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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지구는 지금 거대한 컴퓨터로 변하고 있다

by 이윤기 201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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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진화하게 하는가>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기업의 리더와 스티브 발머, 돈 탭스콧, 케빈 켈리 그리고 웹 2.0의 창안자 팀 오라일리, 적정 기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폴락 박사 등의 포럼 연설문을 엮은 책입니다.

SBS가 주최한 서울 디지털포럼에 세계 유수의 IT 기업 리더와 세계적인 IT기술자와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읽고 혁신을 이뤄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영감을 공유하였다고 합니다.

2004년부터 매년 빠짐없이 개최된 서울 디지털 포럼은 매번 다른 주제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석학들과 연구자들이 참여하였는데, 2012년 포럼은 '공존'을 주제로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기술과 사람의 공존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펼쳐놓고 토론하는 자리였다고 하는군요.

이 책에는 사람과 기술의 공존, 스마트 시대의 공존, 정보 과잉 빅데이터 시대의 가능성, 놀이와 예술이 공존하는 콘텐츠, 속도와 진정성이 공존하는 세상에 관한 다양하고 놀라운 주장과 흥미롭고 기발한 새로운 기술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시대, 기술의 미래 전망

예컨대 구글의 무인자동차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 덕분이 아니라 '스트리트뷰' 데이터가 많기 때문이라든지, 의료분야에서 의사를 보조하는 인공지능 로봇 '왓슨'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자동차에는 레이저 측정기가 장착되어 있어서 목표 대상과의 거리를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잴 수 있다. 무인자동차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은 수많은 구글 스트리트뷰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동차에 장착된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한 덕분이다." (본문 중에서)

"의사들은 최신 의학 자료를 읽는 데 매달 평균 5시간 정도를 할애한다. 그러나 왓슨은 3초에 2억 페이지를 읽을 수 있다. IBM은 이런 왓슨의 능력을 의료분야에 적용했다. 의사의 보조가 된 왓슨은 도움이 될 만한 치료법을 제안한다." (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면 개인이 능력과 기업의 능력이 동시에 증강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더 똑똑하고 더 뛰어나고 더 윤리적인 글로벌 마인드를 형성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갈지도 모르는 기술의 역습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의 역습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진 발표자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세계적인 IT 전문잡지인 <와이어드> 수석편집장인 '케빈 켈리'의 경우 기술의 발전이 기술의 역습마저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더군요.

"물론 더 좋은 기술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그보다 더 좋은 기술로 해결하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술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면 더 나은 녹색기술을 개발하면 된다. 본질적으로 환경과 생명에 반하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본문 중에서)

결국, 모든 기술의 발전은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술은 생명과 잘 융합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기술 발전으로 일어난 환경파괴와 오염을 목격하고 있는 독자로서는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었습니다.

세계는 지금 거대한 컴퓨터로 변하고 있다

정보 철학을 연구하는 루치아노 플로리디 교수는 '작업 영역화'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디지털 정보영역이 구축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유럽 사람의 20% 이상은 장소에 상관없이 온라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세계는 점점 IT기술을 사용하기 적합한 환경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나노, 인터넷, 웹 2.0, 시맨틱 웹, 클라우드 컴퓨팅, 마이크로소프트 키넥트, 증강현실과 같은 개념들을 보면 세상이 점점 기술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기술 친화적 환경에서는 인간의 지능보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억하지 않아도 인간의 지능보다 데이터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지요.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전자의료, 인터넷보안, 전자금융 등을 통하여 여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자는 "세계는 지금 거대한 컴퓨터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하나의 세상이고 마치 인간은 그 안에서 사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인간과 기술의 공존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공존이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철학자 손화철 교수의 생각입니다. 평화롭고 이상적인 공존을 위해서는 권력과 정보를 가진 자가 착해지든지 아니면 권력과 정보를 분산하여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뿐인데, 현실성 있는 대안은 후자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점점 그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 이 철학자의 걱정입니다. 예컨대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방대한 양의 인터넷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개별화된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정보 제공자가 사용자의 선호를 분석하고 취향을 파악하여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페이스북이나 구글에서 받은 정보로 인해 결정된다. 정체성 역시 스스로의 생각이 아니라 남이 선택한 정보에 의해서 정해진다... 이것은 기술이 나의 생각을 직접 다듬고 기호를 결정하며, 나아가 나를 구성한다는 뜻이다."(본문 중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것, 생각할 것 같은 것을 남이 미리 생각해서 그 생각이 자료를 나한테 준다는 것이다. 생각의 지도를 누군가가 대신 그려준다는 것인데, 그 누군가가 바로 '알고리즘'이다." (본문 중에서)

상황이 이러할진대 구글과 같은 기업이 사악해지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술의 발달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잃게 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술발전에 따르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문제

기술이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기업,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며, 지속가능하고, 인간적이며, 환경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민주적이고 공평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 책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다가 중도에 낙마한 김종훈 후보자의 강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장관 후보로 지명된 후에 윤리적, 도덕적으로 적지 않은 문제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기술의 윤리에 대하여 강연하였더군요.

그는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에 이로운 기술들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특히 영혼에 이로운 행복한 기술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메타데이터'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식품 포장지에 새겨진 유효기간처럼 데이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는 과학적, 기술적 지식을 사회적 행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기술과 관련한 교육과정에 윤리학을 포함하고, 다국적 기술 포럼에서는 기술 윤리에 대해 논의해야 하며, 정부는 적절한 윤리 기준을 마련하고 과학 기술 교육과 윤리를 통합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미국 정보기관의 책임자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그의 삶이 드러나는 바람에 서울 디지털 포럼 강연에서 제기한 옳은 주장들도 그다지 신뢰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서울 디지털 포험 강연집에는 이 밖에도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고 있는 스티버 발머는 앞으로 '인간이 아닌 기계가 학습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계가 인간 대신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효과적으로 취합하여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겁니다.

매크로 위키노믹스의 저자 돈 뎁스콧은 '인터넷은 단순한 웹사이트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생산수단이자 사회적 기회를 얻는 방법'이 되었다고 역설합니다. 그는 캐나다 금광회사 '골드코프'의 금맥 찾기 대회를 예로 들면서 인터넷 기술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은 시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합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대는 협업의 시대이며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아마존 닷컴의 버너 보겔스는 빅데이터 시대에 관한 전망을 예측합니다. 예컨대 아마존닷컴이 진행하고 있는 '1000인 게놈 프로젝트'와 같은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앞으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 저장, 조직, 분석, 공유하는 활동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인터넷 규제를 막아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에버노트 창립자인 필 리빈의 강연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기술 변화를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앱스토어의 탄생, 둘째 클라우드 서비스의 등장, 셋째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확대를 꼽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기술의 변화가 바로 기술능력주의 사회로의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정말 좋은 기술이라면 반드시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기술 능력주의 사회는 정말 좋은 기술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흥미를 끄는 강연은 뉴욕시립대 제프 자비스 교수의 강연입니다. 그는 쿠덴베르크의 활자혁명 이후 탄생한 역사상 최고의 공공 도구인 인터넷이 규제의 위험에 내몰렸다고 진단합니다. 인터넷이 힘을 발휘하는 만큼 권력을 가진 기관들이 인터넷을 규제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생활보호, 저작권 보호, 소아음란물, 인터넷 실명제, 인터넷 보안, 인터넷 예절 같은 이슈들이 바로 규제시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사생활보호만 하더라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획일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얼핏 보기에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소아음란물'에 대한 규제마저도 깊은 고민 없이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업이나 정부도 인터넷의 '공공성과 개방성의 원칙'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터넷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안합니다.

"첫째 우리는 서로 연결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핀란드는 시민의 광대역 통신망의 소유를헌법상의 권리로 정해놓았다. 이 나라에서는 마음대로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이 인권 침해에 해당된다." (본문 중에서)

그는 표현의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연결될 권리를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러 사람을 모아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와 연결될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원칙은 기관의 정보는 기본적으로 공개되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원칙은 인터넷은 개방되고 분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정보의 공개는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속되어야 하며, 정부나 기업이 인터넷 기기간의 자유로운 통신을 방해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기업이나 정부가 정보의 흐름을 막거나 바꾼다면 망중립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인터넷을 독차지한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시민으로서 협력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자유를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인터넷 규제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기술의 진화가 가져올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면서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지술',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고민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진화하게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인간이 기술을 진화시키는 것일까요? 기술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진화하게 하는가 - 10점
스티브 발머 외 지음, 서울디지털포럼 사무국 엮음, 방영호 외 옮김/알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