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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아파트에 불꺼지면 나라망한다고?

by 이윤기 201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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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선의 4대문 바깥, 서대문 인근 아파트 3개동 철거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문화재위원회와 시민단체는 보존을, 아파트 주민은 개발을 위한 철거를 주장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던 것이다. 문화재 애호가들은 최근 120년 이상 우리 조상들이 어찌 살았는지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본문 중에서)"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허의도가 쓴 <낭만아파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지금부터 65년 후인 2073년에 이제는 서울에 단 3개동 밖에 남지 않은 아파트를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논란을 가상한 '콩트'다. 과연 이런 날이 오기는 할까?

 

안 먹고 안 입고 아파트로 가는 서민들

 

한 쪽에서는 일본식 거품붕괴 우려와 더불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불똥이 우리에게 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가중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여전히 부동산, 그 중에서도 아파트 불패신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었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굳은 신념을 갖게 해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했다. 아파트가 한 나라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자 가장 확실한 재산증식 수단이다. 많은 서민들은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하여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는" 삶을 계속하고 있다.

 

주부들이 쓴 편지 사연을 주로 소개하는 라디오 아침 방송에는 어렵고 힘들게 내 집 한 칸 장만한 사연이 늘 단골 소재다. 진행자에게도, 청취자들에게도 서울에서 아파트를 장만한 서민들의 사연은 여전히 감동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부동산 경기부양을 신봉하는 자들이 권력을 계속잡고 있으니 다시 아파트는 전도양양한 앞날을 이어가게 될까?

 

허의도가 쓴 <낭만아파트>는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국내 아파트 건설 역사와 아파트를 통해 일어나는 문화사회현상을 관찰한 '아파트 문화사회학'과,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국경제를 진단해보는 '아파트 정치경제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자세하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루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세계자본주의 중심국가인 미국 경제가 한국경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 시사용어, '서브프라임 모기지'

 

한국의 아침뉴스는 늘 미국 뉴욕 주식시장 결과를 보도하는데 그 이유야 말 할 것도 없이 한국 증시가 미국증시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그냥 영향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기침'을 하면 '독감'에 걸릴 만큼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2007년부터 시작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경제는 물론이고 한국 경제와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는 주범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조금씩 현실로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무엇인가?

 

'프라임 모기지'=우량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을 의미한다. 미국연방금리가 낮아지고 은행에 돈이 남아돌자 금융회사들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늘렸다. 경기흐름이 바뀌어 금리가 올라가고 시중자금이 줄어들자, 부동산 가격은 급락하고 담보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결국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대출해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미국 전체가 금융 위기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금융기관이 담보로 잡은 주택으로 파생금융상품을 연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가 다른 금융기관까지 위협하는 금융 공황사태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인한 피해 규모는 3000억~400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할 뿐,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아직도 미지수다… 2007년 미국 2위 모기지 회사인 뉴센트리 파이낸셜이 파산했다. 그리고 미국 최대 모기지 회사인 컨추리와이드 파이내셜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인수했다. (본문 중에서)"

 

더군다나 이들 모기지 금융사의 파생상품을 인수해 다른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팔았던 시티은행과 메릴린치가 각각 2007년에 200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한 번 문제가 발생하면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대출받은 사람들이 높은 금리와 폭락한 부동산 가치로 '이중고'를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기초로 한 파생금융상품의 부실이 확대되면서 문제가 장기화될 우려가 다분하다."(본문 중에서)

 

이러한 미국경제의 신용경색 위기가 한국 주식시장에 곧바로 반영된다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부동산시장과 아파트 값도 불패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비슷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낭만 아파트>를 쓴 허의도는 바로 후자에 주목하여 비틀리고 왜곡된 '아파트 정치경제학'을 파헤치고 '아파트 문화사회학'을 살펴보고 있다.

 


 

아파트 값,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결국 우리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은이가 염려하는 것처럼, 미국경제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땅값과 집값이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면 미국 사태와 다르지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심각성을 지은이는 한국에서 아파트 문제를 한국경제의 '지속가능성 위기'이라고 말하고 있다. 본래 지속가능성은 환경적으로 지구 생태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은이는 한국경제의 지속가능성은 '아파트'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아파트 가격 거품이 무너지면 대한민국(경제)은 통째로 흔들릴 게 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부동산가격과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올랐을까? 지은이는 다음과 같은 여러 통계를 인용하고 있다. 2008년 국민은행이 발표한 '주택가격지수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 5년간 과천 아파트값 상승률은 94.5%로 전국 최고였고, 서울전체 아파트 값은 52.9%가 상승하였으며,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은 34%였다고 한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 보다 강력하게 아파트 가격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대통령과 정부를 비웃듯이 아파트 값은 치솟았고 지방과 서울, 수도권 지역 아파트 값 격차는 더 많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에 땅값을 보면,  2008년 공시지가 기준으로 전국 땅값은 3226조원, 참여정부 5년간 누적 상승률이 무려 105.1%로 전국 땅값은 극심하게 요동쳤다고 한다. 조금 더 옛날로 돌아가 강남 개발이 시작된 시기를 살펴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강남에서는 그냥 정상적으로 이사 다니며 투자한 사람도 30배 정도 이익을 보았고, 좀 더 머리를 굴리면 50배 이상의 이익을 챙겼다. 그러나 강북지역에 그냥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의 경우는 겨우 집값이 100% 상승했는데, 극단적으로는 30%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본문 중에서)"

 

"비공식 통계이긴 하지만, 1963~1979년에 강남 땅값은 800~1300배 올랐는데, 반해, 강북은 신당동과 후암동을 기준으로 했을 때 25배 상승하는데 그쳤다. (본문 중에서)"

 

결국, 한국에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시작된 아파트 건설이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전국의 땅값과 아파트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이사 몇 번에 거액 재산가를 만들어내는 벼락부자 제조기로 통했고, 아파트 분양 성공으로 하루아침에 재벌급 건설회사가 탄생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한국 아파트, 일본과 다른 트랙을 달리고 있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많은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예측에도 아파트 값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도 대한민국 아파트는 일본과 전혀 다른 트랙을 달리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50년 동안 쌓인 거품은 접어두더라도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쌓인 과잉유동성이 새로운 거품으로 쌓였다는 것이다.

 

"지방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곳곳을 파헤치기에 앞서 천문학 규모의 토지보상금을 뿌렸다. 경제 용어로 과잉 유동성, 돈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것은 갈 길을 못 찾아 헤매다 결국 아파트로 몰렸고, 이는 다시 금융기관의 부동산대출을 유발함으로써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을 야기시켰다.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이렇게 풀린 돈들이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토지거래허가 강화, 보유세 인상, 양도세 중과 등 20여 차례가 넘는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강남아파트값은 계속 올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곧 거품붕괴가 시작될 것이라는 지은이의 예측이 여러 차례 빗나갔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측이 현실이 될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구조와 경제성장 패턴이 일본과 유사하고, 인구 통계학적은 여러 자료들에 따르면 멀지 않은 장래에 집이 남아도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경제학자 우석훈은 아파트에 대한 부자들의 '기호'가 변화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만약 한국에서도 아파트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부동산가격과 국제원유가격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오늘(4일) 아침 <한겨레> 기사를 보면, 부동산 가격이 조금씩 하락하는 것은 시중 자금을 증시투자로 돌려세우는 효과가 있지만, 급격한 가격하락은 증시와 경제에 더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거품붕괴'에 대한 우려가 담긴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거품붕괴가 곧바로 금융권부실을 넘어서서 경제전반을 위험으로 몰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보듯이 서브프라임 대출에서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곧바로 프라임 모기지도 덩달아 흔들려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다. 또한 거품으로 인한 과소비가 경기에 반영되어 제조업 생산활동의 비정상적인 확대와 부적절한 투자와 고용확대를 유발하였기 때문에 연쇄적인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경제에 있어 아파트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다. 그 모든 것이 아파트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등세에서는 나라 망한다고 대책을 수립하고, 침체국면에 들어서면 경제가 마비된다고 대책을 내놓는다. 기존 세금을 올리고 새로운 세금을 만들면서 난리법석을 떨다가 세금을 내리고 새로운 세금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를 반복한다. (본문 중에서)"




<낭만아파트>를 쓴 허의도는 아파트 하나로 평생 먹고살 재산을 챙기는 현실을 그냥 두는 것은 결국 더 큰 위험을 쌓아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만약 한국에서 아파트를 팽개치는 일이 생기면 진짜 불행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거다. 불꺼진 아파트는 공포이며, 사람이 떠난 아파트는 모두 죽음이자 나라의 사망선고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한국에서 아파트 값은 더 이상 '거품'으로 쌓여서도 안 되고 '석고'처럼 굳어져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주거공간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되돌아올 가치를 사는 것이고, 아파트라는 기호가 지시하는 사물은 바로 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뚤어진 상황을 바로잡는 것은 한국인의 아파트에 대한 기호가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조금씩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품' 역시 붕괴하지 않고 아주 조금씩 가라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의 시장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여러 가지로 상상력을 동원해 봐도 결국 한국에서 아파트값은 거품처럼 붕괴하거나 혹은 석고처럼 굳어지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부러지고 말 것 같다는 불행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낭만 아파트>를 쓴 지은이는 <월간중앙> 편집장이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인이라고 한다. 언론인 출신답게 풍부한 자료와 르포 기사를 읽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은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대신에 아파트 값 '거품'과 '석고현상'에 대한 대안이 투기용 아파트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낭만 아파트'을 만드는 것이라는 애매한 결론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낭만아파트 - 10점
허의도 지음/플래닛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