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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전문가는 '과학'으로 대중을 속인다.

by 이윤기 2008.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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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진리를 탐색하는 것, 과학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과학자들의 진리 추구 방식은 독립적인 새로운 발견과 함께 시작되고, 이어서 동료들의 비판을 받고, 최종적으로 공익을 위해 발표되고 사용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믿음에 기초하여 오늘날 ‘과학’이라는 용어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과학적 사고, 과학적 사회주의 등의 표현처럼 인문 사회과학분야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고의적인 기만행위나 의식하지 못하는 편견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이른바 홍보산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과학자들에 의하여 과학은 무수히 많은 옳지 않은 결정들을 쏟아내고 있다.

미디어민주주의센터에서 일하는 존 스토버와, 셸던 램튼이 쓴 <거짓 나침반>은 바로 이러한 거짓 과학이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 일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혀놓은 책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홍보산업이 만들어 낸 거짓 NGO와 단체, 과학을 빙자한 연구소와 그들에게 고용된 연구자들 그리고 종내에는 산학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부도덕한 기업들의 연구비 지원과 기업이 원하는 연구결과를 쏟아내는 과정, 군사기밀이 산업기밀로 변모해가며 대중의 이익과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모두 고발하고 있다.

산업재해, 흡연과 간접흡연의 유해성, 유전자조작 식품, 광우병 소, 제초제와 농약 화학약품, 온실가스 배출, 지구온난화와 같은 인류의 생명과 삶을 다루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하여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홍보와 선전의 가면을 벗겨내고 있다.

과학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홍보와 선전의 가면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①납중독과 같은 직업병의 원인은 100% 납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없다.
②간접흡연이 암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③유전자 조작 식품은 기아와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④제초제와 농약은 곡물의 생산량을 늘려주는 적절한 수단이다.
⑤온실 가스 배출은 나무의 성장을 도와 숲을 살릴 수 있다.
⑥지구온난화에 대하여, 더운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이 같은 주장들은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지 않으면,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만한 논리로 인류 전체의 삶을 결정하는 과학적 주제들에 대하여 ‘물 타기’를 시도하곤 한다.

이 책에는 많은 홍보기업과 홍보기업을 이끌어가는 CEO들 그리고 1950년대 몬산토사로부터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이르는 기업의 주요 고객사들의 실명도 모두 공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홍보와 선전 그리고 로비에 놀아나는 정부 관료들과 정부의 정책결정 직책과 홍보기업을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실명도 모두 까발려져있다. 아마도 미국에서 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언짢아하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전문가들이 대중을 속이는 기술

존 스토버와, 셸던 램튼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할애하여 거짓 과학 = 거짓 선전을 구별하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이미 스탠리 밀그램과 같은 심리학자들은 개인과 권력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그릇된 전문가들이 다른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손쉽게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거짓 과학을 선전하는 선전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기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중상모략 - 배신, 부정, 부패, 실패, 위선, 급진적, 묵인, 쓰레기와 같은 부정적 단어를 사용하여 반대파들을 공격하라.
②화려한 일반화 - 긍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단어 상냥함, 어린이, 선택권, 헌신, 상식, 꿈, 본분, 권한, 자유, 근면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라.
③완곡어법 - 모호한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의미를 희석시키는 방법으로 거짓말을 ‘전략적 허위진술’, 해고를 ‘직원변화’로 보통의 하수 찌꺼기를 ‘조정된 유기 영양 물질’과 같은 방식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④전이 - 국가, 교회와 같은 권위 있는 어떤 것의 구속력이나 명성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⑤증언 - 유명인사를 활용하여 생각, 제품, 대의 따위에 보증을 서도록 하는 방법이다.
⑥평범한 대중 - 평범한 보통사람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대중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다.
⑦부하뇌동 - 다른 모든 사람이 지지하고 있으니 당신도 지지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기술
⑧공포 - 더 나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포를 조장하여 설득하는 방법으로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주장과 같은 것을 말한다.

평범한 대중들은 이러한 기교에 쉽게 속아 넘어가곤 한다. 일찍이 나치의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 같다. 그는 “거짓말이 엄청나게 터무니없으면 없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말을 믿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거짓 과학자들과 선전가들은 대중을 속이기 위하여 정보과잉 공급 전술도 자주 활용한다. 그들은 정보의 과잉공급을 통해 대중들을 굴복시키곤 한다.

“대중에게 아주 많은 통계 수치와 다른 정보들을 우겨넣으면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분류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곧 생각하기를 멈춰버리고 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따라서 공공적 쟁점의 결정과 관련하여서는 기술, 지식, 경험, 과학으로 표현되는 전문 지식은 가치에 대한 근본적 질문보다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낙태는 옳지 않은가? 부모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타당한가?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도 되는가? 본인의 동의 없이 인간을 상대로 의학 실험을 해도 되는가? 이런 질문들은 대하여 과학으로 대답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가치와 도덕적 기준을 동원하여야만 한다.

과학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과학은 우리사회가 과학에 대하여 바치는 지나친 존경 덕택에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실의 원천이라는 아주 비과학적인 관념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과학은 어느 정도 불확실 하다. 자연은 복잡하고 연구는 어렵다. 주어진 질문과 관련하여 과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최대치는 이러이러한 대답이 진실일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정도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이라는 이름의 연구 결과가 과연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정직한 연구자라면 거의 언제나 연구의 결함들을 본문에 적어둔다. 그러나 부정직한 연구자라면 자신의 연구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게끔 만들고 싶어하는 과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너무 복잡해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너무 복잡해서 안전하지 않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대중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과 관련하여 민주주의는 매우 중요하다.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쟁점과 관련하여 다른 결론을 주장하고 있을 때, 결국 우리는 그것이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금지하여야만 한다. 유전자 조작이나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이루어질 때도 마찬가지이다.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은 과학자나 전문가들이 할 것이 아니라 평범한 민중들이 하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자나 전문가들은 대중의 이익보다는 흔히 기업과 선전가들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고, 훗날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사회의 궁극적 권력은 결국 민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의 궁극적 권력을 믿고 맡길 만한 안전한 대상으로 민중만한 것이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민중이 건전한 분별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깨우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지 말고 그들의 판단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토머스 제퍼슨, 본문 중에서.


오늘날 많은 전문가들은 민중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민중의 판단력을 키워주기 보다는 민중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자신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인류의 미래를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는 세상의 많은 잘못된 결정들은 모두 ‘전문가’들이 하고 있다. 세상은 결국 전문가들이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거짓 나침반>에는 대중들을 속이는 위장단체 파악하기, 거짓 과학을 만들어내는 검은 돈의 흐름, 거짓 과학을 만들어내는 위장 연구소들, 그리고 거짓 과학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거짓 매체를 구별하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도 누군가가 꼭 이 같은 책을 써야만 할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거짓 나침반> 존 스토버, 셸던 램튼 지음/ 시울 - 511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