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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에펠탑, 왕정타파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데?

by 이윤기 2011.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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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체류하고 있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파리 연작 두 번째 책 <파리의 장소들 - 기억과 풍경의 미학>을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은 연작의 첫 번째 책 <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에 이은 두 번째 책이며, 앞으로 세 번째 책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2009년에 나온 연착의 첫 번째 책인 <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은 파리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면서 걷기와 산책의 의미를 소개한 책이었다면, 두 번째 연작인 <파리의 장소들>은 구체적인 장소 열여섯 군데를 다닌 관찰기록입니다.

이 책은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파리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파리에 살아서 유명해졌는지, 그들이 살았기 때문에 파리가 유명해졌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파리에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 그리고 학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장소에 관한 책이지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그 장소와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기 위해 만든 도시의 장소들에 어찌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파리 연작은 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그와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회학자이지만 문학적 글쓰기를 모색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시적인 순간도 있고 소설적인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박혀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어떤 장소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마치 그림이나 사진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섬세하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밤색 코트를 입은 할머니가 오른손에 바게트 반쪽을 들고 카페의 메뉴판을 보고 지나간다. 일고여덟 대의 자동차가 한꺼번에 몰려서 지나간다. 젊은 여자가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밀며 공원안으로 들어간다. 젊은 여자가 빨간 비옷을 입고 초록색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지나간다. 길 건너편에도 젊은 여자가 담배를 피우며 유모차를 끌고 간다. 흑인 남자 아이들 다섯 명이 왁지자껄하게 떠들며 떼 지어 지나간다."

바로 이런 식입니다. 캠코더로 찍은 장면 같은 느낌이 드는 문장입니다. <파리의 장소들>에는 곳곳에 소설 속 한 장면 같은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인용한 구절은 브라상스 공원 앞 광장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소설 같은 묘사, 여행 보는듯한 상세함

이뿐만 아닙니다. 또 다른 어떤 장소를 소개할 때는 마치 약도를 그려놓고 길을 설명하듯이 상세하게 전하기도 합니다. 집을 나와 목적지까지 가는 지하철·버스 노선도 상세합니다.

"63번 버스의 경우 리옹 역에서 출발하여 라 미에트 방향으로 갈 때는 내가 자주 다니는 생-쉴피스 광장 앞에 서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올 때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집에서 나올 때는 지하철 6번 선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

저자가 벨빌거리로 가기 위하여 파리코뮌 당시 마지막 항전 장소였던 주르댕으로 가는 방법도 독특합니다.

"나는 지하를 두더지처럼 다니는 게 싫어서 파시에서 72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파리시청까지 간 다음, 시청광장에서 지하철 11번 선을 타고 주르댕 역에 내리는 방법을 주로 이용한다."

그가 발견한 파리의 장소들은 걸으면서 발견한 장소들이고 걷기에 적당한 장소들로 옮겨갈 때는 늘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파리는 승용차가 없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도시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파리의 장소들>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잘 알려진 장소 다르게 보기인데, 에펠탑, 센강 위의 다리, 노틀담 사원, 몽마르트 언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2부는 피하고 싶은 장소 일부러 찾아다니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파리의 달동네, 몽파르나스 묘지 순례, 상태 감옥주변, 파리코뮌의 격전지 뷔트 오 카이 언덕입니다.

제3부는 장소에 숨은 뜻 자세하게 읽기라는 제목인데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 카르티에 재단의 정원, 에스파스 알베르 칸의 정원, 브라상스 공원 주변을 소개하였구요. 제4부는 한가로운 장소를 주제로 생루이 섬의 강변 산책, 생-마르탱 운하, 비에브르 강의 흔적 찾기, 튈르리 공원을 산책한 이야기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가장 흥미롭게 읽은 대목은 '에펠탑'이야기입니다. 짧은 파리 여행때 직접 가본 곳 중에 한 곳이기 때문이겠지요.

에펠탑 건립을 반대한 이유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세계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다가 철거되지 않고 보존되어 파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에펠탑 건립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모파상을 비롯한 유명 예술인들이 앞장서서 건립을 반대하였다고 합니다.

"에펠탑 건립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주요 논리는 에펠탑이 전통적인 미적 기준을 벗어나며 구체적인 용도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예술 작품이라면 몰라도 쓸모없는 기념비적 탑을 엄청난 돈을 들여 짓는 행위는 당시 부르주아들의 실용주의적 합리성에 부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에펠탑이 파리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인정받고, 구스타브 에펠이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더군요. 저자는 서구근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는 1955년에 에펠탑 찬사를 들려줍니다.

"직감과 과학과 신념의 열매이자, 용기와 인내의 딸리며 세계의 도시 파리라는 부식토의 열매인 에펠탑은 1889년 마치 깃발처럼 세워졌다. 나는 구스타브 에펠이 크고 높은 정신의 부드럽고 능숙한 계산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확신한다."

사회학자인 정수복이 들려주는 노트르담을 대신하여 에펠탑이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된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에펠탑은 왕정 타파와 민주주의의 상징이며 파리코뮌이 끝나고 수립된 제3공화정이 내세운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을 상징한다. 에펠탑은 19세기 말 무한한 진보를 약속하는 과학기술의 상징이었다. 노트르담의 첨탑이 신을 향한다면 에펠탑의 정상은 인간 이성의 완전한 발현을 추구한다."

에펠탑이 세워진 장소가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들의 집회장소였다는 '역사성'에 주목하였으며, 근대성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19세기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 평화의 탑 사이로 보이는 에펠탑  ⓒ 이윤기  파리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된 이유

 

한편,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 된 두 번째 이유도 재미있습니다. 정수복은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 된 두 번째 이유로 '무용성'을 말합니다.

"궁전이나 사원, 현대의 고층 건물들은 어떤 기능이 있다. 그러나 에펠탑은 아무런 기능이 없는 순수한 상징이다. 에펠탑은 그 안에 볼 것이 없다. 그러나 방문의 장소로서 에펠탑은 파리 전체를 보여준다."

고유한 기능이 없는 에펠탑은 '기능이 없는 순수한 상징성' 때문에 파리 전체를 조망하는 장소라는 특성으로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에펠탑은 돌을 재료로 하는 건축의 시대에서 철을 재료로 하는 건축의 시대로의 전환점이기도 하답니다.

"철은 건물 이전에 농기구와 무기를 만드는 재료였지만, 에펠의 시대에 와서 강을 건너는 다리와 산을 이어주는 육교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돌아가야 할 곳을 직선으로 이어주는 철재 구조물들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인간의 통제 능력도 키워주었다."

에펠탑은 7년마다 한 번씩 페인트칠을 하고 250만개의 나사를 조여야 하는 차가운 느낌의 철재 건축물입니다만, 사람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자유를 상징하는 절대적인 기념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정수복이 쓴 <파리의 장소들>은 기억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정수복은 "기억은 장소에서 온다. 장소는 기억이 사는 집이다"라고 하였더군요. 그는 이 책에서 파리에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 그리고 지식인들을 등장시킵니다.

정수복이 자주 가는 파리의 장소에는 '기억'들이 새겨져있습니다. 어떤 곳에는 동판으로 어떤 곳에는 이야기로, 또 어떤 곳에는 역사로 그리고 또 다른 어떤 곳에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소와 기억은?

지난해 12월에 읽기 시작한 <파리의 장소들>은 꽤 오랫동안 읽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파리를 잘 아는 분들, 파리를 구석구석 다녀본 분들에게는 훨씬 더 흥미로운 책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리를 잘 모르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저자는 "파리라는 도시를 머릿속으로 걸어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이 책에서 상상 속의 도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더군요.

하지만, 상상 속의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파리의 장소들>을 읽으면서 내가 사는 도시를 걷는 것을 많이 상상해보았습니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걷고 싶은 거리, 오랜 시간 머무르고 싶은 장소,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지난 주말에 서울에 있는 아름다운재단에 볼 일이 있어 북촌 한옥 마을이 있는 가회동 길을 한 시간 남짓 걸었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일찍 나섰더니 근처에 도착하였을 때 시간이 많이 남더군요.

정수복의 책 속 <파리의 장소들>을 떠올리면서 가회동 길을 걸어보았지요. 저자의 연작 <파리를 생각한다>와 <파리의 장소들>을 읽은 덕분에 서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짧은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파리의 장소들>은 파리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내가 사는 도시에서 파리와 같은 공간과 장소를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장소들의 기억과 장소들의 의미를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맨 마지막장을 넘기면서 문득 정수복이 <파리의 장소들> 대신 <서울의 장소들>을 책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파리의 장소들 - 10점
정수복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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