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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룸살롱과 아이폰을 좋아하는 이유가 똑같다?

by 이윤기 201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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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세상 모든(혹시 모르니 대부분) 남자들과 여자들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그런 제목입니다. 이 책에서 '남자의 물건'은 여러 의미 사용되지만, 성적 의미에서 남자의 물건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은 아닙니다.

 
저자 소개를 보면 김정운 교수를 일컬어 '유쾌한 지식인'이라고 하였는데, 그가 쓴 책을 통해 만나 본 느낌으로는 딱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그는 유쾌한 지식인입니다.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특별한 능력을 겸비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어려운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쉬운 이론을 어렵고 재미없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이론을 어렵고 재미없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쉬운 이론은 그냥 쉽게 쉽게 설명 할 수 있는 유형이 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게 쉬운 것을 어렵게 설명하는 경우 사실은 설명하는 사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능력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것을 제대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김정운 교수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어서 '유쾌한 지식인'이 쓴 책은 쉽고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거리도 많습니다. 저자는 한국사회가 왜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가 하는 고민에서 출발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늙어보이는 남자가 빨리 죽는다
 
그는 한국사회의 문제는 정치나 경제 불평등,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존재확인을 못하는 불안한 한국남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존재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적개심, 분노를 통해 적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이야기를 통해 존재를 확인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이야기거리가 바닥나면 존재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들의 존재불안을 해소하려면 새로운 이야기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남자들이 가진 '애장품'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문 연재 칼럼 분량의 글 30여 편을 모아놓은 1부는 저자의 독특한 사고를 보여주는 재미있고 유쾌하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사회문화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컨대 '늙어보이면 지는 거다'라는 글은 외모와 사람의 수명이 관련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덴마크의 심리학자 크리스텐센은 1995년부터 2008년까지의 종단 연구를 통해 같은 나이일지라도 늙어 보이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중략) 당연한 이야기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안 좋으면 늙어 보이고 그만큼 일찍 죽는다."
 
저자는 젊게 살려고 재미있게 살려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라고, 인생을 새롭게 살 수 있는 삶의 마디를 많이 만들어가면서 살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라 !
 
또 다른 글에서는 '선택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야 삶이 즐겁고 재미있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 그럼 삶이 재미없어 진다는 것입니다.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마음의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과 함께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지난 한 주간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키는 일만 하고 '주체적 선택'을 할 수 없으면 삶이 무기력해진다는 것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셀리그만이 개를 꽁꽁 묶어놓고 전기 고문을 하는 실험을 했더니 나중에는 도망갈 수 있도록 해놓아도 도망치지 않고 그냥 전기고문을 당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열등감도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잘난 척하거나 교만한 것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남과 비교하면서 괴로워하는 '자기열등감'이라는 것이지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이폰과 룸살롱'이라는 글입니다. 원숭이나 사람이나 서로 끊임없이 만지고 만져져야 불안해하지 않으며 끌어안거나 어깨를 두드리며 서로 위로하고 위로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철없는 사내들은 이 박탈된 터치의 경험을 룸살롱에서 만회하려고 한다. (중략) 사람들이 아이폰, 아이패드에 열광하는 심리학적 이유는 바로 이 터치 때문이다. 신체적 접촉이 사라진 디지털 세상에서 내 손 끝의 세밀한 움직임에 반응하는 기계가 생겨났다. 그래서 40대 중년 남자들이 아이폰에 더욱 열광하는 것이다."
 
글쎄요. 아이폰의 터치 기능에 열광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아무튼 매우 흥미로운 해석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저자는 룸살롱, 아이폰뿐만 아니라 발마사지, 스포츠마사지, 타이마사지 같은 것들 심지어 코칭, 상담 같은 것도 모두 박탈된 터치의 경험을 살리는 배려경제에 해당된다고 주장합니다.
 
아이폰이 룸살롱을 대신할 수 있을까?

현대인들은 관심과 배려를 돈을 주고 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원초적인 배려경제에 매달리고 여자들은 마음의 위로와 배려에 더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는 분석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레길', '둘레길' 같은 걷기가 유행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습니다. 요즘 걷기 열풍이 부는 것은 과거에 비해 급변하는 삶의 속도 때문에 생기는 문화병을 치료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수백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걷는 속도에 적응해 발달해 왔는데, 최근 몇 백 년 사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가 사람들을 쇠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지요.

  
'늙으면 마누라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는 '홀로서기'를 연습하라고 충고합니다. 가족 속에서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남자가 절대 권위를 누리던 시대는 다 지나갔으니 과거를 그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봐도 '나는 아니야'라고 하기가 어렵더군요.
 
문화현상에 대한 정말 흥미로운 해석 중 1년 365일이 생긴 이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었습니다. 무한히 지속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기 위해 시간을 1년 365일 단위로 쪼개놓았다는 것입니다.

 
"무한한 미래를 1년 단위로 끊어놓으면, 미래가 매년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365일이 지나면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미래는 그다지 무섭지 않다. 영원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정말 이런 이유 때문에 1년 365일로 시간을 나눴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놓았기 때문에 미래를 매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대나무 마디처럼 1년, 한 달, 일주일, 여름휴가와 같은 삶에도 마디를 많이 만들라고 권유합니다. 삶이 풍부해지려면 가늘고 길어야 하는데, 부러지지 않으려면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저자는 '내면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라', '마음에도 정기검진이 필요하다',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10가지 비밀' 등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남자의 물건을 내 놓으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 2부는 열세 남자의 '물건'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물건 만년필, 친구인 김갑수와 윤광준의 커피 그라인더와 모자 이야기로 시작하여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을 매개로 독자들과 함께 그 남자들의 인생을 들여다봅니다.

 
말하자면 애장품 이야기 비슷한 것인데, 그렇다고 '물건'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건을 통해 시작된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물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야기가 이어지면 남자들은 존재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남자에게(사람에게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지만)는 누구나 자신의 아이덴티티 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물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만년필이 바로 그런 물건이라는 겁니다. 그런 물건들 때문에 인생이 살만해 진다는 것입니다.
 
이어령의 3미터가 넘는 책상과 여섯 대의 컴퓨터가 놓인 작업대, 세대를 잇는 신영복의 벼루, 가족의 사랑을 담는 차범근의 계란받침대, 일희일비 하지 않는 문재인의 바둑판, 내면의 절대적 자만이 담긴 안성기의 자화상(스케치북), 뭐 이런 것들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의 물건 중에 아주 조금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 물건도 있었지만, 정말 꼭 갖고 싶다하는 물건은 없었습니다. 값을 가늠하기 어려운 물건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비싼 물건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남자들의 물건에는 '인생'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생이 담겨 있다는 것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남자(혹은 여자도)의 인생은 '이야기'입니다. 남자들의 물건에 인생이 담겼다고 느낀 것은 남자들의 물건에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더군요.

 
이왈종, 유영구 같은 낯선 남자들의 의외의 물건 이야기도 흥미롭고, 조영남, 박범신같이 유명한 사람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생 이야기도 부러움을 자아냅니다. 이 책을 읽는 남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물건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들에게 내보일 만한 물건이 뭐가 있을까, 내 삶이 담긴, 이야기가 담긴 물건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할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물건 - 10점
김정운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