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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국민을 빚더미에 앉힌 약탈적 대출? 당신도 피해자?

by 이윤기 201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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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한집 건너 한집은 빚을 지고 사는 부채공화국입니다. 어느 집이나 가족이나 형제 중에 빚을 못 갚아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꼭 하나 둘은 있는 것이 201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금융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가구 열 집 중에 여섯 집은 빚을 지고 살고 있으며, 열 집 중에서 일곱 집은 원리금 상환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은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하고, 비싼 연체이자를 부담하게 되고, 급기야 제 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이용하게 됩니다. 대부업체나 악성사채를 끌어다 쓴 사람들 중에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목숨을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채무자가 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외한 위기 직후인 1998년 가계부채 총액이 190조 수준이었는데, 불과 10여년 만에 가계부채 10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1998년 GDP대비 55.8%였던 가계부채는 2011년 기준으로 GDP의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누가 국민을 빚더미에 앉혔는가?

 

빚을 못 갚는 국민의 연체 비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고, 특히 저소득층 연체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집을 못 갚는 국민이 늘어나자 결국 정부가 나서서 빚에 시달리는 국민의 채무를 일정부분 탕감해주고, 여러 해 나누어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조처가 취해지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을 빚더미에서 구해내는 대책으로는 여전히 미흡합니다.

 

"금융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1분위 가구는 소득에서 원리금 상환 비중이 절반에 가깝다. 그래서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재 저소득층의 부채 문제는 돌파구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저소득층은 생계를 위해 소득의 5배가 넘는 고금리 대출을 짊어지고 있다."

 

한편, 저자들은 저소득층만 빚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중산층 혹은 중상위층에 해당되는 상위 20%의 경우에도 다수는 주택 담보 대출 때문에 채무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라는 것입니다.

 

"소득 상위 20%에 해당되는 우리나라 중상위 계층이 평균적으로 진 빚은 1억 5000만 원, 20년 동안 나눠 갚는다면 이자 총액만 부채 원금에 가깝다. 결국 대출 1억 5000만 원을 끼고 3억짜리 집을 샀다면 사실은 4억 500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주택 담보 대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20년 동안 갚아야 하는 이자에 대하여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집을 샀더라고 지적합니다. 결국, 원금 상환은 못하고 이자만 내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자, 그런다면 국민 대부분이 채무자가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저자들은 그 책임이 국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사회를 '약탈적 금융사회'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빚내 쓰라고 권하는 정부

 

그들은 국민을 약탈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된 금융제도가 다수의 국민을 채무자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국민에게 빚을 많이 쓰도록 권하는 제도가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신용카드 할부거래는 말할 것도 없고, 60개월 동안 천천히 갚으라는 카드론, 우대금리 적용을 미끼로 내건 마이너스통장이 모두 그런 것들입니다. 이들 대출상품들은 모두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판매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채권자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갚을 능력 이상의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게도 책임이 있는데, 상환 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가계부채가 이미 심각한데도 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신용대출까지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금융권이 채무자의 신용이나 재무 상태가 부실한 것을 알고도 돈을 빌려주는 것은 말 그대로 '도덕적 해이'이다. 자기 돈을 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를 믿고 돈을 맡긴 또 다른 소비자들의 돈을 대신 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사회가 돈을 잘못 빌려준 금융회사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채무자를 금융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국민이 채무자가 된 책임을 국민에게만 뒤집어 씌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매우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채무 상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신용평가가 사전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상환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약탈적 대출'로 규정하고 (소비자신용보호법) 법률로 규제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지금이라도 약탈적 대출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의무적으로 조사하게 하고, 과도한 중도 상환수수료 부과를 금지했다. 고금리 모기지와 관련해서는 최종 일괄 상환액을 평균 초기 상환 금액의 2배를 초과하지 못하게 하고…."

 

다시 말하자면, 금융기관이 소비자의 부채상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해야 하고, 상환 능력이 없는 소비자에게 마구잡이로 대출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빚을 내주지 말라고 하면 도대체 그들은 어쩌라는 걸까요?

 

국민에게 빚 권하지 말고 '복지' 높여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국민을 채무자로 만들지 말고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대학등록금이 비싸다고 하면 등록금을 대출해주고, 전세가격이 폭등하면 전세자금을 대출해주며,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햇살론'이나 '미소금융'을 통해 돈을 빌려주는 정부는 약탈적 금융사회를 지탱하는 '약탈적 정부'와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약탈적 금융회사와 약탈적 정부는 국민을 금융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고, 빚에 시달리는 국민을 구제하기 위한 개인 회생제도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들이 지적입니다.

 

예컨대 '프리워크아웃제도'의 경우 사채는 제외시키고, 최대 30%에 달하는 고리 부채를 10년간 상환해야 하고, 개인 워크아웃 역시 금융기관 부채만으로 8년 동안 원금을 갚도록 하여, 장기간 채무노예 상태로 지내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회생의 경우에도 매월 최저생계비 이상의 금액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소득이 적으면 신청자체가 불가능하며, 면제 재산 범위가 현실성이 없고, 세금의 경우 '파산'이 되어도 탕감되지 않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파산의 경우 1년 가까이 걸리는 기간 동안 추심을 견뎌내야 하며, 추가 대출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의 주장은 단순하지만 명확합니다. '패자부활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를 독촉만 하는 것은 약탈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파산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새 출발을 막아 이들이 자립하지 못하고 빈곤층에 머무르게 되면 복지비 지출이 늘어나는 등 국민 전체가 손해 보는 결과로 이어진다."

 

"채무조정 제도는 재정 파탄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자살, 범죄 행위나 행려의 증가 등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방지하고 절대적 빈곤층을 부양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채무 조정 제도는 도산한 노동자들이 산업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생산력 감소를 막을 수 있으며, 결국은 빈곤층 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기초적이고 효과적인 사회보장제도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채무자연대 조직하고... 상환 거부운동 조직해야

 

한편, 저자들은 채무자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합니다. '채무자연대'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채무조정을 시도하고, 채권자들이 조정 협상을 거부하면 노동자들이 파업하듯이 '채무 상환 거부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정치권에 채무자 보호법 제정을 요구하고, 공정한 채권 추심을 법률로 뒷받침하도록 요구하고, 최고 이율을 낮추도록 하며 궁극적으로 대다수 국민을 채무자로 만든 사회구조의 개선을 위해 노력 할 것을 독려합니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빚에 짓눌리는 고통을 벗어날 수 있도록 전문가의 도움과 다른 채무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울러 현재와 같은 제도 하에서 금융은 결코 우리(채무자)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방심하지 말 것을 주문합니다.

 

이자율을 제한하고, 공정한 채권추심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채무자의 방어권을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상환 능력이 없는 것을 알고도 빚을 내주고 자산을 강제집행해서 돌려받아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약탈적 금융'을 제도적으로 근절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채무자들이여 단결하라! 채무조정을 거부하면 채무 상환을 거부하라! 노동자에게 파업 할 권한이 있다면, 채무자에게는 채무상환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이것은 기본권이다. <약탈적 금융사회>는 기대보다 훨씬 급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놀라운 책입니다.

 

 

약탈적 금융 사회 - 10점
제윤경.이헌욱 지음/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