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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17.10.17 7박 8일의 즐거운 개고생...청소년 국토순례 (1)
  2. 2016.02.12 일본에서 자전거 타기...한국과 다른점 (19)
  3. 2015.09.04 마산 헌병분견대...활용 방안 토론회
  4. 2015.07.14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한국의 3대 구라?
  5. 2015.07.08 군산 근대 문화 유산 거리~ 부러웠다
  6. 2013.03.15 국론이 '분열'되어야 그것이 민주주의다 (1)
  7. 2012.05.22 지역특별詩 콘서트 서울서 열린다
  8. 2011.11.17 김두관지사, 화끈한 정책 좀 없을까? (2)
  9. 2011.08.18 창원 명예시민은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봤더니... (6)
  10. 2011.05.28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좋은 집에 살수 있다
  11. 2011.05.23 북유럽에서는 추위도 디자인해서 판다 (3)
  12. 2011.05.07 20년전 싹튼 꿈을 예술로 펼치는 작가, 배달래 (4)
  13. 2011.01.15 에펠탑, 왕정타파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데? (4)
  14. 2010.11.10 임항선 기차레일 육교 또 훼손되었네요 (2)
  15. 2010.06.28 는개비 맞으며 신어산 걷기
  16. 2010.02.25 마산 진동 지역 문화유산과 활용 방안
  17. 2010.02.03 무학산둘레길이 제주올레, 지리산길에 모자라는 것 (8)
  18. 2010.01.29 근대도시 마산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6)
  19. 2010.01.20 90년 된 기차 레일로 만든 육교 어디 또 있나요? (8)
  20. 2009.11.28 마산의 도시경쟁력은 무엇인가? (5)

7박 8일의 즐거운 개고생...청소년 국토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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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7박 8일의 즐거운 개고생>이 하나방송에서  제작 방송 되었습니다. 아래 영상은 하나방송 유튜브 채널에 있는 방송 영상입니다. 

한국YMCA 전국연맹이 주최하고 전국 16개 지역YMCA가 참가한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에는 1그룹 120여명, 2그룹 120여명이 참가하였습니다.

2005년 시작된 한국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는 올해로 13회를 맞이하였는데, 2017년 청소년 자전거 국토 순례단은 "생명의 어울림, 평화의 발구름"을 주제로 전라남북도 일원의 근현대 역사와 민주주의의 현장을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7월 25일(1그룹)과 26일(2그룹)로 나뉘어 김제 모악산을 출발한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단은 군산 – 고창 – 목포 – 장흥 – 순천 – 곡성을 거쳐 광주광역시 518민주광장까지 무사히 완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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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10.20 05: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래도 추억는 남는 법이지요.ㅎㅎ
    잘 보고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일본에서 자전거 타기...한국과 다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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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전거 답사 여행을 다녀와서 느낀점을 정리해 봅니다. 올해 한일 자전거 국토순례를 계획대로 진행하거나 혹은 일본에서 출발하는 자전거 국토순례를 진행할 수 있을지 점검해보는 답사 여행이었는데, 막상 일본에서 자전거를 타보니 우리나라와 다른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예상하시는대로 우리나라보다는 자전거를 배려하는 교통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후쿠오카 답사 여행을 계기로 그동안 3~4차례 자전거로 일본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일본 도심에서 만나는 자전거들은 대부분 생활자전거였습니다. 


일본은 생활자전거 천국...우리나라는 MTB가 대세


우리나라는 도심에서 타고 다니는 자전거들도 대부분 MTB혹은 유사 MTB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도심 거리를 다니는 자전거는 대부분 생활자전거들입니다. 장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도 많고 젊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중에는 미니벨로도 많습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싼 MTB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전거 타기가 활성화된 나라일수록 생활자전거를 많이 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심 곳곳에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


두 번째 특성은 도심 곳곳에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하철 역이나 버스터미널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심 곳곳에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시내에는 유료로 자전거를 맡기는 안전한 주차장들도 많았습니다. 도심지를 벗어난 비교적 한적한  동네에서는 그냥 적당한 곳에 자전거를 쉽고 편하게 세울 수 있었습니다. 



보도로 다니는 자전거, 보행자와 잘 어울려다닌다


세 번째 특성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보도를 이용하는데, 보도에는 자전거도로와 보행자도로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자전거와 보행자가 부딪히지 않고 서로 잘 어울려 다닌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보도를 쪼개서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놓은 곳에서도 자전거와 보행자가 서로 각자의 길을 잘 지키지 않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은데, 일본에서는 보행자와 자전거 구분이 없는 보도에서도 서로 잘 피해서 다니더군요. 자세히 관찰해보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속도를 잘 조절하면서 보행자를 보호하면서 다닌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아무튼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웬만한 도심에서는 자전거 도로를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자전거 도로가 없는데도 도로에서는 자전거와 자동차가 서로 잘 어울려다니고, 보도에서는 자전거와 사람이 서로 잘 어울려서 다니더군요. 



보도로 다니는 자전거, 신호등 꼬박꼬박 지킨다


네 번째 특징은 보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신호등을 아주 잘 지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도심의 자동차 도로는 물론이고, 도심의 이면도로에도 보행자 신호등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빌딩이나 주택, 상가들이 있는 이면도로에서 간선도로로 연결되는 곳에는 대부분 보행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왕복 2차선 같은 좁은 길도 어김없이 보행자 신호등이 있어서 오히려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면도로 혹은 이면 도로와 간선도로가 만나는 교차 지점에 있는 보행자 신호를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자전거도 꼬박꼬박 지키면서 다니더군요. 자전거가 보행속도보다 2~3배는 빠르기 때문에 간선도로와 이면도로 교차점 마다 있는 보행신호등이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하였는데, 모든 자전거들이 신호등을 지키면서 다녔 습니다. 


솔직히 한국에서 간선도로와 이면도로가 만나는 곳에는 보행신호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보통 자전거를 타고 보도를 주행할 때는 보행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거나 자동차가 없는 곳에서는 보행 신호등을 무시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일본에서는 꼬박꼬박 신호등을 지키고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혼잡한 도심 구간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과 걷는 사람의 속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자전거가 조금 앞서 가도 보행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다보면 걸어오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경우도 여러번 있었답니다. 



자동차는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자동차가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자동차가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한결 같은 대답이 "차가 무서워서 자전거를 못타겠다"는 대답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안은 한 번도 자동차를 타고가는 운전자가 자전거를 위협하거나 창문을 내리고 욕을 퍼붓는 일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자전거를 타면 아슬아슬하게 자전거를 위협하는 차들이 수두룩합니다. 많이 나아지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여전히 창문을 내리고 욕을 퍼붓는 경우도 더러 있구요. 


일본에서 몇 차례 자전거 투어를 하였습니다만, 보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차도 가장자리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절대로 자동차가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혹시 자전거가 도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고 기다려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좁은 시골 국고에서 20명 가까운 인원이 한 줄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뒤 따라 오던 트럭과 승용차들이 비켜달라고 크락숀을 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전거가 비켜줄 때까지 속도를 늦추고 뒤따라오더군요. 


확실히 자동차보다 보행자와 자전거를 우선하고 배려하는 교통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공영자전거를 보급하거나 4대강에 자전거길을 만들고 국토대종주 자전거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동차보다 보행자와 자전거를 우선하는 교통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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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지 2016.02.12 13: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자전거 답사 여행이라..... 오, 멋지네요...
    역시 자전거족이 많은 일본 답습니다...시스템이 잘 되어 있네요...
    하아...한국은 여기저기서 자전거 도시 만든다고 하더니 중간에 전부 방치 중이라 아쉬워요.

    • 이윤기 2016.02.16 09:24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창원도 시장이 바뀌고 나니...공영자전거 누비자와 자전거 활성화 정책에 대한 공무원들의 관심도 팍팍 줄어드는게 느껴지네요.

  2. 空空(공공) 2016.02.13 14: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나라는 생활 자전거 탈수 있는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듯 합니다

    • 이윤기 2016.02.16 09:23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렇습니다.
      창원은 잘 되어 있던 자전거 도로를 왜려 없애거나 보도 겸용으로 후퇴시키고 있기도 합니다.

  3. 글루미 데이 2016.02.13 15:44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의 자전거는 위험하지 않고 지극히 실용적이더군요. 우산까지 장착하고 다니고 골목까지 턱이나 땜질틈이 없어 안전하고..그런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자전거타고 종횡무진하겠습니다.

    • 이윤기 2016.02.16 09:22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렇지요...저는 역시 자동차가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마산 청보리 2016.02.14 09: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읽었습니다. 담엔 일본! 같이 갑시다.^^

    • 이윤기 2016.02.16 09:21 신고 address edit & del

      좋습니다.
      언제 날 한 번 잡읍시다 ~
      가까운 대마도부터 셋이 함 갈까요?

  5. 개똥 2016.02.15 05:54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나라도 일본처럼쓰레기버림 죽여 질서안지킴죽여!이러면 1년도안걸려 일본처럼됨 무서울일본×

  6. *저녁노을* 2016.02.16 06:3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겠군요.
    잘 보고갑니다.

    • 이윤기 2016.02.16 09:20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오랜만입니다. 저녁노을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7. 뉴리뷰 2016.02.16 12:2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은 자전거 문화가 정착이 되어있네요!!

  8. ひかり 2016.02.16 22:04 address edit & del reply

    자전거가 차를 위협함..운전하다보면 대놓고 가운데로 ...무섭다..
    자전거도 시골 할배들 타는 자전거들이라 빨리ㅡ달리지 않아서그렇지..
    한구같이 오토바이 속도로 달리면 일본에서는 죽는다...

  9. 일본유학생 2016.03.05 22:04 address edit & del reply

    대신 문제는...
    일본은 자전거 사면 등록도 해야하고
    주차하면 주차비내야하고
    아무곳에나 자전거 두면 자전거 끌려간다는 사실...ㅋ

    • 이윤기 2016.03.10 08:35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런 질서가 필요한 것 같아요 ㅎㅎ

  10. 김규태 2016.03.16 09:13 address edit & del reply

    우연히 자전거 관련글을 검색하다가 들어와서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하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몇자 올립니다
    일본도 2010년쯤부터 자전거 관련 법규 정비가 매우 많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강화된 것중에 하나가 자전거의 보도 통행금지입니다
    다만 필자께서 느끼신거처럼 아무문제없이 물흐르듯이 흐르는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에게 피해받지 않으려는 그들의 국민성때문이겠지요
    사진에서처럼 저렇게 보도를 이용해 자전거 주행을 하신것은 법규 위반입니다
    게다가 사진상에는 자전거통행금지라는 표지판이 버젓이 서있네요
    보도에서 자전거도로와 구분되어있지 않다면 차도로 가는게 정확한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있는 보행자 자전거 겸용도로 자체가 이상한 구조이긴 합니다
    여타 다른 유럽이나 자전거가 활성화 되어있는 나라에는 도로에 표식을 하여서 자전거와 차가 도로를 나눠쓰도록 되어있는 구조인데 우리나라는 보행자와 자전거가 보도를 나눠쓰는 말도 안되는 구조죠
    법률상으론 자전거는 자전거전용도로가 아닌 이상 도로 주행을 하게 되어있는데 말입니다(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그냥 자전거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보도를 반나눠서 칠을 하고 겸용도로를 만들어 보여주기식으로 만든것입니다
    언제쯤 제대로 된 자전거 탈 환경이 될런지 심히 의문스럽긴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 환경.. 정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윤기 2016.03.24 10:28 신고 address edit & del

      정확하고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자전거 통행금지 표지판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몰랐네예
      다음부터 표지판을 잘 살펴야겠습니다. ^^*

  11. ㅛㅛ 2016.09.07 10:08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과 한국이 다른점 은퇴시기가 20년 빠르다 은퇴자산이 없다 부동산에 80% 묶여있다 그리고 빚이 많다 또한 소득이 적다 이것이 일본과 다른점이다 ㅎㅎ 또있네 남북이 분단되어 있어서 섬나라라는건 같고 일본영토가 남한의 10배정도 될거다 인구는 3배가 많고 그리고 방산비리 떡검이 한국이 100배정도 많고 부동산가격이 일본이 싸다 또 자영업자 비중이 한국 24% 일본 11% 이상입니다

마산 헌병분견대...활용 방안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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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합포구 월남동 3가 11번지에는 등록문화재인 제 198호인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이 있습니다. 지난 9월 1일에 1926년에 지어진 이 오래된 건물의 활용 방안 의논하는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 건물 앞을 수 없이 많이 지나다녔으면서도 별 관심 없이 다녔기 때문에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에 대하여 처음으로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마산역사문화유산보전회가 주최하고 창원시와 창동시민대학이 후원한 이번 토론회는 <마산헌병분견대의 의의  및 활용방안>을 주제로 허정도 박사가 발표하고, 류창현 건축사의 지정토론 그리고 많은 토론회 참석자들의 토론으로 관심과 열기가 매우 높았습니다. 


토론회 참석자가 70여명이 넘었고 참석자들의 토론과 의견 제안도 여느 토론회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하였습니다. 마산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근대문화유산을 보전하고 활용하자고 하는 시민들의 관심이 그 만큼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몇 년 전 삼광청주 공장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크게 확산되었고, 쌍용시멘트 사일로를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다시 활용하자는 주장도 널리 공감대를 넓혔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어쩌면 그런 실패의 경험 때문에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에 대해서는 더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런 일련의 일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커지고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 것은 지난 6월에 군산으로 연수를 다녀온 뒤부터 입니다. 마산과 비슷한 시기에 개항 도시로 발전한 군산의 경우 근대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산에도 불과 10~20년 전만해도 군산 못지 않게 많은 건축물들이 남아 있었고, 전국 어느 도시 못지 않은 스토리들이 있었는데도 제대로 활용하거나 개발하거나 발전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유명한 군산 짬뽕, 이성당 빵집을 비롯한 먹을거리와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군산 관광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이번 허정도 박사의 발표에 따르면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은 이제 얼마남지 않은 근대문화유산의 대표적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군요. 그나마 참으로 다행스렀웠던 것은 이미 문화재청이 이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민들의 높은 관심에도 불고하고 사라져 없어진 삼광청주 공장이나 쌍용시멘트 사이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허정도 박사는 이 건물의 의의를 민족사적 관점, 민주주의적 관점 그리고 도시건축적 측면이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민족사점 관점에서 볼 때일제강점기 민족독립운동을 탄압하던 악명 높은 일제 헌병분견대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잇는 건물이며, 민주주의적 관점에서보면 해방 후에는 군정보기관이 주둔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고문화 포력이 자행된 인권 탄압의 현장이었다는 것입니다. 




도시건축적 측면에서 보아도 근대적 형식미를 갖춘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공공 기관 건축물로서, 이미 문화재청이 지정한 등록문화재라는 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다행이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어서 보존관리 상태가 양호한 것도 다행스러운점이라고 하더군요. 


허 박사는 민족사적, 민주주의와 인권의 측면 그리고 도시건축적 중요성을 모두 고려하여, 시민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아울러 단순히 현재의 건물 뿐만 아니라 추가로 인근 부지를 확보하여 지금보다 공간을 넓힌 후에 <마산 근대역사관> 이나 <마산근대기록관> 혹은 <인권과 민주주의 기념관> 등 역사문화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시민교육공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용될 경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민족사 비극의 현장으로 국민적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될 것이며, 근대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고,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 토론과정에서도 이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데는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마산근대기록관> 같은 것으로 활용을 시작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현재의 건축물이 워낙 협소하기 때문에 애초에 공간을 확장하여야 한다는 주장 정도가 엇갈렸을 뿐입니다. 부산, 목포, 군산, 인천 같은 다른 개항도시들처럼 근대 역사, 문화 전시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산 헌병분견대 건물 개요

- 부지 : 개항초기부터 간선도로변에 위치한 정형화된 부지

- 개항 때부터 일본관청 차지

- 면적 " 197.29㎡/ 건축물관리대장 419.82㎡/ 붉은 벽돌조

- 현재 건물 외에 벽돌조 경비실과 목조 사무실, 무전실, 식당, 차고 등 부속건물 5동


허정도 박사 발표문 


마산헌병분견대 활용방안 토론회.pdf


경남도민일보 : [창원 근대건축을 찾아서] (5) 마산합포구 월남동 헌병 분견대 "짓밟혀도 꺾이지 않던 독립의지 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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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한국의 3대 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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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 이야기를 엮으면 소설 책 한 권은 나온다고 하는데, 이 남자 이야기는 책으로 기록한 이야기만 소설 책 두권(배추가 돌아왔다 1, 2권) 분량입니다. 짐작컨대 조선 3대 구라라는 방배추 선생이 책에 담지 못한 그야 말로 야사(?)는 두 권을 더해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35년생인 그는 올해 81세 본명은 방동규입니다. 책 제목이 '배추가 돌아왔다'인 것은 젊은 시절 그의 별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이력을 보면 파란만장 그 자체입니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어떻게 이 많은 일을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당시 집에는 자가용까지 있었다.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는 푸른색 컨버터블 승용차를 타고 여름철이면 동해안으로 바캉스를 갔다. " - 본문 중에서


1935년 황해도 개성에서 부잣집 손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개성과 개풍군 일대에서 가장 큰 정미소를 운영하였고, 신발공장과 밀짚모 공장도 운영하였으며, 개성 시내에 5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답니다. 당시 개성지역 최대 상업자본 중 하나였으며, 지붕이 열리는 승용차를 타고 다녔고 여름이면 바다로 해수욕을 다닐만큼 대단한 부잣집이었다고 합니다. 




개성에서 손꼽히는 부자집...뚜껑 열리는 자가용 있던 집


팔순이 넘은 지금도 현역 보디빌딩 선수인 그는 어릴 때부터 각종 운동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학창시절에 6.25 전쟁을 겪는 동안 가족을 부양하였으며 여러 차례 제적 당했던 학교에서는 학생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덕분에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더군요.


1954년에는 체육특기생으로 홍익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학교는 다니는둥 마는둥 하다 그만두었고, 백기완, 구중서, 김태선 등과 함께 나무 심기 계몽운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목포 출신의 미인에게 아무 조건없이 집 한 채 값을 몽땅 갔다바치는 돈키호테 같은 일도 저지릅니다. 


서른이 되는 해에는 가난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파독광부로 나라를 떠나 지냈고, 독일에서 광부 생활을 마친 후에는 파리에서 4년 동안 유랑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7년 만에 돌아와서는 뜬금없게도 '살롱드방'이라는 양장점을 시작합니다. 뜬금없다는 것은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과 '살롱드방'이라는 양장점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방씨의 살롱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인데, 그 정도는 돼야 손님이 꼬일 것 같았다. 앙드레 김이라는 이름이 뜨기 훨씬 전이었다. 지금까지도 현역 일선에서 뛰고 있는 패션계의 선구자 노라노 여사가 혼자서 분전하던 시절이었다." - 본문 중에서 


독일과 프랑스에서 7년을 보내고 귀국 후 곧장 명동에서 장성과 고위공무원 부인들, 영화배우와 연예인들을 단골로 둔 양장점 '살롱드방'을 시작합니다. 다행히 짧은 시간에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미련없이 그만두고 공동체 농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머슴살이를 시작합니다. 


"살롱드방을 계속했다면 앙드레 김 못지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하지만 그건 헛꿈이요, 팔자가 아니었다." - 본문 중에서


1973년에는 강원도 철원에서 백 만평이 넘는 넓은 땅을 얻어 젊은 시절부터 꿈꾸던 공동체 농장 '노느메기밭'을 만드는 일에 매달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땅을 구하고 난 뒤인 1973년 여름, 하얀 모시옷에 고무신 차림의 함석헌 선생이 이곳을 찾아왔다. 그분은 10만 평의 농장과 주변의 스케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변이 산까지 다 합치면 100만 평도 훨씬 넘는 규모였다." - 본문 중에서


노느메기 밭을 일구며 유토피아를 꿈꾸던 그는 막걸리 반공법 같은 다소 어이없는 일로 간첩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엔 공동체 농장이 꿈을 접게 됩니다. 팔자가 참 드세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해야 할까요? 


노느메기밭에 혼신을 쏟다 느닷없는 간첩 혐의


'노느메기밭'을 일구다가 느닷없이 간첩으로 몰려 감옥생활도 하였구요. 86년에는 <말>지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고 유명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참혹한 고문을 당합니다. 그가 겪었던 투옥과 고문은 모두 불의한 시대라서 겪게된 안타까운 희생이기도 하였습니다. 


뭐 여기 소개한 직업은 그나마 굵직굵직한 것들입니다. 소개되지 않은 직업 중엔 중화요리집 운영, 신발장사, 보신탕집, 만두집 등 안 해본 일이 없다할 정도이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이른바 노가다라 불리는 막노동 경험도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79년부터 2년 동안은 중동에 근로자로 나갔다 돌아옵니다. 91년에는 서해화성CEO로 취임하고, 94년에는 중국공장 대표이사로 활동하였으며, 2001년에는 헬스클럽 강사로 활약하다가 책이 출간될 당시인 2006부터 지난 연말까지 경북궁 관람안내 지도위원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비록 비공식 타이틀이지만, 국내 최고령 트레이너였다. 2001년에 시작해 2003년 말에 그만두기까지 3년 가까이 근무했으니 제법 해 볼 만큼은 해본 셈이다.......보디 빌딩 중장년부 도전 결심을 굳힌 것도 그때였다." - 본문 중에서


2006년에 출간된 이 책 말미에 미스터 코리아 중장년부 우승을 목표로 몸 만들기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2009년에 보디빌딩 장년부(60세 이상)에 출전하여 6위를 하였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올해도 전국체전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100kg이 넘는 바벨을 가뿐하게 들어올리는 현역 보디빌딩 선수라니 놀랍지 않습니까?


나이 80 넘었지만 아직도 그는 현역 보디빌딩 선수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주먹과 힘 그리고 이른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구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서 '구라'는 입심이 센 사람을 말하는데, 어떤 이는 구비문학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라지오'(라디오)라고도 하더군요. 좌중을 압도하며 쉼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탁월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그가 좌중을 압도하며 구라를 펼치는 장면은 문학작품에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고은 선생의 연작시 <만인보>에 방배추 선생을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더군요. 이 책에도 인용된 구절을 소개해보면 이렇습니다. 


황소 불알 서너 개 덜렁덜렁 달려

석양 머리 넘어오는 사람

힘께나 쓰지만 힘자랑 보다

입심좋아

그 입심에 술자리 눈과 귀 집중하다가

술자리 입들 쫙 벌어져

와 

와 웃음 터진다


자칭 타칭 방배추 선생은 황석영, 백기완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구라의 반열(?)에 오른 분입니다. 방배추 선생과 평생을 동지이자 친구로 지냈던 백기완 선생은 수 많은 집회 현장에서 강연장에서 사람들을 들었다놨다 하는 최고의 선동가였지요. 


"백기완은 일단 스케일이 엄청나고 웅장하면서도 때론 비감에 찬 맛이 특징이다. 판소리로 치자면 서편제가 아니라 우렁우렁한 뼈대를 강조하는 동편제 소리쯤이 된다. 동편제와 달리 여린 듯 잔재미가 많은 서편제 소리는 소설가 황석영의 몫이다......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선이 굵은 '인생파 구라'로 분류하곤 한다." - 본문 중에서


30년 전 대학 초년 시절에 백기완 선생의 사자후를 토해내는 피끓는 강연을 듣고 그날로 운동권이 되는 친구들이 수루둑 했으니까요. 그런 백기완 선생과 같은 반열에 오른 3대 구라가 바로 방배추 선생이라고 하니 그의 입담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요. 


대한민국 3대 구라...주먹보다 센 입심?


바로 그런 그가 너무나 궁금해서 뒤 늦게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 방배추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대로(때로 운명이 막아 설 때는 돌아가기도 하며) 하는 삶을 살아왔더군요. 하지만 이책의 진정한 재미는 방배추 개인이 겪은 파란만장한 삶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민주화 운동 민족문화운동을 해온 이른바 재야 민족민주 운동 진영의  수 많은 사람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야사(?)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만한 두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백흥선과 선우휘입니다. 


"백기완이 내게 부족한 그 무엇을 일깨워 준 위대하 교사라면, 내 가슴을 키워준 사람은 바로 백홍열 선생이다. 백홍열 선생은 한 마디로 조선 제일이 풍류객이었다고 할 수 있다. " - 본문 중에서


"평소 평소 선생의 입버릇 중 하나가 '돈과 정권 그리고 여자는 빼앗는 놈이 임자'였는데, 그 세가지는 동냥이나 구걸을 하면 절대로 가까이 오는 법이 없다는 게 선생의 철학이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 방배추는 백기완의 부친인 백홍열 선생을 '형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들의 친구인 방배추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냥 두었다고 하니 풍류객 다운 풍모가 아닐 수 없지요. 방배추는 아버지이자, 형님이자, 정신적 스승이었던 백홍열 선생 돌아가신 날 상가에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대취하여 망자인 백홍열 선생을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한편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선우휘 선생에 관한 회고담도 놀아웠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지금 보다는 훨씬 괜찮은 신문이었던 것일까요? 아무튼 조선일보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만, 저자 방배추는 선우휘 선생을 남자중의 남자라고 평가합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남자중의 상남자'란 뜻이겠지요. 


선우휘 선생은 요새 말로 하자면 방배추의 인생 멘토였습니다. 간첩 혐의를 받고 감옥에 갇힌 그의 구명에 발 벗고 나섰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수 차례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직장을 구해주는 등 온갖 뒷바라지를 다하더군요. 방배추는 자신의 롤모델로 백기완과 선우휘를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고 합니다. 


"백기완처럼 큰 그릇이 되자. 선우처럼 가슴 넓은 사람이 되자"


이 책엔 대하소설처럼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모두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서 각자 소중한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 온 방배추 그리고 그와 인연을 맺고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 바로 지난 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있고 재미있는 책입니다.   


과연 방배추의 삶이 담긴 이 책은 대단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에서 한국이 3대구라 그리고 80대 현역 보디빌딩 선수로 살아 가는 소설 의 주인공 같은 삶,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도 모자람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세상에 이 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배추가 돌아왔다 1 - 10점
방동규.조우석 지음/다산책방
배추가 돌아왔다 2 - 10점
방동규.조우석 지음/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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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 문화 유산 거리~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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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군산, 목포는 같은 시기에 개항한 개항도시입니다. 일제 침략과 근대화가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세 도시에는 모두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당시 건축물들도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목포는 자세히 살펴 볼 기회가 없었지만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거리를 둘러보니,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마산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군산의 근대 문화유산 거리는 일제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을 잘 보존하면서, 그 주변 지역을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가고 있더군요.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할 만한 건물들이 외톨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건물 중에도 비슷한 분위기를 갖춘 건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을 끌기 위한 여러 상점들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찻집, 까페, 과자가게, 식당들이 있었지만 요란하지 않게 조화를 이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나절 짧은 시간 동안 군산의 근대문화유산거리를 전부 둘러 보지는 못하였습니다만, 제가 직접 보고 온 이성당 - 초원사진관 - 신흥동일본식 가옥 - 동국사 - 기차마을 - 빈해원 - 근대건축관 - 근대미술관 - 군산세관 본관 - 군산근대역사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거쳐간 마을 풍경은 참 조화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옛 건물을 그대로 두고 새 건물을 지어 사용하는 곳도 인상적이었고,  안내 팜플렛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구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사택 같은 옛 건물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골목길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 앞에서도 사진을 찍게 만들었고, 걷다가 마주친 성당 간판 마저도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었습니다. 


걷고 싶은 거리, 걸어 다니면 오히려 더 재미있는 거리를 잘 만들었더군요. 한 여름 더위였지만 재미있게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이야기꺼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곳곳에 숨어 있는 추억을 파는 상점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더군요.  


초원 사진관을 지키는 아저씨의 입담과 재치 있는 사진 촬영, 근대역사박물관의 기획전시와 체험형 전시관도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근대역사박물관은 입장료에 비하면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었습니다만, 관람객들에게 '살아 있는 박물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특이 하였습니다. 


전국 어느 박물관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관람객과 출연 배우들이 뒤섞인 공연도 재미있고 인상적이었으면, 영화 세트장 처럼 꾸며놓은 전시관 곳곳에 근대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같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더군요. 




옛것은 모두 낡은 것으로 여기고 오래된 건축물들은 몽땅 없애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마산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비교가 되었습니다. 군산을 둘러보면서 전국 최고 수준의 혹은 세계 최고 수준의 최첨단, 최고급 건축물을 새로 지을 수 없다면,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게 하는 것은 오히려 오랜 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산의 경우에도 군산과 비슷한 근대 건축물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건축물들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청주공장이나 가포 결핵병원 내의 건축물들도 있었습니다. 아직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근대건축물들도 도시 이곳 저곳에 많이 남아 있는 편입니다. 




군산처럼 이런 건축물들을 잘 살려내고 도시재생의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결코 군산에 뒤지지 않을 자원들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군산시가 이런 일에 기울이는 노력에 비하면 마산이나 진해에 있는 근대건축물들은 지방정부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이 모여서 민간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지만, 근대문화유산을 보전하는 활동들은 특성상 적지 않은 예산이 뒤따르는 일들이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군산거리를 걷는내내 "마산도 이런 것 쯤은 충분히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창원시가 마산이나 진해 같은 근대도시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다른 도시를 흉내내는 방식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벌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군산을 둘러보면서 마산의 경우 도시재생 = 상권 살리기로 연결되는 바람에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 되고 있는 것이 마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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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이 '분열'되어야 그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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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을 인터뷰한 것을 묶어 낸 책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시대의 창 펴냄). (관련포스팅 : 2013/02/13 - [책과 세상 - 시사, 사회] - 88만원 세대에게 이명박 정부는 희망이었나? )

 

우석훈은 스스로 "낯가림이 심하고 남들 앞에 공개되어 서는 것을 싫어"한다면서도 결국 지승호와 인터뷰를 하게된 이유로 그가 지승호였기 때문이며, 처음 인터뷰 했던 매체가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지승호와 강준만 두 사람 이름에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당위' 같은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우석훈은 지승호가 가진 장점이자 무기인 인터뷰를 책으로 출간하는 새로운 개척자라는 점에 주목했다. '인터뷰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한국에서 개척한 사람이 바로 지승호고, 그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난 후 매달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동서고금을 통해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을 시도하는 지승호가 요청한 인터뷰이기 때문에 과묵한 '우석훈'이 입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보면, 지승호와 우석훈에게tj '과묵함'을 발견할 수는 없다.

 

지승호는 과묵한 우석훈의 입을 열어 그가 앞서 썼던 여러 책에 담지 못했던 '거침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도록 하는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탁월한' 솜씨와 감각을 보여준다. 지승호는 과묵하지만 거침없는 우석훈의 말문을 열어 한미FTA, 삼성, 경부운하, 88만원세대와 같은 현재 우리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과묵한 두 남자의 거침없는 입담

 

지난해 출간되어 사회과학분야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 우석훈의 책 제목 <88만원 세대>는 이제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는 이대로는 88만원 세대에게 희망이 없다며 토플 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야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우석훈에게 지승호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보느냐고?

 

"희망은 거저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는 거죠. 가끔 저는 일제 강점기 1920~30년대에 제가 지식인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거든요. 20대가 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정 때 생각해보면 그렇게 절박한 것은 아니잖아요. 하자고 하고, 필요하다고 사람들이 공감하면 답을 찾을 수 있거든요." - 본문 중에서, 우석훈

 

20대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세대 착취 고리를 끊으려면, 우선 힘들다고 말하고 소리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는데 알아서 챙겨주는 일은 없다는 것. 원래 자본이라는 게 달라고 하지 않으면 안 준다는 것, 수요에는 '요구(demand)'란 뜻도 들어있다는 것, 그래서 달라고 그런다고 해서 '수요'라는 것이다.

 

또, 우석훈은 수능 총파업이 10대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이 딱 나올 시점"이라며 가장 평화로운 해결책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집회를 할 필요도 없고, 전체적으로 누가 조율해줄 필요도 없고, 서로 얘기하다가 조금 희생하면 되는" 것이라고, 집단으로 재수 한 번 하는 셈 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

 

올해 들어 등록금 문제를 시민운동과 진보개혁세력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데, 우석훈은 제대로 "확 깎아 달라고 하려면 수능 총파업 같은 것"을 해야 뭔가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요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우리 사회에 '희망'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미FTA와 한반도운하, 국민투표로 결정했어야 한다

 

그는 노무현 전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의 위기를 부동산 거품과 경제의 대외의존도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 책임이 노무현 정부에게 있고, 건설 자본을 먹여 살리느라고 지난 10년 동안 재원을 다 썼다는 것.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 놓은 국책사업과 공공건설만 해도 앞으로 5년간 사용할 재원을 넘어서 버렸다고 한다.

 

결국 우리 경제를 수출만으로 유지하고 성장 시키려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점차적으로 제국주의 경제로 나갈 수밖에 없으며, '동시다발적 FTA'도 뒤집어보면 미국을 등에 업고 작은 제국주의를 하겠다는 노선에 불과하다는 것.

 

"부동산 거품으로 무너진 국민경제의 기반을 개방이라는 형식을 띤 공격적인 해외진출로 메우려 하겠지만, 현 시스템에서는 2~3년 이상 못 버팁니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주기적 우기가 맞물리는 시점에서 마치 1970년대의 아르헨티나가 붕괴했던 것과 같은 큰 붕괴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거든요." - 본문 중에서

 

그는 향후 2~3년 후에 버블 공황이 찾아오면 원화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수출 주도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FTA는 결국 IMF와 같은 버블 공황으로 이어질 것이고, 4인 가족 기준 연봉 6000만원 미만 소득자들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특히, 우석훈은 참여정부가 단기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방개발도시를 만들겠다고 해놓은 게 100개가 넘고, 골프장은 300개가 넘는다"는 것.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건설자본의 전성기가 펼쳐진다면 국책사업은 물론이고 각 지자체마다 벌이는 관광중심의 건설 경제까지 덧씌워져 버블공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인터뷰에서 우석훈은 참여정부는 물론이고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 중 하나는 '국론분열을 못 견뎌하는 점'이라고 한다. 그는 환경부와 건교부가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싸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서로 조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부처 간에 이견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한다.

 

"이견이 나온다는 건 당연한 거거든요. 그런데 좌파나 우파나 이견이 많은 것을 국론분열이라고 해서 싫어하거든요. 원래 국론은 많을수록 좋은 거거든요. 그걸 많게 하자고 하는 것이 민주주의잖아요." - 본문 중에서

 

그래서 한미FTA건, 대운하 문제건 국론을 분열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핑계로 인위적으로 무조건 한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국론이 '분열'되어야 민주주의다

 

우석훈은 한미FTA와 같이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것은 87년 체제의 모순이라고 한다. 그는 헌법에 구멍이 뚫렸다고 본다. 외국에서는 헌법에서 국민투표가 명시되어 하위 법률로 내려갔는데, 우리나라는 하부 단위에는 정착되어 가는데 국가단위만 비어 있는 형국이란다.

 

부안 방폐장 문제와 같은 경우도 국민투표와 같은 제도가 없기 때문에 힘과 힘이 부딪히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되었던 사례라는 것. 그는 경주처럼 주민 투표를 하는 것이 합리적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지자체에서 방폐장을 할 것인지, 화장장이나 장의시설, 매립장과 같은 것을 설치할 때도 주민투표를 하는데, 국가 단위에서만 '투표제도'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결국 국민투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부의권'을 대통령에게만 준 것이 87년 체제가 가진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직선제로 뽑은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87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인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는 것.

 

우석훈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칸 하나만 더 만들어서 FTA 찬반 투표를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FTA도 경부운하도 선거의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국민여론이 부정적으로 돌아서자 총선 공약에서 경부운하 공약을 빼겠다고 하는 얄팍한 수를 내놓고 있다.

 

책 많이 내는 사회에 '희망'이 있다

 

지승호의 인터뷰를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책을 내는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우석훈은 우리 사회 희망의 단초 가운데 하나로, 어떤 이유로 무슨 책을 읽고 있던, 지금 10대들의 독서량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책은 생각을 만드는 장치, 한 사회가 가장 점잖게 토론하는 장치라고 평가한다. 책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그 과정에서 지식을 만들고, 그것이 예술에 반영되는 선순환 고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

 

"책이 제일 싸잖아요. 영화는 돈 많이 들잖아요. 영화 한 편 찍을 돈으로, 가령 심형래 감독이 썼던 돈 정도면 20대의 1만 명 정도가 책을 낼 수 있게 지원해줄 수 있을 거라구요. 어떤 지식에 대한 생산이나 논의 중에서는 책이 제일 싸거든요." - 본문 중에서

 

책을 낼 때 책 쓰는 사람은 성실해지기 마련이며, 우파든 좌파든 자기가 알고 있는 제일 정확한 것을 끄집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양식이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고 나서 그 글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것과 대비해 볼 수 있다는 것.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얕기도 하고 폭도 좁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한국 사회는 우파는 아는 것도 없이 게으르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좌파가 예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지런할 필요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우파와 좌파 가릴 것 없이 모두 더 많이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경제학자로서 그는 한국 경제는 미국이라도 제대로 보고 배워야 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금융 강국 미국이 자동차뿐만 아니라 쇠고기와 옥수수를 팔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반도체와 휴대전화만 팔아서 살 수 없다는 것은 미국만 잘 쳐다봐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일이란 거다.

 

또 토건국가로 유명한 일본보다도 건설업 비중이 높은 것과 삼성 같은 재벌기업이 에버랜드와 같은 리스크가 없는 돈 모으는 산업에 투자하는 것 이런 것들이 한국경제를 미래를 어둡게하는 요인이라고 한다.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하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우석훈의 진단을 들어봐도, 대통령조차도 '이런 경제 상황을 본 적이 없다'는 최근의 경제 상황을 보아도 희망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은 있을까? 우석훈은 자본주의를 좀 더 따뜻하게 고쳐 쓰자고 제안한다. 가령 '신뢰자본주의'라든가 하는 따뜻한 자본주의를 해보자고 한다. "사람들의 욕구를 문화라든가 하는 비물질적인 것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는 많이 사용하되 자원은 덜 사용하고, 한가로운 시간은 많은데 욕심은 좀 절제되어 있는 정도의 사회는 자본주의에서도 오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꼭 사회주의혁명이 되어야만 오는 게 아니고, 한국자본주의에서도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본문 중에서

 

그는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맹아 단계에 있지만, 우리 사회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본다. 조금 더 커지고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자본주의도 상부상조라든가, 협동과 같은 가치 없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

 

자본주의는 굉장히 문제가 많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해줄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가 우리보다 더 발달한 나라들 모두 '생활협동조합'과 '지역공동체'와 같은 장치들이 더 발달해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승호는 우석훈을 일컬어 "포기할 뻔한 좋은 세상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불태우게" 해준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세상을 다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서로 지적하고 돌아보고 고민하며 우리 같이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시도라고 한다. 지승호와 우석훈의 거침없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독자들 역시 희망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 10점
우석훈.지승호 지음/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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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모니 2013.03.15 10:11 address edit & del reply

    국민들이 정부의 인사권만 행사하면 됐지
    정치안건에 대해 일일히 간섭하는 건 너무 단순한 발상입니다.
    무엇보다 다수결에 의한 압살이라는 독재가 행해질 수 있습니다.
    통치자가 독재하면 투표를 통해 사람을 바꾸면 되지만
    정치안건에 대해 투표하면 정치안건 자체에 의한 독재가 행해지게 됩니다.
    한미fta는 앞으로 대통령이 바뀌면 그 대통령이 폐기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가 되버리면 거의 평생 못바꾸게 됩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국민투표 또하면 되는거 아니냐?
    근데 그런식이면 국민들이 투표해야 할 안건이 너무 많아져서 넘 비효율적이게 됩니다.

지역특별詩 콘서트 서울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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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사람을 많이 모아야 하는 큰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행사에 공연을 붙여 기획하게 됩니다.

 

요즘엔 출판기념회도 북콘서트로 바뀌고, 강연회는 토크쇼 혹은 토크 콘서트로 바뀌어 공연 예술인들이 점점 약방 감초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사람을 많이 모아야 하는 행사를 준비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유인책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가수 혹은 인기 가수를 초청하게 됩니다.

 

결국 행사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을 많이 모아줄 수 있는 가수가 '훌륭한' 가수이고,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가수 일수록 개런티도 비싸집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지역 행사에서 활약하는 지역가수들은 여러가지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출연 순서도 대부분 앞으로 밀리고 개런티도 서울에서 내려온 유명가수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가끔은 유명한 가수나 연예인들이 무료로 출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모두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정치 수도는 워싱턴이지만 경제의 중심은 뉴욕이고, 문화 예술의 경우에도 지역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력도 서울과 수도권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습니다. 옛부터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하였을 만큼 서울 집중이 심한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에서 지역은 서울의 내재적 식민지와 다름이 없습니다.

 

지역균형 발전은 구호에 그칠 뿐이고 실제로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조금도 완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 분야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으로 아무리 나누고 구분해봐야 모든 장르가 다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대한민국을 일컬어 '서울공화국'이라고 하였겠지요. 노무현 대통령 임기 동안에 겨우 자치와 분권, 지역균형 발전 등이 거론되었지만, 이젠 그런 논의 마저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역문화가 서울과 교류하는 새로운 시도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출세와 성공(?), 명예와 인기를 찾아 서울로 가는 일은 많지만, 지역에 뿌리 박고 있는 든든한 지역 예술을 서울 가서 알리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듣자하니 서울 지역에 창원 지역 문화를 소개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교류를 시도하는 낯선 공연을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지역에 뿌리를 둔 시인의 시를 노랫말로 삼은 지역 노래꾼들의 공연이 결코 서울문화에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균형잡힌 문화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번 공연은 서울 지역의 문화예술 단체인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대표 이종수)이 창원 민예총 문화예술인들이 초청하여 벌이는 공연입니다.

 

서울의 문화예술인들이 지역으로 초청되는 일은 다반사 입니다만,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서울 지역 단체나 사람들의 초청을 받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두근두근 콘서트- 유철詩 지역특별詩

 

출연 : 김유철 김산 하동임 하제운 이경민

일시 : 2012년 6월 2일(토) 19시

장소 : 서울 신촌 소통홀(STHall)

주최 주관 :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문의 : 010-6224-9818(서울) 010-5296-3976(창원)

 

'두근두근 콘서트'는 서울 사람들이 창원 지역 문화예술인을 마주하는 심정과 창원 지역 문화 예술인들이 서울 지역 사람들을 만나는 설레이는 마음을 담은 제목이라고 합니다.

 

서울이 세상의 중심 혹은 중앙(?)이라고 생각하는 서울 사람 대부분은 이런 만남에 별로 설레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공연에는 이런 만남에 설레이는 분들이 많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공연 제목 '유철詩 지역특별시詩'도 그런 취지를 잘 담았다고 합니다. 한 시인의 시가 그 지역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으며, 서울 지역만 특별한 곳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는 지역들이 모두 '특별한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지요.

 

'유철詩, 지역특별市' 라고 이름 붙여도 좋았을 뼌 했습니다. 서울만 유독 특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서울도 특별市이고, 창원도, 광주도, 부산도, 대전도 모두 특별市였네요.

 

창원 특별市에 사는 유철 시인이 쓴 유철 詩 지역특별詩가 서울특별市 사람들의 마음도 흔들어 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 가수들이 유철詩에 곡을 부친 노래인 지역특별詩 노래를 잘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 예매 : dISC4u  www.disc4u.co.kr

 

공연장소 지도를 보시려면 아래 다음 지도 보기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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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 | 유철詩, 지역특별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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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지사, 화끈한 정책 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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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4일 경남도청에서 경남도민일보 주관으로 개최된 김두관 도시자 블로거 간담회에 참석하였습니다. 10여명의 블로거들과 약 2시간 남짓 간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절반 이상의 블로거들은 김두관 도지사가 후보 시절이었을 때 블로거 간담회에 참여하였던 경험이 있었던 분들이었습니다. 후보 시절에 간담회를 해봤던 블로거들의 공통된 평가는 "후보 시절 보다 여유가 생겼고 말 수는 좀 더 많아졌다"였습니다.

의회에 다녀와서 약간 상기되고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고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블로거들의 질문에 답을 잘 해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뭔가 좀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고 난후 유권자인 도민의 한 사람으로, 또 김두관 도지사 지지자의 한 사람으로서 김두관 지사와 박원순 시장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평소에도 조금씩 느끼던 일이었지만, 블로거 간담회를 하고나니 이런저런 아쉬움이 더 커지더군요. 박원순 시장과 김두관지사가 지방정부의 모범적인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참 흐뭇하고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경남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김두관지사가 박원순 시장에 뒤쳐지지 않는 개혁적인 정책, 참신한 정책을 추진해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블로거 간담회에서 받은 느낌으로는 김두관 지사는 앞으로도 '우공이산'의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여러 블로거들이 기발하고 재미있는 질문을 해주셨고, 특히 흙장난님께서 아주 재치있고 재미난 질문을 해주셔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재미있는 포스팅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름대로 참신한 정책을 유도하는 질문을 두가지 준비하였습니다만, 기대만큼 참신한 답을 듣지는 못하였습니다. 김두관 지사의 바쁜 일정 때문에 간담회가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충분히 풀어서 질문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첫째 질문은 개혁적인 청소년 정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대체로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은 투표권을 가지 노인정책에 대한 관심에 비해서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 정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합니다. 미래의 깨어있는 시민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개혁적이고 참신한 청소년 정책이 추진되어야 하는데 김두관 지사의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청소년 정책은 좀 부족하다는데 동의합니다. 사실 청소년 교육, 문화활동에 대해서는 도교육청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좀 있습니다. 청소년종합지원본부를 중심으로 청소년들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주로 취미,, 레져에 치우쳐 있었는데 최근에 평생교육이 지방정부의 역할로 바뀌었습니다. 경남도에서 평생교육진흥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반시민들을 위한 시민교육, 민주주의 교육을 지원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부터 도교육청에서 학교이탈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기관을 운영하게 됩니다. 중앙정부, 교육청, 경남도가 예산을 나눠서 부담해야하는데, 도교육청의 요청을 받고 도가 예산의 1/3을 부담하기로 하였습니다."


김두관 도지사의 대답은 이런 정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뭐 딱히 잘못되었다고 할 만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무난한 답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블로거 간담회에 많은 공무원 분들이 배석한 것을 보고 이런 무난한 답을 많이 듣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좀 하였지요.

김두관 지사의 답은 청소년 정책에 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야권 단일 후보 김두관 도지사의 도정이라면 뭔가 좀 더 참신하고 개혁적인 새로운 청소년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를든다면 서울시가 '하자센터'를 만든 것 처럼 지방정부인 경상남도가 앞장서서 뭔가 참신하고 새로운 청소년 정책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정책을 제안해 주시면 적극적으로 반영해주겠다는 상투적인(?) 답을 덧붙이기는 하였지만 도지사가 관심을 쏟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울 시장에 당선되고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박원순 시장의 시원시원하고 참신한 정책을 보면서 임기 1년을 넘긴 김두관지사에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저만 그런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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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모니 2011.11.17 17:30 address edit & del reply

    갑자기 김두관 지사가 맘에 드네요. 행정이란게 구호와 이념으로 선동질하는게 아니란걸 깨달으신것 같습니다. 일년동안 해보시면서 느낀게 많으신듯.

  2. Chaussure louboutin pas cher 2012.12.18 20:49 address edit & del reply

    10여명의 블로거들과 약 2시간 남짓 간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창원 명예시민은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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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시민증을 받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요? 지난 7월 초 통합 창원시 명예시민증 제 1호 중복 수여 논란이 벌어진 일이 있습니다.

당시 언론보도에 행정구역 통합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맹형규 행안부 장관에게 명예시민증 제 1호를 수여하였다고 보도가 크게 되었는데, 이미 3월에 노키아티엠시 티모 엘로넨 사장에게도 명예시민증 제 1호가 수여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 블로그와 페이스북 그리고 오마이뉴스와 지역의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서 명예시민증 제 1호 중복 수여 문제가 불거지자 그 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창원시는 맹형규 장관은 내국인 1호이고, 띠모 엘로넨 사장은 외국인 1호라고 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내놨습니다.

아울러 맹형규 장관은 통합창원시 명예시민증 결정 제 1호이고, 띠모 엘로넨 사장은 수여 제 1호라고 하는 더욱 기묘한 해명도 있었습니다.


2011/07/11 - 창원 명예시민증 제1호 2명은 과유불급
2011/07/08 - 맹형규장관 속았다, 창원 명예시민증 1호 아니다
2011/07/07 - 맹형규 장관이 왜 명예시민 1호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인 제 1호와 내국인 제 1호로 구분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은 이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그동안 옛 마산, 창원, 진해시 그리고 통합창원시에서 어떤 사람들이 명예시민증을 수여 받았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통합창원시의 명예시민증 제 1호 중복 수여 논란이 벌어진 직후에 창원시에 행정정보공개 청구를 하였습니다. 정보공개 청구 내용은 통합전 마산, 창원, 진해시의 명예시민증 수여 현황과 발급대장 사본, 그리고 통합창원시의 명예시민증 수여 현황과 발급대장 그리고 명예시민증 수여 결정과 관련된 인사위원회 회의록을 청구하였습니다.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받은지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만 그동안 청소년들과 자전거 국토순례를 다녀오고 이런저런 밀린 일들을 정리하는라 며칠전에야 겨우 자료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1962년 옛마산시부터 통합 창원시까지 명예시민은 모두 36명

우선 통합전 마산, 창원, 진해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34명입니다. 그중에 6명은 내국인이고 28명은 외국인입니다.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들 중 80% 이상은 외국인입니다. 내국인은 6명인데 옛 창원시 명예시민이 5명이고, 진해시 명예시민이 1명입니다.

시기별로는 옛 창원시의 경우 2000년 이전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3명뿐입니다. 창원시와 자매시를 맺은 미국인 2사람과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 칼리만탄 산림 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한 최계월씨 등 3명입니다.

그외 10명은 모두 2000년 이후에 창원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도 2005년 이후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9명은 모두 박완수 시장 임기중에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민선 시장 중에서도 박완수 시장이 특히 명예시민증을 많이 수여한 것입니다. 

박완수 시장 취임 이후 명예시민증 수여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는데, 기업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2005년, 2008년, 2010년에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주) 사장 3명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습니다. 또 2006년에는 볼보그룹 코리아 사장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여 외국계 회사 기업인이 4명이나 됩니다.

그외 일본 야마구치시 시장, 국제 축구연맹 부회장(2009)이 창원시 명예시민증을 받았으며, 2010년에 한국인으로 오원철, 김광모, 강영택씨에게 '창원국가산업단지 조성' 공로를 인정하여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습니다. 이 분들의 공적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발급대장만으로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한편, 옛 마산시의 경우는 20명 명예시민증 수여 대상자가 모두 외국인입니다. 민선 시장을 선출하기 전인 2000년 이전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13명인데 태국, 영국, 미국, 일본, 프랑스, 인도네시아, 인도 등 국적과 공적내용이 다양합니다. 



명예시민증 수여 36명 중 절반은 '기업인'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인도네시아 해군 대령 3명과 인도 해군대령 1명을 포함해서 3명의 외국 군인에게 명예시민증이 수여되었습니다. 주요 공적에는 "우호증진, 경제협력 및 군사교류 기여"라고 되어 있는데, 4명의 인도와 인도네시아 현역 해군 대령들이 어떤 이유로 명예시민증을 받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62년에 한국전쟁 유공자로 명예시민증 1호를 받은 찬 앙슈촛트 주한 태국대사, 64년에 아동구호 활동 공적으로 명예시민증 2호를 받은 영연방 아동구호재단 해외원조 책임자인 호킨스씨, 성지여고를 세운 프랑스 신부 쥴레스 벨몽드씨, 지역의료봉사활동으로 명예시민증 11호를 받은 가포결핵진료소원장 영국인 패트슨씨 등의 명예시민증 수여는 지금 판단으로도 자격이 충분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김인규 전 시장 임기 중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5명인데 모두 기업인입니다. 한국 동광 전무이사, 한국일신 대표이사, 한국상모프라마그 대표이사, 한국 TSK 전무이사인데 모두 일본인이며, 협력적 노사관계 정착으로 산업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와 노사안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시민증을 받았습니다. 핀란드인 1명은 노키아 티엠시 기술 고문인 '알토넨 커리주 하니'라는 사람인데 수출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시민증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편 예상과 달리 황철곤 시장 임기 중에는 명예시민증 수여자가 많지 않습니다. 황철곤 시장 10년 임기 중에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딱 2명인데, 2002년에 미국 국적을 가진 연변과학기술대학 김진경 총장은 애향심과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5년에 싱가폴 국적의 노키아 티엠시 구매 이사는 지역협력업체 성장 및 고용안정을 공로로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이 중에서 노키아 티엠시라는 회사도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논란이된 통합창원시 제 1호(?) 명예 시민증을 받은 띠모 엘로넨 사장까지 포함하면 노키아 티엠시 소속 기업인도  세 사람이나 명예시민증을 받았습니다. 2000년 노키아 티엠시 기술고문, 2005년 노키아 티엠시 구매이사, 2011년에는 노키아 티엠시 사장이 명예시민증을 받은 것입니다.
 
자료를 살펴보면 옛마산, 창원시 모두 명예시민증 수여는 기업인들에게 편중되어 있습니다. 옛마산, 창원, 진해시와 통합창원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36명 중에서 절반이 기업인입니다. 또 기업인이 아니라하더라도 경제협력을 공로로 명예시민증을 받은 외국인이 4명이나 더 있습니다. 

명예시민 중 민주화운동 유공자, 노동운동가는 왜 없을까?

명예시민증 수여의 법적 근거가 되는 '명예시민증 수여 조례'에는 기업인에 대한 우대 조항 같은 것이 없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경제발전과 고용증진, 노사안정에 기여(?) 기업인들에게 명예시민증이 편중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3.15와 10.18 민주화 정신을 내세우는 역사를 가진 마산이었지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일한 공로를 인정 받아 명예시민이된 경우는 한 명도 없습니다. 또 기업도시이자 동시에 노동자도시인 창원의 경우에도 경제발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익과 복지향상 혹은 노동운동을 발전을 위하여 일한 공을 인정 받아 명예시민이 된 경우도 없습니다.

또 명예시민 중에는 평화나 인권 혹은 통일을 위하여 일한 분들도 없습니다. 체육인이나 문화예술인도 없습니다. 현실이 이러니 편중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명예시민증 수여를 결정하는 창원시 인사위원들은 이런 분들 중에는 명예시민으로 추대할 만한 사람들이 없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지난 7월에 있었던 맹형규 장관과 티모 엘로넨 사장에 대한 명예시민 제 1호 중복 수여와 이후 창원시의 해명을 지켜보면서 앞으로는 시민들이 정말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시민 다수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분들 그리고 창원시 명예시민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들이 명예시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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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종만 2011.08.18 18:06 address edit & del reply

    시장 정치인이라고 자신을 정의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자신의 치적과 유관 할거고 유불리가 계산대에 올랐겠죠^^

    • 이윤기 2011.08.19 09:47 신고 address edit & del

      명예시민증 수여 결정을 공무원인사위원회에서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좀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분들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되어야 한 것 같습니다.

      가칭 '명예시민증 수여심사위원회' 같은 것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2. 김봉관 2011.08.19 10:01 address edit & del reply

    궁금한점이 있습니다. 명예시민이 되면 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있습니까? 가령 지방세 감면혜택이나 뭐 그런쪽으로....?

    • 이윤기 2011.08.19 14:26 신고 address edit & del

      명예시민은 외국인이나 타시도 거주자에게 수여하는 것이니...지방세 감면 같은 혜택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조례의 (예우) 규정에는 "시장은 이 조례에 따라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은 사람에게 시 주관 행사 등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 주관 행사에는 누구라도 참여할 수있으니...실제로는 혜택 같은 것은 없고...명예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3. 동피랑 2011.08.19 10:10 address edit & del reply

    명예시민이나 상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의 권위를 과시하는 것일 테고, 이제껏 행정가들의 사고방식이나 관행을 보면 시민전체를 대표해서 준다기보다 시장이나 행정관련 협의회 구성인사들이 공로가 있다고 인정되는 부분이 경제, 기업, 잘사는 것에 관심이 편중된 결과 아닐지...이제부터는 민주, 통일, 평화, 인권운동 문화예술분야로 인식이 확대되길 기대 해 봅니다.

    • 이윤기 2011.08.19 14:27 신고 address edit & del

      동피랑님 오랜만입니다.
      조례를 좀 뜯어고쳐서...명예시민증 수여를 행정가들이 결정할 것이 아니라...시민의 뜻이 반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좋은 집에 살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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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동일이 쓴 <황토집 바로짓기>

웰빙주택, 황토집, 흙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신이 사는 집을 직접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종류의 집짓기 책이 나오고 있다.

고제순이 쓴 <일주일 만에 흙집 짓기>나 오래 전에 나온 정호경 신부가 쓴 <손수 우리집 짓는 이야기>와 같은 책들은 읽는 이에게 '당신도 할 수 있으니 한 번 시작 해보라'고 권하는 책들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 집짓기를 권한다.

돈이 없으면서도 좋은 집(비싼 집 말고 '생명'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 하는 내 친구는 오래 전부터 전세금을 찾아서 땅 값 싼 곳으로 이사 가 직접 집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건축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여러 가지로 연구하더니, 얼마 전에는 한 일간지에 나온 '스트로베일하우스' 소개 기사를 스크랩해 와서는 '볏집으로 집을 지으면 돈이 많이 안 든다'며 자기 집도 볏집으로 짓겠다고 하였다.

그때 친구가 보여준 기사에는 스토로베일하우스도 7~9일 교육과정을 마치면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이동일이 쓴 <황토집 바로 짓기>도 책 제목만 보고, 이 책만 읽으면 '황토집을 지금부터 바로 지을 수 있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그런 뜻이 아니다. 이동일이 말하는 '바로 짓기'는 지금 바로가 아니라 '똑바로'라는 뜻이 담긴 '바로'였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황토방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고, '건강주택'이라는 의미에서 많이 보급되고 있는 집들이 소재만을 강조하여 건축의 일반 요소들을 무시한 채 어설프게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구조체(뼈대)없이 황토벽돌로만 집을 짓거나 귀틀집 형태로 황토집이 지어지기도하고 통나무와 흙으로 짓는 목심구조도 나와 있지만, 벽돌로만 짓는 집은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재료에 불순물이 들어가고, 귀틀집이나 목심흙집은 나무와 흙이 수축하면서 생기는 틈을 오랫동안 보수해야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귀틀집이나 목심구조로 만들어진 집들은 대부분 일시적인 숙박공간이나, 아쉬람으로는 손색이 없지만, 가족이 생활하는 살림집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황토집 바로(正) 짓기

이동일은 뼈대와 지붕을 짜는 방식은 전통에 근접하면서도 황토벽돌을 쌓고 창호 및 단열을 현대화할 뿐만 아니라 한옥의 공간구성에 현대식 주방과 화장실 등을 배치하고 현재적인 건축 소재들을 결합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재만을 강조하는 황토주택이나 이질적인 요소들을 일체화시키지 못하는 개량 한옥, 퓨전 흙집은 우리 살림집의 원형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 시점에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우리 집'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 살림집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현대한옥'이고,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대안 건축이라는 의미에서 '현대흙집'이다." - 본문 중에서

이동일이 쓴 <황토집 바로 짓기>는 우리 살림집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적으로 계승한 집짓기를 하기 위해 씌어진 책이다. 즉 전통한옥과 현대주택의 좋은 점을 잘 조화시켜 만든, 집짓기에 대한 오랜 연구와 실천의 산물이다.

지은이는 1986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제적된 후 서점운영, 독서회, 청년회, 노동상담소 활동을 하였으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1995년부터 건축 일을 시작하였으며, 1996년 (주)하우징그룹 행인에서 일하며 용인, 이천 등지의 전원주택 건설에 참여하였다.

1999년 행인흙건축을 설립하여 이천시 솟대전원마을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40여동의 현대 한옥, 현대 흙집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황토집 바로 짓기>에는 그동안 지은 40여동의 현대한옥 건축의 변화과정이 모두 나와 있다. 제 4장에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지어진 현대한옥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이 기간 동안 건축양식으로서 현대 흙집의 태동과 대중화를 위한 실험 그리고 현대한옥의 확산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현대한옥, 현대흙집 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 5장에는 상세한 도면, 사진과 함께 복층, 단층, 그리고 지붕의 형태에 따라서 구조별, 유형별 현대한옥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그가 살아온 이력으로 알 수 있듯이 <황토집 바로 짓기>를 쓴 이동일은 집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삶의 편리성과 재산증식 가능성에 따라서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는 방식으로는 '좋은 집'에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집의 가치는 '사용가치'로 판단해야

집에 대한 그의 생각은 한마디로 '교환가치'를 버리고 '사용가치'에 주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를 이어 살아가는 사용가치 중심의 한옥과 교환가치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양옥의 차이는 집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이란다.

나라와 민족마다 생김새와 언어 그리고 음식과 의복이 다르듯이 '집'은 민족 구성원이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즉, 집은 그 시대 생활과 의식, 문화를 담아내는 총체적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생활과 의식, 문화를 담는 문화유산으로서 집을, 현대에 맞는 '우리 집'으로 정형화하기 위한 지은이의 연구는 크게 세 가지 기준 요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전통한옥을 현대한옥으로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세 측면을 고려하면서 실제로 집을 지어왔다는 것이다.

"첫째는 '집의 배치와 공간구성'이라는 내용적 측면이다. 둘째는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틀 즉, '뼈대와 지붕모양'이라는 형식적 측면이다. 셋째는 '난방 및 건축 소재'로서 기능적 측면이다." - 본문 중에서

첫 번째로, 집의 배치와 공간 구성이라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대청마루(거실)와 방을 중심으로 하여 주방과 화장실 등 기능적 공간을 배치하는 것으로 한 채 안에서 '공간과 채 나눔'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옛 한옥의 사랑채, 안채와 같은 구분처럼 방이나 거실, 주방이라는 공간 개념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채'로 독립성 또한 보장하는 공간 구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 살림집 정신의 내용(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뼈대와 지붕 모양(집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해야 하는데, 집의 골조를 이루는 뼈대와 지붕 모양이 한옥을 구성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기둥, 도리, 보의 사괘맞춤으로 견고하게 짜 맞추어진 뼈대는 철물과 피스로 조립하는 서구 목조주택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 또한 집의 규모와 용도에 따라 처마길이와 모양이 다른 여러 가지 지붕도 한옥이 가진 특징이라고 한다.

세 번째로, 난방과 건축소재의 측면에서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흙, 흙집 기능을 대안 건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단열기능과 창호 기능을 갖추기 위하여 황토벽돌로 벽체를 쌓는 방식을 도입하였으며, 황토벽돌 이중 쌓기는 전통한옥과 현대한옥을 구분하는 핵심적 요소라고 한다.

특히 대안건축으로서 흙집을 짓기 위해서는 회나 시멘트 경화제를 사용하지 않은 흙벽돌, 즉, 흙 본래의 성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모양이나 강도, 규격화와 대량생산이 가능한 '진공 압착식 황토벽돌'이 적합하다고 한다. 흙집 본래 기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 주택과 같은 단열기능을 담아내는 것으로 현대한옥에도 살림집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한옥을 계승하는 '현대한옥'

이동일이 쓴 <황토집 바로 짓기>에는 전통한옥을 계승하는 현대한옥의 공간구성, 난방과 설비방식의 변화, 뼈대, 처마, 지붕의 가구(짜 맞추기)방식의 변화, 기와를 비롯한 지붕 소재의 변화, 한옥으로 2층 집 짓기, 현대 한옥을 위한 벽 만들기, 창과 문, 황토미장과 모르타르, 천장과 구들, 마루 만들기 그리고 현대식 주방과 화장실 설치에 이르는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전통한옥의 내용과 형식, 의미를 계승하는 현대한옥으로의 변화를 끼워 넣기 식의 부조화가 아닌 '전통과 현대의 변증법적 통일'로 승화시키고자하는 지은이 철학이 담겨있다.

"현대 한옥은 밖에서 보면 한옥이되, 내부 공간은 현대주택이고, 기능은 흙집인 주택으로 거듭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아울러, 현대한옥을 짓기 위한 의미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황토집 바로 짓기>에는 기초공사에서부터 현대한옥을 시공하는 과정이 상세한 사진과 더불어 소개되어 있다. 책만 보고 누구나 바로 시작할 수는 없겠지만,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거나 흙집 짓기, 나무집 짓기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만 보고도 얼마든지 '현대한옥'을 지을 수 있다.

집을 직접 지을 수 없는 경우라도 한옥이 가지는 불편함(난방, 소음, 외풍)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현대한옥'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또 구조, 지붕, 벽체, 창호, 마감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유형별 건축비용도 예시하고 있다.

생태건축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현대한옥의 수세식 화장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현대인의 보편적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흙과 나무로 지으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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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에서는 추위도 디자인해서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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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황스자가 쓴 <북유럽의 매력 ICE>

인터넷으로 책을 고르면서 '황스자'라는 지은이 이름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알고 보니 그는 대만 사람이다.

대만 사람이 쓴 책은 처음 읽게 되었는데, 대만 이야기가 아니라 북유럽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을 잘 아는 박노자가 쓴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를 통해 북유럽을 만났다. 내가 보기에 <북유럽의 매력 ICE>는 전반적으로 박노자가 쓴 책보다 나은 부분이 별로 없어 보인다.

박노자가 쓴 책은 처음부터 한국인 독자를 위해서 쓴 맞춤형일 뿐만 아니라 학자로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사물과 사회현상을 보는 깊은 통찰력이 드러난다.

박노자는 북유럽 노르웨이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좋은 점만을 기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노르웨이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 노르웨이와 한국의 정치, 경제체제를 비교함으로써 사회문화적인 차이의 원인을 찾고 있다. 황스자가 쓴 <북유럽의 매력 ICE>는 사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차이들에 주목하지는 못한다. 그냥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솔직하게 느낀 대로 쓴 책이다.

그렇다면 북유럽이란 도대체 어떤 나라를 말하는가? 책을 읽다 보면, 노르웨이 이야기도 있고, 스웨덴 이야기도 있는데, 지은이가 말하는 북유럽 5개국은 대체 어느 나라일까? 책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아도 북유럽 5개국이 어느 나라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대체로 북유럽이라고 할 때는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다섯 나라를 가리킨다고 한다. 다섯 나라가 함께 북유럽협의회를 구성하고 있고,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연구, 복지, 환경 그리고 국제문제에 관한 다양한 협의를 할 뿐만 아니라 북유럽 각료회의도 개최한다는 것이다.


북유럽의 매력은 지혜, 창의력 그리고 기품

이런 점들을 보면, 황스자가 쓴 <북유럽의 매력 ICE>는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다섯 나라에 관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책 제목이 주는 또 하나의 의문 'ICE'는 무엇인가?

지은이는 ICE에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떠들썩한 것보다는 침묵을, 그리고 격정보다는 냉정을 우선시하는 북유럽의 슬로 템포 경제를 뜻하고, 다른 하나는 Intelligence(지혜), Creativity(창의력) 및 Elegance(기품)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라고 한다. 그는 Intelligence, Creativity, Elegance 이 세 가지를 북유럽이 가지는 경쟁력의 핵심으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황스자가 쓴 <북유럽의 매력 ICE>는 이 세 가지 주제별로 각각 몇 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번역자는 대만과 북유럽을 비교하면 쓴 이 책이 우리에게도 유익할 수 있는 것은 대만이 한국과 비슷한 동아시아 국가이고 경제적인 발전 단계도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일보다 여가 활동을 우선시한다. 평소에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하며, 밤늦도록 친구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고 심야버스를 타고 귀가하기도 한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데 익숙하다고 한다.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중산층도 예술, 음악, 건축 등의 창작을 구현할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은 균등한 부에 기초한 사회주의 국가이며, 정부는 수준 높은 교육 및 사회 복지를 제공하며, 이를 위해 국민들은 약 50% 정도 되는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불이 넘지만,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구매력은 대만보다 못하다." - 본문 중에서

북유럽인들은 명품을 고집하지 않으며, 유행을 좇아다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에 디자인이 멋스러운 제품을 선택한단다. 국민소득이 높은 노르웨이에 루이뷔통 매장이 2006년에야 처음으로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자동차를 고를 때도 튼튼하고 기름을 덜 먹는 실용적인 차를 선호하지, 겉만 번지르르한 차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치스럽지 않은', '균등한 부'라는 경제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북유럽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그들이 작은 일에도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본다. 작은 일에도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인생을 잘 알고 아울러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소비는 인생에 대한 태도와 품위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사람은 저마다 나름의 소비 철학이 있으며, 자신의 스타일과 가치에 어울리는 것을 선택한다. 이런 물건들이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돈의 주인이 되어 돈을 쓰고 싶을 때는 쓰지만 평소에는 소박하고 간편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생활이다." - 본문 중에서

성은 일상적이고 즐거운 일

북유럽의 성교육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 북유럽인은 아이들에게 성은 삶의 일부로 정상적이고 즐거운 일이라고 가르친다. 남녀는 서로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북유럽의 개방적인 성을 문란한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순전히 아시아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

오히려 아시아 나라들에서는 어떤 여성이 눈길을 끌면 통상적으로 외모와 몸매가 가장 먼저 입방아에 오르지 그녀의 능력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결국 이것은 보이지 않는 성차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북유럽의 술집에서 여성에게 술을 팔게 하는 것도 성차별이다. 북유럽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남성의 보살핌을 받는 걸 싫어하고, 자신이 약자라는 느낌을 받는 행동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마찬가지다.

결혼 형태도 많이 다르다. 우선 동거가 일반화되어 있다. 동거는 두 사람이 함께 가정을 꾸려가면서도 개인의 자유로운 신분을 유지하는 새로운 가정형태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노르웨이에서 출생 신고가 된 아이들의 부모 중 절반 이상이 동거상태라고 한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정치적으로도 많이 다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내각의 여성 비율이 50%에 달하는 정치적 남녀평등 국가다. 북유럽 여자들은 무척 독립적이고 강하다.

"북유럽에서 남녀평등 사상이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원인은 정부가 법적으로 여성들의 취업권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여성은 적어도 1년의 유급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다. 국가에서는 어린이를 사회자산으로 보기 때문에 출산 및 양육 지원을 중요사업으로 간주한다. " - 본문 중에서

국가가 부모와 함께 아이를 보살피며, 경제적 보조 및 충분한 출산휴가 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경제적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해주었고, 남성은 일하고 여성은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성역할을 타파하게 된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전통적인 성역할 관념이 무너진 후에 가정이 더 화목하고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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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land Kakslauttanen _DSC18501 by youngrobv (Rob&Al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Welcome to the Ice Hotel
Welcome to the Ice Hotel by melolou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북유럽에서는 추위도 디자인해서 판다

"디자이너는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서도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그러니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쩌면 경치나 사물, 또는 당시 발생한 일, 아니면 디자이너가 길에서 만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참신한 디자인은 모두 아름답고 흥미로운 흑은 뜻밖의 영감에서 비롯된다." - 본문 중에서

북유럽에는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지)의 경지와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철학이 있다고 한다. 북유럽은 이런 '고요의 힘'을 라이프스타일에 적용해서 가식 없는 쿨함과 경제력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예컨대 스웨덴은 너무 추워서 찾는 사람이 없는 랩랜드 지역을 '아이스 호텔'과 '아이스 바'라는 아이디어를 내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로 발전시켰다. 건물 전체가 얼음으로 만들어진 아이스 호텔은 겨울이 지나면 모두 녹아내려 이듬해 다시 지어야 한다.

아이스 바는 오랫동안 앉아서 술을 마실 수 없지만, 독특한 아이디어와 디자인 때문에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는다고 한다. 마치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파는 아이디어와 다르지 않다. 이것은 교묘한 상술이 아니라 참신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이루어낸 일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이런 뛰어난 아이디어의 원천은 어디인가? 대체로 서로 다른 영역을 넘나들며 능력을 발휘하는 인재는 창의력이 뛰어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졌다. 또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떠올리는 데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분야에 열정을 쏟아 부어 얻은 경험은 인생에서 진귀한 자산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르게 생각해보기'는 우리를 다양한 삶의 체험으로 이끌어준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창의력의 근원이 바로 삶의 체험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집 안에 물건을 사들일 때 어른들은 '흰 것은 때 타기 쉬워', '이건 풍수에 영향을 줘서 안 돼' 등의 말을 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가지고는 창의력이 발휘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 본문 중에서

또한 창의력은 빠듯하게 채워지지 않는 느슨한 일상 속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채우기'에만 익숙하다. 모든 것을 잠시 뒤로 하고 휴식을 취하러 여행을 가면서도 여행 가방은 꽉꽉 채운다. 또한 항상 곳곳에서 들려오는 뉴스들로 머릿속을 꽉 채워야 안심할 수 있다. '비우기'를 해야 또 다른 것을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 같다.

지은이는 북유럽 사람들의 뛰어난 디자인 능력은 창의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결국 창의력이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우기'와 '다르게 생각하기'는 북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우리 삶에도 지혜와 기품을 선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황스자가 추천하는 북유럽의 매력   
 
다음은 지은이가 추천하는 '놓치기 아까운 북유럽의 매력 10' 중에서 몇 가지를 추려서 소개한 것이다.

▲택시는 전부 벤츠다. 벤츠를 사고 싶어도 능력이 안되는 사람은 북유럽에 가서 택시를 타면 된다.
▲스노보드를 타면서 휴대폰을 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훗날 스키장에도 '스키나 보드를 탈 때는 휴대폰 사용을 금합니다'라는 경고문이 생길지 모른다.
▲버스 기사가 5분이나 할애해서 길을 찾아준다. 뿐만 아니라 승객들도 모두 불평 없이 기다려준다. 버스 기사의 친절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진짜 궁금하면 박노자가 쓴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를 읽어라.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이지만, 현지 여성들은 결코 문란하지 않다. 오히려 남녀가 평등하고 진실한 사랑이 넘치는 곳이다.
▲줄을 서서 술을 산다. 높은 관세와 엄격한 규제 때문에 '주당'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사회다. 술은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선호도가 높은 상품임에 틀림이 없다.
▲여자가 바깥일을 남자가 집안일을 고정관념을 타파한 사회, 그녀들은 평균 신장이 170cm가 넘고, 운동, 사이클, 남자 갈아치우기와 정치를 좋아한다.
▲노르웨이에서는 노르웨이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다. 노르웨이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워낙 영어를 잘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세탁하는 즐거움, 덴마크에는 세탁카페가 성업 중이다. 빨래방 같은 카페가 아니라 카페 같은 빨래방이 발로 번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유럽의 매력 I.C.E. - 10점
황스자 지음, 성은리 옮김/이스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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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오나 2011.05.23 14: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북유럽은 디자인이 정말 생활화되어있다고 하더군요.
    그전에 알던 스웨덴사람은 이케아가 한국에 없는 걸 무척 서운해했죠.
    디자인 감각을 자랑하고 싶어서라고 하더라구요 ㅎㅎ

    • 이윤기 2011.05.26 09:32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저도 이 책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데...이케아가 뭔가요?

    • 네오나 2011.05.26 12:41 신고 address edit & del

      이케아는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입니다. 저가임에도 디자인이나 편의성이 좋고 무엇보다 친환경 소재를 많이 쓰는 곳으로 알려져있습니다.

20년전 싹튼 꿈을 예술로 펼치는 작가, 배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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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래 바디페인팅 퍼포먼스를 보고...

춤과 미술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지는 한바탕 퍼포먼스, 개인적으로는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저런 것도 미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역시나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 작가는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아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더군요.

추상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배달래 작가의 퍼포먼스 역시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 작가가 작품 제목을 알려주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더군요. 역시나 작가는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느껴 보라"고 하더군요.


작가와의 대화시간에 어떤 분이 자신은 너무 분석적이어서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고 하던데, 저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이해가 잘 되지는 않더군요. 느낌으로 전율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분석적으로 관람하면서 얻은 소감은 이렇습니다.


바디페인팅 퍼포먼스 라는 것이 다른 미술 장르와 달리 작가와 모델이 함께하는 작업이더군요. 저는 신이 들린듯이 몰입하여 작업하는 작가도 참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즉석에서 작가와 함께 호흡을 맞춰 작업하는 모델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작가의 작업뿐만 아니라 모델의 움직임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반쪽이더군요. 그날 함께 작업하신 분이 난생처음으로 배달래 작가와 호흡을 맞췄다는 것도 참 놀라웠습니다.

 

제 수준(삶의 경험)에는 퍼포먼스는 좀 어렵더군요. 그러고보니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감성보다는 이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네요. 아무튼 감성이 좀 부족해도, 그냥 그림만 보고도 무얼 그렸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작품, 해설을 들으면 '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 팜플렛에 실린 것 같은 정밀하게 그려진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더 있네요. 배달래 작가의 바디페인팅 공연(?)을 보기 위하여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였다는 것도 아주 놀라웠습니다. 공연장에 좀 늦게 도착하였는데 일찍 오신 분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더군요.

대부분 난생처음 바디페인팅 퍼포먼스를 보는 관람객들일텐데도 저와는 공연에서 받은 느낌이 많이 다르더군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는 분, "감추어진 욕구가 분출하는 작업", "내면의 원초적 끼를 표현하는 것" 이라고 설명하는 작가, 그리고 그 작업에 공감하고 공유하였다는 관객들...


작가는 순간의 느낌을 함께 공유하고 그 느낌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그 느낌에 공감하였다고 하더군요. 저 처럼 둔감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많은 관람객들이 작가, 모델과 함께 호흡을 나누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저는 배달래작가의 작품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삶이이었습니다. 20년 전에 꿈꾸었던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느꼈습니다.

대학 시절에 베르슈카라고 하는 세계적인 작가의 바디페인팅 사진집을 본 후에 키워 온 바디페인팅에 대한 꿈을 20년이나 묵혀놓았다가 자신의 삶으로 현실화시킨 그 저력이 참 놀라웠습니다.



아울러 미용과 미술이라는 경계에 서 있는 경계인으로서의 삶도 부러움이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경계를, 누구나 쉽게 꿈꿀 수 없는 경계를... 이제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넘나들 수 있는 '자유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더군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삶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작품보다는 경계를 너머서는 작가의 자유로운 삶이 더 마음이 끌리더군요. 또 그런 삶을 고향에서, 지역에서 펼쳐가겠다는 작가의 생각도 매력이 넘치더군요.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작가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저만은 아니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배달래 바디페인팅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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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 2011.05.07 11:56 address edit & del reply

    그날 나는 왜 님을 보지 못했을까요? 나도 그 장소에 있었는데...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같은 상황을 보고 표현하는 여러 방법들을 배우게 됩니다. 감사.~

    • 파비 2011.05.07 13:04 address edit & del

      이윤기님은 자리를 못잡아서 구석에서 서서봤답니당~~~ 그러니까 빨랑빨랑 오셔야지용~~ ㅎㅎ

    • 이윤기 2011.05.09 16:08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뒤풀이에 계셨으면 인사 드렸을터인데...파비님 그래도 행사 마치고 열씸히 달려 갔습니다.

  2. 지대지대 2011.05.10 14:38 address edit & del reply

    개인적으로 태국에서 퍼포먼스를 했던적이 있었는데 10명정도의 인원이다보니 서로의 호흡과 타이밍 그리고 준비과정과 컨셉에서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누군가 무엇을 보여주던 그것을 느끼는것은 감상자의 몫이지만 작가의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들어보면 자신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이 합쳐서 공감각적인 상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중요한 것 같아요. ㅎㅎ 좋은 경험을 하고 오셨네요~

에펠탑, 왕정타파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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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체류하고 있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파리 연작 두 번째 책 <파리의 장소들 - 기억과 풍경의 미학>을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은 연작의 첫 번째 책 <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에 이은 두 번째 책이며, 앞으로 세 번째 책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2009년에 나온 연착의 첫 번째 책인 <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은 파리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면서 걷기와 산책의 의미를 소개한 책이었다면, 두 번째 연작인 <파리의 장소들>은 구체적인 장소 열여섯 군데를 다닌 관찰기록입니다.

이 책은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파리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파리에 살아서 유명해졌는지, 그들이 살았기 때문에 파리가 유명해졌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파리에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 그리고 학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장소에 관한 책이지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그 장소와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기 위해 만든 도시의 장소들에 어찌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파리 연작은 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그와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회학자이지만 문학적 글쓰기를 모색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시적인 순간도 있고 소설적인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박혀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어떤 장소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마치 그림이나 사진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섬세하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밤색 코트를 입은 할머니가 오른손에 바게트 반쪽을 들고 카페의 메뉴판을 보고 지나간다. 일고여덟 대의 자동차가 한꺼번에 몰려서 지나간다. 젊은 여자가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밀며 공원안으로 들어간다. 젊은 여자가 빨간 비옷을 입고 초록색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지나간다. 길 건너편에도 젊은 여자가 담배를 피우며 유모차를 끌고 간다. 흑인 남자 아이들 다섯 명이 왁지자껄하게 떠들며 떼 지어 지나간다."

바로 이런 식입니다. 캠코더로 찍은 장면 같은 느낌이 드는 문장입니다. <파리의 장소들>에는 곳곳에 소설 속 한 장면 같은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인용한 구절은 브라상스 공원 앞 광장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소설 같은 묘사, 여행 보는듯한 상세함

이뿐만 아닙니다. 또 다른 어떤 장소를 소개할 때는 마치 약도를 그려놓고 길을 설명하듯이 상세하게 전하기도 합니다. 집을 나와 목적지까지 가는 지하철·버스 노선도 상세합니다.

"63번 버스의 경우 리옹 역에서 출발하여 라 미에트 방향으로 갈 때는 내가 자주 다니는 생-쉴피스 광장 앞에 서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올 때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집에서 나올 때는 지하철 6번 선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

저자가 벨빌거리로 가기 위하여 파리코뮌 당시 마지막 항전 장소였던 주르댕으로 가는 방법도 독특합니다.

"나는 지하를 두더지처럼 다니는 게 싫어서 파시에서 72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파리시청까지 간 다음, 시청광장에서 지하철 11번 선을 타고 주르댕 역에 내리는 방법을 주로 이용한다."

그가 발견한 파리의 장소들은 걸으면서 발견한 장소들이고 걷기에 적당한 장소들로 옮겨갈 때는 늘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파리는 승용차가 없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도시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파리의 장소들>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잘 알려진 장소 다르게 보기인데, 에펠탑, 센강 위의 다리, 노틀담 사원, 몽마르트 언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2부는 피하고 싶은 장소 일부러 찾아다니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파리의 달동네, 몽파르나스 묘지 순례, 상태 감옥주변, 파리코뮌의 격전지 뷔트 오 카이 언덕입니다.

제3부는 장소에 숨은 뜻 자세하게 읽기라는 제목인데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 카르티에 재단의 정원, 에스파스 알베르 칸의 정원, 브라상스 공원 주변을 소개하였구요. 제4부는 한가로운 장소를 주제로 생루이 섬의 강변 산책, 생-마르탱 운하, 비에브르 강의 흔적 찾기, 튈르리 공원을 산책한 이야기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가장 흥미롭게 읽은 대목은 '에펠탑'이야기입니다. 짧은 파리 여행때 직접 가본 곳 중에 한 곳이기 때문이겠지요.

에펠탑 건립을 반대한 이유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세계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다가 철거되지 않고 보존되어 파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에펠탑 건립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모파상을 비롯한 유명 예술인들이 앞장서서 건립을 반대하였다고 합니다.

"에펠탑 건립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주요 논리는 에펠탑이 전통적인 미적 기준을 벗어나며 구체적인 용도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예술 작품이라면 몰라도 쓸모없는 기념비적 탑을 엄청난 돈을 들여 짓는 행위는 당시 부르주아들의 실용주의적 합리성에 부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에펠탑이 파리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인정받고, 구스타브 에펠이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더군요. 저자는 서구근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는 1955년에 에펠탑 찬사를 들려줍니다.

"직감과 과학과 신념의 열매이자, 용기와 인내의 딸리며 세계의 도시 파리라는 부식토의 열매인 에펠탑은 1889년 마치 깃발처럼 세워졌다. 나는 구스타브 에펠이 크고 높은 정신의 부드럽고 능숙한 계산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확신한다."

사회학자인 정수복이 들려주는 노트르담을 대신하여 에펠탑이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된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에펠탑은 왕정 타파와 민주주의의 상징이며 파리코뮌이 끝나고 수립된 제3공화정이 내세운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을 상징한다. 에펠탑은 19세기 말 무한한 진보를 약속하는 과학기술의 상징이었다. 노트르담의 첨탑이 신을 향한다면 에펠탑의 정상은 인간 이성의 완전한 발현을 추구한다."

에펠탑이 세워진 장소가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들의 집회장소였다는 '역사성'에 주목하였으며, 근대성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19세기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 평화의 탑 사이로 보이는 에펠탑  ⓒ 이윤기  파리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된 이유

 

한편,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 된 두 번째 이유도 재미있습니다. 정수복은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 된 두 번째 이유로 '무용성'을 말합니다.

"궁전이나 사원, 현대의 고층 건물들은 어떤 기능이 있다. 그러나 에펠탑은 아무런 기능이 없는 순수한 상징이다. 에펠탑은 그 안에 볼 것이 없다. 그러나 방문의 장소로서 에펠탑은 파리 전체를 보여준다."

고유한 기능이 없는 에펠탑은 '기능이 없는 순수한 상징성' 때문에 파리 전체를 조망하는 장소라는 특성으로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에펠탑은 돌을 재료로 하는 건축의 시대에서 철을 재료로 하는 건축의 시대로의 전환점이기도 하답니다.

"철은 건물 이전에 농기구와 무기를 만드는 재료였지만, 에펠의 시대에 와서 강을 건너는 다리와 산을 이어주는 육교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돌아가야 할 곳을 직선으로 이어주는 철재 구조물들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인간의 통제 능력도 키워주었다."

에펠탑은 7년마다 한 번씩 페인트칠을 하고 250만개의 나사를 조여야 하는 차가운 느낌의 철재 건축물입니다만, 사람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자유를 상징하는 절대적인 기념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정수복이 쓴 <파리의 장소들>은 기억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정수복은 "기억은 장소에서 온다. 장소는 기억이 사는 집이다"라고 하였더군요. 그는 이 책에서 파리에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 그리고 지식인들을 등장시킵니다.

정수복이 자주 가는 파리의 장소에는 '기억'들이 새겨져있습니다. 어떤 곳에는 동판으로 어떤 곳에는 이야기로, 또 어떤 곳에는 역사로 그리고 또 다른 어떤 곳에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소와 기억은?

지난해 12월에 읽기 시작한 <파리의 장소들>은 꽤 오랫동안 읽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파리를 잘 아는 분들, 파리를 구석구석 다녀본 분들에게는 훨씬 더 흥미로운 책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리를 잘 모르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저자는 "파리라는 도시를 머릿속으로 걸어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이 책에서 상상 속의 도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더군요.

하지만, 상상 속의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파리의 장소들>을 읽으면서 내가 사는 도시를 걷는 것을 많이 상상해보았습니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걷고 싶은 거리, 오랜 시간 머무르고 싶은 장소,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지난 주말에 서울에 있는 아름다운재단에 볼 일이 있어 북촌 한옥 마을이 있는 가회동 길을 한 시간 남짓 걸었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일찍 나섰더니 근처에 도착하였을 때 시간이 많이 남더군요.

정수복의 책 속 <파리의 장소들>을 떠올리면서 가회동 길을 걸어보았지요. 저자의 연작 <파리를 생각한다>와 <파리의 장소들>을 읽은 덕분에 서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짧은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파리의 장소들>은 파리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내가 사는 도시에서 파리와 같은 공간과 장소를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장소들의 기억과 장소들의 의미를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맨 마지막장을 넘기면서 문득 정수복이 <파리의 장소들> 대신 <서울의 장소들>을 책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파리의 장소들 - 10점
정수복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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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뜻한 카리스마 2011.01.15 08:12 address edit & del reply

    각 도시와 더불어 인물이 나온다니 그것도 생동감 있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사람들마다 파리에 대한 동경심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파리를 갔다온 친구가 너무 더럽다며, 실망했다고 말하니 그 동경심이 떨어지더군요-_-;;;ㅋ

    • 이윤기 2011.01.16 07:45 신고 address edit & del

      파리의 내밀한 부분을 전해주는 저자 정수복 선생의 내공이 대단합니다.

      파리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rladydxor 2011.01.15 09:36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셨네요.
    사람의 시야는 자기 중심적으로
    또 아는 만큼 보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독서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거지요.

    이부장님의 그 독서량이며 포스팅 능력에 경탄하고 있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이윤기 2011.01.16 07:46 신고 address edit & del

      선생님,

      과분한 칭찬과 격려 고맙습니다.

임항선 기차레일 육교 또 훼손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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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기차길 임항선에는 오래된 육교가 하나 있습니다. 만들어진지 40여년 정도된 이 육교는 독특하게 기차레일을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마산 임항선, 진영역을 비롯하여 전국의 몇몇 곳에 기차레일로 만든 비슷한 육교들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마산 임항선에 있는 이 육교는 1900년대 초반에 만든 레일을 걷어 낸 후 육교를 만드는 재료로 재활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육교를 이루고 있는 기차레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산연도로 추정되는 숫자가 표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년 동안 잘 버티고 서 있던 이 육교가 처음 훼손 당한 것은 지난해 임항선 그린웨이 공사를 시작할 때입니다. 육교 난간을 다 잘라내고 방부목재로 새단장을 하였더군요. 류창현 건축사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팀블로그를 통해 '새단장한 구름다리가 달갑지 않은 이유'를 포스팅 하였더군요.

어린 시절을 임항선 근처 동네에서 보낸 류창현 건축사는 이 육교를 '구름다리'라고 불렀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겉모양이 좋아보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새겨진 육교를 너무 쉽게 바꿔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90년이나 된 기차 레일로 만든 육교는 흔치 않은 조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마산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근대문화 유산 중 하나가 훼손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시 아쉬운 마음을 담아 제 블로그에 몇 편의 글을 포스팅하였습니다. 나중에 우연히 들렀던 진영역에서 흡사한 모양의 육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최근 임항선 육교가 또 한 번 훼손되었습니다. 근처에 GS자이 아파트 공사를 마무리 하면서 아파트 주변 도로를 정비하는데, 임항선 육교 일부가 잘려났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도로 정비를 하는 것 때문에 임항선 육교를 잘라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지만 아무튼 육교 일부가 훼손되었습니다.

인근을 통행하는 보행자들에게 더 좋은 보행 여건을 제공해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차량의 소통을 원할하게 하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임항선 육교를 훼손시켜야만 할 만큼 중요한 공사를 하는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일입니다만, 지난번 난간을 잘라내고 방부목을 입힌 것 같은 그런 공사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계단 일부가 잘려나간 임항선 육교는 1주일이 넘게 지나도록 흉물스런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과연 보행 환경의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해서 육교의 일부를 잘라낸 것인지, 혹은 다른 어떤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잘라낸 것인지 임항선 육교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지켜 볼 생각입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육교가 아니기 때문에 원형이 자꾸 훼손되는 것이 참 많이 아쉽고 서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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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엉클 덕 2010.11.12 03:16 address edit & del reply

    기차레일로 만든어진 육교에 대하여 처음 알았네요.
    매우 희귀성이 있는 다리인데, 아쉽게도 저렇게 잘리고 부숴지고 있군요...
    님들의 깊~은 뜻이 있는건가요?

    • 이윤기 2010.11.12 09:36 신고 address edit & del

      원형을 훼손해버려.... 근대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많이 훼손된 것 같아 아쉽네요.

      앞으로 공사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야지요.

는개비 맞으며 신어산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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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내내 '는개'를 맞으며 김해에 있는 신어산을 걷다왔습니다. 저는 는개라는 말을 이날 처음들었는데, 우리말에는 안개와 이슬비 사이를 일컫는 '는개'라는 말이 있다더군요. 는개는 안개 보다는 굵고 이슬비 보다는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말한답니다.

신어산 등산을 할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가 짙은 는개를 만나 산행을 그만두고 절집 구경을 나섰습니다. 신어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나란히 세워져 있는 동림사와 서림사를 구경하였습니다.

서림사는 '은하사'라고 많이 알려져 있으며 신어산에 있는 여러 절집 중에서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져있습니다.(도로 표지판에도 은하사만 표기되어 있지요.)


은하사는 2001년에 개봉한 영화 '달마야 놀자' 때문에 더 유명해졌습니다. 박신양이 나오는 영화인데, 당시 우스게 소리로 한국 영화의 기본 흥행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영화라는 평가(?)가 유행하였습니다.

기본 흥행 조건이란 조폭이 나오는 영화는 조폭분들이 모두 보러 가고, 스님이 나오는 영화는 스님들이 모두 보러 가는데, 스님과 조폭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기본 관객 동원에 성공한 영화라는 그런 우스게 말 입니다. 


영화 때문에 유명해진 은하사는 2002년에 일본 시민단체 분들이 마산을 방문하였을 때 함께 가 본적이 있습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 대표자 일행이 제가 일하는 단체의 초청으로 마산을 방문 했을 때, 국립김해박물관과 금관가야 유적지 그리고 신어산 은하사(서림사)를 함께 구경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신어산(神魚山)은 '신령스런 물고기'란 뜻을 가진 수려한 경관을 지닌 산입니다. 신령스런 산이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 계룡산 다음으로 무속인과 도사가 많은 산이 신어산이랍니다. 


오전 내내 는개가 내렸습니다. 카메라만 아니었으면 우산을 받치지 않고 걸어도 좋은 날씨였습니다. 짙은 안개와 는개 때문에 더 큰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산행을 포기하였는데, 종일 큰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동림사와 은하사는 입구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동림사를 먼저 둘러보았습니다. 동림사는 가락국(43-532) 초기에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림사에서 가락국 초기에 세워진 절이라는 느낌을 주는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안내해주는 분이 없으니 아는 것이 없는 제 눈에는 더 이상 보이는 것도 없었습니다. 동림사는 절을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되는 중이더군요.


동림사에는 명상의 길도 있습니다. 천천히 둘러보며 산책하기에 참 좋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래 사진으로 보시는 담쟁이도 참 예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호젓한 여행은 날씨가 안 좋은 날이 딱 제격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사람이 많아 이런 느낌을 느껴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어산 역시 보통 주말에는 사람이 많이 몰려 여간 북적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어디를 바라보고 계실까요? 접집도 불상도 나한상들도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장 보살(?) 한 분만 비스듬한 하게 다른 방향을 보고 있습니다. 바다쪽을 보고 있는데, 혹시 대마도나 일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법당 아래쪽 마당에 빨갛게 익은 '앵두'나무가 반가웠습니다. 절집 마당에 있는 나무라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인지 잘 익은 앵두가 수북히 달려있었습니다. 저는 두 개만 따서 맛을 보았습니다.

동림사를 둘러보고 곧장 서림사(은하사)로 갔습니다. 자리잡은 위치만 보면 마치 쌍둥이 절집 같습니다만 두 절의 분위기는 많이 다릅니다. 서림사 역시 동림사와 마찬가지로 장유화상이 창건한 절이라고 합니다.



은하사는 8년 전에 갔을 때에 비하여 많이 달라졌더군요. 우선 절이 커졌습니다.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서 전체적인 경관은 많이 흐트러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절에 신도가 많아지면 절집이 자꾸 늘어나고 건물이 늘어나다보니 처음 절을 세울 때 고려하였던 자연과의 조화 같은 것은 무너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찍은 사진을 찾아보지 않아 정확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전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절집은 커지고 조용하고 '단아한' 느낌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절집 마당에 까지 승용차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도 별루더군요.



은하사 건물 한 켠에는 서림사라는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스님들이 처소로 쓰는 건물인듯한데, 서림사라고 하는 옛 현판도 붙어 있고, 다른 현판들도 함께 붙어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의 석탑은 경내 어딘가에 세워져 있던 탑을 옮겨 놓은 모양입니다. 비바람을 맞은 흔적으로 보면 꽤 오랜된 탑인듯 보이는데, 바위위에 다소 불안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탑을 고여놓은 돌들을 보면 정성을 들여 옮겨놓았다는 느낌을 별로 받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생태지붕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절집에서 얻은 것은 아닐까요? 기와 사이에 이끼와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풀밭이 될지도 모르겠더군요. 은하사는 8년전 처음 왔을 때의 소박한 느낌이 많이 사라지고 없는 탓인지, 이끼와 풀이 자라고 있는 기와 지붕이 더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사진이 너무 많아 다 보여드리지 못합니다만, 천진암 입구까지 걷는 산책길도 참 아름답습니다. 천진암으로 가는 길에는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습니다.


※ 처음 글을 쓸때 '넌개비'라고 틀리게 썼습니다. '는개'가 맞다는 것을 알고 모두 고쳤습니다.

비의 종류

는개 -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보다 조금 가는 비
이슬비 - 아주 가늘게 오는 비, 는개보다 굵다
가랑비 - 가늘게 내리는 비, 이슬비보다는 좀 굵다
보슬비 - 바람이 없는 날 가늘고 성기게 조용히 내리는 비
실비 - 실같이 가늘게 내리는 비
채찍비 - 채찍을 내리치듯이 굵고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비
장대비 -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내리는 비(작달비)
억수 - 물을 퍼붓들이 세차게 내리는 비
(KBS 저널 2010년 8월호)
우리말 다듬기 누리집 '말터' (www.malt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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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진동 지역 문화유산과 활용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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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 토요일 유장근 교수의 마산도시 탐방대를 따라서 마산진동 지역의 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산 진동 지역에 남아있는 옛 문화유산과 그 활용방안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마산도시 탐방대를 잠깐 소개하면 역사학자인 유장근 교수와 3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10월부터 월 2회 격주로 마산지역의 문화유산 답사활동을 진행하고 있고, 이번 진동 탐방은 10번째 탐방입니다.

이번 진동 문화유산 탐방은 옛 진해현 관아와 청동시 시대 유적지, 팔의사 창의탑, 이교재 선생 묘역, 근대민족교육의 산실 경행재, 곡안리 양민학살유적지, 여양리 민간학살 유적지를 둘러보는 코스였는데요.

옛 진해현 관아는 현재 진동읍 사무소와 진동중학교 자리입니다. 옛 관아 건물과 사령청, 마방 등 부속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요. 20 여년 전에 화재로 소실된 객사의 흔적도 그대로입니다.

지역사를 연구하는 분들에 따르면 옛 진해현 관아는 유명한 낙안읍성에 뒤지지 않는 규모라고 합니다. 읍사무소 주변으로 옛 성터가 그대로 남아있어 복원을 할 경우 낙안읍성 못지않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진해현 관아 터 뒤편으로 청동기 시대 유적지가 발견됐고, 조선시대 유물로는 정약용의 ‘다산어보’ 보다 앞서는 국내 최초의 어보인 ‘우산이어보’가 바로 삼진지역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옛 진해현 관아와 성터를 복원하고 청동기 유적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건립된다면 낙안읍성 터에 뒤지지 않는 관광 유적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읍사무소와 진동 중학교 운동장에는 수령 수백년이 넘는 거대한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것도 모두 옛 진해현 관아에 남겨진 유물들이라고 합니다.

한편 진동 일대에는 1919년 4월 3일 삼진연합대의거와 관련한 역사와 그 유적들도 남아있습니다. 1919년 당시 삼진연합대의거에는 2천여명의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일본군의 발포로 8명이 순국했다고 합니다. 진동지역에는 이교재 선생 묘역, 민족학교 경행재, 팔의사묘역, 팔의사 창의비, 팔의사 창의탑들이 모두 삼진만세운동과 관련한 유적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곡안리와 여양리 일대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과 관련한 유적들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활동에 참여한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산에 정말 많은 역사 문화 유적이 남아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해안경관과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 유적이 산재한 마산은 역사,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휴양, 관광, 문화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도시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공업단지와 대규모 고층 아파트만 지어 소득과 인구를 늘이겠다는 낡은 발전 방식을 버리고, 숲, 길, 이야기, 사람, 역사, 문화가 있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에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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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산둘레길이 제주올레, 지리산길에 모자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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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마산시가 희망근로 사업의 일환으로 의욕적으로 추진한 무학산 둘레길을 걸어보았습니다. 오늘은 무학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느낀점을 말씀드리려하는데요.

사실 희망근로 사업이 바람직한 실업정책인가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팔용산 둘레길 조성사업과 함께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가을 완공된 무학산 둘레길은 월영동 밤밭 고개에서 석전동 봉화산에 이르는 12.5km의 구간인데요. 무학산 2 ~4부 능선을 따라 바다와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산책로 입니다.



마산시에서는 무학산 둘레길이 수평으로 완만하게 조성된 길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이나 아이들도 힘들지 않게 바람소리와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요.

막상 제가 직접 걸어보니 어른신들이나 아이들이 쉽게 걸을 수 있는 완만한 구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었습니다.

제주올레길과 지리산길이 많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지역마다 걷기 좋은 길을 만들고 소개하는 것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습니다만, 무학산 둘레길은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무학산 둘레길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첫째 마산시가 조성한 무학산 둘레길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원래 있던 길과 새로 만들 길이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표지판이 있어도 길을 잃기 쉽습니다. 길을 잃는 사람들이 많은 탓인지 나무가지에 지나치게 이정표를 붙여놓아 지저분하기까지 합니다.

길을 걷다가 여러 곳에서 걷는 사람의 동선을 고려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학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특히 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만날재 구간에서는 한 참을 산 아래로 내려와야 둘레길이 연결되고, 반대로 완월폭포 구간에서는 한 참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야 길이 연결됩니다.


표지판만 보고 길을 찾기 어려웠던 탓인지 시에서 만들어놓은 표지판을 구부려서 방향 표시를 새로 해놓은 곳도 몇 군데 눈에 띄었습니다.


역사, 문화 컨텐츠는 만날재가 전부
공사 전에 전문가와 주민이 참여하여 의논하고 답사했어야...

제주올레길이나 지리산길에 비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마산시가 조성한 무학산 둘레길에는 역사와 문화 컨텐츠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날재 구간을 예외로 할 수 있겠지만, 올레길이나 지리산길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제주올레길과 지리산길은 자연과 더불어 사람, 마을, 이야기가 엮어진 길입니다. 올레길이나 지리산길에 비하면 무학산 둘레길은 그냥 토목공사와 조경공사마 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옛길과 지역 역사를 잘 아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들어진 올레길이나 지리산길과 관 주도로 다순히 길만 연결해 놓은 무학산 둘레길의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올레길과 지리산길은 지역 역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전문가들과 지역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서 환경, 생태, 생명과 같은 가치들을 중심에 두고 그냥 원래부터 있던 길을 연결하거나 최소한의 토목 공사로 길을 이어갔습니다.

아울러 공사구간 역시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냥 지도만 보고 길을 잇는 공사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마을과 이야기가 있는 길을 찾기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수 차례 직접 답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 마산만을 한 눈에 보는 멋진 전망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가 무학산 둘레길을 간다면?

마산 무학산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수 년 전, 제가 일 하는 단체 회원들과 무학산 등산을 할 때 지역 역사를 잘 아는 선배 한 분이 최치원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 흥미롭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최근 시민들의 참여 열기가 높은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가 무학산 둘레길을 걷는다면, 산자락에 묻혀진 역사에서 캐낸 수 많은 이야기가 엮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마산시는 무학산 임도를 활용해서 총 33.5km에 이르는 무학산 둘레길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단순한 토목, 조경공사를 넘어 시민들과 관심있는 전문가들을 참여 시키면 좋겠습니다. 

마산과 무학산이 가진 역사와 문화 컨텐츠를 중심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마을, 또 이야기가 이어지는 둘레길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파트와 빌딩에 꽉 막힌 마산만, 무학산 둘레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경관이다.

▲ 둘레길을 만들면서 일부러 황토를 깔아놓은 구간인데, 날씨가 따뜻해지자 얼었던 땅이 녹아 질퍽거려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황토길 옆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 이 글은 2010년 2월 2일 KBS 창원라디오 생방송 경남청취자 칼럼 방송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 2010년 2월 2일 KBS 창원라디오 생방송 경남 청취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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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부인권 2010.02.03 09:31 address edit & del reply

    역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이 대단합니다.
    파워 블로그의 위력을 다시금 느낌니다.

  2. 달그리메 2010.02.03 09:33 address edit & del reply

    읽으면서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안내판이 정확하지 않아서 길을 잘 찾지 못하겠더라는 이야기는 몇 번을 들었거든요.
    조만간 저도 이길을 한번 걸어볼 예정입니다만,
    이윤기님의 이 글을 보지않고 갔더라면 아무 생각없이 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 켄닉 2010.02.03 11:33 address edit & del reply

    이 포스트를 읽고 마산시가 다시 작업(?)에 착수했으면 좋겠네요 !

  4. 김천령 2010.02.03 11:47 address edit & del reply

    온나라가 걷기 열풍입니다.
    말씀하신대로
    풍경도 중요하지만 문화, 생태적인 마인드로 접근하지 않으면
    인간만을 위한 또다른 훼손에 불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김대하 2010.02.03 12:06 address edit & del reply

    이번 일요일에 무학산 둘레길을 다녀 온 후배도 불만이 많던데요... 진흙밭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6. 박정민 2010.02.03 13:07 address edit & del reply

    어제..둘렛길갔다가..질퍽한길..낚옆으로덮다지쳐..산보도 제대로못하고허리가아파내려왔습니다..연세많으신분들 미끌려다칠까 걱정입니다..마산시는할려면 확실하게하던지.아예안했슴합니다.저는정치경제관심이없지만.압니다..어떤게시민을조금이라도기쁘게하는지.저하나손해보고힘들어.몇사람이 웃을수있다면.만족합니다..공직자여러분들도 욕심조금만버렸슴합니다.

  7. 임종만 2010.02.03 17:43 address edit & del reply

    옳으신 지적입니다.
    테마가 있고 이야기가 있어야지요.
    언제 무학산이고 마산인데...
    아마 급하게 만드느라 아직 가미되지 못한것 같네요.
    이런 의견들이 모이면 좋은 둘레길이 될것 같습니다.
    이 구간으로 한정하는것이 아니라 기존 무학산을 중심으로한 길들과
    연계하면 큰 비용수반없이 걷고싶은길의 명소가
    될것을 확신합니다.

  8. 유림 2010.12.21 14:43 address edit & del reply

    무학산 둘레길 검색을 하다보니 익숙한 이름이 나와서 들어왔더니 이 선생님 블이였군요.
    저도 우리집 뒷산에서 시작해 역방향으로 걸어보았는데 정말 짜증이 확 올라왔어요.
    그래서 두번 다시 안갔는데 ㅎ
    다시 연결된 내서 중리 방면의 길은 그나마 마음에 들던걸요

근대도시 마산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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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항선 철길 위의 낡은 육교, 단순히 낡은 육교일까?

오늘은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해야할까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마산지역에는 마산역에서부터 신마산 부둣가에 이르는 100여년 역사를 지닌 임항선 철도가 있습니다. 마산에 철도가 처음 들어온 것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이고, 현재의 임항선은 1925년에 개통된 경남선의 일부인데요.

철도는 마산항의 개항과 더불어 마산이 근대도시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임항선 철도는 근대도시 마산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라고 할수 있습니다.




마산에서는 수년 전부터 도심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임항선 철길을 활용해서 문화, 관광 벨트로 활용하는 방안과 삭막한 도심지에 녹지 축을 형성하고 소공원을 만드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요, 최근 옛 북마산역을 비롯한 임항선 구간에 ‘소공원’조성과 그린웨이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녹지 공간이 부족한 마산에 임항선 철길과 옛 북마산역 공간을 활용해서 공원을 만드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만, 공사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마산시가 옛 북마산역 주변 공원 공사를 하면서 마산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마산에 하나 밖에 없는, 아울러 전국에도 다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차 레일로 만든 육교위에 합성 목재를 덧씌우는 공사를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건축, 역사 전문가들은 이 육교가 마산의 철도 역사를 대표하는 구조물 중 하나라고 평가하는데, 마산시가 소공원 조성 사업을 하면서 “계단과 육교상판에 합성목재를 덧대고, 기존 철재난간도 모두 잘라내어 합성목재로 난간을 설치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임항선 활용 방안에 대한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옛 북마산 터에 있는 이 육교가 특별한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가진 근대유산이라는 것을 강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공원 공사에서 육교의 원형이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는 이주영 국회의원이 주최한 2006년과 2009년 임항선 철도 활용 방안 세미나에 모두 참여하여 임항선을 비롯한 마산이 가진 근대 문화 유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오래된 것은 낡은 것, 낡은 것은 새 것으로...(?)

임항선 철길에 있는 육교를 마구잡이로 리모델링 한 것은 작은 사례 불과하지만 오래된 것은 전부 낡은 것으로 취급하고, 낡은 것은 새것으로 바꿔야 좋다는 도시 철학의 단면을 보여주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마산에서는 도시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한일합섬 공장 터를 비롯한 수많은 근대유산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얼마전 경남도민일보 초청 강연에서 마산도시재생위원회에 참여하는 서익진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하셨더군요. 한일합섬 공장터에 왜 섬유 박물관을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하고 말 입니다. 외국에서는 낡은 공장이 호텔,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으로 탈 바꿈하는 사례가 수 없이 많이 있다는 것이지요.

"서양에서는 도시에서 전망 좋은 데는 절대 건물을 짓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뷰 포인트(view point)를 곳곳에 확보하는 겁니다. 이게 밥먹여 주고 일자리 늘린다는 걸 그이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산은 추산공원에 가 서도 아이파크 스카이라인에 막혀 바다가 제대로 안 보입니다."(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 마산 한일합섬터에 섬유박물관이 왜 없지)

어디 그뿐인가요? 최근 관심있는 시민들의 참여 속에 성황리(?)에 진행 중인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활동을 지켜보면 마산이 문화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 많은 근대 유산이 수두룩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카페 :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걸어서 만나는 마산 이야기'

<유장근 교수의 마산 도시탐방대 관련기사>
섬유 왕국 한일합섬이 남긴 교훈
마산 도시의 발원지 마산창
옛 마산 세관의 발자취를 따라서
마지막 황제 순종의 행차길
마산청주 주조장의 마지막 모습 : 장군동 주조장의 정체
잊혀진 마산의 소주 공장을 찾아서
잊현진 마산의 청주 공장을 찾아서

근대 역사와 근대 문화유산을 도시가 가진 '자산'으로 생각한다면,
저 육교에서도 역사적 의미와 건축적 가치를 찾아서 '명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정책 당국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차 레일로 만든 육교에는 옛 북마산역 근처에 살았던 수많은 시민들의 삶의 흔적과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데요.합성 목재를 덧대어 놓은 새 육교가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모두 지워져버리겠지요.

근대 도시 마산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근대 역사와
저 육교와 같은 크고 작은 근대 유산이라는 사실에 대해 모두가 함께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 2010년 1월 26일 KBS창원라디오 생방송 경남, 청취자 칼럼 원고를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 KBS창원 라디오 생방송 경남 2010년 1월 26일 방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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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산사람 2010.01.30 17:53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 사는 사람인데
    마산의 유산이 저렇게 많은 줄 몰랐네요.ㅎ

    • 이윤기 2010.02.19 09:20 신고 address edit & del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활동에 한 번 참여해보세요.

  2. 조정림 2010.02.02 23:12 address edit & del reply

    2003년에 찍은 사진이죠? 우리 신랑의 모습이 있군요. 저도 저 어딘가에 있겠죠?ㅋㅋㅋ

  3. aner 2010.02.18 09:54 address edit & del reply

    마,창,진 통합과 통합시의 명칭이 결정된 지금이나 과거이나 마산에서 시급한 것은 현재의 수출자유지역을 재편성하고 노후된 건물들을 아파트형 건물로 재건축을 하므로써 전자산업 단지로 재육성 하는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산시가 안고있는 역사적 유물과 가치들을 보존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계획으로 꾸준히 추진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미래 성장 동력으로는 수출자유지역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 이윤기 2010.02.19 09:18 신고 address edit & del

      도시 전체의 균형발전, 국가이 균형 발전 전략과 맥을 같이 하여야 합니다. 무작정 공단만 만든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지금 정부처럼 수도권 집중화 정책을 고집한다면...텅빈 아파트형 공장 건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90년 된 기차 레일로 만든 육교 어디 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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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북마산역 육교 공사 꼭 해야했나?

옛 북마산역이 있던 자리에 육교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가요? 가끔 마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시더군요. 아마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 만들어진 육교가 아니라 기차가 다니는 길위에 만들어진 육교이기 때문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아래 사진으로 보시는 저 육교 입니다.



올해 마산시가 저 육교 아래 옛 북마산역이 있던 곳에 임항선 철길 위에 공원을 만듭니다.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번 사업은 마산 철도·해안선·임도 100리를 이용한 그린웨이(Green Way) 조성구간 가운데 1단계 사업으로 14.5㎞의 임항선·경전선 철도 폐선에 숲길과 소공원을 조성하는 공사 중에서 일부입니다.

방치되어 있는 임항선 주변 철길을 정비하여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마산시의 계획에는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또한 도심에 그린웨이와 녹지축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원칙적으로 찬성입니다. 그러나 옛 북마산역 주변 소공원 공사 계획에 사진에 보시는 저 육교가 포함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 입니다.



제가 선배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저 육교는 마산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육교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세히 보시면 저 육교는 어쩌면 우리나라 전체에 하나 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기차 레일'로 만든 육교입니다. 

짐작하건데, 사용연한이 지난 기차 레일을 재활용하여 기찻길을 건너야 하는 주민들의 편의시설을 만든 것이지요. 아마 당시로는 주민 숙원사업을 이룬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옛 북마산역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선배 한 분은 저 육교가 개통되던 날, 군악대가 와서 연주를 하면서 거창한 기념행사가 열리는 걸 본 기억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전국에 딱 하나 밖에 없는 기차 레일 육교일지도 모르는데...
 
건축을 전공하신 분들은 저 육교를 보더니, 30여년 전에 저렇게 단단한 철강 기차 레일을 저런 곡선으로 휘어서 구조물을 만들어낸 기술이 놀랍다고 하시더군요. 건축 구조의 측면에서 볼 때도 상당히 특이한 구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예사로 보았는데, 막상 건축 하시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 놀라웠습니다. 저 단단한 기차 레일을 어떻게 저렇게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서 구조물을 세울 수 있었을까요?  어떤 장비를 이용하였을까요? 여러분도 한 번 상상력을 발휘해보세요.

기차 레일이 얼마나 튼튼한지 30여년이 지나도 끄덕없이 튼튼하게 서 있지 않습니까? 시내 도로에 설치된 다른 육교 기둥들과 비교해보면 정말 튼튼하게 만들어진 육교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저 육교가 만들어진 것은 30여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저 육교를 만든 기차 레일의 역사는 그 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 것은 구조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시면 기차 레일에는 생산연도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지금 사진으로 보시는 기차 레일로 만든 저 육교 기둥은 1924년에 만들어진 것 입니다. 벌써 90여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요. 저 육교를 자세히 살펴보면 기둥마다 각각 다른 생산연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수명이 다 되어 걷어 낸 기차 레일을 재활용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저 육교가 이번 마산시의 소공원 조성 사업으로 합성 목재로 덧 씌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 새 단장한 구름다리가 달갑지 않은 이유) 건축사인 류창현씨가 팀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과 사진을 보면 "계단과 육교상판에 합성목재를 덧대고, 기존 철재난간도 모두 잘라내어 합성목재로 난간을 설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달갑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해 11월에 열린 마산임항선 활용 방안을 연구하는 이주영 국회의원 정책 세미나에서도 토론자의 한 사람으로 "소공원을 만들더라도 이 육교는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활용 방안을 찾는 것이 좋겠다"며 앞서 포스팅 한 내용을 마산시 도시환경국장님께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달갑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은 전부 낡은 것, 새것으로 바꿔야 좋다 것이 마산시 정책 당국자들의 판단인 것 같아 달갑지 않다는 것입니다. 낡고 오래 된 것은 무조 건 새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그 생각이 바로 낡은 생각입니다.

어쩌면 저 육교는 기차 레일이 보이도록 그대로 두었으면 옛북마산역 소공원의 명물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입니다. 기차 레일로 만든 육교 다른 곳에 어디 또 있던가요? 레일 바이크는 이미 여러 곳에 있지만, 레일 육교는 마산에만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대 역사와 근대 문화 유산을 '자산'으로 생각한다면, 저 육교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명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정책 당국자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 도시 마산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 바로 근대 역사와 저 육교와 같은 크고 작은 근대 문화 유산이라는 사실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 육교에는 옛 북마산역 근처에 살았던 수 많은 시민들의 삶의 흔적과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합성 목재를 덧대어 놓은 새 육교가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모두 지워져버리겠지요.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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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괴나리봇짐 2010.01.20 10:16 address edit & del reply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 중에 '추억'도 있는데, 그걸 너무 쉽게들 생각하네요.
    웬만하면 고쳐쓰고, 아껴쓰고 해서 흔적을 남길 생각을 해야 할 텐데,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능사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어쩌면 누군가의 공명심(시의원이든 시장이든) 때문에 사람들의 추억이 희생당한 건지도 모르겠죠.

    • 이윤기 2010.01.21 14:08 신고 address edit & del

      4선에 도전하는 시장님을 위한 과잉(?)이었을까요? 그 보다는 새것이면 무조건 좋다는 단순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2. 도미니 2010.01.20 15:07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시의 부족한 자원형편이라 그랬겠지만, 그 발상과 기술이 매우 훌륭합니다. 보조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주요구조부재를 최소한으로 사용한 것도 30년 전 수준으로는 매우 놀라운 일 입니다.
    그것만 으로도 보존가치가 충분 합니다.
    그렇기에, 그런 강철구조물에 나무 장식으로 덧대서 '꾸민다'는 발상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는 것 입니다. 저리 막무가내니 그 전에 가장 먼저 했어야 될 구조안전진단은 했을까 싶습니다. 목재장식의 무게가 문제가 아니라. 보존해야할 가치 있는 구조물로서 말입니다.
    차근차근 현재상태를 살피고 원형을 조사도 해서, 그 원형을 제대로 살려 기념물처럼 보존하고자 했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실은 더 생색도 나고 폼도 난다는 것은 죽었다 깨 나도 모르는 자들이 하는 게 바로 저런 마구잡이지요. 저게 생색은 커녕, 다니는 사람들 마다 "돈이 남아 썩어 내리는 갑다!" 그럴 겁니다 아마.
    최근 부쩍 마산 변두리 사람이 많이 다니지도 않는 곳의 멀쩡한 보도블럭을 걷어내고 맨 그게 그거인 블럭을 새로 깔아대는 꼴을 봅니다. 저런 것과 함께 왠지 수상쩍다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바로는 진영역에도 거의 똑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남한 전국의 철도 노선을 모두 다녀 봤습니다. 진짜로, 한 노선도 빠짐 없이 - 이거 자랑 입니다.ㅎ!) 진영역에 지금도 있는 줄 압니다만, 확인을 해봐야 할 듯 합니다.

    • 이윤기 2010.01.21 14:10 신고 address edit & del

      진영역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군요.

      기회 있을 때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완전히 없애버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3. 태지 2010.01.20 15:08 address edit & del reply

    며칠 전에 처음 옛 철길을 봤었는데 참 운치있고 좋더군요. 안타깝습니다.

    • 이윤기 2010.01.21 14:11 신고 address edit & del

      새마을운동 하듯이 도시를 개발하는 분들이 정책 결정을 하고 있으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정말 안타까운일이지요.

  4. sooop 2010.01.25 11:26 address edit & del reply

    어렸을 때 제가 살던 곳 근처입니다. 사진을 보니 생각이 조금씩 나는데, 추억이 어린 풍경이 이렇게 사라진다고 하니 너무 안타깝네요. 레일을 활용한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되는데... 이거 어디 TV같은 곳에 제보라도 해서 마산의 명물로 만드는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 이윤기 2010.01.26 13:23 신고 address edit & del

      방송에 소개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겠지요.

마산의 도시경쟁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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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가 마산의 도시경쟁력이다.

최근 행정구역 통합을 둘러싼 논의와 유장근교수의 도시탐방대 활동을 지켜보면서 근대 도시 마산의 도시경쟁력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마산 창동을 중심으로 부림시장, 어시장 일대를 답사한 마산도시탐방대활동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보면 “200년 이상 된 골목길이 마산의 숨겨진 보물이다” 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 사진출처 :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카페(http://cafe.daum.net/masanstory)


탐방대 일원이자 도시전문가인 허정도 선생은 “대한민국 어디를 살펴봐도 볼 수 없는 몇백 년 된 골목길이 마산에 남아있다. 마산의 골목길은 보물이 아니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 며 조선시대 골목은 역사적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근대 도시 마산의 경쟁력에 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실제로 마산의 경쟁력을 이야기 할 때 과거 전국 7대 도시에 들어가는 마산의 옛 명성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십니다.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마산에 공장과 기업을 유치해야만 마산이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하시고, 최근에는 행정구역 통합을 하여 공장과 기업이 많은 창원 같은 도시와 합쳐서라도 옛 명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 근대 역사와 문화를 경쟁력으로 만들어 성공한 도시 '유후인'


공장과 기업, 고층아파트만 도시 경쟁력이 아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마산의 도시 경쟁력은 공장과 기업을 유치하는 방법으로만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도시의 경쟁력을 말하려면,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 역사적, 사회적 조건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20여 년 동안 경남의 행정 중심도시로서 창원의 급성장과 마산이 쇠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지도자들은 마산의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고급아파트를 짓고 공장을 유치해야한다고 믿고 실제로도 그런 정책을 주로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산이 가진 경쟁력은 바로 ‘근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흔적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고대역사가 아니라 아직까지 체온이 가시지 않은 많은 근대문화 유적과 건물들이 마산시내 곳곳에 수두록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임항선 철길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문신미술관과 환주산일대 문화유적, 창동일대의 마산조창과 유정당, 200년이 넘은 조선시대 골목길, 순종임금의 순행길, 일제시대의 자취가 남은 여러 건물들이 모두 근대문화유산입니다.

21세기는 문화와 역사의 시대라고 합니다. 일본의 관광도시 유후인을 비롯하여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도시 중에는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성공한 도시가 많이 있습니다.

창원이 아무리 마산보다 재정자립도가 높고 돈이 많아도 결코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근대역사입니다. 마산이 가진 근대 역사 그것이 바로 마산의 도시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11월 24일 창원 KBS 라디오 생방송 경남 방송 원고를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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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르다 2009.11.29 19:20 address edit & del reply

    지금 마산의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마산의 근대유산은 개 발에 편자라고 봅니다.
    성장중심의 사고를 바꾸면 금방 찾을 수 있는 보석인데 말이죠.

    • 이윤기 2009.12.01 10:07 신고 address edit & del

      리더가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뀔 수 있겠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세상을 확~ 바꿔놓는 것 보면...그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2. 수원사람 2009.11.30 13:17 address edit & del reply

    골목이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군요.
    여하튼 살기 좋은 마산을 기원합니다.

  3. 진해사람.. 2009.12.09 15:54 address edit & del reply

    맞습니다. 몇년 전에 두산중공업에서 한국주재 외국 대사와 가족들을 수십명 초청했는데 잠은 창원에서 잤지만 관광일정은 문신미술관과 돝섬을 둘러보고 가더군요.. 창원에선 공장만구경하고 갔다지요.. 통합이 되면..마산은 어시장과 근대유산, 문화 중심지역으로... 진해 구도심은 벚꽃과 어우러진 해양군사관광지로..진해신항은 물류중심으로.. 창원은 생산중심으로..나눠 발전전략을 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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