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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발정기 소년 소녀들에게 성교육을 !

by 이윤기 2008.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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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에게 성교육을 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시작된 것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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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년대에 지금으로 치자면 '아우성'의 구성애씨 같은 혁명적인 주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배화여고 교사였던 김윤경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잡지 <동광>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성욕만족'을 묻는 학생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더니, 학생이 오히려 수치심을 느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교사가 성 문제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거나 금기시하는 태도가 청년들에게 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심어 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소년 소녀들에게 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구성애씨 주장이 혁명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운동을 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성욕을 억제하라고만 하지 않고, 포르노그래피를 보거나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등의 성욕분출을 일면 긍정하였다는 점이라고 한다.

1920년대 김윤경은 "성욕은 귀중하고 신성한 것이며,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성교육을 하지 않으면 왜곡된 성의식이 싹트고 성욕 금기화를 가져와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김윤경의 '성교육의 주창'
소년 소녀들에게 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 화류병을 현저히 만연시킴
▲ 비밀해산(解産)이 허다하여짐
▲ 사생아가 매년 증가하는 일
▲ 화류계가 번창하고 공창이 증가됨
▲ 사창 박멸이 표면뿐이고 속으로는 늘어 감
▲ 불량 소년 소녀의 늘어감
▲ 간음죄, 강간죄, 중혼죄, 매합죄
▲ 외설죄가 늘어 감
▲ 낙태, 영아 살해, 영아 유기들이 늘어 감
▲ 치정, 질투, 원한들로 생기는 살인, 강절도, 상해, 협박, 방화가 늘어 감.
▲ 자살, 정사, 신경쇠약, 히쓰테리, 광포(狂暴)가 늘어감.
▲ 낳은 자녀의 조사(早死), 불구, 병약, 천치들이 늘어 감.
▲ 도착 성욕의 온갖 비행(동성, 음행, 성적 항진병, 음학광, 음학적 흉살광, 시간, 시호, 수간, 수동적 음학광, 성적 광수, 음부 노출광들)의 늘어감
- 김윤경,<동광> 제 11호, 1927. 3.


김윤경은 성욕에 자극을 주는 일을 피하도록 하기 위하여, 피로할 만치 운동을 권하고, 술이나 담배 같은 자극을 막고, 소설, 연극, 활동사진으로 진서, 밀화를 관람, 탐독하는 것을 막는 것과 부지중에 생식기에 의복이나 수족의 우연한 접촉 결과로 수음의 악습을 유도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방편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김윤경의 주장에는 다소 어이없는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략 20세기 말까지 성교육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김윤경은 금기시되어 있던 성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대표 인물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이영아가 쓴 <육체의 탄생>에 나오는 흥미로운 이야기 한 대목이다. <육체의 탄생>은 근대기 한국사회가 '인간의 몸'을 어떻게 이해하기 시작하였는지를 밝히는 책이다.

지은이는 "현대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어떠한 몸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 그 개인의 능력과 잠재성, 사회적 계급적 위치, 나아가 품성까지 규정한다"고 보고 있다.

"몸은 이제 조절․통제․변형이 가능한 하나의 '대상'이자 '자산'으로서 관리․정비되고 있으며, 각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하나의 '기호'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높은 사회적 계급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운동, 의학, 식이요법, 미용관리, 규율화 된 생활 등을 통해 몸을 '관리, 통제'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바로 제도교육의 훈육체제나 웰빙, 몸짱, 건강염려증, 외모지상주의, 성형중독 등이 바로 몸의 능력과 잠재성, 사회 계급적 위치, 나아가 품성까지 규정하는 대표 사례들이라고 한다.

나는 내 몸의 진정한 주인인가?

사람들이 몸을 통해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몸에 의해, 몸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해야 내 몸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딛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지은이 자신을 비롯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이 이토록 '몸속에 갇혀' 살고 있는 이유와 그 기원을 찾아가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영아가 쓴 육체의 탄생은 사람들이 육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우리사회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몸은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하나의 '기호'로 작동하고 있는데, 이 책은 지금과 같은 몸 인식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근대 이후 몸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시체를 파헤쳐서 증거를 찾는 일, 몸과 마음은 하나 혹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고의 흐름을 쫒아간다.

전통사회에서 몸이란 있었지만 모른척, 없는 척 취급되어 왔다고 한다. 오랜 역사동안 몸은 정신보다 덜 중요했고, 그거 은밀하거나 하찮은 것이었고, 딱히 마음 혹은 영혼과 분리되어 독립된 가치를 지닌 존재도 아니었다고 한다. 따라서 주목할 대상도 못 되었다는 것이다.

<육체의 탄생>은 바로 근대기 몸에 대한 가치가 변화되는 시점과 이유에 주목하고 있는 책이다. 언제부터 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는지, 전통적인 유교 이념 안에서 몸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미 죽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인식되었던 부검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은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주목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이미 부검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이 땅에 해부학이 도임된 것은 20세기 초반이었다고 한다.

해부학이 도입되는 때가 되면,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인식이 "시체 해부를 참을 수 없는 잔인한 처사라고 하지만, 죽은 한 사람의 몸에 가하는 잔혹함은 후세의 수많은 생명의 행복을 위하는 길"로 바뀌게 된다.

오늘날 장기기증이나 시신기증 같은 일이 조금씩 확산되는 것 역시 근대 이후 육체에 대한 인식 변화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것이다.

사회진화론, 강한 인간의 논리 확산

그리고,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철학으로서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이 세계에는 강한 인종과 미개한 약한 인종이 있다"거나 "약한 인종은 강한 인종의 지배를 받거나 멸망하게 된다"는 논리가 확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특히, 우등한 인종이란 발달되고 건강한 신체를 기본조건으로 하고 있고, 뇌 연구를 통하여 인간의 능력이 몸에 기초하고 있다는 생각이 널리 확장되면서 '몸'은 과거보다 유난히 더 중요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단발, 조혼거부, 개가와 같은 사회문화적 변화들은 모두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체의 탄생>은 몸에 대한 이러한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하여 전통의학이 서양의학에게 자리를 내주는 과정, 외과수술이 도입되는 계기, 위생과 생리학을 비롯한 몸을 둘러싼 학문의 변화를 추적한다.

또한 마음 수양에 중점을 두었던 전통사회에서 몸을 수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변화과정에도 주목하고 있다. 몸수련, 체조, 운동이 근대문화로 자리잡는 과정과 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과정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런 변화를 확인하기 위하여 많은 문헌과 근거자료를 찾아내어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근대 소설을 통하여 이런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근대 신소설이 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소설속 주인공들의 몸에 새겨진 근대의 자취들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신소설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근대가 추구하는 몸의 조건들을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근대기에 발표된 신소설을 통하여, 여성을 중심으로 한 성도덕의 변화과정과 혼인제도의 변화과정,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행복해질 자격이 없는 여성으로서 첩, 간음녀, 악비, 뚜쟁이, 기생에 대한 사회적인식 변화가 신소설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근대의 몸을 보는 흥미로운 시선

<육체의 탄생>은 2005년에 <신소설에 나타난 육체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영아의 논문을 토대로 씌어진 책이다. 지은이는 국문학 연구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어 할 수 있도록 논문을 '헤쳐-모여'시키고 흥미로운 자료들을 추가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신소설을 꼼꼼히 분석하는 본문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재미있는 사료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현미경'이라는 이름을 붙여 당대 문헌과 기록들을 찾아서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구체이면서도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 소설동의보감에 나타난 오류들
▲ 최초로 쌍꺼풀 수술을 받은 오엽주
▲ 성교육 논쟁 - 문사들의 성의식, 성교육관
▲ 운동하면 골병든다 vs 운동하면 건강해진다
▲ 발정기 소년 소녀들에게 성교육을
▲ 스타 임성구를 따라 신파극 레퍼토리 읽기
▲ 신소설 이제는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도 한다.
▲ S라인의 탄생 - 얼짱 보다는 몸짱이 좋다
▲ 우리나라 연극 최초의 여배우?
▲ 미인은 살인을 해도 용서 받는 세상 - 김정필 살해사건
▲ 20세기 초 남성 유명 인사들이 말하는 이상형?

이 책에서 찾아낸 20세기 초 남성 유명 인사들의 이상형은 이렇다. 이광수는 "얼굴은 둥글둥글한 타원형의 윤곽에다가 눈은 어디까지든지 크고 쳐진 듯 하며 코나 귀가 복스럽게 예쁘고 살결이 하얀 분"을, 현진건은 "키가 조금 큰 듯하고 목선이 긴 여자가 좋다"고 한다.

현진건은 제아무리 얼굴이 예쁘장하고 몸맵시가 어울려도 키가 땅에 기는 듯하고 목덜미가 달라붙은 여자는 보기만 해도 화증이 난다고까지 표현하였다. 김동인은 "강변에 늘어진 수양버들 같은 여성을 좋아하며, 키도 후리후리하게 커야 좋다"고 하였단다.

몸에 대한 나의 인식을 비춰보는 거울

<육체의 탄생>을 쓴 이영아는 근대에 시작된 몸에 대한 담론과 지식, 기술의 발달은 몸을 최대한 조작 통제제하는 것이 '해방'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면이 있다고 한다. 또한 인위적인 조작 통제에 내재된 산업적 매커니즘, 자본주의 논리, 불확실성에 종속되지 않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저항'인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다고 한다.

몸을 의도대로 고치고, 개발하고, 조절하고, 통제하는 일이 진정한 내 몸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수도 있다고 한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현재와 같은 몸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은 근대의 논리, 자본논리, 권력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육체의 탄생>은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몸에 대한 인식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기에 충분하다. 내 몸은 근대의 논리, 자본의 논리, 권력의 논리로부터 해방되었는가? 혹은 내 몸은 근대의 논리, 자본의 논리, 권력의 논리에 순응하고 있는가? 혹은 저항하고 있는가? 꼭 한 번 비춰보시기 바란다.

<육체의 탄생> 이영아 지음 - 민음사/ 355쪽,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