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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자전거 타고 9만 5천 킬로, 87개국 여행한 남자

by 이윤기 201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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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시다 유스케가 쓴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

 

세계 여행! 어차피 누구나 한 번 태어나 한 번은 죽는 것이 뻔한 이치인데, 지금 누리고 있는 작은 안락과 인연을 포기할 수 없으면서 마치 돈과 시간이 없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가 1년간 휴직계를 내고 세계일주 여행을 다녀왔을 때도 별로 부럽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타기에 재미를 붙여 매년 1000여km씩 자전거를 타고 가끔 자전거로 국내 여행 을 다니면서도 장거리 세계 여행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일이 없습니다.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음속에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낯선 곳으로 갈 때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곤 합니다.

 

이 책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는 정말 우연히 읽게 된 책입니다. 그다지 끌리는 제목도 아니고, 제가 알기론 베스트셀러에 속하는 책도 아닙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일본 자전거 여행 관련 책을 검색하다가 중고 책 가격이 너무나 저렴한 자전거 여행 책이 있길래 다른 책을 구입하면서 덤으로 그냥 싼 맛에 산 책입니다.

 

아마 제 책 값을 다 줘야 했다면 이런 매력 없는 제목의 책을 돈 주고 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택배로 받은 다른 일본 자전거 여행기를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질 무렵 책상위에 있던 이 책을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는 제목만으로 내용을 짐작할 수 없어 어떤 내용인지 잠깐 살펴보려고 무심코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다가 그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였습니다.

 

7년 반 동안 87개국 9만 5천킬로미터를 달리다

 

이 책은 저자 이시다 유스케가 7년 반 동안 전 세계 87개국 9만5000km를 자전거를 타고 여행한 경험을 담은 책입니다. 1969년생인 저자는 1995년 대학 졸업 후 다니던 대기업 식품회사를 그만두고 자전거 세계 여행을 떠납니다.

 

원래는 3년 반 동안 세계 여행을 할 계획으로 떠났지만, 여행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서 당초 계획보다 2배나 더 기간을 늘여 무려 7년 반 동안이나 자전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행 거리가 길어져 기간이 늘어난 것은 아니고, 마음에 드는 여행지에서 죽치고 앉아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 탓입니다.

 

예컨대 죽자고 목표지점을 향해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만 하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첫 여행지였던 캐나다에서는 유콘강 카누 투어에 꽂혀 열흘 치 식량을 배에 싣고 300km나 되는 강을 따라 내려가기도 하고, 미국 애리조나의 인디언 성지 '모뉴먼트밸리'에서는 '뷰토'라고 부르는 거대한 바위기둥만 바라보며 4일 동안이나 머무르는 그런 식입니다.

 

"단지 바위일 뿐인데 왜 이토론 혼자 빛을 발하는 것일까. 대지의 그림자가 뷰토의 몸통을 조금씩 물들이는 것처럼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뷰토 위로 올라가고, 이윽고 뷰토의 한가운데서 그림자가 우뚝 멈추었다." (본문 중에서)

 

그가 목표지점을 향하여 끝없이 달리는 자전거 여행 대신 최고의 장소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까닭은 여행의 목표가 바로 '세계 최고를 찾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유적이든, 자연의 풍경이든 혹은 사람이나 마을이라도 관계없이 세계 최고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아직도 미지의 공간이 넘치고 있다. 설령 그곳이 여행자들의 손때 묻은 관광지라 할지라도, 혹은 TV를 통해 몇 번이나 방영된 곳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미개척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서 자기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한, 그곳은 영원히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아울러 그것이 무엇이든지 세계 최고를 만나는 그 순간의 감동이 최고가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전거 여행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최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 감동과 기쁨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세계 최고의 자연, 세계 최고의 유적지?

 

그렇다면 유스케가 찾아 낸 세계 최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자전거를 타고 7년 반 동안 세계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경험한 최고의 유적지는 과테말라에 있는 마야 유적지 '티칼 신전'이라고 합니다.

 

"과테말라의 밀림에 쓸쓸히 서 있는 1호 신전은 현존하는 마야 유적 중에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아름답다고 해요." (본문 중에서)

 

저자에게 '티칼 신전' 여행을 권유한 일본인 여성 여행자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티칼신전은 그의 여행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장소입니다. 그럼 이국땅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 여인의  권유로 직접 가본 과테말라 정글에 있는 '티칼 신전'은 어땠을까요?

 

"그 끝없는 정글의 규모에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넓고 푸른 바다 같은 정글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뿔이었다. 마치 바다 저 밑바닥에서 솟아난 마천루처럼 여기저기에서 피라미드의 하얀 끝부분이 정글을 뚫고 나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 중에서)

 

그는 티칼을 직접 보면서 "아름답다, 굉장하다고 말하기 이전에 뭔가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과테말라에서 '티칼 신전'을 만나기 전에 다른 많은 마야 유적을 보았지만 '티칼'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티칼 신전 이후에 남아메리카의 최남단 '우수아이아'로 가는 동안 마추픽추를 비롯한 유명한 유적들을 둘러보았지만 '티칼 신전'이 최고였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여행을 마치고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를 두루 여행했지만 유적지 중에서 으뜸은 '티칼 신전'이었다는 겁니다.

 

반대로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마추픽추나 이집트 피라미드에서는 기대했던 것과 같은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워낙 유명한 유적지들이라 멋진 사진들을 많이 보았는데, 막상 실물을 보니 사진보다 못하더라는 것이지요.

 

'사진보다 못한 실물' 마추픽추, 피라미드

 

한편 인간 동력으로만 달리는 자전거를 타고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장거리 자전거 여행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짐작조차 힘든 여행했다고 봐야 합니다.

 

"책자를 보니 마추픽추 관광 본부 기지인 쿠스코까지는 무려 670km나 되었고 대부분 비포장도로였다. 그 사이에 해발 4000m이상 되는 고개를 수십 개는 넘어야 한다. 물과 식량을 가득 싣고 불모의 산악지대로 들어갔다. 해발 600m 지점에서 4300미터 지점까지 단숨에 올라갔는데, 사흘 동안 내리 100km에 달하는 오르막길이어서 안데스 산맥이 얼마나 광대한 규모인지를 심감하게 했다." (본문 중에서)

 

그냥 장거리 여행만 다닌 것이 아니라 로키산맥을 넘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갑니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대를 지날 때는 고산증으로 악전고투를 벌입니다. "타는 갈증과 온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는 극한을 경험합니다.

 

안데스 산맥을 넘어 가는 데는 무려 16일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님의 수행과도 같은 이런 행동으로 남다른 쾌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남모를 쾌감이 있었기 때문에 7년 반 동안 9만5000km를 달릴 수 있었겠지요.

 

그뿐만 아니라 저자의 자전거 여행은 가난한 여행이기도 합니다. 일본보다 물가가 싼 나라들을 여행할 때는 부담이 덜했겠지만, 미국이나 유럽처럼 물가가 비싼 나라를 여행할 때는 어떻게든 돈을 아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식사는 당연히 내 손으로 지어 먹고, 동물성 단백질 보충을 위해서는 낚시를 해서 해결했다.......대구도 자주 올라왔는데 삶거나 끊이거나 어떤 요리를 해 먹어도 맛이 뛰어났다." (본문 중에서)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는 큰 물고기가 잡히면 토막 낸 물고기를 자전거에 매달고 달리면서 바람과 햇빛으로 생선 말리기도 합니다. 안락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구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오히려 자유롭고 생기 넘치는 재미있는 여행으로 느껴집니다.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에는 이시다 유스케의 7년 반 여행이 몽땅 소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와 사람을 중심으로 쓰여진 여행기입니다. 이 책에는 중세의 동화 같은 세계가 펼쳐지는 고풍스런 도시 에스토니아의 탈린, 아일랜드 아란 섬의 돈 앵거스와 같은 멋진 장소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는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를 찾아가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모델이 되었다는 파키스탄 훈자에도 찾아갑니다. 이미 잘 알려진 여행지인 인도의 바라나시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도 여행기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여행이 비행기보다 좋은 까닭?

 

책을 읽다보면 자전거 여행자가 겪는 체력적인 부담, 살인적인 자전거 코스를 아주 실감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대신에 정말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자연과 유적을 만나면 멈춰 텐트를 치고 몇날 며칠이고 머무를 수 있는 자유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자전거 여행이라 추위나 더위를 견디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가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이 컸지만, 대신 자전거 여행이기 때문에 비행기 시간, 기차 시간에 맞출 필요가 없는 자유와  여유를 누리면서 다녔더군요.

 

산전수전, 우여곡절 이런 말들이 딱 어울리는 자전거 여행기입니다. 페루의 사막에서 강도를 만나 자전거를 제외한 모든 것을 빼앗기기도 하고,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 여행자를 위하여 아낌없이 먹을 것과 잠자리를 내어주는 따뜻한 사람들도 수없이 만납니다.

 

한 번이라도 자전거 여행을 꿈꾸었다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쉽게 내려놓을 수 없고, 당장 국내 일주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불끈불끈 솟구칩니다. 당장 내려놓을 수 없는 일들을 생각하며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는 것도, 이것저것 다 제쳐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버리는 것도 모두 독자의 선택입니다.

 

 

가보기 전엔 죽지마라 - 10점
이시다 유스케 지음, 이성현 옮김/홍익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