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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전세 계약, 표준계약서만 사용해도 OK

by 이윤기 201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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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 전이네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날려 먹었던 일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잘 알고 있었지만, 꼭 필요한 위치에 꼭 필요한 집을 구하려다보니 "전세보증금 받아서 근저당해지 한다"는 집주인과 공인중계사의 말을 믿고 계약했다가 1년도 안 되어 집이 경매에 넘어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경매에 나온 집을 낙찰받아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도 않았고, 제법 시세차익이 생겨 큰 손해는 입지 않았지만 젊은 나이에 전 재산을 날려먹는 아찔한 경험을 하였답니다. 생후 6개월이 갓지난 아이를 데리고 길거리로 나 앉을수도 있었던, 지금 생각해도 제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기억입니다.

 

그 후로는 제가 속한 단체에서 소비자운동과 법률 상담을 하면서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날려 먹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에 다양한 방식으로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알리는 강좌도 개최하고, 홍보물도 만들어 돌리고 신학기 전월세 계약이 많은 대학가에서 무료 상담을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20년 전, 전재산이었던 전세보증금 날린 기억...

 

10년쯤 전에는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할 때 담당공무원이 '확정일자'를 받을 것인지 묻도록 하는 '마산시세입자보호조례'를 전국 최초로 만드는 일에도 적극 참여 하였습니다. 지방의회가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자치입법권' 논란 끝에 대법원 소송에서 무효가 되기는 하였지만, 당시 행자부가 조례의 취지를 살려 주민등록법시행령을 고쳤습니다.

 

주민등록에 따라 전입신고서를 작성할 때, 자가 전입인지, 임대 전입인지 표시하도록 하고, 임대 전입자이면 확정일자를 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 표시하도록 하는 서식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입자보호조례제정운동' 당시에 매년 행정 정보 공개를 청구하여 마산시의 읍면동사무소별 확정일자 부여 현황을 언론을 통해 알리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덕분에 확정일자 부여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습니다.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 획기적이다 !

 

그런데 최근 법무부가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강화할 수 있는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배포하였다고 하여 한 번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피해를 예방(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할 수 있는 훌륭한 계약서를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주택보급율이 100%를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집이 없는 세입자는 전체 가구의 절반 가량이나 됩니다. 2012년 기준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여전히 우리나라의 전‧월세 가구수는 전체가구수의 45%나 된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동안 널리 사용되던 주택임대차계약서는 보증금의 액수 및 지급일자, 임차기간 등 일반적인 내용만 정하고 있어 세입자가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제공과 분쟁방지 기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배포하는「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는 ① 계약체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당사자확인, 권리 순위확인, 중개대상물확인‧설명” 등「중요 확인 사항」과 ② “계약의 시작, 기간의 연장, 계약의 종료와 중개수수료 등”「계약의 내용(총3장 제12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좀 더 쉽게 요약하자면 주택임대차 계약을 맺어면서 세입자가 챙겨야 할 사항을 계약서 한 장에 대부분 담아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전세를 살아 본 경험이 없거나 전세금 보증금 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세입자들은 이번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가 획기적이라는 것을 별로 실감할 수 없겠지만, 전세 계약을 잘못하여 보증금을 손해보는 피해나 집주인과의 분쟁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라면 이번 표준계약서가 세입자보호를 위한 정말 획기적인 대책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계약 당시 권리 순위 확인을 받드시 하도록 한 것은 돋보이는 방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는 미납국세와 확정일자 현황을 계약체결 전에 반드시 확인할 사항에 포함시켜 임차인도 모르는 선순위 권리관계가 있는지 꼼꼼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쉽게 요약하자면 전세계약을 하려는 집이 공매나 경매처분이 되었을 때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사전에 자세히 확인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전세 보증금을 안정적으로 돌려 받기 위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확보방법’, ‘보증금 증액 시 새로운 계약서에 대한 확정일자 날인’, ‘임차권등기명령 제도’ 등 그동안 피해 사례가 많았던 사항을 요약하여 계약서에 담아 세입자들이 법을 몰라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 임차권등기명령- 기간만료 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고 이사할 경우 우선변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로 임차인 단독으로 법원에 등기신청을 할 수 있음.

 

전세계약, 표준계약서만 제대로 사용해도 OK

 

좀 어려운 설명이기는 하지만 주민등록 전입신고와 같은 날 저당권이 설정되면 세입자의 순위가 밀리는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임차인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을 날짜를 미리 정하고, 임대인도 그 날짜 이틀 후부터 담보물권을 설정하기로 하는 특약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 계약 체결 당시에 수리비 부담과 시기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 분쟁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계약 종료 1개월 전까지 임대인의 통보가 없으면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묵시적 갱신) 된다는 것과 이때도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여 쌍방의 분쟁을 막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묵시적 갱신에 따라 계약 연장 중에 세입자가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새로운 세입자와의 임대차계약에 따른 중계수수료 부담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하였으며, 공동주택의 경우 관리비에 포함하여 냈던 장기수선충당금에 대하여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도 포함하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주요 내용이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 세 장에 모두 담겼다고 보면됩니다.

 

 

한편 법무부는 각 지자체(읍‧면‧동사무소 포함) 등에「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와 만화책자를 배포하고, 지자체의 공인중개사 직무교육 때 표준계약서의 제정취지 등을 설명하는 등 계약서가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합니다. 정부가 이런 의지를 갖고 있다면 짧은 시간안에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가 그야말로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입자를 좀 더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주택임대차보호법만으로는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현행 법을 개정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자주 발생하는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하는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진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약속했던 새로운 대통령의 중요한 공약사항도 물거품이 되는 마당인데, 법부부가 중심이 되어 여러 부처와 협력하여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많은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새 정부가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 서식>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pdf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