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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이건희, 김용철 누가 진정 삼성을 배신했나?

by 이윤기 2011.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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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

지난해 가을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이 쓴 <허수아비춤>을 읽었습니다. 조정래 선생이 3년 만에 발표한 신작인데, <한강> 이후 10년간 품어온, 경제민주화의 청사진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정래 선생은 이 시점에서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경제민주화가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길로도 이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허수아비춤>을 썼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보니 소설 <허수아비춤>보다 더 기막힌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빼어난 작가인 조정래 선생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더 기막힌 일들이 현실의 '삼성'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소설보다 더 기막힌 삼성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의 비자금, 로비, 경영권 불법 승계 등에 관한 김용철 변호사의 기록을 담은 책입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도왔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님들은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간절했던 꿈이 경제 민주화로 열매 맺는 날'을 고대하며 그 일에 나섰다고 합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기대했던 경제민주화의 열매를 맺지는 못하였지만, 정치적 민주화뿐만 아니라 함께 경제민주화가 우리사회의 절박한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는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겉보기에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로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삼성 특검은 이건희 씨가 꼭꼭 숨겨둔 비자금 4조 5천억 원을 찾아내서 그 집안 재산이라며 돌려주었고, 재판부는 경영권 불법승계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매출 200조 원대의 거대 기업집단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고작 16억 원의 세금만을 물고 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그나마 구축한 법질서마저 완전 농락한 이 기상천외한 사술을 사법부는 끝까지 합법이라고 했습니다." - 본문 중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으로 21세기 법치국가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상세하게 공개합니다. 삼성에서 일어난 일, 평범한 보통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삼성을 배신한 자와 국민을 배신한자, 누가 배신자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 삼성의 비자금, 로비, 경영권 불법 승계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는 우선 자신은 배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는 삼성 근무를 시작하면서 법원 및 검찰에 대한 로비업무에 대해 거부 입장을 명백히 표시하였다는 것입니다. 

"법원 및 검찰에 대한 로비 업무에 대해서도 단호히 거부했었다. 이에 대해 분명히 약속을 받은 뒤에 나는 삼성에 입사했다. 하지만 삼성은 약속을 깼다. 싫다는 내게 그들은 억지로 로비업무를 맡겼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아낸 검사였던 나를 뽑아서 비자금 소굴에 배치한 것도 그들이었다." - 본문 중에서

김용철 변호사는 양심고백 이후 삼성 계열사는 오히려 주가가 올랐고 기껏해야 100~200명 정도 되는 이건희의 가신 집단에게 삼성 임직원들이 배신당한 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은 삼성에 대해서도 검찰에 대해서도 법과 진실을 수호하는 법률가 본연의 역할을 하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에 대한 로비는 일반의 상상을 완전히 초월합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특검수사를 받은 삼성화재 사건은 빙산의 한조각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삼성화재 비밀금고에는 늘 10억 원 이상의 비자금이 있었다. 구조본은 수시로 5~6억 원씩으 요구했고, 그때마다 직접 돈을 들고 배달했다. (줄임) 특검을 수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10조 원이 넘는 삼성 비자금 규모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불법 비자금 조성에 관한 명백한 증거를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 본문 중에서

그런데 비자금 조성보다 더 황당한 일은 유죄판결을 받은 삼성화재 사장이 삼성사회공원위원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4만 주의 스톡옵션을 받아 2009년 3월까지 1만8166주의 미행사 잔량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황제(?) 앞에서는 오줌도 참아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더군요. 윤종용, 황창규 등 삼성을 대표하는 간판급 경영자들은 쫓겨났지만 비리 연루자로 언론에 보도된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에 담긴 돈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개그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삼성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은 회의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다. 소변이 마려울까봐서다. 이건희가 화장실에 가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도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비리에 관한 검찰 수사가 안건으로 올라오면 사장들이 일제히 충성맹세를 한다. 자신들이 회장을 대신해서 감옥에 가겠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이쯤 되면 <친구> 같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조직 범죄 집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보스를 향한 충성맹세와 대신 감옥까지 가겠다는 모습은 그리고 실제로 감옥에 갔다 오면 충분한 보상이 뒤따르는 조직(?)의 모습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런 충성서약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정점에 이학수와 김인주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삼성뿐만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까지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학수, 김인주 등은 오직 이건희의 사적 이익과 안전만이 관심사였다.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면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는 일이다. 사실상 비자금을 관리하고 불법행위를 세탁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회사의 이익과 회장의 이익이 부딪힐 때는 늘 회장의 이익을 우선했다." - 본문 중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이학수, 김인주가 중심이 된 경제권력을 가진 삼성 실세들의 오만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그들은 삼성 회장 비서실이 대통령 비서실을 능가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청와대 비서실이 삼성 비서실을 흉내내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삼성 내부 문서양식은 정부의 보고문서와 거의 같았다.

"삼성 법무실 시절, 김인주가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몇 천만 원 주는 걸 무얼 그리 겁내느냐라고, 이삼천만 원 때문에 벌벌 떨지 말라고도 했다. 실제로 그들은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뿌리는 일에 대해 죄책감이 없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 본문 중에서

삼성 실세들은 뇌물을 뿌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디 그 뿐이었겠는가? 짐작컨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뿐만 오히려 쾌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상대가 누구든지 돈만 뿌리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었고, 뇌물만 주면 누구라도 매수할 수 있었으니 어찌 금권의 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삼성 돈은 안전하다? 삼섬은 끝까지 뒤를 봐준다

한편 공직자들이 삼성 수뇌부로부터 거리낌 없이 돈을 받았던 배경에는 삼성 돈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고 합니다. 삼성에서 뇌물을 받거나 삼성과 연루된 부정을 저지르다 쫓겨나도 삼성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뇌물을 받아서 징계받은 적이 있는 전직 공정거래위원회 간부를 삼성전자 감사로 뽑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뇌물 받다 잘린 공무원에 대한 보상 성격이더라는 겁니다. 뒤를 봐주는 것도 영화에서 보던 조직범죄 집단과 흡사합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하는 이건희 일가의 상식을 벗어난 사치와 몰상식한 행동은 분노를 느끼게 만듭니다. 2003년 이건희의 회갑잔치에는 유명 연예인과 금난새를 비롯한 국내 정상급 예술가들이 모두 출연진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1인당 수십만 원의 식사비가 지출되는 행사지만 '자랑스런 삼성인상 축하연'을 빙자하여 회사의 공식비용으로 치른다는 겁니다.

참석자들에게는 와인, 냉동 푸아그라, 트뤼프 버섯으로 만든 소스와 와규(일본 소) 등심이 나오는 식사가 제공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건희 가족과 손님들이 먹는 음식이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잔치에서는 손님에게 더 좋은 음식을 주는 것이 정사 아닌가. 생일잔치에 손님을 불러놓고 손님에게는 냉동 푸아그라를 주고, 자신들은 냉장 푸아그라를 먹는 게 영 불편했다. (줄임) 이건희 가족의 테이블에는 천만 원짜리 페트뤼스 와인이었지만, 손님 테이블에는 이보다 훨씬 싼 다른 와인이었다. - 본문 중에서

부자가 돈 많이 쓰는 것을 왜 탓하느냐고 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못을 박는데, 이건희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 돈으로 사치와 낭비를 일삼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이건희가 개인재산으로 1억짜리 와인을 마신다고 한들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이런 웃기는 잔치를 벌이는 돈이 모두 회사 돈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이 처음 출간 될 당시 화제가 되어 많이 알려진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가수 나훈아씨가 이건희 일가의 파티 초청을 거절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수들이 이건희 일가의 파티에 초청되면 2~3곡 정도 부르고 3000만 원쯤 받아가는데, 나훈아 선생은 아무리 거액을 주겠다고 해도 거절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나훈아는 대략 이런 입장이었다고 한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 한마디로 부잣집 애완견 노릇은 하기 싫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나훈아 선생(이 정도 개념있는 가수라면 선생이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이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어째든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김용철 변호사의 추산에 따르면 이건희 일가의 파티 한 번에 공연, 선물, 식사비용으로 대략 10억 원쯤 든다고 합니다.

"나는 가수다", 나훈아쯤 되어야 할 수 있는 말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 일가에게 이런 생활이 자연스러운 것은 그들이 스스로 귀족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증언합니다. 마치 유럽의 귀족이나 일본의 왕족과 같다고 믿기 때문에 손님을 초대해놓고 손님보다 더 좋은 음식을 따로 차려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몇 대목 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산, 양복을 챙기고 식사를 거의 같이하는 여비서는 상무급이다. 그녀에게는 스톡옵션과 수억 원대의 연봉, 그리고 타워팰리스 펜트하우스가 주어졌다.

이건희는 집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해서 회사로 출근하는 일이 거의 없다. 삼성에서 근무한 7년 동안 이건희가 출근하는 것을 딱 두 번 봤다. 그중 한 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벌총수들을 부른 날이었다.

제일모직에서 만드는 골프복 디자인, 여성복 디자인 등은 해마다 시제품을 이건희의 집에 들고 와서 보고하고 이건희가 직접 고르도록 했다.

"이건희는 모친인 고 박두을 여사가 사망한 2000년 1월 3일 미국에 있었다. 그는 모친의 사망소식을 듣고도 귀국하지 않았다. (줄임) 이건희가 조선일보 사주인 방일영 상가에는 직접 방문해 조문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줄임) 이건희는 아픈 몸을 이끌고 (줄임) 직접 빈소를 찾았다." - 본문 중에서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셀수 없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일들뿐만이 아니라 이건희 일가의 개인적인 취향과 관심에 따라 1000억 원을 주고 회사를 인수하기도 하고, 그 회사를 100만 원에 처분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담긴 <삼성을 생각한다>는 정말 삼성에 얽힌 수많은 '야사'와 증언이 담겨있습니다. 이글에 소개하지 못한 이재용에 대한 편법 상속과 재판과정, 삼성자동차 실패사례, 막대한 규모의 비자금 조성, 그리고 황제 경영의 실패사례 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정말이지 '삼성'에 대해서는 회복할 수 없을 것 불신을 갖게 됩니다. 이건희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지 않는다면 삼성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사실을 종합하면 100~200명의 범죄 수뇌부가 삼성을 말아먹고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삼성을 알고 싶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삼성에서 취직을 하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삼성과 거래를 하고 싶은 분들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삼성이 이 나라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믿는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성이 만든 제품을 구입하려는 분들은 정말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였지요. 정치권력이 경제 권력을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경제 권력이 지배하는 삼성공화국(?)의 실체를 알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 10점
김용철 지음/사회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