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소설 읽기는 시간낭비? 밑줄 그으며 읽어봐

by 이윤기 2013. 10. 4.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 삶을 바꾼다고 합니다. 예전에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을 위한 인문학 공부 과정인 '클레멘트' 코스를 소개한 <희망의 인문학>과 우리나라에서의 비슷한 노력과 실천을 소개하는 <행복한 인문학>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적 지원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을 향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 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성과를 얻었다는 놀라운 보고들이었습니다.

 

물론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이나 노숙자들만을 위한 학문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질문을 품고 살아가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면서 살아갑니다. 이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길을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 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인문학 공부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이 책 저자가 이야기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공부를 시도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시작은 쉽지만 꾸준히 공부를 쌓아가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 공부에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인문학 공부법>은 독서 전도사로 유명한 안상헌이 쓴 책입니다. 그가 쓴 <생산적 책 읽기>와 <생산적 책 읽기 두 번째 이야기>는 이미 많은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책을 잘 읽는 법에 관한 경험과 노하우를 공개하여 주목 받았던 저자가 이번에는 자신의 인문학 공부 경험을 독자들에게 전해줍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 책을 읽어도 남는 것이 없다는 사람, 분야별로 좀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신의 인문학 공부법을 공개한 책입니다.

 

사실 젊어서부터 이른바 사회과학 공부에 매달려온 제 또래들에게는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이 낯설게 느껴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공부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일까요? 저자는 인문학 공부의 갈래를 크게 세 갈래로 나눕니다.

 

"철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색하고, 문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역사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들여다보는 활동이다. 이외에도 예술과 고고학, 언어학, 신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가 인문학에 포함된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인문학을 공부를 시작하는 독자들에게 인문학을 공부할 때는 마음에 꽂히는 문장에 주목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을 한 마디로 "새로운 삶을 위한 문장을 얻는 것"이라고 하였더군요.

 

공부를 해서 스스로 찾아내고 깨우친 문장이 삶에 힘을 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통해 길어 올린 한 문장이 "자신을 선명하게 살피고 세상을 또렷하게 직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인문학 공부를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령은 가급적 몸에 익혀두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책을 읽는 자기 목적을 가질 것, 쉬운 책을 먼저 읽을 것, 좋아하는 분야를 먼저 공부할 것과 같은 요령들입니다.

 

또 노트나 메모지를 놓고 중요한 질문이나 내용이 나오면 기록하고 답을 찾아보며 앞선 내용들과 연결해보라고 충고합니다. 메모가 "기억을 보장해주고 지식을 체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인문학, 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 아니다

 

아울러 지식은 쌓아 두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얻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하나라도 배운 것을 적용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강조합니다. 지식은 반드시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살아 있는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흔한 인문학 공부의 문제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식으로만 받아들일 뿐 자기 삶에 적용할 무엇으로 현실화하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비생산적인 공부가 될 것이다. 하나를 알아도 자신의 삶에서 적용해보고 실천적인 모양으로 새롭게 만들어 낼 때 지식은 힘이 되고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스티브 잡스의 예를 자주 듭니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었던 인물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제품에 인문학적 요소를 가미해서 문화적 가치가 담긴 작품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문학 공부를 시도하는 많은 독자들이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경험을 토대로 한 답을 제시합니다. 예컨대 다양하게 읽어야 하는 것인지, 한 분야를 깊게 읽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도 되는지 아니면 끝까지 파고들어야 하는지, 빨리 많이 읽어야 하는지, 느리지만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들입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부딪히는 질문이지요. 여기서 그 답을 모두 알려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비슷한 질문을 안고 고민했던 독자들이라면 책을 직접 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어떻게 공부해야 효과적인 방법인지 '문사철' 중에서 철학공부부터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저자는 철학을 일컬어 '세상을 밝히는 학문'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각을 키워주는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요컨대 철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기 힘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기 힘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사상 많은 철학자들이 던진 질문과 답을 탐구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철학 공부의 시작에서 막히는 것은 중요한 개념들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합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공부한다면 다음과 같은 핵심을 놓치지 않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사르트르를 공부하면 실존주의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자면 실존주의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 실존주의의 기본 명제라고 말한다. 그의 책을 읽으려면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실존주의를 풀어내는 열쇠가 되는 문장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사르트르가 설명하였던 '종이 자르는 칼'에 관한 예화를 통해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줍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중요한 개념을 놓치지 않아야 철학공부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문학 공부, 시작을 돕는 꼼꼼한 안내서

 

아울러 각장의 끝머리에는 해당 분야의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르트르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는 <구토><존재와 무><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와 같은 사르트르의 저서와 <존재와 무 :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같은 사르트르 연구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니체 읽기나 도가 사상인 <도덕경>과 <장자><열자> 그리고 <논어><맹장> 같은 고전 읽기에 관해서도  각장마다 추천할 만한 번역서들을 소개하여 공부 시작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빠뜨리지 않았고요.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마음이 끌리는 대목은 '<사기>를 읽는 세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열전'만해도 2권을 합쳐 1800쪽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읽어내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사기를 읽는 이유를 크게 나눠보면 '역사적 사실 공부', '교훈을 얻기 위한 공부', '역사적 인물의 삶에 대한 공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라면 역사적 사실을 위한 공부는 권할 만한 방법이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대신 인물이나 사건을 탐색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도 없고, 소제목을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대목을 먼저 읽어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며 이때는 '열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인물을 중심으로 읽는 경우에도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지요.

 

이런 방식으로 읽다보면 전체를 다 읽지 못할 수도 있지만 훨씬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기열전이 모두 70편이므로 하루에 한 편씩, 하루 20~30분만 투자하면 100일 안에 읽을 수 있으니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공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사기열전>을 읽기를 시작해 볼 생각입니다. 저자가 소개한 사기를 읽는데 도움이 되는 책 2권과 추천해 준 번역서를 주문하였습니다.

 

소설, 천천히 읽어야 매력 느낄 수 있다

 

저의 경우 철학과 역사에 비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그런데 안상헌이 쓴 <인문학 공부법>을 읽으면서 소설을 대하는 생각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때 소설읽기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소설 읽기가 '사람 읽기의 정수'라는 저자의 강조에 크게 흔들림이 일어났습니다. 저자는 소설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독서법을 소개합니다.

 

"그 중 하나가 주인공의 변화과정을 느끼면서 읽는 것이다. 이 방법은 스토리 위주로 읽으면서도 그 스토리가 주는 의미를 잘 추출해서 자신에게 혹은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메시지로 정리하도록 도와준다. 그 메시지가 무게 있고 의미가 깊을수록 작품을 통해 느끼는 감동도 커진다." (본문 중에서)

 

"이렇게 문학을 읽을 때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순간이나 갈등에 봉착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좋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넘어가기보다는 갈등의 순간에 더 머무르면서 문장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 그래야 문학을 느낄 수 있다. 문학의 목적은 느끼는 것이다. 느껴야 감동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갈등의 순간에 머무르는 것, 갈등의 순간에 머무르면서 느끼고 감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소설읽기라는 것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울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런 소설 읽기를 위해서는 밑줄 긋기부터 시작하라고 충고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중요한 줄거리가 되는 부분에 반드시 줄을 긋는다. 그리고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의 특성을 알려주는 부분에도 줄을 긋는다. 이렇게 줄을 그으면서 읽은 후에는 줄 그은 부분만 다시 릭는다. 그러면 전체적인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또 소설을 읽을 때는 가급적 관계도를 그려보라고 조언합니다. 태백산맥 문학관을 가보면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수집한 자료와 취재노트 그리고 등장인물의 관계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그려놓고 글을 썼듯이 독자 역시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관계도를 만들고 인물의 특성이나 주인공과의 관계를 기록해두면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일리 있는 이야기라 생각되어 소설을 읽을 때마다 관계도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사실 소설에 웬 밑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소설에서 '멋진 문장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으면 밑줄을 치라고 이야기 합니다. 줄을 어디에 긋느냐에 따라 책을 이해하는 정도가 달라지고 활용 가능성도 달라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서양 신화 공부, 여행기 읽기, 동양 선 공부, 돈과 인문학 그리고 금서를 통한 인문학 공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문학 공부를 위한 저자의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였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좌절한 경험이 있었다면 이 책에 담긴 저자의 경험담과 길잡이로 삼을 만한 추천 도서목록들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문학 공부법 - 10점
안상헌 지음/북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