 비밀스러운 일도 아닌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무슨 일이 생길 때 잘 봐 달라고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세상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지요.

뇌물 주는 자가 느끼는 야릇한 쾌감과 지배감

그래서 소설 <허수아비춤>을 보고 있으면 여러 재벌그룹과 재벌그룹의 총수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설의 탁월함은 이미 백일하에 드러난 재벌그룹의 '세상관리'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꾸미고 진행하는 자들(허수아비)이 가진 '생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각 기관의 최고위층을 알현하면서 스스로의 위세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건 받는 자가 느끼는 황홀한 존재감과는 또 다른, 주는 자가 느끼는 야릇한 쾌감이고 지배감이었다. 주는 자가 느끼는 감정은 겉으로 굽실굽실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들은 겉으로 굽실거리는 것만큼 속으로는 상대방을 휘어잡거나 손아귀에 넣었다고 자족감에 흡족해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돈을 이용해 권력을 누리고, 돈을 이용해 권력을 지배하는 지배감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남성이라는 동물들이 이런 지배감의 황홀한 맛에 빠지면 해어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누릴 수 없는 '극치감'을 경험한다는 것이지요.

<허수아비춤>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런 일을 꾸미고 실행하는 자들입니다. 바로 허수아비들이지요. 1조원의 비자금을 만들고 2천 명의 '세상관리' 조직을 구성한 댓가로 그들은 각각 50억, 40억, 30억을 스톡옵션으로 받아 '골든패밀리'의 삶을 실현해갑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눈여겨 보아온 독자들에게는 <허수아비춤>이 다루고 있는 황당하고 기막힌 이야기들이 전혀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그런 재벌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권이 저지르는 만행과 겹쳐보면 소설보다 현실이 더 암담한 것 같기도 합니다.

작가는 소설보다 암담한 현실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88만원 세대들에게, 386, 486세대들에게 작가는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가난한 난치병환자를 돕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전화 한 통화에 천 원이나 2천 원이 모아지는 ARS 모금으로 매 회마다 1억 원을 훌쩍 넘어 2억에 이른다. 그런데 그 여러 모금의 중심 세력은 부자들이 아니라 일반 서민인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를 가진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에는 5만여 개에 이르는 시민단체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 많은 시민단체들은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모든 권력 기관들을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고 감독한다."

시민단체,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디딤돌 될 수 있을까?

작가는 현재 2만 여개의 시민단체를 5만 여개로 늘여나가고 국민들이 낸 회비로 꾸려가는 시민단체가 활약하면서 민주주의의 숲을 이루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민단체들의 활성화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유일한 길이요. 희망이다."

손 발이 오그라드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참으로 무거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시민단체의 언저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 이 난공불락의 자본주의를 바꿀 수 있을까하는 확신에서 멀어질 때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작가가 보여주는 '희망의 숲'을 가꾸는 일이 답답할 만큼 더디고 느리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추는 춤이 고작해야 '허수아비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약자들의 고단한 삶은 여전히 힘겹습니다. 희망은 왜 이리 느리게 다가오는 것일까요? 

허수아비춤 - 10점
조정래 지음/문학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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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0.11.16 09:16 address edit & del reply

    리뷰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이윤기 2010.11.17 08:49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책 재미있고 의미도 있습니다.
      언제 한 번 읽어보세요.

  2. 샹그릴라 2010.11.16 17:12 address edit & del reply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요즘 제 화두인데, 이것만으로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이윤기 2010.11.17 08:51 신고 address edit & del

      조정래 선생은 경제민주화라는 대중적 언어 속에 많은 의미를 담아둔 것 같습니다.

  3. 엉클 덕 2010.11.17 03:22 address edit & del reply

    희망은 느슨하게 오지만, 언젠가 확실하게 오리라 믿구 싶습니다.

    • 이윤기 2010.11.17 08:51 신고 address edit & del

      네...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4. 도란도란 2010.11.18 18:47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이윤기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윤기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덧글남기고가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1960년3월15일 난 마산시 평화동 4-2번지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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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50주년, 특집 드라마 '누나의 3월', 4월 18일(일) 밤 10시 45분 방송 !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2010/04/07-1960년 마산, 그곳엔 '누나'와 악질 손현주가 있었다.
블로그 2010/04/16 - [세상읽기] - 이승만 독재정권 무너뜨린 1960년 마산

가끔 인터넷을 통해서 놀라운 만남이 이루어지곤합니다. 

315 50주년 특집 드라마 '누나의 3월'을 보고 드라마를 소개하는 리뷰 기사를 오마이뉴스와 제 블로그에 포스팅하였습니다. 아래 두 기사는 제목만 다를 뿐 같은 기사입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에 놀랍고 반가운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유목민'님은 놀랍게도 1960년 3월 15일 마산시 평화동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래는 오마이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의 전문입니다.



1960.3.15일 나는 마산시 평화동 4-2번지에 살고 있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할 수 없지만 경찰서가 불타고
김주열학생의 사진이 신문에 나고
분노한 시민들 그날의 함성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거기서 나라의 주인이 바로 시민임을
민주주의의 어떤 것인가를 배웠다.
그래서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4.19혁명이 일어났고
그래서 나는 마산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리고 79년에도 또다시 부마항쟁으로 그 영광을 되찾았으나
그 이후는 지역이기주의에 갇혀 부끄러운 역사는 이어지고
그러나 부디 그 민주주의의 첫사랑 첫감격
그 처녀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길 빌어본다.
민주주의는 밥 먹듯이 하는 것이지 잠시 했다가
그만 두는 것이 아니기에 일회적인 것이 아니기에
2010년에도 그런 기백과 정신 되살아나기를
그래서 올곧은 역사의 길을 걸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은 1960년도 초반 마산 315의거탑앞에서
어머니 누이와 나와 동생 그리고 우리집 가정교사(연대화공과학생)




그는 마산 사람들이 "지역이기주의에 갇혀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315 당시 "그 민주주의의 첫사랑 첫감격 그 처녀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길" 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잠시 했다가 마는 그런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밥 먹듯이 하는 것"이라는 말도 긴 여운으로 마음에 새겨집니다.

가족이 315탑 앞에서 함께 찍은 오래된 흑백 사진도 반갑습니다.

아마 315탑이 세워지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찍은 사진인듯 합니다.

귀한 사진과 사연을 선물로 받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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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독재정권 무너뜨린 1960년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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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50주년, 특집 드라마 '누나의 3월', 4월 18일 밤 10시 45분 방송 !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올해는 1960년 마산 시민들이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떨쳐 일어났던 '3·15의거'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3·15의거가 5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뜻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3·15의거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마산MBC에서는 2년여의 작업 끝에 마산 3·15의거를 직접 조명한 특집 드라마 <누나의 3월>을 제작했습니다. 마산MBC는 이 드라마를 지난 3월 26일 오후 9시 55분부터 140분간 마산을 비롯한 경남 지역 일원에서 2부작으로 연속 방영했습니다.

▲ 3.15 부정선거에 맞선 학생들의 시위 장면


한편, 지역 방송에 앞서 3월 10일에는 국회 시사회가 열렸고, 25일에는 마산MBC 홀에서 3·15의거 기념사업회 회원들과 유가족, 그리고 언론사 기자들과 블로거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3월 25일 마산MBC홀에서 개최된 지역 시사회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누나의 3월>을 관람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는 알지만 3·15는 잘 모릅니다. 어쩌면 3·15는 한반도 남쪽 자그마한 도시에서 일어났고, 4·19는 명문대학생들이 주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일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학생운동에 참가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저는 3·15의거를 자랑스런 민주화운동의 역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혈기 왕성하던 대학시절엔 학교 안팎에서 민주화 시위가 있을 때마다 '3·15의거'와 '10·18 부마민주항쟁'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 3월, 이승만 독재정권 무너뜨린 '마산'



사람들은 '3·15의거'하면 가장 먼저 이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시신으로 떠 오른 김주열 열사를 떠올립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3·15 역시 부정선거에 맞선 시위, 그리고 시위 도중 행방불명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가 시작되었다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드라마 <누나의 3월>의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김주열 열사'가 아닙니다.

<누나의 3월>은 소녀가장인 다방 종업원 허양미(가상인물)가 3·15의거에 참여한 동생 양철과 그 친구들, 그리고 실제 인물인 민주당원 이한수, 구두닦이 오성원,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 등을 만나면서 권력에 굴종하던 삶을 버리고 불의와 독재에 당당하게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깨닫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동생이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가로막던 누나가 시위 도중 경찰에 체포된 동생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일제 시대 친일 형사로 악명이 높았던 박종표(아라이 겐베이)에게 몸을 빼앗기는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약하고 무기력해 보이던 주인공 '누나'가 구두닦이 오성원과 그 친구들, 연인이자 민주당원 이한수 그리고 행방불명된 아들을 찾아나선 김주열 열사 어머니 권찬주 여사의 당당한 모습을 본 뒤, 부패한 권력·불의와 맞서 싸우는 삶을 선택하는 과정을 가슴 뭉클하게 보여줍니다.


누나의 3월은 1960년 3월 15일부터 4·19일까지, 실제 3·15의거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영상을 통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대학시절 이후 지금까지 늘 3·15와 10·18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마산에서 살아온 제가 사실은 '3·15의거'의 실상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는 시작되고 난 후 단 몇 분 만에 마치 타임머신을 태운 듯이 관객 모두를 1960년 3월 15일, 그 역사의 현장으로 이동시켰습니다. 함께 시사회에 참여하였던 블로거 '파비'는 "카메라가 스르르 돌아가면서 비치는 마산극장, 시가지, 구두닦이들을 보면서 반가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했습니다.

관련기사 - 누나의 3월 영화보다 재밌는 드라마 (파비의 하이테레비)

블로그 '파비의 하이테레비'를 운영하는 파비는 드라마 본 이야기를 자주 포스팅 하는 파워블로그입니다. 그는 아울러 자신이 경상도 사람이면서 늘 듣는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정겨운" 탓에 (드라마를 보면서)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감동적인 영상과 재미 덕분에 2시간 20분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정상급 배우들이 출연하여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보다 훨씬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며 "영화보다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평가했습니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드라마' <누나의 3월>

블로거 파비는 <누나의 3월>에서 가장 큰 불만은, 연기력 뛰어난 배우 손현주가 일제시대 부산에서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친일 형사이자, 3·15 당시 발포를 명령한 악질 형사 박종표 역을 맡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종표(아라이 겐베이)로 분한 배우 손현주가 너무 멋있게 나온 것이 불만이라고 하더군요.

시사회에 함께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비교했습니다. "제작비 7억 원으로 만든 드라마지만 영화 <화려한 휴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후한 평가가 많았습니다.

아울러 이미 3·15에 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시사회 참석자들이지만 "1960년 3월에 마산에서 저런 굉장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화면으로 생생하게 재연한 것을 보면서 가슴 뜨거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누나의 3월>은 다큐 같은 드라마입니다. 물론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사실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1960년 3월 15일부터 4월 11일까지 마산에서 일어난 역사의 현장을 사실감 있게 다루기 위하여 노력한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은 마치 압축된 다큐멘터리처럼 3·15 의거에 참여했던 민주 열사들과 반동의 삶을 살았던 부패한 경찰, 관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저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누나의 3월> 주인공 '허양미'와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 '권찬주'(오지혜 분) 여사입니다. "짖지 않는 개는 아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는 대사와 자식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권력의 하수인들에게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 마산MBC



"짖지 않는 개는 아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아울러 "세상은 우리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 맞춰 살아야 한다"던 누나 허양미가 '가마떼기' 취급을 거부하고 부정부패한 권력에 당차게 맞서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 3·15의거가 일어났던 마산은 1979년 10·18부마항쟁 그리고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던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야당 도시로 명성을 이어왔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은 보수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되는 지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사회에 함께 참여했던 블로거 '달그리메'는 자신의 블로그에 "학생들이 3·15의거의 주역처럼은 아니지만 선거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더군요.

인권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MB 정권을 심판하기 위한 6·2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어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의미있는 드라마입니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이끌던 여리고 당찬 여학생(마산제일여고 총학생회장 노원자)의 모습과 거리에 넘쳐나는 학생 시위대의 흐릿한 흑백 화면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50년 만에 3·15의거를 재조명하는 <누나의 3월>은 4월 18일(일) 밤 10시 45분부터 80분간 MBC를 통해 전국에 방송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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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세요 2010.06.15 19:01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무엇입니까? 현재 선배들이 피땀흘려 만든 헌법에는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정당하게 투표하여 권리를 이양하는 것이지요. 근본적인 것은 결코 넘겨줄 수 없지만, 국민의 의사권의 대부분을 '대리'할 수 있습니다. 현재 MB정권이 어째서 타도해야 할 대상입니까? 저를 비롯한 투표자 과반수 이상이 뽑은 사람이 어째서 심판해야 할 대상이지요? 뭔가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습니까? 뇌물수수혐의로 조사받다가 자살한 전 대통령처럼 위법한 일을 하기라도 했는지요

  2. 그러세요 2010.06.15 19:02 address edit & del reply

    자신과 뜻이 다르면 타도해야 하는 대상인가요? 당신이 만들려고 하는 공동체는 볼만하겠네요. 모두가 투표해서 만들어놓은 지도자가 의사권을 대리해서 정책을 펼치려고 하면, 거기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심판하자' '타도하자' '독재정권이다' 라고 고함칠 당신네 추종자들의 세상은, 매우 재미있겠네요.

30년 전 청년Y 운동 선배들이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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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열흘쯤 전 20년, 30년 전에 YMCA에서 청년 운동을 하였던 선배들과 옛 실무자들이 오랜 만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마산YMCA에는 1975년 원 클럽을 창립을 시작으로 80년대 로댕클럽, 레크레이션클럽, 요델클럽, 메아리클럽, 산바래클럽이 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날 청년Y 선배회원들의 모임에는 20여 년 동안 실무자로 일한 제가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1988년부터 YMCA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대부분 회원들이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 YMCA에서 청년운동을 하였던 분들이었습니다.



차례로 돌아가며 인사를 하는데 어느 분이 젊은 그 시절을 회상하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월요일에는 원클럽, 화요일에는 레크레이션클럽, 수요일에는 로댕클럽, 목요일에는 요델클럽, 금요일에는 메아리클럽 이렇게 모임에 참여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는 연습하러 모이고 그러다보니 일주일 내내 YMCA에서 보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제가 정확히 메모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순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고 말 입니다.

활동이 왕성할 당시에는 청년 클럽 회원들이 200여명이 훨씬 넘었다고 하더군요. 청년Y 시연맹 모임이나 전국 연맹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였다고 하더군요. 2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었고, 회원들끼리 사랑을 키워가다 가정을 이룬 여럿 계시다고 하더군요.

가끔씩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이렇게 YMCA 회관에서 선배 회원들이 공식적으로 만난 것은 지난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청년 활동을 할 때 가까이 지냈던 분들과 만나는 계모임은 여러 개가 있지만, 다른 클럽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절 동지들과 한자리에서 함께 만날 기회는 없었다고 합니다.

YMCA를 통해 정열적이고 치열한 청년 시절을 보낸 선배들은 노동조합운동의 지도자로 나서기도 하였고, 고향으로 돌아가 생태농업의 기반을 닦은 분도 있었으며, 대부분 건강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옛날 함께 부르던 ‘건전가요’도 부르고 ‘요들 송’도 듣고 긴 시간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옛날 그 시절 참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다 싶었던 실무자들도 오랜 만에 만나보니 친구 같고, 하늘처럼 느껴지던 선배들도 함께 늙어가는 동무처럼 느껴진다고 하시더군요.

어려웠던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회원들도 얇은 월급 봉투로 힘 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실무자들도 참 박봉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YMCA는 자체 회관이 없어서 2~4년 마다 한 번씩 이사를 다녀야했었답니다. 회원들은 회관 이사 할 때마다 집기를 나르고 칸막이 공사, 페인트 공사도  실무자들과 함께 했었다고 합니다.

선, 후배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날은 각자 어느 곳에 회관이 있을 때 활동하였는지 확인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저희는 산호동, 양덕동에 있을 때 활동했습니다." 가족 후배들 축에 속하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서성동, 자산동에 회관이 있을 때 활동했었지." 이 분들은 나이 든 선배분들 입니다. 실제로 YMCA는 현재의 회관을 마련하기 전까지 여러 임대 회관을 옮겨다녔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20여년 만의 모임을 자축하는 두 분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대금 연주를 해주셨고, 다른 한 분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불러 온 '요들송'을 불러주셨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시면 두 분의 공연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서너 시간 이야기꽃을 피운 후에 앞으로 정기적으로 함께 만나서 좀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함께 해보자는 의논을 하였습니다. 각 클럽 마다 2명씩 준비위원을 선출하여 내년에는 YMCA를 통해 공식적인 활동을 한 번 해보자는 결의를 모았습니다.

모임이 끝나 갈 즈음, 누눈가가 그 때, 그 시절에 비장한 마음으로 부르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보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색하게 오른 팔을 흔들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난 20년 이 노래를 잊고 살았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들은 삶의 현장에서 지난 20년 동안 변함없이 이 노래를 부르고 살았다고 하시더군요. 젊은 시절 YMCA 운동을 경험하면서 처음으로 세상과 사회에 대하여 눈 뜨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분들이 20년 만에 다시 모인다고 합니다. 어쩌면 내년 봄에는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서 YMCA 운동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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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공천제 폐지?, 무슨 말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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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가 일하는 단체 회원들과 정당공천제 폐지 서명을 받으러 거리로 나갔습니다. 오후 5시부터 마산 창동 사거리에 나가서 길을 가는 시민들에게 '정당공천제 폐지' 서명을 받았습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날이라 평소보다 시내에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였습니다.

▲ 창동 사거리에서 정당공천 폐지 거리 서명을 받았습니다.


서명을 받을 수 있는 가판대를 설치해놓고 나니...금새 난감해졌습니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서명 좀 하고 가세요."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서명입니다. 서명 좀 해주세요"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는데, 선뜻 참여하시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아뿔사, 사람들에게 '정당공천제 폐지'라는 말이 생소하였던 것 입니다.

정당공천폐지? 무슨 말인지 몰라?

서명에 참여 하시는 분들도 정당공천제 폐지'가 뭘 하자는 것인지 뭘 하자는 것인지 단 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다행히, 어제는 거리 캠페인과 서명운동을 하면서 '풍선'을 준비해갔습니다. 풍선 덕분에 '정당공천제 폐지'를 잘 모르는 시민들의 눈길도 끌 수 있었고, 비교적 많은 분들이 서명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아무튼, 거리에 나가 시민들을 직접 만나보니 더 쉽고...더 명료한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캠페인에 참가한 회원들과 의논하여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서명에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하여 설명하는 방식으로 말 입니다. 서명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90% 이상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더군요.

"안녕하세요. 정당공천제 폐지 무슨 말인지 아세요"

.... (대부분 묵묵부답)... 혹은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젓는다)

"지금은 정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기 때문에 정당공천을 없애고 시민들이 직접 사람을 보고 투표하도록 바꾸자는 겁니다."

"아~ 예, 그래야지요?"


대부분 대화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위의 설명이 딱 들어맞는 설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민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려다보니 그 정도 밖에 안 되더군요. 결국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더 쉽고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많은 시민들이 저희 회원들의 설명을 듣고 정당공천제 폐지에 공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어제는 저희가 준비해 간 캠페인용 풍선 덕분에 젊은이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이 참여해주셨습니다.

▲ 아이들과 청소년들, 젊은이들에게 풍선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2009/03/25 - [블로그 뉴스] - 정당공천제 폐지 1천 만명 서명운동 시작 !
2009/03/28 - [블로그 뉴스/사소한 칼럼] - 한나라당 목엔 누가 방울을 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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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카르도 2009.05.08 22:23 address edit & del reply

    제가 사는곳에도 왔더군요. 근데 서명 좀 해주세요 라며 길을 막아서는게..
    과연 저 사람들이 무슨생각 하고 서명을 받는건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 이윤기 2009.05.09 13:46 신고 address edit & del

      네,막각한 공천권을 휘두르는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왜곡되는 현실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생각하는 당위에 비하여 일반 국민들에게 취지를 설명한는데...어려움이 많습니다. 일단 정당공천제가 뭔지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요...

  2. 현추리 2009.07.02 10:33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마포공동체라디오에서 일하는 현추리라고 합니다.
    정당공천제에 대한 글 잘 보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도의 변화와 함께 지역의 뿌리깊은 후견주의도 같이 타파되면 좋겠습니다.
    갈길이 멀겠지만 제도와 인식이 함께 변해야 뭘 할 수 있겠지요.

    • 이윤기 2009.07.02 14:10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도 마포공동체라디오의 명성을 익히 듣고 있습니다. 현추리님 반갑습니다.

      정당공천제폐지 문제가 그 당위성에 비하여... 정치권의 이슈로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디어법, 4대강정비 사업, 비정규직법 등에 파묻히고 있는 느낌입니다.

  3. 민수련 2010.02.09 11:24 address edit & del reply

    차떼기당 한나라당이 싫으십니까?
    그렇다고 지역분할에 의지하여 연명하는 민주당도 마음에 안드십니까?
    부패비리정당, 보스패거리정당, 공천장사정당, 지역할거정당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먹이사슬의 출발점인 지자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정치권에게 지자체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합니다.
    그들이 그들만의 철밥통을 놓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시민의 행동만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고 민주정당, 민주사회를 실현시킬 수 있
    습니다.


    정당공천제 폐지 입법청원 서명하기
    http://www.gobada.co.kr/bbs/sign/sign.php?sa_id=2


    언론특별법 입법청원 서명
    http://www.gobada.co.kr/bbs/sign/sign.php?sa_id=3


    국회의원/행정수반 국민소환제 입법청원 서명
    http://www.gobada.co.kr/bbs/sign/sign.php?sa_id=1


    종교법인법 입법청원 서명
    http://www.gobada.co.kr/bbs/sign/sign.php?sa_id=4



    많이 많이 서명에 참여해 주시고 홍보해 주세요^^

  4. 박종화 2018.01.31 06:39 address edit & del reply

    대구시장, 구청장,경북도지사,군수가 정말로 되고 싶다면
    2018년 4월 18일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제2차 한국전쟁, 제3차 세계대전(핵전쟁)부터 막야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쟁이 일어난다면 지방선거는 당연히 순연될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

    제가 가진 재능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대구시민(주민)공천제 통해 지방선거 혁명을 이루고
    국민주권시대를 함께 창조해 봅시다.

    출처 : 민족정신광.. | http://blog.naver.com/magosungpark/221182189153

한나라당 목엔 누가 방울을 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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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당민주화에 역행하는 일이 아니다!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한편에서는 '정당민주화'가 근본 해법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정당공천제 폐지 1천 만명 서명운동 시작 !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1천 만 명 서명운동(http://noparty.or.kr/xe/)' 참여를 알리는 글을 쓴 후 적지 않은 반대의견에 부딪쳤는데, 핵심은 정당공천제 폐지가 본질이 아니라 '정당민주화'가 본질이라는 반론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정당민주화'가 본질인데, '정당공천제 폐지'라는 헛다리짚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서명운동 참가자들이 남긴 한 마디 ⓒ 국민운동본부


물론,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이나, 정당민주화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분들이나 현재의 지방선거 공천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선출해준 지역주민보다 공천을 준 특정 정당, 특히 현실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충성하는 정치 현실, 지방 선거의 중앙정치에 대한 종속과 공천을 위한 줄서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정당공천 폐지는 헛다리 짚는 운동인가?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지난 2006년 5.31지방선거 당시 공천비리가 급증하였습니다. 법무부가 선거법 개정을 언급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여, 공천비리 문제로 한나라당 80명, 민주당과 무소속이 각각 19명씩 처벌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정당공천제 폐해의 원인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당 운영 구조의 문제에 있습니다. 국회의원에 의해 좌우되는 지역구 운영, 중앙당의 공천권 행사, 하향식 공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정당공천제의 폐해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당 공천제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정치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는 국민들의 심각한 정치 불신 그리고 국민들의 정당 활동 참여가 낮은 정치문화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정당의 뿌리가 튼튼해지고, 당원이 투표권을 행사하고, 주민이 직접 당비를 내고 참여하고 감시하는" 정당 민주화는 어떻게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이것은 학교 교육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거나 국민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간당원제'를 도입했던 열린우리당의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정당 구조의 비민주성과 뿌리 깊은 정치 불신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물론, 정당공천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입장이 다르다고 봅니다. 다수는 아니지만 확실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고, 이미 당원이 후보자를 뽑는 상향식 공천이 정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을 아래로부터, 뿌리로부터 민주화시키는 일은 누가해야 하나요? 한나라당 당원들이 상향식 공천을 요구하며 정당민주화를 위해 들고 일어날 때까지, 민주당 당원들이 당비를 납부하고 권리를 찾는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할까요? 적지 않은 기득권을 함께 나누어 가진 현재의 보수정당 당원들이 과연 '정당 민주화'를 위해서 떨쳐 일어나기는 할까요?

한나라당 목에는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아니면,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민주정당'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하여 당적을 옮겨 보수 정당을 '민주화'시켜야 할까요?

그도 저도 아니면, 시민사회운동 세력들이 대거 한나라당, 민주당을 비롯한 보수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하여 '정당 민주화 운동'을 해야 할까요? 만약 시민사회운동 세력들이 보수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하면, 기존 정당을 '민주화'시키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요?

저는 어느 쪽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 민주당을 비롯한 보수정당의 당원들이 정당민주화를 위해 떨쳐 일어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정당공천제 폐지 반대 입장이 분명한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나서서 보수정당을 민주화 시킬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민사회운동 세력 역시 지극히 선언적인 활동을 제외하고, 특정 정당에 가입하여 '정당 민주화'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활동을 해낼 수도 없습니다. 왜 못하느냐고 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 역시 쉽게 바뀔 수 없는 우리 정치풍토입니다.

따라서, '정당민주화'를 위한 당면한 최선의 선택은 딱 한 가지입니다. 바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입니다. 당원이 당비를 내고 정당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상향식 공천을 요구하는 정당 민주화의 단초를 마련하기까지는 기초지방선거만이라도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통하여 지역정치에 대한 지역주민의 참여와 관심을 높이고, 중앙당의 중심의 한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학습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 입니다.

분명히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당민주화로 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둘러가는 길 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당공천 폐지가 '정당민주화'라는 대원칙에 역행하는 길은 결코 아닙니다.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서명운동 참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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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7 23:2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이윤기 2009.03.30 09:13 신고 address edit & del

      정당공천제 폐지 아직은 안개속이라고 합니다.

      남겨 주신 댓글에 민주노동당원으로서 깊은 고뇌가 전해오네요. 비례대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지역구 당선을 위한 도전을 통해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당공천제 폐지 1천 만명 서명운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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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 시한이 6월 말로 다가온 가운데,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1천 만명 서명운동(http://noparty.or.kr/xe/)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현재까지 서명 참가자 수는 2022명 입니다.

지방분권운동본부,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국회의원모임,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부산지역본부(129개 단체 참여) 등이 참가하는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 가 국민 1천 만명 서명운동을 본격화하였습니다.

 
조선일보,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공동설문조사 (2006년)


MBC를 비롯한 문화일보, 행정장치부 등 각종 여론조사를 결과를 살펴보면, 국민 70% 이상이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국회에서는 민주당(82명), 자유선진당(18명), 창조한국당(3명)이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였고, 한나라당은 아직 당론을 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합니다. 

또한 2008년에는 이명수(자유선진당), 김종률(민주당), 정장선(민주당), 이시종(민주당)의원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골자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 발의를 하였다는 것 입니다.


즉,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70% 이상이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고,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도 뜻을 같이하고 있는 것 입니다. 국민운동본부는 이런 압도적인 폐지 찬성 여론을 모아서 여당을 압박함으로써 오는 6월까지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1천 만명 서명운동과 함께, 전국 순회 토론회, 시민궐기대회, 청와대, 국회의장 및 각 정당 대표자 면담 및 토론회 개최, 국회의원 공개질의서 발송, 온라인 캠페인 등을 벌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특히, 최근 1천 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하면서, 전국 기초자치단체까지 국민운동본부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공익단체, 직능단체가 참가하는 범 국민적 참여기구로 참여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서명운동 참가하기


정당공천제의 폐해 - 국회의원의 손발 노릇

국민운동본부는 현재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가 "온갖 정치적 의혹과 비리,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사실상 기초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에 대한 공천 결정권이 해당지역 국회의원에게 주어짐으로써, 공천비리와 로비가 난무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참신하고 능력있고 주민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 대신에 돈 많고 아부 잘 하는 정치꾼들에게 공천이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선거풍토하에서는 유권자의 선택은 무의미한 일이 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실제로, 국회의원의 '점지'와 '편애'를 통해 당선된, 시장이나 시의원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활동을 위한 손발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는 국회의원 선거운동은 시의원, 도의원이 다 한다" 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여의도 국회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주최하는 정책토론회가 열리면 지역구 시의원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가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지역의 민원현장을 찾아가고, 지역민의 크고 작은 일을 챙겨야 하는 지역 일꾼들이 중앙당 정치 행사에 지역 국회의원 행사에 이리 저리 불려다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 군수의 경우에도 "공천 받은 정당의 온갖 정치행사와 대회와 회의에 참석"에 참석하도록 요구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정당공천제로 말미암아 중앙집권권력 구조가 더욱 고착화되고, 지방분권과 지방자치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폐지 필요성 공감

국민운동본부는 최근(2009년 1월) 청와대에서 시장, 군수, 구청장들을 접견한 이명박대통령이 "경험에 비추어 공천받기가 힘들고, 일 하는 데는 정치색이 필요없으며 특히 이번 유례없는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모든 나라가 공조하는데 우리도 정치색과 지역색을 떠나 공조를 해야한다"고 말한데 주목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민운동본부는 70% 이상의 국민지지와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의 찬성을 국민 1천 만명 서명운동으로 모아나가서 공천제 폐지를 위한 시한인 6월까지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꼭 이루어낸다는 목표입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시장, 군수, 구청장 그리고 시의원, 군의원, 구의원에는 모든 후보가 특정정당에 소속되지 않고 출마하게 됩니다. 지방자치제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처럼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와 상관없이 인물을 보고 선출하는 것 입니다.

이렇게 선출된 시장(군수, 구청장)이나 시의원(군, 구의원)들은 지금 처럼 지역구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는 대신에 지역구 유권자들의 견제를 받으면서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의정활동을 하게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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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자 2009.03.24 17:27 address edit & del reply

    헐 ㅡ.ㅡ;;;
    정당공천제에 대한 문제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길게 글을 쓰지 않아도요.
    그럼 문제 많으니까 폐지에 그냥 서명해 달라는 건가요?

    대안이 있을게 아닙니까.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어떤 식으로 선출하게 될지 말이에요.
    그런게 없이 폐지만 하자고 하니까 어안이 좀 아니 되게 벙벙한데요. ^^;

    • 이윤기 2009.03.24 17:31 신고 address edit & del

      정당공천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잘 아시는 분이 폐지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시나봐요? ^^*

      당근 모든 후보가 특정정당에 소속되지 않고 출마하는 거지요. 그래서, 정당에 대한 지지와 상관없이 인물을 보고 선출하는 거지요. 지방자치제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이렇게 선출했잖아요.

    • 김기자 2009.03.25 10:54 address edit & del

      왜 이걸 댓글에 쓰나요.
      본문에 써놔야죠. 모르는 사람들이 읽었을때 대체 어쩌란 말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건데요.
      물어보면 대답해 주시려고 그러셨나용 ^^;

    • 이윤기 2009.03.25 11:29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본문에 반영하겠습니다.

    • 김기자 2009.03.26 09:56 address edit & del

      그렇지요. 이렇게 해야 완성도가 훨씬 높아보이지요.
      좋습니다. ^^

  2. 포세이동 2009.03.24 19:14 address edit & del reply

    정당공천폐지가 답일까요? 과연? 그럴까요?
    아래글을 읽어 보시고 그래도 폐지가 우선일지 생각해보는 게 어떨지.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79960

    • 이윤기 2009.03.25 12:4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정당 민주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공천제폐지' 역시 정당 민주화로 가는 과정 중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정당공천제 폐지가 정당의 비민주성을 높이는 일도 아니지요 !

      지금 구조에서 정당이 공천권을 갖지 못하도록 선거법을 바꾸는 것이 결국 정당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실력행사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3. JoKer 2009.03.25 10:16 address edit & del reply

    공천제 폐지는 첫걸음입니다.

    • 이윤기 2009.03.25 12:44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공감입니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당 민주화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4. 민수련 2010.02.09 11:24 address edit & del reply

    차떼기당 한나라당이 싫으십니까?
    그렇다고 지역분할에 의지하여 연명하는 민주당도 마음에 안드십니까?
    부패비리정당, 보스패거리정당, 공천장사정당, 지역할거정당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먹이사슬의 출발점인 지자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정치권에게 지자체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합니다.
    그들이 그들만의 철밥통을 놓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시민의 행동만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고 민주정당, 민주사회를 실현시킬 수 있
    습니다.


    정당공천제 폐지 입법청원 서명하기
    http://www.gobada.co.kr/bbs/sign/sign.php?sa_id=2


    언론특별법 입법청원 서명
    http://www.gobada.co.kr/bbs/sign/sign.php?sa_id=3


    국회의원/행정수반 국민소환제 입법청원 서명
    http://www.gobada.co.kr/bbs/sign/sign.php?sa_id=1


    종교법인법 입법청원 서명
    http://www.gobada.co.kr/bbs/sign/sign.php?sa_id=4



    많이 많이 서명에 참여해 주시고 홍보해 주세요^^

독재와 분단의 상처를 뛰어넘은 평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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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선욱 글 김태환, 그림<윤이상, 끝없는 음악의 길>


윤이상, 남한 땅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금기시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1996년, 아직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쉽게 말할 수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소설가 윤정모는 그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제목으로 소설 <나비의 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98년에는 윤이상 선생의 아내 이수자가 쓴 <내 남편 윤이상>이 한국에서 출판되었습니다. 근년에 들어서는 윤이상 선생의 삶과 음악을 소개하는 책들이 다투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출판사들도 마침내 그의 삶을 조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사회의 변화, 남북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이미 윤이상 선생이 고인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고인이 된 윤이상 선생의 음악과 세계적인 브랜드로서 ‘상품가치’가 높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불온(?)한 생각도 떨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의 삶과 예술에 관심을 갖고 그의 전기를 읽는 것처럼,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또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윤이상 선생의 삶을 전하는 일은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인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런 비슷한 생각으로 도서출판 산하가 박선욱의 글과 김태환의 그림으로 어린이를 위해 만든 윤이상 선생의 전기 <윤이상, 끝없는 음악의 길>이 출간되었지 싶습니다. 이 책은 산하 어린이 문고 중에서 147권 째로 기획 출판된 인물이야기 책입니다.

이 책을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면서 황병기 교수는 윤이상 선생을 ‘진주조개’에 빗대어 소개하였습니다.

“아픔을 피하지 않는 인내와 고통마저도 보듬어 안는 큰사랑이 눈부신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윤이상 선생은 바로 진주조개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일제의 지배와 분단, 가난과 편견이라는 모진 시련 속에서도 선생님은 고통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책 소개 중에서)

동베를린사건과 이후 이어진 해외민주화운동으로 고국의 권력자들에게 핍박받고 외면당하였을 때에도 자신에게 닥친 시련과 상처를 너끈하게 끌어안았고, 오히려 이를 빼어난 음악으로 탈바꿈 시켰습니다.

독재권력도 막지 못한 음악에 대한 열정

1917년 산청에서 태어난 윤이상 선생은 보통학교 3학년 때 눈으로 악보만 보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음악적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열세 살 무렵에는 이웃 청년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싶은 욕심으로 작곡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선생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아버지의 반대로 여러 번 벽에 부딪쳤으나 끝내 아버지도 그의 열정을 꺾지는 못하였습니다. 서울의 상업학교를 그만 둔 윤이상 선생은 에케르트의 제자인 최호영 선생을 만나 음악 공부를 이어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공부를 하기 위하여 일본 유학을 떠난 윤이상 선생은 상업학교와 음악학교를 동시에 다니면서 음악공부를 하였으며, 이 시절 동베를린 사건의 단초가 된 최상한과 함께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일제 치하에서는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였고, 일본 헌병의 추적을 피해 해방이 될 때까지 숨어살았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는 혼란의 시기에는 결핵과 맞서 싸우는 투병생활 중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음악에 대한 불같은 열정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유럽 유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게 하였고, 프랑스를 거쳐서 독일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하게 됩니다. 독일 베를린 음악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독일과 네덜란드의 유명한 음악제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자리매김을 시작합니다.

윤이상 선생은 1958년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제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후 1972년 뮌헨 올림픽 개막작으로 초연된 오페라 <심청>으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1988년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으로부터 수여 받고, 1992년 함부르크자유예술원의 ‘공로’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95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괴테상을 수상하는 등 유럽 사회에서 세계 음악가로서 최고의 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여정

음악에 대한 40여 년의 열정이 마침내 독일 땅에서 꽃피기 시작할 무렵인 1967년 윤이상 선생은 한국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하여 서울로 납치되어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으로 간첩으로 몰려 1심에서 종신형, 2심에서 15년, 2심에서 10년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감옥생활의 고통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문과 회유와 협박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면서 감옥에서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을 완성하게 됩니다.

독일 정부와 해외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풀려난 윤이상 선생은 독일로 돌아가서 음악적 열정을 불태움과 동시에 중앙정보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에 짓밟히는 분단된 조국과 민중들을 위한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궐기와 학살’, ‘진혼’, ‘재행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광주여 영원히>는 광주학살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윤이상은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습니다.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납치와 감금, 고문을 당하고 죽음의 벼랑 끝에 서게 된 일도 따지고 보면 남북 분단이 빚은 비극이라고 생각했습니다.”(본문 중에서)

1987년 남북음악회 개최 제의, 1990년 평양에서 열린 통일음악회 등은 모두가 통일을 앞당기는 이정표를 세우기 위한 음악가의 열정으로 이루어낸 일들입니다. 1995년 윤이상 선생은 끝내 살아생전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윤이상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그의 고향 통영에서는 매년 윤이상 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서거 10주기에 즈음하여서는 남한에서 윤이상 평화재단이 설립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1월 국정원의 과거사진상위원회는 동베를린간첩단 사건이 터무니없는 조작이었음을 밝혔습니다.

지난 7월 20일에는 윤이상 평화재단 주최로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었던 현대 한국예술계의 거장,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 그리고 시인 천상병을 기념하는 행사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60년이 지나도록 아직 분단의 질곡과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아이들에게 독재와 분단을 뛰어넘어 평화를 노래하는 음악가 윤이상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1년 전에 세상을 떠난 통영 출신의 한 탁월한 음악가가 전 세계의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예술인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가감 없이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윤이상, 끝없는 음악의 길>박선욱 글, 김태환 그림/ 도서출판 산하 - 204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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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세력에게 5년을 더 내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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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주최한 시민논단에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가 강사로 왔습니다. 한국사를 전공한 한교수는 과거 역사에서 오늘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사례를 들면서 우리 앞에 놓인 희망과 절망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현수막에 쓰인 것 처럼, "희망이 절망의 산을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민논단, 시민대학, 시민역사학당 등 여러 이름으로 진행된 YMCA 시국강연의 역사는 20년이 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암울했던 시기에 문익환, 김진균, 한완상 같은 분들이 강사로 오는 날이면, YMCA 회관은 민주주의에 목마른 시민들로 가득하였고, 회관 밖에는 경찰과 전경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어제 시민논단엔, 최근 10여년 사이에 가장 많은 시민, 학생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중간에 드문 드문 빈자리가 있었지만, 강당 맨 뒷쪽까지 의자를 놓아야했으니까요. 20여년 동안 회원으로 실무자로 YMCA 활동을 해 온 사람으로서 참  착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YMCA가 또 다시 '시국강연'을 열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인가?"

가슴 한 켠에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시민논단은 하천살리기, 시민운동 진단, 주민자치운동과 같은 주제로 민주화의 성과를 생활현장으로 심화시키는 주제를 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하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민주주의' 이야기하는 시국강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오후 7시에 시작해서 9시까지, 두 시간을 꼬박 채운 열띤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한교수가 참 많은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중 제 마음에 와 닿았던 이야기, 기억나는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대중은 예측하지 못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역사학자이며, 과거사문제 전문가인 한홍구 교수는 한국현대사에 대한 기억이 남달리 뛰어나고 정확하더군요. 박정희를 죽음으로 몰아간 79년 부마항쟁, 혹은 민주화운동의 분수령이 된 87년 6월 항쟁, 그리고 지난 5, 6월 촛불시위의 공통점은 불과 몇 개월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고 하더군요.

결국, 우리는(누가 우리일까요?) 대중의 역동성을 신뢰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박종철 인권상을 받은 KTX 여승무원들이 '박종철'이 누구인지 모랐다는 일화를 통해 우리(?)의 안일함을 질타하더군요.

결국, 역사는 발전한다. 

해방 공간에서, 친일파들에게 당했던, 한국전쟁으로 무너진 진보세력이 결국 7년도 안 되어 4.19로 일어섰지요. 5.16쿠테타로 무너졌던 민주세력은 71년 선거로 상황을 반전시켰고, 유신선포 7년 만에 10.26 사건이 일어났으며, 광주학살 7년 만에 6월 항쟁으로 되살아 났다. 또한 3당 합당 7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것.

역대 선거를 돌아봐도 대중들은 수구세력의 권력 연장 음모를 단 한 번도 그냥 내버려둔 적이 없다는 것이다. 67년 선거, 71년 선거, 78년 선거, 85년 선거, 92년 선거, 2004년 선거가 모두 민주세력에게 힘과 희망을 실어 주었다는 것이다.

한홍구 교수는 이 대목에서 김수영 시인이 남긴 시 '풀'을 인용하더군요. "풀이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말 입니다.

지난 대선, 총선 왜 졌는가?

지난 선거에 질 수 밖에 없었는 이유야 많겠지요. 한 교수는 강의 서두에 "결국 대선은 양자구도로 간다"는 안 일한 정치공학에 매달린 것이 큰 패착이었다는 지적을 먼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정적 실패는 "과거 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위기"이며, 결정적 변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과반수가 넘는 열린우리당 의석, 민주노동당 10석, 그리고 민변 출신 대통령에, 민변 창립회장 출신 국정원장에, 민변 부회장 출신 법무장관에, 민변 대표간사 출신 원내대표가 '국가보안법' 하나 폐지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중이 등을 돌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대선과 총선 실패, 그리고 이명박 지지율이 8%까지 떨어져도 민주세력에 대한 지지가 회복되지 않는 것도 결국 개혁실패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촛불, 10대들 어디서 나타났나?

과거 민주화운동 세대는 민주화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책으로만 민주주의를 배웠다. 머리로는 절박하게 민주주의를 원하지만, 몸은 군사문화와 군국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그렇지만, 민주정부 10년을 살아 본 10대들은 이론으로 민주주의는 몰라도, 살아 본 경험으로 체질로 가치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10대는 민주정부 10년의 가장 소중한 성과라는 것.

"왜 내가 먹을 것을 니들이 멋 대로 정해?"
"내가 먹기 싫다는데, 왜 강제로 먹이려고 들어?"
"그렇게 국민들이 애타게 얘기했는데, 왜 대통령은 우리 얘기 들으려고도 안 하지?"

이런, 질문은 모두 민주주의를 살아 본 아이들에게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 아이들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냉소적이었지만, 민주화는 우리 삶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놓았고, 삶의 질을 높였으며, 고문과 구타가 없어지고.......

막상,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가기 시작하고,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치고,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10년 동안 민주화의 성과가 많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8년 촛불 이후, 4년 후 선거 준비해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촛불의 열기를 제도로 정치권 내에서 담아내지 못하였다는 것. 촛불 집회 수사, 전교조 탄압, 교과서 파동, 과거사 진상규명 봉쇄, 시민단체 탄압, 뉴라이트 준동, 방송장악, 국정원 기능강화 등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공안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

파시즘과 애국주의가 준동하는 것에 대한 걱정, 어쩌면 고문과 구타와 같은 독재의 망령이 다시 살아 날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수구세력은 반민주적 일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능력도 없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구요. 그렇지만, 수구세력을 대신할 대안 세력 역시 지리멸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5년도 우리가 수구세력에게 권력을 내주고 민주화를 후퇴시킬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노무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치공학으로 인물에 매달리지 말고, 정책과 공약을 중심으로 후보를 발굴하고 키워서 4년 후 선거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또 다시 민주화를 위한 재조직화를 시작해야만 한다더군요.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희망과 승리를 향한 험한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소주 한 잔 나누는 뒷 자리도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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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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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다섯 지식인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의 강의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이 엮어낸 책이다.

<프레시안> 창간 5주년을 기념하여 2006년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연속 기획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이며, <프레시안>이 출판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낸 책이기도 하다.

‘프레시안북’은 그날그날에 주력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 좀더 근본적인 문제와 장기적인 과제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라고 한다.

이러한 기획의도를 반영하여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소통의 방법과 언론의 역할(신영복), 물질적 성장만을 향한 개발주의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가(김종철), 시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최장집), 인간적 성숙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박원순), 화해와 공존 통일을 위해 시민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백낙청)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신영복] 낮은 곧을 향해가는 사회통합 '하방연대'

신영복 선생의 강연에서 마음에 닿은 대목은 프란시스 골튼이라는 학자가 겪은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이었다. 시골장터에서 800명의 사람들이 모여 황소 한 마리를 놓고 소의 몸무게를 맞히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골튼은 아무도 몸무게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의 예상대로 정확하게 맞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적은 숫자의 평균을 계산하였더니 실제 황소무게와 1파운드 밖에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단 한사람도 맞히지 못했지만, 여러 사람의 판단이 모이니까 정확한 무게를 맞힐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얼핏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대중의 생각 속에는 문제를 꿰뚫는 지혜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긴다”고 한다. 여럿이 함께 가야 할 목표는 이렇게 생겨난 길 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강연에서 ‘소통’을 위한 갈래 중에서 가장 마음에 닿는 부분은 사회통합에 관한 내용이다. 어떤 사람인지 관대한 사람인지 오만한 사람인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보다 약한 이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야 말로 세상을 가장 잘 들여다보는 사림일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그는 사회통합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은 항상 아래로 낮은 곳으로 흐르고, 가장 큰물, 가장 낮은 물, 모든 것은 다 받아들이는 물이 바로 바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통을 통해 이루는 사회통합은 낮은 곳, 약한 자와 연대해나가는 하방연대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하는 통합이나 연대는 추종이나 야합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 아래를 향하지 않은 연대는 자칫 자신들보다 약한 세력에 대해서는 매우 오만한 모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철] '타이타닉호'서 뛰어내리는 것 두려워하지 말아야

김종철 선생은 한미FTA를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는 철학적, 도덕적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강연을 통해 성장주의 패러다임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이반 일리치를 인용하면서 성장주의 패러다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삶이란 거창한 구조물을 건축하거나 뛰어난 문화재를 남기거나 하는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이 자신의 이웃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돕고 보살피는 가운데서 생을 즐기는데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공유지의 사적 점유야말로 민중의 평화를 깨는 가장 원천적인 폭력에 해당된다는 것. 따라서 세계 민중이 평화를 되찾으려면 무엇보다도 민중의 자립적, 자치적 삶의 기반을 파괴하는 경제발전 논리를 배격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이반 일리치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상당수 진보적 지식인들이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우리의 발전 모델로 전망하지만, 사민주의가 경제성장 극대화를 기반으로 한다고 할 때, 임박한 생태적 위기 상황에서도 과연 유효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야 한다는 것.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2010년을 전후해서 석유생산정점이 현실화되면, 석유가격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폭등할 것이고, 석유기반 산업경제부문은 대재앙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김종철 선생은 FTA와 같은 잘못된 정책 방향을 바꾸기 위하여 열심히 싸워야하지만, 동시에 ‘타이타닉호’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탄 배가 타이타닉호가 아니라고 고집부리는 사람을 다 구할 수는 없으니, 결심한 사람들부터 뛰어내리기 시작해야 한가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농업문제 전문가 윈 티에쥔을 인용하며 “동아시아 국가들 - 중국, 한국, 일본은 근본적으로 소농에 기반을 둔 농업 중심 국가로 가야만 장기적으로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공업화 추구를 통해 식민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한 서구 선진국을 쫒아가는 정책은 대외적으로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과, 대내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구조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최장집] 새로운 정당, 중산층과 서민 아우르는 대안 필요

한국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민주정치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장집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경우 집권세력과 민주화세력의 괴리를 지적한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정착된 것이나 한미FTA가 추진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또한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정치를 도덕적으로 접근하려는 특성이 강하고 이것이 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하는 동시에 시민운동의 효능을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 대표 체계의 중심적 매카니즘인 정당에 의한 참여, 정당에 의한 대표, 정당에 의한 책임 구조를 튼튼히 하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아울러 현재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87년 이후 운동 세력이 정당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혁을 안한다고 비판하면, 다 조중동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이나, 정부를 비판하면 보수세력을 도와주는 것이니 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정부의 책임을 언론이나 의회 안팎의 보수 세력 탓으로 돌리는 식이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민주주의에서 주권자는 투표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대표에게 위임하고, 다수표를 얻은 정부는 다수 유권자의 요구를 실현해가야 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최장집 선생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다.

리더십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과 민노총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두 조직의 민주적 리더십은 곧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것만으로 제한되는 것 같고, 지도부 임기는 지나칠 정도로 짧다는 것이다.

정당으로 발전하려는 운동세력은 계급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저는 보편성을 갖는 이념과 함께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방향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진보적 자유주의로부터 사민주의에 이르는 넓은 대안 속에서 노동 문제를 포괄하는 대안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본문 중에서)

신자유주의 가치를 부정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타이타닉호에서 뛰어내리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하는 김종철 선생의 제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편, <여럿이 함께>에는 정당정치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한 그의 대안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조희연 교수의 비판적 의견도 소개되어 있다.

[박원순] 젊은이와 은퇴자의 블루오션, 시민운동

"시민운동은 불루오션이다"는 이야기는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  박원순 변호사가 이 책뿐만 아니라 여러 강연에서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시민운동이란 온 국민이 박수치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과제에 매달리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비판, 반대, 고난, 위기 속에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시민운동이 ‘위기’에 주목하기보다 블루오션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

시민운동을 블루오션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그의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첫째, 지역, 삶의 현장, 커뮤니티에서 씨를 뿌리는 운동, 한 주제를 가지고 평생을 바쳐하는 운동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남들과 다른, 타 단체와 다른 새로운 아젠다를 발굴하는데 주목 할 것, 국제적인 활동에 주목할 것,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는 사회적 다양성이 더욱 확대되기 때문에 다양한 이슈와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시민운동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새로운 시민운동은 젋은이와 은퇴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블루오션이라는 것이다.

[백낙청] 제3당사자가 통일준비'에 나서야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상황이 여러 가지로 변화되었지만, 백낙청 선생이 주장하는 ‘한반도식 통일’해법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이번 강좌에서 그는 남북관계의 제3 당사자로서 ‘남녘 시민’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제3당사자란 남한의 기업, 정당, 사회단체, 종교조직, 개별시민 등 복잡한 구성이지만, 한반도 통일문제를 남북당국에게만 혹은 6자회담과 같은 틀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6자회담 체제에서는 제7당사자, 남북관계에서는 제3당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

그 이유는, 한반도 통일은 베트남식 무력통일도, 독일식 흡수통일도 그리고 예멘식 담합통일도 아닌 다른 방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점진적 통일방안은 여러가지 위험 요인이 내재, 외재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어떠한 권력이양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에 제 3당사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력통일은 한반도 주민 거의 전부가 거부했고 일방적 흡수통일에는 주민 다수와 적어도 한쪽 정권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협상통일도 당국자들끼리의 담합으로는 도저히 안 될 정도로 ‘제3당사자’의 비중이 커진 상황에서... 국가연합이라는 해법이 제시된 이상 당국간 교류 협력 외에도 민간 차원의 다각적인 준비가 필요함은 물론, 준비가 무르익었을 때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가해짐으로써만 그 목표가 달성될 것이다.”(본문 중에서)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강연과 토론을 엮은 <여럿이 함께>는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우리시대의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다. 친구와 동료들과 혹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딱 좋은 책이다.

<여럿이 함께>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 프레시안북/ 235쪽,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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