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6. 9.2 방송분) |
지난 9월 8일부터 12일(토)까지 창원 사림동에 있는 경남기록원에서는 ‘제1회 경남기록의 숲’이라는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경남기록원 개원 6년만에 처음 열린 기록 관련 시민 참여 행사였는데요. 지난 주말 저도 폐막 행사인 영화로 보는 아카이브 행사에 참여하고 수장고를 비롯한 기록관리 시설을 처음으로 견학하였는데요. 오늘은 지방정부의 영구기록물 관리와 경남 기록의숲 행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체계적인 공공기록물 영구관리가 시작된 것은 1962년부터입니다. 1948년 정부를 수립하고 14년이 지난 1962년 5월, 내각사무처 총무과에 문서촬영실이 설치된 것을 그 시초로 하고 있습니다. 1969년 8월에는 총무처에 정부기록보존소가 설치되었으며, 2004년에서야 국가기록원으로 명칭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국가기록물 관리에 관한 기본정책을 결정하고 기록물 관리제도 개선, 대통령기록물과 공공기관의 보존대상 기록물 및 민간보유 중요기록물의 수집·보존 및 열람 활용 등의 업무를 하는 기관입니다.

지방정부에 기록관리기관 설치가 의무화된 것은 2007년 4월, 공공기록물관리법이 시행되면서 광역 시, 도 기록물관리기관 설치가 의무화되었습니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무려 11년이 지난 2018년 5월, 경남기록원이 전국 최초의 지방기록물관리기관으로 개원하였습니다. 서울기록원은 경남보다 1년 늦은 2019년 5월에 개관하였구요. 사실 경남도가 서울이나 경기도보다 앞서서 지방행정의 모범이 될 만한 사례를 내놓은 경우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인데요. 지방기록물관리는 가장 앞섰던 것입니다.
현재도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은 경남, 서울 그리고 청주 세 곳뿐인데요. 2022년 1월에 개원한 청주기록원은 기초자치단체에 처음 설립된 지방기록물관리기관입니다. 2014년 청주시와 청원군 통합하면서 통합 전 기록물관리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2017년에 청주시기록관으로 문을 열었다가 2015년에 청주기록원으로 승격·개원하면서 기초자치단체 1호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 되었습니다.
창원기록원 대신 창원시 흉물 랜드마크 빅트리 건립?
시민들을 잘모르시겠지만, 청주시와 비슷한 시기에 창원시도 기록원 설립을 추진하였습니다. 창원시는 2020년부터 창원기록원 건립을 추진하여 2022년 2월에 개관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계획을 보면, 창원시청을 비롯한 4개청사 11개 서고에 보관 중인 공공기록물 93만여권과 경남기록원에 보관 중인 1248권을 이관받아 보관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산 확보의 어려움과 창원민주주의전당, 창원시립박물관, 시립미술관 등 신규 공공시설물 동시 추진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핑계로 중단되었으며, 홍남표 전 시장 임기 동안 사실상 취소 되었습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성산구 중앙동 159-1번지 대상공원 내에 지하1층 지상 2층, 전체면적 3800㎡ 규모로 창원기록원이 건립되어 있어야 하지만, 지금 대상공원에는 창원기록원 대신 2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인 창원시의 흉물 랜드마크인 빅트리와 활용방안을 못찾고 있는 맘스프리존이 들어서 있습니다. 앞으로도 창원기록원 설립은 요원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남기록원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2018년 5월 이후 현재까지 경남기록원에는 일반문서 35만여권, 시청각 자료 1600점, 행정박물 1319점, 간행물 4천2여권, 그리고 보존가치가 있는 민간기록물 2만 2000여권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지난주 개최된 경남기록의숲 행사 기간에는 항균, 항습 저장 시설을 갖춘 서고와 박물자료실, 보존처리실, 복원실 등의 경남기록원 시설 견학이 가능하였는데요. 저도 시설을 둘러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서고에는 경남도내 각 시군에서 생산되는 공공기록물들이 절반가량 들어차 있었고, 앞으로도 매년 생산되는 기록물을 이관받아 보관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엄복동 자전거 재현, 팔만대장경 복제품 전시
올해 처음 개최된 경남기록의숲 행사는 도민들에게 기록물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기록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개최된 행사인데요. 도내 창원을 비롯한 4개 시군, 대학, 교육지원청, 문화원연합회, 청자미디어센터, 창원레포츠파크 등 11개 기관 단체가 참여하여 특색있는 기록물들을 소개하였는데요. 이를테면 창원레포츠파크는 다양한 종류의 시대별 자전거를 전시하였는데, 일제강점기 엄복동 선수가 탔던 영국산 경주용 자전거 재현품을 전시하였구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복제품도 전시하였습니다. 복제품 전시라고 하면 시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팔만대장경판은 복제품 조차도 일반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기록원 전시에 이어 두 번째로 일반에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행사 마지막날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부르는 소녀들의 이름: 양덕동 한일의 기억>을 보러 갔었는데요. 이 영화는 창원에서 활동하는 빛공방 소속 제작자와 감독이 옛한일합섬 노동자이면서 한일여실고 출신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를 다큐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전성기 한일합섬에는 4만 3천여명이 일을 하였고, 한일여실고 학생수는 5천명을 넘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당시 합성섬유는 지금의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이었고, 한일합섬은 지금의 삼성전자처럼 세계 1위의 함성섬유회사였으며,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을 통틀어 처음으로 수출 1억불을 달성했던 회사였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차츰 잊혀져가는 한일여실고 여학생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 영화입니다. 주말 오후였지만, 30여 명이 시민 관객들이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1시간 넘게 감독과의 대화, 출연진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는데요. 나이든 관객들은 그 시절을 살았던 한일여실고 소녀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하였구요. 젊은 관객들은 “그 시절 삶이 오늘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알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다큐에 출연하셨던 두 분은 “관객들을 통해 내 젊은 시절의 삶을 인정 받으면서 치유가 되는 경험을 하였다”는 소회를 전해주었습니다.

경남기록의숲 기간에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도 개최되었지만, 무엇보다 개인이 모으고 남긴 기록물이 어떻게 지역사의 자료가 되는지를 일반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행사였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마산YMCA도 경남기록원과 민간기록물 기증 협약을 맺고 1946년부터 1990년까지 생산된 기록물을 1차로 기증하였는데요. 80여년 전에 생산된 기록물들은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부스러지기 때문에 저희 같은 민간단체에서는 더 이상 보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기록원의 민간기록물 수집 대상기관으로 선정되어 영구보존이 가능하게 되었고, 앞으로 디지털화된 자료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올해 경남기록의숲 행사는 지난주로 막을 내렸습니다만, 평소에도 경남기록원은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은 개방되어 있으니 꼭 한 번 둘러보시고, 개인이 남긴 기록도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시민들이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