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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세게 치세요 ! 안 망가져요, 맘대로 치세요

by 이윤기 2010.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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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종휘가 쓴 <일하면 논다 배운다>


노리단 - 일하며 놀며 배우는 곳

'노리단'이 뭐야? 노리단은 아홉 살부터 마흔두 살까지 서른 명 단원이 함께 생활하는 학교이자 회사이며 공방인 곳인데,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순환하는 재미있는 공동체라고 합니다. 해마다 1천 회가 넘는 워크숍과 200여 회의 공연을 하고 10개 정도의 소리놀이터를 설치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단원들은 교사이자 배우이며 장인(도제)으로 살아갑니다. 혹시 노리단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보신 분들에게는 <일하며 논다, 배운다>라는 제목이 쉽게 다가설 수 있겠지만, 노리단도 처음 들어보고, '하자센터'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참 신기하고 새로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노리단은 연극, 음악, 목공, 미술, 무용, 타악, 기획, 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작업자들과 자신의 내부에 숨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던 10대 청소년들이 만나서 일군 일하고 놀고 배우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가능성, '그렇게 살아가도 되겠구나, 그래서 더 잘 살 수 있구나'하고 용기를 준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호주의 생태주의 퍼포먼스 그룹 허법(Hubbub)을 이끌고 있는 스티브 랑턴(Steve Langton)이라고 합니다.

<일하며 논다, 배운다>를 쓴 김종휘 단장은 2002년 산청 간디학교에서 그를 처음 만났고, 그 뒤 2004년 봄에 하자센터에서 스티브 랑턴과 석 달가량 함께 작업을 한 후에 2004년 6월에 노리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는 단원들이 전부 호주 숲 속에 있는 허법 스튜디오에 가서 40여 일 동안 함께 살면서 악기도 만들고 연주도 하고 그리고 우드포드 페스티벌에도 참가합니다.

<일하며 논다, 배운다>에는 부록으로 DVD가 포함되어 있는데, 호주 허법 스튜디오에서 지냈던 40일간의 과정과 노리단 공연을 촬영한 영상이 담겨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DVD를 먼저 보시면, 이름만 들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리단이 만들어 사용하는 참 특이한 악기와 소리놀이터, 몸 벌레와 같은 단어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일하며 논다, 배운다>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을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가급적 책을 읽기 전에 먼저 DVD를 볼 것을 권하고 싶고,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한 번 DVD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노리단 단장인 김종휘(휘)와 팅, 미야, 도리, 렌이 함께 쓴 책입니다. 2004년부터 노리단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현재의 노리단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입니다. 현재 워크숍센터장, 사무장, 음악감독, 악기발전소장을 맡고 있는 노리단의 산증인들이 쓴 책이지요. 물론 노리단의 산증인은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보시면 다 아시겠지만, 아무튼 이번 책은 이들이 썼습니다.

<일하며 논다, 배운다>의 1부는 노리단과 만나기이고, 2부는 노리단과 놀기입니다. 책을 읽은 저는 1부에 다루고 있는 교육과 예술의 통념 깨기, 통념과 상식 밖에서 시작하다, 삶과 배움을 통합하다, 학교이자 회사이며 공방인 곳, 노리단, 이렇게 돌아간다, 나의 이야기는 너의 이야기와 같은 내용들이 훨씬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2부에는 몸 벌레와 악기 다루기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몸을 바라보는 관점, 악기를 바라보는 관점들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관계와 소통, 삶과 배움의 통합, 다른 방식의 삶,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들로 채워진 1부 이야기에 더 많이 끌렸습니다.

씨앗을 심고 길을 내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의 원래 뜻은 씨앗을 심고 길을 내는 것이며, 곧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라는 뜻에서 예술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아울러 공동체 속에서 예술은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체험을 나누는 행위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예술을 따로 준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예술은 전문가의 영역이 되고 특권이 되어 공동체 사람들의 생활에서 분리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노리단은 전문가의 영역이 되고 특권이 된 예술에 의문을 제기하며, 삶의 문제이자 지혜로부터 예술을 재구성하는 일을 벌였다고 합니다. 노리단은 예술에 대한 통념과 상식의 밖에서 시작되었고, 예술에 대한 상식과 통념을 깨는 과정이었으며, 다음과 같은 10가지 상식과 통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① 예술은 재능을 타고난 소수의 몫이 아니다.
② 예술과 놀이와 공부와 일은 따로따로가 아니다.
③ 음악, 연극, 체육, 무용, 기술은 다른 과목이 아니다.
④ 배우와 관객은 따로 있지 않다.
⑤ 몸을 쓰는 예술가는 날씬하다.
⑥ 음악을 하려면 악보부터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⑦ 악기 연주는 오랜 시간 반복 연습이 필수는 아니다.
⑧ 좋은 악기는 대단한 장인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⑨ 악기는 사용법에 따라 조심해서 다루는 악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⑩ 악기는 특별한 재료와 기술로 제작하는 것만도 아니다.

지은이는 모든 사람은 예술적 재능을 갖고 있으며 개발하고 활용하려는 노력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서로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예술과 놀이와 공부와 일은 분리되지 않고 통합할 수 있으며, 적어도 노리단에서는 음악, 연극, 체육, 무용, 기술은 다른 과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손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 아니라 네 개의 관계로 이루어졌다는 말"처럼 관계 속에서 복합적이고 동시적이며 전체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배우와 관객은 떨어져 있지 않으며 공연을 통해 만나면 하나가 되기도 하고, 역할 구분을 허물어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세게 치세요! 안 망가져요, 맘대로 치세요!

노리단에게는 악보에 대한 생각도 상식과 다릅니다. 악보는 기록의 수단으로 필요하고 여러 쓸모가 있지만 자신의 감성을 해방시키고 표현하는 것을 방해할 때는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리단은 음악을 배우거나 연주를 위해 악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노리단에서는 '틀린 음악'은 없으며, 서로 다른 음악만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악기연주를 바라보는 시각도 독특한데, 연주는 오랫동안 연습하면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른 소리와의 대화, 다른 악기와 조화, 다른 연주자와 소통하고 반응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악기는 반드시 명인이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악기는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만이 옳은 것은 아니며, 특별한 재료와 기술로 만드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노리단에서는 자신이 사용할 악기는 직접 제작하여야 하며, 악기를 편하게 다룸으로써 자유롭게 탐색하고 자신의 다른 면모와 잠재력을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히 악기의 재료 역시 일상에서 사용하는 재료 쓰고 남거나 버려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노리단은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직접 만든 악기를 최고로 친다. 연주자의 손으로 악기를 만들고, 연주자의 손으로 그 악기를 연주하는 연속성을 중시한다." (본문 중에서)

연주자에 의해 직접 일상에서 사용하는 재료로 만들어진 악기는 신성하다는 관념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매뉴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악기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자신의 다른 면모와 잠재력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각종 워크숍에서 만나는 수강생들에게도 이러한 잠재력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세게 치세요! 안 망가져요, 망가져도 금세 고치니까 맘대로 치세요!"
"마음대로 치라는 말, 그게 말이죠. 조심하라거나 주의하라고 하지 않고 무조건 힘껏 치라니까 어느 순간 가슴이 툭하고 열리는 것 같았어요." (본문 중에서)

세게 쳐도 도고 망가져도 쉽게 고칠 수 있는 악기는 산업용자재, 공사용품, 생활중고품이 재활용 악기가 됩니다. 요란하지 않게, 원래 있었던 모양새를 살려서, 가장 단순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제작하며, 내구성이 강하고 변형이 자유로우며 망가지면 쉽게 수리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악기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작업으로 만들어진 악기 중에는 요구르트 빈병으로 만들어진 악기 '카주', 공업용 파이프로 만든 악기 '파울'과 같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일과 놀이와 배움이 통합되는 모습

노리단은 일과 놀이와 배움을 통합하는 곳으로 시도되었고 어느 만큼 성과도 축적해나가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배움과 일과 놀이를 통합하는 노력의 과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배움의 방법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① (사람은) 실수, 사고 사건을 통해서 더 잘 배운다.
② (사람은) 암기는 싫어해도 학습은 잘할 수 있다.
③ (사람 사이에서)돌봄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다.
④ (사람에게) 비약(적인 발전)은 기대와 부담 속에서 이루어진다.
⑤ (사람은) 연습이 아니라 실전에서 더 잘 배운다.
⑥ (사람 사이의) 소통에는 때로는 연출이 필요하다.
⑦ (사람은) 일에서 놀이를 찾고 놀면서 배운다.
⑧ (사람은) 고맙게 초대하고 고맙게 헤어지면서 성장한다.
⑨ (사람은) 하다 보니 배우고, 하고 나니 성장한다.
⑩ (사람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도울 수 있다.

<일하며 논다, 배운다>에는 경험을 통해 확인된 이러한 배움의 원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례를 만나고 싶은 독자들은 기꺼이 책 읽는 수고를 거쳐야 하겠지요.

그 중에서 제가 더 깊이 공감하였거나 혹은 새롭게 '아 그렇구나'하고 느낀 대목만 소개해보기로 하지요. 먼저 돌봄의 순환에 대한 구절을 인용해 봅니다.

"돌봄은 너와 나의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그 차이만큼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동반성장의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을 받으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그 에너지는 내가 다시 누군가를 돌보면서 그 마음을 전해주는 순환의 띠를 만드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받았던 돌봄은 또 다른 누군가를 돌보는 자리로 지금도 계속 움직이고 있다." (본문 중에서)

다른 이에게 받은 돌봄과 배려는 꼭 그에게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마음을 전해주는 순환의 띠를 만들어낸다면 세상은 훨씬 더 살만해질 수 있겠다 싶은 믿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최근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저에게 '소통과 연출'이라는 단어 역시 반갑게 다가왔습니다.

"먼저 그 사람과 대화를 하려는 마음가짐이 내게 있느냐가 출발이다. 마음이 있으면 손짓, 발짓, 눈빛 말을 모두 쓰면 된다. 그러면 통한다. 더 잘하고 싶으면 연출을 해본다. 연출은 거짓이 아니다. 나의 진정한 마음을 연출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연출이라는 단어를 만날 때, 왠지 가식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지만, '마음을 연출'하면 더 나은 소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노리단 세 가지 약속 - 표정, 자격, 소통

<일하며 논다, 배운다>를 읽고 서평을 쓰는데, 책 속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대목이 참 많았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글이 점점 길어진다는 부담으로 다가왔지요. 이번 서평은 제가 그동안 썼던 서평 중에서 가장 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하며 논다, 배운다>에는 제가 서평으로 많이 소개한 돌봄, 나눔, 소통, 배움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몸과 만나는 몸짓 놀이 '몸 벌레'에 관한 상세한 소개, 그리고 노리단의 악기 공연을 소개하는 '소리놀이터'를 소개하는 내용이 책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안타깝게도 저에게 간결하게 책이 주는 감동을 전하는 재주가 없어 '몸 벌레'와 '소리놀이터'에 관하여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노리단 단원의 세 가지 약속과 노리단의 미래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맺습니다.

'노리단의 세 가지 약속은 표정을 책임지자, 자격을 증명하자, 소통을 연출하자입니다.'

'표정을 책임지자'는 것은 자신의 일에 당당한 표정,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자유로운 표정, 자신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표정을 말합니다.

'자격을 증명하자'는 것은 문서로 된 자격이 아니라 말과 글, 행동을 통해서 말하자면 삶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하자는 뜻입니다.

'소통을 연출하자'는 것은 소통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연출하는 것이니 진심을 털어놓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연출하자는 의미입니다.

몸 벌레와 소리놀이터로 대표되는 노리단의 활동은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자라났고 세계와 하늘과 우주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에, 그들이 열려 있는 한 그들이 스스로 뻗어가지 못하더라도 결국은 그 모든 것이 그들에게로 들어오리라는 것이라고 믿음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노리단의 공연과 교육은 매번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서 또 다란 사람들과 만나는 길 떠나기이고, 길 찾기로 순환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간다는 의미에서 다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가 젊은이던, 나이 든 이던 자신의 길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려는 시도를 하는 모든 이들의 길 찾기에 갈 길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도'의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든든한 나침반 역할을 해줄 만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일하며 논다, 배운다 - 10점
김종휘 외 지음/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