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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고 나면 해외 연수 무조건 중단해야 하나?

by 이윤기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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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4. 3 방송분)

 

1992년 지방자치가 부활하고 30년이 넘었습니다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 중 하나가 바로 의원들의 외유성 해외 연수 문제입니다. 오늘은 경상남도 의회와 도내 18개 시군의회 의원 해외 연수 문제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30여년 전 지방의회가 처음 출범하였을 때는 의원자질 논란이 많았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만, 초기에는 지방의원 출마자들에 대한 검증 절차가 미흡하다보니, 의정활동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제력을 갖춘 이른바 지역유지라고 하는 분들이 앞다투어 출마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원들 중에는 4년 임기내내 의정질의 한 번 안 하고, 조례 발의 하나 안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요즘도 팩트체크가 안 된 주장을 하는 의원들이 가끔 계시지만, 지방의회가 출범하고 초기 10여 년은 시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의정감시단> 을 만들어서 의회 방청석에 앉아서 감시를 해야 할 만큼 자질이 모자라는 의원들도 많았고, 각종 비리와 이권사업에 연루되어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의원들도 많았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부정선거가 근절되지 않고 있고, 당장 이번 주 수요일에도 창녕군수와 도의원 보궐선거가 예정되어 있으며, 지금도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낙마하는 의원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 30년 동안 지방의회의 수준도 많이 높아졌고, 선출되는 의원들의 실력과 자질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물론 경남 도내 18개 시군의회를 따로따로 놓고 보거나 의원 개개인을 놓고 보면 여전히 함량 미달인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기초의회의 경우 선거제도 개편으로 특정 정당 출신이 독점하는 구조가 바뀌면서 전체적으로 견제와 균형도 좀 나아졌다고 생각됩니다.

 

 

사고 나면 해외 연수 무조건 중단해야 하나?

그런데 지방의회 활동 중에 여전히 여론의 도마에서 올라있는 사안 중 하나가 바로 앞서 말씀드린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연수 문제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기 시작한 작년 가을무렵부터 또다시 여러 언론들이 앞 다투어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의 적절성을 거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민단체 중에서도 의원들의 해외연수 문제를 집요하게 살펴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저는 이런 보도를 위해 취재하는 기자분들로부터 인터뷰를 요청 받을 때가 더러 있는데,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기대하고 연락을 주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의원들의 해외연수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그런 인터뷰는 기사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차례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저는 언론과 일부 시민단체의 지방의원 해외 연수에 대한 보도와 비판이 좀 지나친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나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겁니다. 합천군의회가 지난 9일부터 17일까지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해외연수를 떠났는데, 전날 발생한 산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는데도 연수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공직자의 해외 연수는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일반 시민들이 해외 여행을 예약해놓은 경우에도 제 날짜에 출국을 하지 않으면 여행경비 대부분을 돌려받지 못합니다. 상대방 국가의 공공기관을 방문하는 등 여러 연수 일정이 여러 날 동안 사전 준비 되었기 때문에 산불 때문에 연수를 포기해서 생기는 해당 국가와 외교적인 문제부터 크고 작은 손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 3월 29일 세종시의원 2명이 출발 당일 돌연 해외 연수에 참가하지 않아서 1인당 국외공무연수 경비 305만원 중에서 255만원을 위약금으로 물어주는 일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의원들의 해외연수 시기를 비판하는 기사는 더 있습니다. 수해복구가 끝나지 않았는데 해외 연수를 간다더라, 가뭄이 지속되고 있는데 해외연수를 간다더라 하는 비판들인데, 몇 달전부터 자연재해까지 예상하고 연수를 준비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과도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방의원 해외연수...관광지도 갈 수 있다


두 번째는 관광 프로그램이 많다는 비판입니다. 전체 연수 일정을 뜯어보면서 관광지 방문이 몇 번이다 하는 식의 비판이 있고, 해당 상임위원회 활동과 연수 관광지가 적합하지 않다는 등의 비판입니다. 저는 이런 비판도 좀 지나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떠나는 수학여행은 공부만 하러가지는 않는 것처럼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 일정의 일부는 쉼과 힐링이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단체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저도 공익재단이나 정부가 선발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해외연수에 선발되어 다른 나라 견학하고 온 경험이 있는데, 가서 공부만하고 오지는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는 일정으로 생각한 장소에서 배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울러 저는 상임위원회별로 떠나는 해외연수는 의원들의 멤버십 트레이닝 즉 MT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의 공천을 받는 의원들은 평소에는 소속 정당의 정강과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사사건건 부딪히는 관계인데, 이런 자리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허심탄회한 소통의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일, 8일을 함께 먹고, 함께 자는 일정은 국내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사회가 유독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에만 높은 기준을 제시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의 해외 연수나 출장은 별로 따지는 곳이 없습니다 또 선거로 뽑인 지방의원들의 해외 연수는 꼼꼼히 살펴보면서 중앙부처나 지방정부 공무원들의 해외 연수는 제대로 살펴보는 언론도 없고 시민단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정부가 만든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이라는 사이트에 공직자들이 다녀온 388,413건의 해외연수 보고서가 모여있는 데이터 베이스인데요. 제가 다 살펴본 것은 아닙니다만, 공무원들 연수 일정과 결과보고 중에도 선진지 견학 연수는 지방의원 연수보다 부실한 보고서 경우기 적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저는 지방의원의 해외연수에 대한 평가 역시 연수계획서와 연수보고서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연수계획서와 연수보고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의정활동을 얼마나 성실하게 하였나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들도 그렇고,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를 비판하는 시민단체들도 그렇고 의정활동과 연결해서 보지 않기 때문에 결국 해외연수에 참여하는 의원 모두를 싸잡아서 비판하게 됩니다. 

 

똑같은 나라 똑같은 장소로 의원연수를 다녀와도 의정활동에 잘 반영하는 의원이 있고, 그냥 다녀온 것으로 끝나는 의원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일부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 일정과 보고서를 보면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해외연수 평가가 지금보다 좀 더 균형 있게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