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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사형수의 고해성사, 사실은 다른 사람을 죽였다

by 이윤기 201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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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금태섭 변호사가 쓴 <확신의 함정>

소설가가 꿈인 변호사, 금태섭 변호사를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그가 현직 검사로 재직하면서 한겨레신문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칼럼 때문이고, 또 하나의 기억은 그가 쓴 <디케의 눈>이라는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은 탓입니다.

그는 한겨레신문 연재를 끝내지 못하고 검사를 그만 두었으며 그 후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새로 쓴 책 <확신의 함정>은 사람들이 조금도 틀림없다고 믿는 것들이 정말 어이없게도 틀릴 수 있다는 것, 믿었던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독자들에게 ‘확신의 함정’을 보여주는데 소설을 인용한다는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소설을 인용함으로써 쉽게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의 경우에도 그 줄거리를 잘 요약하여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작인 <디케의 눈>에서도 드러났지만 그는 많은 책을 읽는 독서가입니다. <확신의 함정>에는 모두 50여 편의 소설을 인용하여 누구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책을 읽는 내내 현직 검사도 로펌소속 변호사도 분명 한가한 직업이 아닌데 언제 이렇게 많은 소설을 읽었을까하는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만, 법률가인 저자의 꿈이 소설가인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소설가가 꿈인 검사 출신 변호사

이 책은 저자가 초임검사 시절 경험한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어느 젊은 남자가 길에 주차되어 있던 그랜저(당시엔 최고급 차종이었겠지요)를 훔친혐의로 잡혀왔습니다.

차 주인은 문을 잠그고 용산에 세워두었다고 하고, 범인은 문이 열린 차를 서울역 앞에서 훔쳤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입니다.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답니다.

오히려 피의자에게 딱한 사정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10대 후반에 교도소에 들어가서 5년 형을 선고 받고 7년의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 12년을 복역하고 출소하고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보호감호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던 차에 불쌍해 보이는 피의자는 검사 앞에서 말도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변호인 찾아와서 보호감호청구만 빼달라고 하소연을 하여 그리하였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 초범이 아니니 3년은 구형해야 하고 보호감호 청구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처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의자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여 보호감호 처분을 하지 않았더니, 판사도 마찬가지로 딱하게 여겼는지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이 피의자가 납치강도 용의자로 신문에 보도되었다고 합니다. 그제야 부랴부랴 확인해봤더니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곧장 납치강도 행각을 벌였고, 차량을 훔친 것도 납치 강도짓을 벌이기 위한 준비였더라는 겁니다.

폭행, 절도로 되어있는 전과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니 차를 훔쳐 데이트하는 남녀를 유인해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더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판단을 그르친 원인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격고 나서, 나는 판단을 그르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선입견, 오만, 그리고 불성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7년간 보호감호를 받게 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 척 보면 사건의 전말을 안다는 오만, 그리고 당연히 확인해야 할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게으름이 판단착오를 불러 온 것이다.”

저자는 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하여 이런 실수를 저질렀지만, 사실 관계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때도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에 답을 찾으려 할 때는 성급하게 결론에 이르지 말아야하며, 가치를 다투는 복잡한 사회현안의 경우에는 더욱 신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확신한다구요? 만약 당신이 틀렸다면?

때로는 답이 하나가 아닌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자는 ‘확신의 함정’을 염두에 두고 사형제존폐론, 성매매 논쟁, 체벌, 종교와 문화의 충돌, 생명과학에 대한 법과 윤리의 기준 등에 관하여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살펴봅니다.

그러면서 그냥 자신의 경험과 주장을 나열하면서 독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소설, 혹은 어떤 쟁점 사안들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명징하게 비춰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들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제가 속해 있는 단체에서 이달의 도서로 정해 회원들이 함께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중에 소설을 읽기를 좋아하는 어떤 분은 금태섭 변호사가 <확신의 함정>인용한 소설들을 차례로 읽어봐야겠다는 목표를 세우더군요.

저자는 먼저 사형제도와 체벌에 관하여 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는 스티븐 킹의 <그린 마일>,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대신에 잔인한 폭탄테러범이 주인공인 소설 존 그리샴의 <가스실>을 등장시킵니다.

KKK 단원이었던 주인공 샘은 사람이 죽은 폭탄테러의 범인이 아니었지만, 공범이 저지른 사건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진범을 알고 있었지만, ‘동료를 밀고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밀고 할 경우 자신의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 때문에 입을 다물게 됩니다.

사건 발생 후 14년이 지난 재판에서 그는 사형을 선고 받고 가스실에 들어갈 날짜만 기다립니다. 사형수가 된 후 9년을 버티면서 상소를 하고, 감형을 주장하던 중에 젊은 변호사 한 사람이 그를 찾아옵니다. 바로 자신의 손자입니다.

샘의 나이는 일흔이었고 사형 집행은 4주가 남아있었습니다. 손자인 젊은 변호사 애덤은 할아버지에게 공범의 존재를 털어놓으라고 권유하지만 끝내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이번에도 공범으로부터 손자 애덤을 비롯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사형수의 극적 고해성사, 사실은 다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소설의 극적인 반전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가스실로 가기 직전 손자와 목사가 지켜보는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던 샘은 진실을 밝힙니다. 그 폭발사건에 진범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히지만 KKK 단원으로 흑인들에게 린치를 가하여 다른 흑인들을 살해한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의 상당수가 이런 상반된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다루는 문제는 더 없이 신중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돌이킬 수 없는 처벌인 사형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죄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형제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단 한명이라도 억울한 죽음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에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나라처럼 감형 없는 종신형이나 100년, 200년 형을 살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사검사로 오랫동안 일하였던 저자는 강력 범죄가 있을 때마다 나오는 강력대책의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그는 화학적 거세라든지, 피의자 신상 공개라든지, 포르노 금지 또는 성매매 허용과 같은 성급한 주장들에 대하여 제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합니다.

실제로 범죄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강력 범죄에 들끓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하여 강력대책을 남발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한편 미성년자의 흉악한 범죄 처벌과 아이들에 대한 체벌에 관한 저자의 고민 역시 진지하고 새롭습니다. 먼저 미성년자의 흉악 범죄는 실제 영국에서 있었던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993년 열 살짜리 소년 두 명이 두 살 난 유아를 납치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수범이 매우 잔인하고 엽기적입니다.

저자는 이런 아이들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관대하게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독자들에게 반문합니다. 동시에 아이들을 선도하기 위하여 ‘체벌’이 불가피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이들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라고 요청합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체벌)도 괜찮은가?

저자는 페터 회의 소설 <경계에 선 아이들>을 소개합니다. 이 책에는 아이들을 선도하고 보호하려는 선한 의지를 가진 빌이라는 교장선생님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페터는 이 학교로 온 전학한 후부터 적어도 겉보기에는 부당한 괴롭힘도 당하지 않고 지각이나 결석도 없는 모범생이 됩니다.

그러나 페터는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빌 교장이 모든 아이들을 체벌하지는 않지만, 가끔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들을 골라 심한 폭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군대용어로 ‘시범케이스’를 가혹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빌이 체벌하는 장면을 본 학생들은 두 가지 감정을 갖게 된다. 하나는 모든 일이 올바르게 바로 잡혔다는 안도감이다. 다른 하나는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다. 학생들은 이런 말을 한다. 아니 이 정도 겁메 질려 있으면 처벌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일종의 자유처럼 여기게 되지.”

교장인 빌은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경계에 선 아이들’의 잘못을 고쳐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겠다는 의욕을 가진 사람이었지요.

“굳이 때리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는 아이들, 반대로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바로잡을 가능성이 없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체벌로 선도할 수 있는 아이들을 뽑아 잘못된 점을 고쳐주려는 것이 빌의 생각이다.”

그런데 현실은 빌교장의 의도대로 되지 않습니다. 공포를 이기지 못한 아이들 중에 면도날로 자기 혀를 자르는 자해를 하는 아이가 생기고, 체벌로 몸과 마음을 다치는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빌 교장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우수한 아이, 보통아이, 떨어지는 아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모자라는 아이를 끌어올리는 일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나라 청소년들만 유독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나?

그는 체벌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 다음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유럽, 일본, 미국 아이들은 체벌 없는 교육을 받는데, 왜 우리 청소년들만 매를 들어야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는가? 두 번째는 때리면서 교육을 하다보면 좋은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해도 괜찮은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데,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해도 좋은가?

폭력에 내성에 생기고 폭력이 점점 더 잔인한 폭력으로 빠져드는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소설 <파리대왕>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체벌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때리는 사람에게나 맞는 사람에게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생각을 심어준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사람의 매라하더라도 이런 본질적 속성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소개하고 보니 아직 <확신의 함정>중 반의반밖에 소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혁명과 살인, 간통죄의 형사처벌, 타블로 사태, 음란을 정하는 기준, 부르카 착용금지, 유전공학과 생명윤리 문제 등 섣부르게 확신할 수 없는 주제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누구라도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어떤 의견이 옳은지 쉽게 결론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옳다고 결론 내린 일도 시간이 지나면 답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은 틀림없다고 믿는 당신의 확신을 의심해보라고 합니다.


확신의 함정 - 10점
금태섭 지음/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