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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제주 허씨들, 이 책이 바로 족보(?)입니다

by 이윤기 201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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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유홍준이 쓴 <나의문화유산답사기>-제주편

 

<나의문화유산답사기>시리즈를 출간하여 문화유산 답사 붐을 일으킨 유홍준 교수가 쓴 같은 제목의 일곱 번째 책이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 출간되었습니다. 책 표지와 부제만 봐도 '제주도'편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제주도는 '올레길' 걷기로 유명해져 성찰과 치유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쉼과 휴식을 제공하는 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가 제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제주와의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난생 처음 제주를 찾는 사람들보다는 이미 제주의 유명관광지에 식상한, 그러면서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은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의 진면목을 보고 싶은 여행객들을 위하여 씌어진 책입니다.

 

천천히 마을과 마을을 따라 올레길을 걷는 것과 다르게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광들을 소개하고 있고, 차에서 내려 차근차근 둘러보는 여행입니다. 기본적으로 자동차를 타고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제주 허씨'들을 위한 답사기입니다.

 

혹 앞으로 제주여행을 하면서 '제주 허씨'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제주에도 허씨가 있었냐고 묻는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입니다. 유홍준 교수가 말하는 제주 허씨는 렌트카를 타고 제주를 여행하는 여행객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렌트카가 많은 곳이면서 가장 저렴하게 렌트카를 빌릴 수 있는 곳이고, 렌트카 대여 제도가 가장 잘 정착된 곳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허'자 붙은 차를 빌려타고 자유롭게 제주의 속살로 다가가고 싶은 여행자를 생각하며 책을 썼다고 합니다.

 

"남읍, 명월의 중사간 지대를 지날 때면 밭담이 아름답다고 했고, 구좌의 초지를 달릴 때는 오름의 능선이 환상적이라고 했으며, 종달리 해안도로를 달릴 때는 비취빛 바다에 넋을 잃곤 했다."(본문 중에서)

 

이 책 여러 곳에 이런 '차창 밖 풍경'에 관한 묘사와 설명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아울러 이 책은 '제주학' 안내서로 씌었다고 합니다. 제주학을 선구적으로 외친 석주명과 30년에 걸쳐 <제주도>라는 책을 쓴 일본 학자 이즈미 세이이찌 같은 이들에게 받은 감동을 담아 제주의 자연, 민속,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의 경험을 통해 독자들을 들려주는 '제주학'이라고 합니다.

 

제주답사 1번지는 조천, 구좌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내면서 해남, 강진 일대를 '남도답사1번지'라고 평가하였던 저자는 제주답사 1번지로 '조천, 구좌'를 꼽습니다. 이 책은 조천, 구좌를 제주의 동서남북을 15편으로 구성하였습니다.

 

화흘 본향당, 조천 너븐숭이, 다랑쉬오름, 용천동굴, 하도리 해녀 불턱, 영실, 삼성혈, 관덕정, 오현단, 하멜상선전시관, 송악산, 대정 추사 유배지, 모슬포, 조랑말 박물곤까지 장소에 얽힌 이야기 14편과 제주학의 선구자들이라 소제목을 붙인 사람들 이야기까지 모두 15편입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여름 제주에 갔을 때, 구럼비 바위가 있는 강정마을과 이중섭 미술관을 지나는 올레길 그리고 사려니 숲길과 사려니 오름을 다녀왔습니다. 유홍준 선생의 답사기를 읽으면서 다음에 제주에 가면 꼭 가보고려고 마음으로 정한 곳은 다랑쉬오름과 김영갑 갤러리, 한라산 영실 코스 그리고 대정 추사유배지와 추사관 세 곳 입니다.

 

그럼 유홍준 교수의 발길을 따라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 중에서 가장 먼저 가 보고 싶은 세 곳 중에서 다랑쉬오름부터 가보겠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다랑쉬오름을 만나게 된 것은 화가 강요배와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화가의 그림으로 '다랑쉬오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다음날 직접 오름을 보러 갔다고 합니다.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본문 중에서)

 

다랑쉬오름을 그린 화가의 말입니다. 저자는 1994년에 비로소 화가 강요배의 그림을 통해 다랑쉬오름을 비롯한 제주의 오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름은 화산섬인 제주의 생성과정에서 일어나 기생화산으로 300개가 넘는 오름이 있다고 합니다.

 

"제주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오름을 보고 자랐고, 거기에 의지해 삶을 꾸렸고, 오름 자락 한쪽에 산담을 쌓고 떠나간 이의 뼈를 묻었다. 오름이 없는 제주도를 제주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본문 중에서)

 

300개가 넘는 제주 오름 중에서도 다랑쉬 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데, 미술평론가인 유홍준 교수는 다음과 표현하였습니다.

 

"산마루는 가벼운 곡선을 그리지만 오름의 능선은 대칭을 이루어 정연한 균제미를 보여준다. 능선은 매끈한 풀밭으로 덮여 있어 결이 아주 곱고, 아랫자락에서는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들이 다랑쉬오름을 공손히 감싸준다." (본문 중에서)

 

"굼부리 굼부리 하더니 이것이 굼부리의 진면목이던가? 신비감을 넘어선 놀라움이며 감히 탄성조차 내뱉을 수 없다. 입안 쪽으로 메어지는 침묵이 탄성이 있을 뿐이다." (본문 중에서)

 

다랑쉬오름 정상에서는 동서남북으로 사방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분화구 둘레 한 바퀴는 1.5km, 분화구 둘레를 따라 탐방로를 걸어가면서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작품 사진이 찍힌다는 것입니다. 제주답사 1번지 여행은 환상적인 능선의 용눈이오름을 지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이어집니다.

 

 

 

 

제주의 속살을 보여주는 다랑쉬오름과 김영갑 갤러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지난여름 제주 여행때 시간이 안 맞아 그냥 돌아 온 아쉬움 때문에 일찌감치 다음 제주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아 둔 곳입니다. 작가 김영갑은 1982년부터 20년 넘게 제주이 자연을 소재로 20만여 장의 사진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폐교된 삼달초등학교 분교를 임대하여 개조하여 개관하였는데, 20만여 장의 사진작품을 소장한 이 갤러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의 명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뿐만 아니라 제주를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추천하더군요.

 

다랑쉬오름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다음으로 다음 제주여행 코스로 손꼽고 있는 곳은 바로 한라산 등산로 영실코스입니다. 이미 몇 차례 한라산을 올랐지만,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정상을 오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성판악코스로만 다녔습니다.

 

그런데 유홍준 교수가 쓴 영실코스 답사기를 읽고 나니 그동안 정상에 오르기 위하여 성판악코스만 고집했던 것이 후회스럽더군요. 아울러 다음 제주 여행을 하면 꼭 영실코스로 한라산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주도 곳곳을 답사한 유홍준 교수는 "한라산 영실을 안 본 사람은 제주도를 안 본 거나 마찬가지"라고 영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제주도의 한 곳을 떼어가라면 그것은 무조건 영실이라는 것입니다.

 

"윗세오름은 한라산 위에 있는 세 개의 오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여기에 이르면 선작지왓 너머로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통째로 드러난다. 그것은 장관중에서도 장관으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내 가슴은 뛰고 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한라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의 반은 만끽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영실코스는 윗세오름을 올려다보며 오르다보면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나는 감동이 있고, 내려오는 길은 진달래밭 구상나무숲 아래로 푸른 바다가 무한대로 펼쳐지는 눈맛이 장쾌하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왕복 8km의 영실코스를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환상적이면서 가장 편안한 등산길 일 것이라고 칩니다. 그러나 영실 코스는 기본적으로 한라산 산행이기 때문에 여름 비바람이 칠 때도 위험하고 겨울 산행은 아이젠이 필수라고 합니다.

 

영실답사는 연극으로 치면 프롤로그부터 본편 4막과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공연에 비할 수 있는데, 서막은 계곡의 짙은 숲길, 1막은 오백장군봉, 2막은 진달래 능선, 3막은 구상나무 자생군락, 4막은 윗세오름 이라고 합니다.

 

결국 에필로그는 한라산을 완성하는 백록담 그리고 제주=한라산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한라산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자는 옛 성현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바닷가 모래마저도 기실 한라산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라산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영실' 코스로

 

다음 제주 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은 세 번째 답사지는 추사 유배지와 추사관입니다. 이번 책에서 유홍준 교수는 여러 대목에서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은근히 이른바 '깔때기'를 대는데, 예컨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제주 추사관을 새로 만든 일 등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현재도 제주 추사관의 명예관장을 맡고 있는데, 그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7> 제주편에 쓴 글들을 보면 추사관 명예관장이라는 직책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무려 1200쪽이 넘는 <완당평전>을 썼던 저자인데, 추사에 얽힌 이야기, 추사관 재건축에 관해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까요.

 

저자는 추사유배지에 관해서는 다른 장소를 추천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아름답다, 의미 있다, 빼어나다와 같은 수사 대신에 "무엇을 볼게 있고 없고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름지기 한번쯤은 찾아갈 만한 곳"이라고 추천합니다.

 

추사 선생이 9년간 유배생활을 한 곳이고 <세한도>가 가려진 명작의 고향이며, 추사체를 완성한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거두절미'하고 한번쯤은 가봐야 한다는 겁니다. 추사의 제주유배 생황은 울타리안에 갇혀 지내는 '위리안치'였다고 합니다.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던 추사는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사후 여러 권의 문집으로 엮어졌다고 합니다.

 

마치 힘든 군대 생활하는 졸병들이 편지만 기다리는 것처럼 귀양살이의 외로움을 편지로 달랬었다는 겁니다. 명작 세한도는 제주 유배생활 5년째 되던 해(59세)에 제작되었는데, 제자였던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완당평전>을 썼던 유홍준 교수는 <세한도> 소장자가 바뀌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들려주고 있는데, 일본인이 손에 넘어갔다가 기적처럼 한국으로 돌아온 과정을 극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가히 현존하는 최고의 '추사연구가'라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저자는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직책을 뛰어넘는 특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현재의 '감자창고' 같은 제주 추사관을 새로 건립하였으며, 친구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급 사료들을 모아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간찰과 탁본 그리고 국내 유명 소장가들로부터 기증 받은 작품 등 100여점을 모아 전시 작품의 수준을 높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걸출한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인 제주 추사관이 '감자창고'와 같은 집으로 불리는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유배 살던 집을 감안할 때' 은거와 유배를 기념하는 건축으로서 작고 낮은 집을 짓고자 하였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곳 추사관에는 세계적인 민중화가 케테 콜비츠의 조각 '피에타'만 덩그라니 놓여있는 베른린 전쟁기념관을 연상캐 하는  추모의 공간에 임옥상 화백이 만든 추사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제주돌하르방과 제주 해녀 역사 그리고 4.3사건 이야기와 제주말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이 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주의 동굴와 아름다운 자연에 이르기까지 정말 여러 이야기가 씨줄날줄처럼 흥미롭게 엮여있습니다.

 

일곱 번째 <문화유산답사기>역시 이미 여섯 권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보여준 걸출한 말솜씨와 글 솜씨가 고스란히 담긴 책입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유홍준답게 다양한 사료와 문헌을 살펴가며 막힘없이 역사와 유물과 문화 그리고 인물 이야기를 파도를 타듯이 넘나듭니다. 앞으로 제주에서도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제주허씨를 몰고 다니는 답사객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10점
유홍준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