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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2008년 대한민국 아고라 광장에서는?

by 이윤기 2014.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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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은 촛불 집회로 시작하여 촛불 집회로 끝났다. 지난 2008년 여름 대한민국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2008년 7월 5일, 광장은 촛불로 가득하였다. 이른바 명박산성 앞에서부터 시청광장까지 시위대가 가득하였고, 시청광장을 지나서 남대문 방향 도로 중간쯤까지 시위대가 도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전국에서 10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하는 바로 그 날이다.

 

TV뉴스와 인터넷 중계로만 보던 시청광장 촛불 문화제에 처음 참가하게 되었다. 시청광장에 들어선 그 날, 500명에서 1천명이 모이는 마산집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어린 꼬마까지, 젊은 청년들과 중고생들, 그리고 민노총과 농민회, 전교조 등 이른바 조직된 운동단체 회원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광장에 함께 서 있었다.

 

당시 광장 메인 무대에는 권해효씨와 최광기씨가 나와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광장 곳곳에서는 그들만의 사회자가 나와 각자 촛불집회를 펼치고 있었다. 소박한 악기를 들고 나온 동호인들, 저녁내내 춤과 율동과 노래로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청소년들, 명박산성 앞에서 경찰과의 충돌을 차단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이들은 중앙무대와 상관없이 제 각각 촛불집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앞에는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준비해와 가족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김밥과 캔맥주를 마시며 촛불을 든 한가로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한여름 열대야를 피해서 피서 나온 가족들처럼 아스팔트에 앉아 촛불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목격한 시청광장 촛불 집회 현장모습이다.

 

인터넷 토론방만큼 자유로운 '촛불광장'

 

"초중고가 나섰다. 회사원 교사, 학부모, 사모님들도 나왔다. 유모차도, 예비군도, 인터넷 동호회도, 좋은 화장품을 사용하는 마니아들도, 대학동아리와 도봉구 주민도 나왔다. 또 그래서 일렬종대를 하지 않는다. 엄숙해지지 않는다. 연단을 쌓지 않는다. 연설자를 두지 않는다. 누구나 자유발언이고 개인행동이며 즉흥난장이다."(본문 중에서)

 

날마다 촛불집회 현장을 지킨 '아고라'가 바라 본 촛불집회 현장이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는 2008년 4월 6일 다음 아고라에 '안단테'가 "국회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청원을 올린 날부터 시청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6월과 전국에서 100만 명이 모인 7월 초 촛불집회까지 대한민국을 뒤흔들어놓은 인터넷토론방 다음 '아고라'에서 일어난 '혁명'을 기록한 책이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는 하루라도 아고라에 들어가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폐인'들이나,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지난 석 달을 지나는 동안 도대체 아고라에서는 어떤 토론이 벌어지는지 매일 같이 '눈팅'을 하던 사람들을 위해 씌어진 책이 아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시작된 후에 '아고라'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 본 사람들을 위해 씌어진 책이다.

 

시민단체도 아니고 조직된 운동권도 아닌 '토론의 성지' 아고라가 어떻게 촛불정국을 주도해나갔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씌어진 책이다. 그럼 지금부터 '아고라 폐인'들이 공개하는 아고라를 한 번 들여다보자.

 

인터넷 토론방 아고라는 토론, 이야기, 즐보드, 청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심은 토론과 청원에 있다고 한다. 토론에는 경제, 자유, 정치 등 13개 게시판이 있는데, 촛불집회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토론 게시판이라고 한다.

 

4월 6일, 고등학교 2학년 안단테가 '이명박 탄핵 청원'을 하자, 아고리언들의 찬성댓글에 힘입어 '베스트'가 되고, '다음' 메인 화면에 노출됨으로써 더 많은 네티즌들이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쇠고기 협상과 촛불 관련 글이 올라오면 순식간에 수천 개씩 찬성 댓글이 붙으며 찬반의견이 쏟아지는 과정을 거듭하며 '광장'이 살아나게 되었다고 한다.

 

베스트, 메인을 거쳐 '여론'이 만들어지는 아고라

 

"처음에는 개인들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등장했는데, 그런 글들이 베스트에 오르고 메인 화면에 노출되었다. 꼬리말과 답글이 쇄도하고 조회 수가 몇 만 건이 넘어서면서 눈팅만 하던 사용자들이 자기 의견을 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고라가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힘이다. 내 글이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읽고 공감한다는 걸 경험했다."(본문 중에서)

 

보통사람들의 글이 주가 되었지만 전문가 집단이 쓴 글을 읽으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존 언론과 달리 아고라에서는 결코 한두 사람이 여론을 주도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조중동과 같은 기존 언론처럼 '통제' 당하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진실'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아고라에서 '조중동'은 정체가 모두 드러나게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처럼, 다음 아고라 또한 네티즌들의 토론 공간이자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비록 원색적이고 걸러지지 않은 '정보'들도 무수히 생산되고 유통되지만, 아고라는 그래서 더욱 순수하다. 원색적인 언어 사용은 때로 풍자성을 강화하고, 익명성은 결정적인 순간에 누구나 투사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본문 중에서)

 

또 다른 에너지는 아고라가 가득한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풍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베스트 중의 베스트라고 생각되는 글 중에서 짧은 몇 개를 소개해 본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바꾸겠습니까" - MBC 100분 토론, 나경원 한나라당 국회의원

"아니, 그럼 국민을 바꿔요?" - 아고라 네티즌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풍자가 '힘'

 

컨테이너 박스로 국민과 벽을 쌓은 이른바 '명박산성'은 이렇게 풍자하였다.

 

"명박산성 - 광종(狂宗)(연호:조지) 부시 8년(戊子年)에 조선국 서공(鼠公) 이명박이 쌓은 성으로 한양성의 내성(內城)이다. 성(城)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당시 육조거리에 막아 놓은 기대마벽(機隊馬壁)이 백성들에 의해 치워지매, 그에 대신하여 보다 더 견고한 철궤로 쌓아올린 책(柵)에 불과하다. 이는 당시 서공(鼠公)의 사대주의 정책과 삼사(三司:조선, 중앙, 동아) 언관들의 부패를 책하는 촛불민심이 서공(鼠公)의 궁(宮)으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 만든 것이다. 무자년(戊子年) 유월(六月) 패주(敗主) 두환을 몰아낸 일을 기념하여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한성부 포도대장 어(漁) 아무개의 지시로, 하루 밤낮만에 쌓아올려져서 길 가던 도성 백성들이 실로 괴이하게 여겼다.(출처:조나라)" (본문 중에서)

 

기발함으로 가득한, 도대체 한글에 '박'자로 끝나는 글자가 이렇게 많은가 하는 놀라움이 가득한 'M박 이력서'는 이렇다.

 

"이름:명박, 별명:땅박, 관상:쥐박, 일본:토박, 홈피:엑박, 생각:천박, 개념:외박, 정신:띨박, 철학:척박, 언행:경박, 썩소:함박, 인상:박박, 외모:호박, 인심:야박, 취미:구박, 특기:윽박, 의리:깜박, 공뭔:타박, 공사:압박, 서민:핍박, 민심:각박, 사업:피박, 투기:대박, 범죄:해박, 부패:쌈박, 위증:절박, 경제:쪽박, 정치:도박, 정책:엇박, 미래:포박, 전망:희박, 경기:우박, 성금:협박, 언론:속박, 안티:친박, 야당:반박, 변명:또박, 경준:독박, 부시:숙박, 구속:임박, 탄핵:촉박, 망명:긴박, 하야:급박, 최후:자박, 이런:씨박" (본문 중에서)

 

이밖에도 이른바 '되고송'을 개사해서 만든 여러 개사곡과 '쥐맹매가(쥐盟埋歌)'와 같은 촌철살인의 노래들도 가득하다. 그러나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풍자만 가득 담긴 책은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를 읽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낙제 감성을 가진 나를 울린 글은 전교조 교사와 촛불현장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던 의사가 쓴 글이다.

 

'[명박퇴진]꽃보다 아름다운 제자들아 미안하다'로 시작되는, 지금은 전교조 교사가 된 어느 선생님이 쓴 글에는 그가 살아온 삶이 담담한 고백으로 담겨 있다. 대학 시절 데모하다 잡혀간 아들을 면회 온 아버지가 쏟아내는 눈물을 보고 난 후 '운동'에서 멀어졌던 일, 기간제교사로 들어간 학교에 기부금을 내고 임용된 일, 어린 제자들이 촛불을 들고 방패에 찍히고 물대포에 쓰러지는 일을 보다 결국 '아고라'에 숨어 자위하는 대신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풍자와 재치를 뛰어넘는 '뜨거운 감동'

 

다른 한편은 '당신들이 자랑스럽습니다'로 시작되는 삼청동 집회 현장에서 환자들을 진료한 내과의사가 쓴 글이다. "나중에 엄마가 되면 내 아이의 수많은 꿈을 가진 눈망울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치면서, 이 자랑스러운 날 엄마가 시민들과 함께 하며 다치고 찢긴 이들을 돌보았단다, 라고 하고 싶어서" 서울행을 결정한 내과 의사가 쓴 글이다.

 

전쟁에서도 쫓겨나지 않는 의사가 가운과 청진기를 들고도 경찰들에게 내쫓긴 사연과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의사의 눈에 비친 소화기와 물대포에 쓰러진 어린 여학생들 모습이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아고라에 뽑힌 베스트 중에 베스트에 해당되는 이 책에 실린 글 중에서도 독자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한편, '광장'으로서 아고라는 여론을 만들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는 동력이었다면, 인터넷 광장 아고라는 여론에 대한 실시간 분석과 디지털을 이용한 복제전파로 더욱 빛을 발휘한다. 아고리언들은 스스로 "아고라의 힘은 특정 여론에 대한 실시간 분석과 복제 전파"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아고라에 숨어 있는 수많은 전문가 집단들이 현상에 대해 실시간으로 분석을 올리면, 추천과 반대 기능에 의해 평가를 받고 일정한 평가를 받은 분석은 또한 수많은 누리꾼들에 의해 삽시간에 퍼 날라진다. 이 아고라의 힘이 촛불집회의 숨은 원동력이란 평가도 나온다."(본문 중에서)

 

'시위에서 고립되지 않는 법', '연행대처법', '학생 이명박의 슬픈 눈빛'과 같은 글들은 실시간 분석과 연대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한국민들이 과학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 관련 사실에 대해서도 좀 더 배우길 희망한다"라고 한 버시바우 미국 대사의 발언을 반박하는 '신경과의사'가 쓴 글 '버시바우, 그 입 다물라!'도 압권이다. 아고리언들은 스스로 아고라를 이렇게 정의한다.

 

"아고라는 낡은 상상력을 철저히 무력화시키고 아날로그적 속도를 제치면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연대하고 디지털의 속도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질주했다."(본문 중에서)

 

분석하고, 추천하고, 퍼 나르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어디 그뿐인가? 경찰과 언론사들 입맛대로 왜곡하는 촛불집회 참가인원은 촛불집회 현장 사진을 분석한 아고리언에 의해서 진실이 밝혀진다. 사실을 왜곡하는 글을 남긴 국회의원을 찾아내고, 뉴라이트 임헌조 사무처장이 맥도날드 햄버거가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로 만들어진다는 발언을 하자마자 맥도날드 본사에 항의를 한다.

 

미국에 있는 아고리언은 맥도날드 본사에 항의전화를 하고, 외신에 나온 보도를 번역해서 올리는 일도 자발적으로 해낸다. 조중동을 비롯한 누구도 아고리언들을 속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거짓이 통하지 않았고 철저한 검증을 통해 늘 진실이 '베스트'가 되었다. 아고리언들은 몇년 전, 몇십 년 전에 조중동이 한 일도 모두 까발렸다. 그리고 아고라에서 밝혀진 '진실'은 일파만파로 복제되고 전파되어 전국 곳곳에 있는 광장으로 촛불들을 불러낸 것이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는 어쩌면 아고라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씌어진 책이다. 그리고 또 아고라에 들어가서 이런 기발한 글들을 검색해서 읽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책이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한 권이면, 지난 석 달 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은 '아고라'에 올라온 '엑기스' 글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짜가 아니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과 쉽게 돌려 읽을 수 있는 탁월한 장점이 있는 책이다. 내 책을 빌려 읽은 동료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 상식사전'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네이버와 10년 동거를 청산하며'라는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세상이 바뀌는 걸 보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을 바꾸면 어느새 세상도 달리 보인다."

 

2008년 보다 더 암울한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그때의 기억들이 새로운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맹추위가 지나가고 봄이 오면 새로운 희망이 싹틀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 10점
아고라 폐인들 엮음/여우와두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