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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보조금, 가격덤핑이 농민을 죽인다

by 이윤기 2008.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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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대형마트에서 사다 먹는 토마토는 농산물일까?

대형마트에서 토마토를 구입할 때 우리는 화학비료와 살충제, 때로는 유전자변형 종자, 트렉터 등의 농기계, 관계장비, 살포장비, 국제 환물운송선박, 중간상, 슈퍼마켓 체인점과 광고회사 등 수 많은 다국적기업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식량주권>(시대의창 펴냄)을 쓴 피터 M. 로셋은 "이런 식으로 수입된 토마토가 내가 사는 지역 농부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산한 것과 같은 토마토가 맞는가?"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지은이는 농산물은 강철이나 마이크로칩, 운동화와 같은 그런 상품이 아니라고 한다.

"농산물은 다르다. 그저 그런 상품이나 물건이 아니다. 농산물은 농업이며, 농업은 농촌의 삶 자체를 의미한다. 전통이자 문화이며 생존이다. 농업은 농촌의 사회며 농경의 역사다. 농촌은 그 나라와 국민이 문화유산을 간직한 보고다. 농산물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좋거나 나쁜 맛을 낼 수 있으며, 우리에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농산물이 기계에서 생산된 다른 물건들과 똑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은 바로 '초국적 농기업'과 '곡물투기자본'들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 회사들은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농작물을 파는 자가 '승리'하는 구조를 만들어 농민과 농민이 싸우게 만들며,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경작으로 건강하지 않는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WTO가 목표로 하는 무역자유화가 수백만 농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식량 안보를 위협하며,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넘쳐나는 증거들이 있다고 한다. 무역자유화가 생산량 증대를 부추기고, 농산물 가격을 떨어뜨리며, 농가부채를 증가시켜서 수많은 농민들을 농장에서 내쫓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농민운동가, 이경해에게 바치는 책

그 죽음의 극단에 바로 '이경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피터 M. 로셋이 쓴 <식량주권>은 "대한민국 농민대표였고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 회원이었으며, 충분히 가능한 더 나은 세계를 위해 WTO에 맞서 2003년 9월 10일 멕시코 칸쿤에서 장렬히 희생한 이경해 열사에게" 바치는 책이다.

책의 첫머리에 스테판 스미스가 노래한 '이경해를 위한 발라드'(A Ballad for Lee Kyung Hae)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실려 있고, 머리말을 대신하여 이경해가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을 앞두고 시위 도중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서서 했던 "무역 대상에서 농업을 제외하라"는 연설문을 싣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WTO에 대한 자신의 투쟁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인 차원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맞서 싸운 이경해의 용기를 기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민들이 왜 목숨을 걸고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지를 설명한다.

자유무역 협정 때문에 한국 시장에 세계 곳곳에서 생산된 저가 농산물이 물밀듯이 들이닥쳤고, 한국 농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수익을 얻을 수 없는 낮은 가격이 형성되었다. 아울러 이런 비극은 한국 농민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 수출국으로 알려진 미국과 인도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수많은 가족단위 농장, 소작농, 농장 노동자와 토착민들이 같은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가족단위 농장, 소작농, 농장노동자, 토착민들이 중심이 된 국제농민운동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는 바로 지구적 차원의 자유무역에 대항하여 WTO와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고 있다. 'WTO 협상 대상에서 식품과 농산물은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피터 M. 로셋이 쓴 <식량주권>은 바로 여러 통계자료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연구결과를 그 증거로 제시하여, 국내 시장에서 유통할 목적으로 생산하는 소규모 농장들이 훨씬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고용 등을 통해 사회경제적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진실을 전하고 있다.


농업보조금과 가격덤핑이 농민을 죽인다

미국에서건 유럽에서건 농업 보조금 혜택은 넓은 농장을 소유한 부유한 농민들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간다. 농업 보조금 수혜자들은 농민이라기보다는 기업가에 가깝고, 농산물 가격을 하락시키는 주범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1140억 달러의 농업보조금이 편성되었다. 전체 농업보조금 가운데 상위 1퍼센트의 부유한 농민에게는 연평균 21만 4088달러, 상위 20퍼센트에게는 평균 9916달러가 돌아갔고, 나머지는 거의 받지 못하거나 아예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본문 중에서)

상위 21퍼센트를 제외한 미국 농민 대다수는 농업보조금으로 지탱되는 싼 농산물 가격 때문에 빚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낮은 농산물 가격으로 매년 12만 명의 소규모 농민들이 농장을 포기하고 있다.

농업보조금이 선진국 기업식 농장주에게만 혜택을 주어 덤핑을 야기하여 가족단위 농민과 소농 그리고 제 3세계 농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정책이 되고 있지만, 농민의 진짜 적은 보조금이 아니라 아니라 '낮은 가격'이다.

"시장의 집중화가 가중될수록, 공급과 공급가 관리가 소흘해질수록, 경제적 힘을 통해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기업들은 저가 농산물을 생산해나가는 한편 소비시장에는 점점 고가 농산품을 판다는 것이 핵심적 내용이다."(본문 중에서)

 제3세계 국가에서는 덤핑으로 자신의 농토에서 쫓겨나는 농민이 점점 늘어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는 것.

"2002년 미국에서 수출된 농산물의 상당수가 생산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다. 몇몇 사례를 살펴보면, 수출용 밀의 가격은 생산가 대비 평균 43퍼센트 낮은 가격이었고, 수출용 콩은 25퍼센트, 수출용 옥수수는 13퍼센트, 수출용 면화는 평균 61퍼센트, 수출용 쌀 가격은 생산가 대비 평균 35퍼센트 낮은 가격이었다."(본문 중에서)

결국 농업보조금과 덤핑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가족 단위 농민과 소농을 땅에서 쫓아내고 있고, 제 3세계 국가 농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농업보조금과 덤핑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각국의 농업정책과 세계 시장 점유율 9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는 카길, ADM, 콘아그라, 루이 드레퓌스, 벙기 등 곡물 메이저 회사들에 대한 집중화가 생산지 가격하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곡물 메이저 회사들에 대한 집중화 때문에 소비자가 더 많이 지불해도 농민에게 돌아가는 수입은 점점 적어지는 기현상이 벌이지고 있다는 것.


자유무역의 재앙에 신음하는 '멕시코'

멕시코는 NAFTA 체결 후 10년을 거치는 동안 무역자유화가 어떻게 농업을 무너뜨리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표면적 지표로만 본다면 멕시코는 무역자유화로 1980년 29억 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이 1994년에 110억 달러로, 2001년에는 218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물론, 경제성장과 함께 극심한 빈곤층도 늘어났다.

그런데, NAFTA가 효력을 발휘하기 전까지 수출 흑자를 기록하던 멕시코 농산물 무역은 1994년 이후 급격하게 적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에는 멕시코의 무역적자가 27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멕시코는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주식으로 삼아왔던 옥수수 농업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한다. 멕시코 농민들은 9000년 전부터 옥수수를 재배해 왔는데, 1990년 이후 멕시코 국내시장에서 옥수수 평균 가격이 50%이상 급격하게 하락하였다는 것이다.

"NAFTA 이전에는 옥수수 수입량이 전체 멕시코 수입액의 2.9퍼센트에 불과하였으나 최근 들어서는 전체의 20퍼센트에서 25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같은 기간 미국의 경우 오히려 옥수수에 대한 보조금을 늘렸다. 보조금 비율은 미국 내 옥수수 농가 수입의 47퍼센트에 이르게 되어 즉, 실제 생산가보다 13~33퍼센트 할인 된 가격으로 미국산 옥수수가 세계시장을 잠식해 나간 것이다."(본문 중에서)

농가 수입의 47%를 보조금으로 보전 받은 미국 옥수수 농가들 때문에 멕시코 농민들은 더 이상 옥수수를 수확해서는 이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자국 농산물 시장 안정을 위해 멕시코에 신용지원을 약속했고, 멕시코는 이를 미국산 옥수수 구입에 활용할 것을 합의해주었다. 결국 멕시코의 수입업자들은 신용지원금으로 15억 달러어치의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했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멕시코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결국, 멕시코 옥수수 시장은 카길, ADM, 젠노와 같은 거대기업들에게 집중화되었고, 1999년 멕시코에서 옥수수 소비자 가격은 NAFTA가 체결된 초기 5년과 비교할 때 300퍼센트 이상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콩류, 밀, 가금류, 쇠고기 등 다른 농산물 역시 수입량이 500퍼센트나 증가했으며, 10년 만에 117만 5000명의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2003년에는 1930년대 이후 최대의 농민저항운동이 일어났다.

NAFTA는 미국 농산업기업들과 그들의 멕시코 파트너 회사들을 승자로 만드는 대신에 대다수 멕시코 농민, 특히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토착농민을 패자로 만들었다는 것.

식량과 농업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

"안전하고 건강한 식량의 충분한 공급과 생산의 측면에서 그리고 건강한 공동체, 문화, 환경적 측면에서 식량과 농업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이 비아 캄페시나와 식량주권 네트워크의 공동성명에 실린 주장이다.

"식량주권은 인간이 자신의 식량생산과 농업활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산품을 보호하고 규제할 수 있는 권리,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역의 권리, 자급자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자국시장에서 덤핑판매를 제한할 수 있는 권리, 어업공동체가 수산물 자원을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된다."(본문 중에서)

즉, 식량주권이란 농민과 소비자인 국민이 자연자원, 일상적인 생산과 소비, 생활의 모든 과정에서 식량과 관련한 자기결정권을 확립하고 행사하는 권리를 말한다. 자연재해나 인재,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먹을 권리만큼은 보장돼야 한다는 기본권리 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식량주권을 지키는 것이 무역을 방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올바른 무역 정책을 수립하고 안전, 건강, 지속가능한 생산을 영위하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량주권을 보장하는 여러 가지 정책을 간략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모든 농산물 덤핑을 금지하고 적정가격을 보장하여야 한다.
- 저가 농산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고 과잉생산을 방지해야 한다.
- 모든 종류의 직간접 수출 보조금, 생산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 식량안전성 및 품질과 환경문제를 고려한다.
- 토지, 물, 종자 등 생산자원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보장한다.
- 유전자 변형 종자, 식품, 사료의 교육과 생산을 금지한다.
- 원산지, 정보제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 농식품 기업의 산업독점을 금지한다.
- 농어업 자원의 다양성을 지키고 남획을 막는다.

이런 식량주권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국제무역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무역이 지역이나 국가발전, 사회, 환경, 문화적 가치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것.

"WTO는 전 세계의 불평등과 위험을 악화시켰으며, 지속불가능한 생산과 소비행태를 조장했고, 다양성을 파괴하고 사회적 환경적 우선순위를 훼손시켰다."

따라서 식량주권을 국제무역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며, 식량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WTO가 농업분야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WTO는 식량 또는 농업과 아무 상관도 없는 기관이기 때문에 전 세계인의 식량주권이 보장되려면 WTO 체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

피터 M. 로셋이 쓴<식량주권>에는 이 밖에도 WTO의 오랜 친구인 세계은행과 IMF가 어떻게 개발도상국의 농업분야를 파괴하고 있는지, 그리고 식량주권을 확립하는 새로운 대안체제는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전국농민회 총연맹 이창한 정책위원장이 쓴 한국판 보론 '식량주권은 우리의 미래다'에는 2006년부터 시작된 국제곡물가격 폭등이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과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식량위기 상황, 우리정부의 대책 그리고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WTO에 맞서 싸우는 세계 농민운동가들이 멕시코 칸쿤에서 "열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매일 열 사람이 죽는 것 보다 낫다"고 절규하며 죽어간 한국 농민운동가 '이경해'에게 바치는 특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