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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우리말 제목은?


[서평] 이브 엔슬러가 쓴<버자이너 모놀로그>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책 보다 연극으로 먼저 만났습니다. 지난 봄 마산 315아트센타에서 전수경, 최정원, 이미경이 출연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 공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뮤지컬을 잘 모르는데, 세 명의 배우 모두 뛰어나고 인기 있는 유명 뮤지컬 배우라고 하더군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지방 도시에서 이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었는데, 「버자이너 모놀로그」10주년이 되는 올 봄에 마산에서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의 극작가이자 시인, 사회운동가, 시나리오 작가인 이브 엔슬러의 히트 연극을 국내 상황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었습니다.  작가 이브 엔슬러는 200명이 넘는 각계각층의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써내려 간 원작이야기를 모놀로그 연극으로 작품화하였다고 하더군요.

저는 연극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전수경, 최정원, 이미경 세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하면서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긴 시간동안 참으로 집중적으로 여성 생식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극을 보고 난 후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보니 원작은 이미 세계 24개국에 번역 출판되었고, 국내에도 2001년에 책으로 출간되어 있었습니다. 또 연극은 전 세계 119개 국가에서 45개 언어로 공연되었으며,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공연된 나라들로 여성폭력에 대항하는 대중적이고 세계적인 운동인 V-Day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책과 연극을 통해 촉발된 V-Day 운동 10년 역사를 추가하여 엮은 개정판이 번역된 것 입니다. 특히, 10주년 기념 개정판에는 한국 위안부 여성들에게 바치는 모놀로그 「말하라」를 포함한 다섯 편의 모놀로그와 V-Day 운동 10년의 역사가 추가 되었다고 합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10주년 기념판

이브 엔슬러가 <버자이너 모놀로그>라는 연극을 시작하게 된 것은 한 친구와 나눈 폐경에 대한 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자신의 성기에 대해서 얼마나 끔찍한 증오와 경멸, 혐오감을 갖고 얘기하는지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여성들에게 성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모두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불편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못 견디는 것을 발견했다.”

이브 엔슬러는 미국뿐만 아니라 보스니아 난민 캠프까지 날아가 200명이 넘는 여성들의 성기 이야기를 들었고, 10주년 기념판에는 한국 위안부 여성들에게 바치는 모놀로그도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10주년 기념판에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대본뿐만 아니라 한국 위한부 여성에게 바치는 모놀로그 ‘말하라’를 포함한 스포트라이트 모놀로그 5편, 브이데이 운동 10년에 관한 기록이 선언문, 연표, 증언과 생각들로 엮어져 있습니다.

책과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버자이너 Vagina'란 여성의 성기로 '질' 또는 '보지'를 뜻합니다. 연극을 통해 대부분 사람들이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거기' 내지는 '아래'로 지칭하는 여성 생식기가 드디어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 책이 연극의 원작이니 당연하겠지만, 제가 본 연극과 원작의 내용은 대부분 일치하였습니다. 이브 엔슬러는 이 작품에서 남근 중심 문화 속에서 금지되고 모욕당해왔던 수치심 가득한 여성의 성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연극은 남편에게 존중 받지 못하는 여성 생식기, 강제로 성폭행당한 여성의 절규,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 여성의 자위행위, 여성의 성을 찾아내는 워크샵, 그리고 여성의 출산 등 여성의 생식기로부터 비롯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7살 난 어린 아이부터 70세의 할머니까지의 시시각각 다른 얼굴과 다른 목소리, 다른 영혼이 3인의 배우를 통해 무대에 재현되어 짜릿한 감동으로 전해옵니다. 배우란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더군요.

연극과 원작은 모두 여성의 생식기를 소리 내어 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여성의 생식기는 여전히 금기시, 터부시 되어 누구도 그리고 여성이라면 더욱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밀이 됩니다.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가 되기 쉽습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죄스러운 일이라고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입 밖에 내어 말하기로 했습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첫 글자는 바로 ‘버자이너’입니다. 여성 생식기를 소리 내어 말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브 엔슬러는 극장에서, 대학에서, 거실에서, 저녁파티에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라디오 방송에서 ‘버자이너’를 소리 내어 말하였다고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텔레비전에 나가서도 그 말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금기의 단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기

버자이너 모놀로글 연극으로 공연을 할 때는 하루 저녁에 128번씩 큰소리로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 생식기를 입 밖으로 내어 말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  입니다.

“맨 처음 당신은 그 말을 할 때 당신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을 단번에 뚫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가질 것 입니다. ‘보지’ 당신은 마치 누군가 당신을 후려칠 것 같은 죄책감과 함께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런 죄책감과 같은 느낌을 극복하는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 이브 엔슬러의 생각입니다. 오직 수백 번 혹은 수천 번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당신의 말이 되고 당신의 몸의 한 부분으로 자각되고 당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연극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버자이너 모놀로그 도입부는 관객과 함께 여성의 생기기를 소리 내어 말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제가 본 연극에서는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 전수경이 먼저 관객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여러분 걱정되시지요? 언제쯤 그 단어가 나올까? 은근히 기대하시는 분도 있으실거구요?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오신 분들은 많이 당황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뭐~ 이런 이야기로 관객들과 마음트기를 합니다. 배우들과 스텝들 사이에서는 올 해부터 이 연극 제목을 '우리말'로 했으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극장 현수막에 커다랗게 한글 제목이 붙었을 때, 남자 친구에게 이 연극을 보러가자고 말 할 때, 창구에서 티켓을 구입할 때 등 우리말 제목을 사용하면 참 난감해질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도록 한 후 이윽고 객석을 향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 중에서는 이 연극 제목을 우리말로 말 할 수 있는 분 있으세요?,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우리말로 할 수 있는 분 있으세요."

아마, 대본대로면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모두 아무 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전수경씨가, "네, 그렇습니다. 알아도 모르지요. 누구도 쉽게 말하기 어렵지요" 뭐 이렇게 말하면서 다음 장면으로 너머 가야 하는 상황이지요.

그런데, 제가 봤던 공연에서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객석 한 쪽에서 "예, 저요"하고 소리치는 씩씩한 여성이 나타났습니다. 배우도 객석에서 일어난 의외의 반응에 조금 놀라는 눈치였고, 관객들도 모두 흠칫하였습니다. 함께 객석에 있는 저는 마치 제가 대답해야 하는 것처럼 난감하더군요.

"보지의 독백" 이라고 외친 여고생의 씩씩함

잠시 침묵과 긴장이 흐른 후, 전수경씨가 그녀에게 "네 그럼 큰 소리로 우리말 제목을 말씀해 주세요"하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역시 잠깐의 침묵과 긴장이 흐른 후에......"보지의 독백" 하는 큰 외침이 객석 한쪽으로부터 공연장에 전체에 울려 퍼집니다. 노련한 배우 전수경은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으로 너머 가기 위하여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연극의 한국말 제목은 '보지의 독백'입니다. 어디서 온 누구시지요?"

"저는 창원에서 온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 고등학교 2학년 OOO입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한글 제목을 소리 높여 외친 그 여성은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더군요. 그녀가 자기를 밝히자 무대 위에 있는 전수경, 최정원, 이경미 세 명의 배우와 객석에 있던 관람객들이 모두 큰 박수로 그녀를 격려하였습니다.

전수경은 "저런 멋진 후배가 있어 뮤지컬 하는 선배 배우로서 힘이 납니다."하고 씩씩한 그녀를 격려해주더군요. 간절히 바라는 자기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용기있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젊은 친구를 만난 기쁨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란 제목 때문이었는지, 객석에는 90%이상이 여성 관객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성 성기가 쏟아내는 거침없는 외침을 들어야 할 사람은 여성만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책을 번역한 류숙렬은 이 책이 단순히 연극의 대본으로만 읽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성의 육체를 되찾고자 하는 여성운동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말하자면 V-Day 운동에 대한 이해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한국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 공연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V-Day 운동으로서의 측면은 부각되지 못한 채 공연 활동의 하나로만 한정되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세상 함께 사는 여성과 남성 모두가 여성성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처해있는 그리고 여성의 몸이 처해있는 부당한 억압과 폭력, 차별을 낱낱이 드러내고 치유하기 위한 목소리도 담고 있습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통해 이브 엔슬러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끝내야만 여성들의 온전한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끝내는 것은 두려움 없이 여성의 위대한 힘에, 여성의 신비에, 여성의 가슴에, 자연에, 끝없는 섹슈얼리티에, 여성의 창조성에 문을 열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기가 되어버린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거침없이 풀어낸 걸작입니다. 연극이던 책이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꼭 한 번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여성들에게는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속 시원히 틀어 놓는 카타르시스의 공간이, 남성들에게는 여성을 사랑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 10점
이브 엔슬러 지음, 류숙렬 옮김/북하우스








Trackback 2 Comment 8
  1. 실비단안개 2009.11.12 11:4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 읽었습니다.

    사전에는 ‘음문’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하며, 우리는 스스로 말하기를 꺼려하고, 누군가에게 듣기도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몇 년전에 어느 분이 해석을 해주더군요.
    꿈 보다 해몽이지요.^^

    결코 마르지않는 보배로운 연못이라고. 寶池

    • 이윤기 2009.11.13 11:11 신고 address edit & del

      보배로운 연못... 참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저도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2. 여여 2009.11.13 10:1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책은 오래 전 읽었는데, 연극은 못 봤네요
    꼭 보고싶은데
    '성'에 대해 터부시하고 음습하게 만드는 문화 때문에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여지지요...
    어서 바뀌어야할텐데...^^

    • 이윤기 2009.11.13 11:09 신고 address edit & del

      뛰어난 배우들 덕분에 연극은 책 보다도 훨씬 경쾌합니다. 연극도 꼭 함 보세요. 저는 나중에 아들에게도 보라고 할 작정입니다.

  3. 도야지 2009.11.13 11:0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 이야기하고는 좀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수업 중에 남근, 음부에 대해 질문하시더라구요...그러면서 왜 우리말 놔두고 이렇게 어려운 표현을 쓰냐며.....남녀의 성기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은 결국 은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이윤기님 글을 읽고 문득 그 생각이 나네요...너무 멋진 글이었습니다.

    • 이윤기 2009.11.13 11:08 신고 address edit & del

      아유 ~ 막상 알아도 직접 닥치면 직접 부르기가 쉽지 않지요. 어려운 일입니다. '보지의 독백'이라고 외치는 여학생의 당당함이 참 부럽더군요.

  4. duval 2009.12.14 02: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이 책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인데 서평 잘 봤습니다. :)

    • 이윤기 2009.12.14 08:44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연극도 보시면 좋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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