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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진중권은 등대지기, 강금실은 천박자본주의...지금도?

by 이윤기 201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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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석훈이 쓴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석훈을 처음 책으로 만난 것은 <아픈 아이들의 세대>이다. 이후 <한겨레> 칼럼, <녹색평론> 등에서 그의 글을 혹은 그의 글에 대한 지지나 반론을 만나기도 했다. 한참 후에 이제는 시대를 규정하는 신조어가 된 <88만원 세대>를 읽었고, 최근에는 지승호가 우석훈을 인터뷰한 책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를 읽었다.

 

읽은 책과 여기저기에 실린 글에서 만난 우석훈에 대한 느낌은 '거침없음'이었다. 그에게는 성역이 없다. 그리고 보수를 향해서만 비판하지 않는다. 그의 비판은 오히려 얼치기 진보와 진보주의자들에게 겨누어져 있다. 2007년 10월에 출간된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신문이나 잡지에 섰던 글을 모아서 낸 책이다.

 

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고 소개하는 우석훈이 쓴 책,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책 출간일 기준으로 <88만원 세대>와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사이에 끼어 있는 책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칼럼들이 대개 한 시기에 벌어진 특정 사건들과 관련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 맥락을 잃고 그야말로 허공에 외치는 뜬금없는 소리가 될 가능성" 때문에 망설이다가 '노무현 시대의 비망록'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공감해서 책을 엮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체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에 씌여진 글들이라고 한다.

 

우석훈이 쓴 책을 읽어보면 그가 한국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고 독특한 대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날카로운 분석과 독특한 대안은 그가 가진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특히 그가 내놓은 여러 대안이 가진 장점은 '명랑'하고 독특하지만, 그렇다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명랑하고 기발한 상상력 뒤엔 독특한 삶의 이력


대학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능 총파업' 제안이나 FTA와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내놓은 '농사 공무원' 제안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런 '명랑'하고 '기발한' 발상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력에 자꾸 공감하게 되면서 그가 살아 온 독특한 이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 소개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석훈은 인생의 4분의 1을 독일,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 외국에서 지냈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경제현상에 대한 연구와 대안을 내놓는 경제학자이자 이런저런 시민운동에 참여해 온 시민운동가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공직을 경험하기도 했고, 그전에는 현대그룹 과장으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에 담긴 글들이 씌어진 지난 4년 동안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영화 <자토이치>를 만든 기타노 다케시와 '슈렉' 목소리를 연기했던 마크 마이어스라고 한다. 우석훈은 기타노 다케시를 일컬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 한 장으로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내고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그의 생각의 길이는 단연 당대 최고"라고 평가한다.

 

우석훈은 기타노 다케시와 마크 마이어스를 각각 좌파와 우파가 예술적으로 진화해서 다다를 수 있는 절정을 보여준 사람으로 꼽았다. 그는 키타노 다케시에게서 작은 지혜를, 마크 마이어스에게서 행복을 배웠다고 한다. 책 제목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라라>, '명랑국토부'의 명랑이라는 단어는 마크 마이어스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미 여러 책과 글에서 한국의 우파들은 게으르고 속임수를 너무 많이 쓰고, 좌파들은 슬프도록 무능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노무현 시대는 좌파와 우파의 이런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난 시대였다고 평가한다.

 

노무현 시대에 대한 우석훈의 진단과 평가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대목은 '건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소위 운동권들은 구체적인 근거 없이 막연한 느낌으로 적어도 노무현은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경기 부양을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면 "거래도 없고 매물도 없다"는 공인중개사들의 이야기만 믿은 탓도 있다.

 

지역균형발전론에 가려진 '토목공화국'

 

왜 그랬을까? 무슨 콩깍지가 씌였을까? 우석훈이 쓴 글을 읽으면서 왜 노무현을 '건설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 답을 알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바로 '지역균형발전론'에 넘어간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혁신도시 건설과 같은 대형 건설 프로젝트들을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으로만 바라보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건설업, 특히 도로와 도시 건설에 막대한 돈을 털어넣는 것을 보면서도 '분권'과 '균형발전'으로만 믿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박정희 유신경제보다도 더 성장 이데올로기에 가까웠다는 우석훈의 비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농지에 대한 규제도 풀고, 국토의 합리적 이용을 위해 열심히 도시를 새로 만들고, 이전까지 중립적으로 사용되었던 연기금도 전부 건설에 쏟아 붓고 토지 수용하는 보상비로 내어주겠다는데 부동산 가격이 안 오르고…… 거품이 안 생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본문 중에서)

 

우석훈은 노무현 정부를 강화된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진단하면서 노무현 정부 초기 3년 동안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FTA라는 단어가 국가 발전의 척도처럼 전면에 떠올랐고, 농업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근보적인 변화가 생겨났으며, 비정규직이 일반화되었고, 농지를 중심으로 땅값이 엄청나게 오르는 일이 노무현 정부 초기 3년 동안 벌어졌다."(본문 중에서)

 

결국 지금 한국 경제는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대운하가 아니어도 혁신도시를 포함해 보상금과 건설비가 지급될 토목공사가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시대는 이헌재 전 총리를 전면에 세운 한국형 뉴딜정책으로 지방에 수만 평씩 땅을 가지고 있는 토호들의 배만 불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물 진단, 우석훈의 성역 없는 하이킥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노자, 진중권 정도를 제외하고 나면 21세기로 살아서 건너온 지식인이 이 땅에는 없다고 하는 것이 우석훈의 지적이다. 완화된 민족주의 신화로 살아가는 조정래,  술자리 안주처럼 동동 떠다니는 무용담만 남은 백기완, 과도한 민족주의에 빠져 버린 김지하가 모두 살아서 21세기로 건너오지 못했다는 것.

 

김남주는 옥중에서 퍼진 암 때문에 살아서 넘어오지 못했고, 사노맹의 박노해는 살아있지만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발문을 쓴 정성일에게는 잘못된 이론가들 앞에 선 '꽃돌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우석훈 자신은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한 줄의 글도 남기지 못한 채 만신창이 시체가 되어서 21세기로 넘어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내놓는 지식인으로 박노자와 진중권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박노자를 일컬어 독도 문제, 지율 스님, 김선일, 훌리건, 청계천, 뉴타운,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와 같은 간단치 않은 문제들에 대하여 도망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하나씩 답을 내놓은 진화를 거듭하는 학자라고 평가한다. 박노자가 전부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치열하게 답하려고 노력하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진중권을 일컬어 우리 시대의 등대지기라고 칭하였다. 그는 진중권 스타일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가 제기하는 주제들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언젠가 고민의 깊이가 넓어지고 지혜가 커진 진중권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또한 감추지 않았다.

 

강금실은 천박자본주의의 절정에 서있으며, 농성하는 KTX 여승무원들에게 보여준 야박한 모습이나 서울시장 선거 기간 활동으로만 봐서는 박근혜와 비교하여 "철학적 차이나 문명적 근거에 대한 차이가 없었다"고 평가한다. 강금실이 내놓은 정책은 서울시장에 당선된 오세훈과 마찬가지로 뿌리 깊은 토목주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4·9 총선 이후 한나라당 당선자들과 오세훈 서울시장 사이에 논란과 쟁점이 되고 있는 뉴타운 문제에 대해 우석훈이 내리는 평가는 단호하다.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그린벨트를 이명박이 파헤쳤다면, 여기에 명줄을 끊으러 등장한 사람이 자칭 '녹색후보' 오세훈이라는 것이다.

 

강북 뉴타운, 아이들이 살 수 없는 서울

"오세훈의 뉴타운 50개가 끝나면 이 기간에 태어난 아이들의 50퍼센트 정도가 아토피나 천식과 같은 면역성 만성증후군보다 조금 더 심각한 혈관 및 호흡기 계통의 질병을 앓게 될 것이다. …… 이명박 4년에 오세훈 4년을 더한 기간 동안 서울은 지옥이 될 것이고, 녹색후보 오세훈 재임기간 중 서울은 아이들에게 아주 살기 힘든 지역이 될 것이다."(본문 중에서)

 

우석훈은 이미 그가 몇 년 전에 쓴 책 <아픈 아이들의 세대>에서 무지막지한 도시재개발로부터 비롯되는 'PM10' 오염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는 실상을 고발한 바 있다. 오세훈 시장과 뉴타운 공약으로 당선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서울을 아이들이 살 수 없는 도시로 만들고 말 것이라는 예측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된다.

 

아토피 없는 동네를 위한 무료 셔틀버스 운행, 자장면 담당관 제도, 건설교통부를 명랑국토부로 바꾸자는 제안 같은 것들이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우석훈의 '명랑'한 정책제안 들이다.

 

우석훈은 2007년 현재를 기준으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생활협동조합'뿐이라고 한다. "조금만 느리게, 조금만 덜"을 생활신조로 하는 사람이 400만쯤 되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갈 수 있을 것인데, 현재 우리 사회는 "조금만 느리게, 조금만 덜"을 생활신조로 살아가는 사람이 20~3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이제 한 사람이 열 사람씩만 더 같은 생활 신조로 살아가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도 진화 패턴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현재로서는 이웃과 더불어 생활협동조합이 만들어내는 협동 진화의 틀 안에서 함께 진화하는 길 뿐이라는 것이다.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10점
우석훈 지음/생각의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