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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 사장이 쓴 여행기는 뭐가 다를까?

 

[서평] 강순규 '여행, 길을 잃어도 괜찮아', 좀 다른 중미 여행기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아메리카 여행을 보통은 '중남미 여행'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중미 여행'이라는 단어는 웬지 좀 어색합니다. 강순규가 쓴 <여행, 길을 잃어도 괜찮아>는 멕시코에서 파나마까지 이어지는 50일간의 중미 배낭여행 기록입니다. 

<여행, 길을 잃어도 괜찮아>는 저자 강순규가 유럽 전문 여행협동조합 '소풍' 대표가 되기 직전에 다녀온 중미 여행기입니다. 그는 지금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되는 더 큰 여행사 사장이 되어 있습니다. 여행사 사장이 쓴 여행기는 뭔가 다를까요? 네, 다릅니다. 

 

우선 숙박, 교통, 식당 등에 관한 정보가 나열되어 있는 그런 책이 아닙니다. 멋진 사진을 여러 장 올려두고 간단한 소회를 기록해 두었거나 경험과 정보를 담고 있는 블로그 포스팅들과도 다릅니다. 이 책은 그들의 역사와 그들과 만나는 우리 역사를 기억해내고 있습니다.

 

"북미 3개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1994년 1월 1일 바로 그날, 멕시코에서 가장 고립되고 가난한 치아빠스 주의 라깐도나 밀립에서 사빠띠스따의 봉기가 발발한다. 이들은 산끄리스또발을 포함한 인근 6개 마을을 점령한 후, 이제 그만 이라고 외치며 멕시코 정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였다. 하지만 사빠띠스따 봉기의 주목적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 착취 중단과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어서 사빠띠스따의 <라깐도나 정글 선언> 첫머리를 소개한다. 아울러 중남미에서 고립되고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원주민이며, 치아빠스주의 인구 1/3이 마야인이라는 사실과 가난과 질병, 천대와 굴종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사빠띠스따와 멕시코 이민 역사의 시작

 

멕시코와 만나는 우리 역사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남미 이민 역사가 바로 멕시코와 잇닿아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1905년 1033명의 한인들이 계약 노동자의 신분으로 멕시코 유까딴 반도에 정착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1905년 4월 11일, 영국 기선을 타고 제물포항을 떠나 5월 9일 태평양 연안의 살리나끄루스항에 도착한 뒤 다시 기차와 배를 번갈아 타면서 최종 목적지인 유까딴 반도의 메리다에 5월 14일에 도착했다. 이들 대부분은 아씨엔다라는 대농장에서 에네껜 노동에 투입되어 거의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의 계약 기간은 4년, 그러나 이들은 끝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노동 이민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기억한다면, 낯선 이국땅을 여행하다 일제 강점으로 인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멕시코 여기저기로 흩어져 정착했던 이민 노동자의 후손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장미희 주연의 영화 <애니깽>과 김영하 장편소설 <검은 꽃>이 모두 이민 노동자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과 '메리다'라는 도시에 한인이민박물관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줍니다.       

 

그의 여행기를 읽다가 눈에 띈 내용 중 하나는 서양보다 500년이나 앞선 마야문명의 천문학에 관한 소개였습니다. 흔히 우리는 코페르니쿠스라는 천문학자가 처음으로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고 알고 있는데, 실은 그 보다 500년 전에 마야문명은 이미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위도와 경도의 개념, 일식과 월식 그리고 금성을 포함한 별자리들의 이동법칙을 거의 정홯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빼어난 지식을 바탕을 만든 것이 바로 쿠쿨깐 피라미드 인 것이다."

 

마야인들은 오늘날의 천문학과 비교해도 그 차이가 미미할 만큼 정확하게 지구와 달의 공전주기를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쿠꿀깐 피라미드에는 마야인들의 뛰어난 천문학과 수학 지식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태양력의 365계단 춘분과 추분의 일몰에 나타나는 그림자 효과 등이 그런 사례라고 합니다. 

 

저자는 영화 평을 쓰고 강의도 하는 영화 마니아인데, 이 책 여러 곳에 여행지와 관련이 있는 영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를 여행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영화 <아포칼립토>에 등장하는 피라미드가 바로 쿠꿀칸 피라미드라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강순규가 여행한 중미 지역 지도

여행은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여행 철학을 밝힙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풍경을 받아들이는지 알아챌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눈은 여행만 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 울타리 밖에 있는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문화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그가 쓴 여행기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멕시코, 콰테말라, 엘살바도르와 니콰라과 그리고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사람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곳으로 여행 온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는 여행자들과 쉽게(독자의 주관적 판단일 수 있겠지만) 친구가 됩니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도 금새 마음을 터놓고 여행 정보를 주고받는 것뿐만 아니라 길지 않은 길동무와 헤어지는 장면에서도 애잔함이 묻어나옵니다. 바로 여행과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마음에 '소통'이 전제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그가 다녀온 중미 지역을 여행하려는 독자들에겐 자세한 여행 동선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선 매일매일 새로 찾아가는 낯선 도시에서 저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값싸고 깨끗하고 안전한 숙소를 정하는 일과 다음날 혹은 그 다음날 다음 여행지로 떠나는 차편을 예약하는 일이라 시간에 쫓기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   쿠꿀깐 피라미드

책을 읽는 내내 무언가 긴장감이 계속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책을 내려놓을 즈음에 그 까닭이 짐작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대한 정해진 시간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배낭 여행객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저자 강순규가 다녀 온 중미 지역을 여행하기 전에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 그리고 마야문명이나 원주민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길잡이가 될 만한 글들이 잘 요약되어 있답니다. 독자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국경을 넘을 때마다 중남미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지역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인문학적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중남미 원주민의 관점에서 중남미의 도시와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과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장점입니다. 여행지에서 찍은 멋진 사진들이 많은데 인쇄한 사진으로는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어렵고 낯설 뿐만 아니라 발음하기도 어려운 지명과 용어들 때문에 책 읽기가 자꾸 느려지는 것 같았습니다만, 책으로 저자를 뒤쫓아 가는 읽기 여행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간신히 따라갔습니다. 

 

중미 혹은 중남미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들이라면 론니 플래닛 같은 가이드북이야 기본이겠지만, 강순규가 쓴 <여행, 길을 잃어도 괜찮아> 같은 인문학적 소양이 담긴 여행기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합니다. 유명 관광지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 떠나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추천해드리고 싶은 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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