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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국론이 '분열'되어야 그것이 민주주의다

by 이윤기 201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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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을 인터뷰한 것을 묶어 낸 책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시대의 창 펴냄). (관련포스팅 : 2013/02/13 - [책과 세상 - 시사, 사회] - 88만원 세대에게 이명박 정부는 희망이었나? )

 

우석훈은 스스로 "낯가림이 심하고 남들 앞에 공개되어 서는 것을 싫어"한다면서도 결국 지승호와 인터뷰를 하게된 이유로 그가 지승호였기 때문이며, 처음 인터뷰 했던 매체가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지승호와 강준만 두 사람 이름에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당위' 같은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우석훈은 지승호가 가진 장점이자 무기인 인터뷰를 책으로 출간하는 새로운 개척자라는 점에 주목했다. '인터뷰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한국에서 개척한 사람이 바로 지승호고, 그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난 후 매달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동서고금을 통해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을 시도하는 지승호가 요청한 인터뷰이기 때문에 과묵한 '우석훈'이 입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보면, 지승호와 우석훈에게tj '과묵함'을 발견할 수는 없다.

 

지승호는 과묵한 우석훈의 입을 열어 그가 앞서 썼던 여러 책에 담지 못했던 '거침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도록 하는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탁월한' 솜씨와 감각을 보여준다. 지승호는 과묵하지만 거침없는 우석훈의 말문을 열어 한미FTA, 삼성, 경부운하, 88만원세대와 같은 현재 우리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과묵한 두 남자의 거침없는 입담

 

지난해 출간되어 사회과학분야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 우석훈의 책 제목 <88만원 세대>는 이제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는 이대로는 88만원 세대에게 희망이 없다며 토플 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야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우석훈에게 지승호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보느냐고?

 

"희망은 거저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는 거죠. 가끔 저는 일제 강점기 1920~30년대에 제가 지식인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거든요. 20대가 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정 때 생각해보면 그렇게 절박한 것은 아니잖아요. 하자고 하고, 필요하다고 사람들이 공감하면 답을 찾을 수 있거든요." - 본문 중에서, 우석훈

 

20대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세대 착취 고리를 끊으려면, 우선 힘들다고 말하고 소리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는데 알아서 챙겨주는 일은 없다는 것. 원래 자본이라는 게 달라고 하지 않으면 안 준다는 것, 수요에는 '요구(demand)'란 뜻도 들어있다는 것, 그래서 달라고 그런다고 해서 '수요'라는 것이다.

 

또, 우석훈은 수능 총파업이 10대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이 딱 나올 시점"이라며 가장 평화로운 해결책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집회를 할 필요도 없고, 전체적으로 누가 조율해줄 필요도 없고, 서로 얘기하다가 조금 희생하면 되는" 것이라고, 집단으로 재수 한 번 하는 셈 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

 

올해 들어 등록금 문제를 시민운동과 진보개혁세력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데, 우석훈은 제대로 "확 깎아 달라고 하려면 수능 총파업 같은 것"을 해야 뭔가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요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우리 사회에 '희망'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미FTA와 한반도운하, 국민투표로 결정했어야 한다

 

그는 노무현 전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의 위기를 부동산 거품과 경제의 대외의존도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 책임이 노무현 정부에게 있고, 건설 자본을 먹여 살리느라고 지난 10년 동안 재원을 다 썼다는 것.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 놓은 국책사업과 공공건설만 해도 앞으로 5년간 사용할 재원을 넘어서 버렸다고 한다.

 

결국 우리 경제를 수출만으로 유지하고 성장 시키려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점차적으로 제국주의 경제로 나갈 수밖에 없으며, '동시다발적 FTA'도 뒤집어보면 미국을 등에 업고 작은 제국주의를 하겠다는 노선에 불과하다는 것.

 

"부동산 거품으로 무너진 국민경제의 기반을 개방이라는 형식을 띤 공격적인 해외진출로 메우려 하겠지만, 현 시스템에서는 2~3년 이상 못 버팁니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주기적 우기가 맞물리는 시점에서 마치 1970년대의 아르헨티나가 붕괴했던 것과 같은 큰 붕괴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거든요." - 본문 중에서

 

그는 향후 2~3년 후에 버블 공황이 찾아오면 원화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수출 주도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FTA는 결국 IMF와 같은 버블 공황으로 이어질 것이고, 4인 가족 기준 연봉 6000만원 미만 소득자들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특히, 우석훈은 참여정부가 단기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방개발도시를 만들겠다고 해놓은 게 100개가 넘고, 골프장은 300개가 넘는다"는 것.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건설자본의 전성기가 펼쳐진다면 국책사업은 물론이고 각 지자체마다 벌이는 관광중심의 건설 경제까지 덧씌워져 버블공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인터뷰에서 우석훈은 참여정부는 물론이고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 중 하나는 '국론분열을 못 견뎌하는 점'이라고 한다. 그는 환경부와 건교부가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싸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서로 조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부처 간에 이견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한다.

 

"이견이 나온다는 건 당연한 거거든요. 그런데 좌파나 우파나 이견이 많은 것을 국론분열이라고 해서 싫어하거든요. 원래 국론은 많을수록 좋은 거거든요. 그걸 많게 하자고 하는 것이 민주주의잖아요." - 본문 중에서

 

그래서 한미FTA건, 대운하 문제건 국론을 분열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핑계로 인위적으로 무조건 한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국론이 '분열'되어야 민주주의다

 

우석훈은 한미FTA와 같이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것은 87년 체제의 모순이라고 한다. 그는 헌법에 구멍이 뚫렸다고 본다. 외국에서는 헌법에서 국민투표가 명시되어 하위 법률로 내려갔는데, 우리나라는 하부 단위에는 정착되어 가는데 국가단위만 비어 있는 형국이란다.

 

부안 방폐장 문제와 같은 경우도 국민투표와 같은 제도가 없기 때문에 힘과 힘이 부딪히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되었던 사례라는 것. 그는 경주처럼 주민 투표를 하는 것이 합리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지자체에서 방폐장을 할 것인지, 화장장이나 장의시설, 매립장과 같은 것을 설치할 때도 주민투표를 하는데, 국가 단위에서만 '투표제도'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결국 국민투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부의권'을 대통령에게만 준 것이 87년 체제가 가진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직선제로 뽑은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87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인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는 것.

 

우석훈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칸 하나만 더 만들어서 FTA 찬반 투표를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FTA도 경부운하도 선거의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국민여론이 부정적으로 돌아서자 총선 공약에서 경부운하 공약을 빼겠다고 하는 얄팍한 수를 내놓고 있다.

 

책 많이 내는 사회에 '희망'이 있다

 

지승호의 인터뷰를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책을 내는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우석훈은 우리 사회 희망의 단초 가운데 하나로, 어떤 이유로 무슨 책을 읽고 있던, 지금 10대들의 독서량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책은 생각을 만드는 장치, 한 사회가 가장 점잖게 토론하는 장치라고 평가한다. 책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그 과정에서 지식을 만들고, 그것이 예술에 반영되는 선순환 고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

 

"책이 제일 싸잖아요. 영화는 돈 많이 들잖아요. 영화 한 편 찍을 돈으로, 가령 심형래 감독이 썼던 돈 정도면 20대의 1만 명 정도가 책을 낼 수 있게 지원해줄 수 있을 거라구요. 어떤 지식에 대한 생산이나 논의 중에서는 책이 제일 싸거든요." - 본문 중에서

 

책을 낼 때 책 쓰는 사람은 성실해지기 마련이며, 우파든 좌파든 자기가 알고 있는 제일 정확한 것을 끄집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양식이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고 나서 그 글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것과 대비해 볼 수 있다는 것.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얕기도 하고 폭도 좁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한국 사회는 우파는 아는 것도 없이 게으르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좌파가 예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지런할 필요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우파와 좌파 가릴 것 없이 모두 더 많이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경제학자로서 그는 한국 경제는 미국이라도 제대로 보고 배워야 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금융 강국 미국이 자동차뿐만 아니라 쇠고기와 옥수수를 팔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반도체와 휴대전화만 팔아서 살 수 없다는 것은 미국만 잘 쳐다봐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일이란 거다.

 

또 토건국가로 유명한 일본보다도 건설업 비중이 높은 것과 삼성 같은 재벌기업이 에버랜드와 같은 리스크가 없는 돈 모으는 산업에 투자하는 것 이런 것들이 한국경제를 미래를 어둡게하는 요인이라고 한다.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하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우석훈의 진단을 들어봐도, 대통령조차도 '이런 경제 상황을 본 적이 없다'는 최근의 경제 상황을 보아도 희망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은 있을까? 우석훈은 자본주의를 좀 더 따뜻하게 고쳐 쓰자고 제안한다. 가령 '신뢰자본주의'라든가 하는 따뜻한 자본주의를 해보자고 한다. "사람들의 욕구를 문화라든가 하는 비물질적인 것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는 많이 사용하되 자원은 덜 사용하고, 한가로운 시간은 많은데 욕심은 좀 절제되어 있는 정도의 사회는 자본주의에서도 오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꼭 사회주의혁명이 되어야만 오는 게 아니고, 한국자본주의에서도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본문 중에서

 

그는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맹아 단계에 있지만, 우리 사회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본다. 조금 더 커지고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자본주의도 상부상조라든가, 협동과 같은 가치 없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

 

자본주의는 굉장히 문제가 많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해줄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가 우리보다 더 발달한 나라들 모두 '생활협동조합'과 '지역공동체'와 같은 장치들이 더 발달해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승호는 우석훈을 일컬어 "포기할 뻔한 좋은 세상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불태우게" 해준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세상을 다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서로 지적하고 돌아보고 고민하며 우리 같이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시도라고 한다. 지승호와 우석훈의 거침없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독자들 역시 희망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 10점
우석훈.지승호 지음/시대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