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5. 4. 28 방송분) |
1928년에 건립되어 100년을 내다보는 옛 원동무역 사옥을 근대근조물로 지정하자는 시민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산YMCA, 창원특례시건축사회, 그리고 창원상공회의소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옛 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 보존 및 활용 문제에 관하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원동무역주식회사는 경남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마산어시장 객주(중간상인, 유통업자, 금융업자, 오늘날의 수협)였던 옥기환, 명도석, 김철두 등 3인이 1919년에 설립한 최초의 한국인 설립 주식회사입니다. 마산어시장에서 원동상회를 운영하던 옥기환이 중심이 되어 1919년에 9월에 자본금 50만엔의 주식회사 설립을 결의하고 11월에 창립 총회를 열어 초대사장으로 옥기환 선생을 선출하였는데요.
앞서 언급하였듯이 조선회사령에 따라 원동무역주식회사 이전에는 일본인들만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옥기환이 운영하던 원동상회라는 이름을 물려받아 원동무역주식회사라는법인을 설립한 것을 보면, 초대 사장인 옥기환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옥기환, 명도석, 김철두 이 세분은 모두 마산어시장 객주로서 성공한 사업가들이었는데, 돈만 잘 버는 기업인이 아니라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선각자들이었습니다. 세 분은 모두 비밀결사조직인 조선국권회복단에 군자금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단체를 직접 지원하였습니다.
옥기환, 명도석, 김철두 선각자들이 세운 원동무역 주식회사
먼저 초대 사장이었던 옥기환 선생은 마산어시장 객주이면서 마산정미소, 마산창고, 남성양조 등을 경영했던 민족자본가이며, 독립자금지원 뿐만 아니라 마산노동야학을 설립하여 교장을 맡았으며, 현재의 배달유치원(현, 대자유치원),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 창신학교(현, 창신중고등학교), 마산공립상업학교(현, 용마고등학교) 등의 개교와 운영에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마산노동야학교는 학교 이름에 ‘노동’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탄압하자 ‘마산중앙야학교’로 이름를 바꾸었고 지금의 마산중앙중학교와 마산공고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옥기환 선생은 해방 후 미군정기에 초대 마산 부윤을 지냈는데요. 요즘으로 치면 초대 관선 마산시장을 지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군정은 시민들의 추천으로 가장 신망받는 인물을 부윤으로 임명하였는데, 그가 바로 옥기환이었던 것입니다.
함께 원동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하였던 명도석 선생도 단순한 부자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어시장 객주이면서 운송업과 양조업을 하였던 민족자본가이면서 특히 노동운동에 호의적이었으며, 진보적 지식인의 신뢰를 많이 받았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벌어졌을 때 마산추산공원에서 벌어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좌우합작 독립운동 조직인 신간회 마산지회장을 지냈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마산위원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팔용산 끝자락 마산 봉양로에는 명도석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큰 비석이 세워져 있고, 마산육호광장 교차로에서 용마고등학교를 지나 수출자유무역정문 사거리에 이르는 길은 명도석 선생의 호를 따서 허당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김철두 선생 역시 옥기환, 명도석 두 분과 함께 원동무역 설립에 참여하여 민족자본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마산노동야학 운영을 비롯하여 민족 교육에 참여하였습니다. 창신학교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원동무역주식회사와 독립운동단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1928년에 완공된 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이 마산남성동 91번지에 원형을 상당히 잘 보존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원동무역 사옥은 1928년 당시 마산 최고번화가였던 모토마치 세워졌는데, 436제곱미터의 땅에 총공사비 2만 3천엔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세워졌습니다.
100년 내다보는 원동무역... 마산 상징 근대 건축물
앞으로 3년 후면 100년이 되는 건물인데요. 일제 치하 마산시민들에게는 민족자본을 상징하는 자긍심을 주는 건물이었고, 해방 후 마산교육청으로 사용되었으며, 한국전쟁시기에는 미 육군 25사단이 사용했던 건물인데, 1953년 옥기환 선생이 돌아가신 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건물이 3층으로 증축되었고 학원, 식당, 술집, 노래방 등 다양한 사업시설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 건물 외벽을 싸고 있던 합판을 걷어 내자 초기 건립 당시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외벽이 드러났고, 당시 기준으로 볼 때는 화려함과 중후함을 갖춘 격조 있던 건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옥기환, 명도석, 김철두 세 분의 원동무역을 통해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에 깊이 참여함으로써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로 평가되고 있고, 독립기념관은 ‘원동무역주식회사 터’를 국내항일운동사적지로 지적하였고, 건물 앞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바로 이런 역사성과 건축적 가치를 가진 건물이기 때문에 건립 100주년을 앞두고 마산YMCA는 건물주에게 창원시 근대건조물 지정 신청을 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창원시 근대건조물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에 따라 근대건조물로 지정되면 창원시가 예산을 들여서 건물을 매수할 수도 있고, 소유자 등에게 수리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도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됩니다.
시민단체가 근대건조물 지정을 서두르는 것은 창원시가 근대문화유산보전에 소극적이라는 과거 전력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철거되었던 삼광청주 공장이라던지, 315해양누리공원자리에 있던 쌍용시멘트 사일를 보전하는데 실패하였고, 마산 부흥기를 이끌었던 한일합섬 공장도 모두 아파트 단지가 되어 버렸으며,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경성전기사옥이나 지하련 주택 보전도 확실한 해법이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포나 군산으로 여행을 다녀온 많은 분들이 근대 문화 유산, 근대 산업 유산을 재생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많이 보고 오셨을텐데요. 군산, 목포 모두 근대문화유산거리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창원시 마산이나 진해에서도 군산이나 목포 같은 정도는 더 나은 사례를 만들 수 있고 스토리텔링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포나 군산과 비교했을 때 우리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이런 역사문화자산을 지역 자산과 문화 자원으로 활용할만한 혜안을 가진 리더가 없다는 것입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여야 후보들이 모두 원동무역 사옥 매입을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하고 당선되면 창원시가 매입하여 역사, 문화 자산으로 재생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