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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광화문 광장에서 하루를 보내보니...

by 이윤기 201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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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9월 2일 광화문 광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왔습니다. 제가 속한 단체 회원들과 마산에서 8월 마지막 토요일에 하루 단식을 하고, 사흘 만에 다시 광화문 광장에 가서 하루를 지내다 왔습니다. 


새벽부터 자전거 국토순례를 함께 했던 자원봉사자 병문안 갈 준비하러 어시장을 다녀오느라 KTX 첫 차를 놓치는 바람에 12시가 조금 넘어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광화문 광장 입구에 있는 천막에는 예상보다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실무자들에게 물었더니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서명지'를 전달하러 삼보일배를 하면서 청와대로 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잠시 뒤에 광장을 둘러보니 광화문 광장 입구에서 출발한 유족들과 시민, 학생들의 삼보일배는 세종대왕 동상 옆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걸음도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하면서 몇 시간째 절만하고 있더군요. 


광화문 광장을 출발한 유족들이 청와대를 향해 출발하였지만, 광화문 광장 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경찰에 막혀 있었습니다. 도착후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서명용지가 담긴 보자기를 들고 따라 나섰던 동료들이 천막으로 돌아왔습니다. 


대열이 한 걸음도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소강상태가 계속되자 '서명지'를 한 곳에 모아놓고 절반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 한 시간쯤 지나자 이번에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제 자리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이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북을 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몇몇 동료가 뛰어 나갔습니다. 동료 셋이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달려가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깨 북을 쳤는데, 그 후로도 세 시간 넘게 꼼짝도 못하고 서서 북을 져야 했습니다. 


간간히 비가 내리는 굿은 날씨에 서명지를 비닐로 덮어 놓고 청와대를 향하여 절을 하면서 제자리 '삼보일배'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대통령은 들은 척도 안 하는데, 유가족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내내 고행을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을 마주 보는 곳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함께 단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유난히 눈에 띄더군요. 이날 천주교 단식 기도회는 9일째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에는 없습니다만, 제가 앉아 있던 천막 바로 건너편에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게스트로 나오는 국회의원 정청래 의원이 단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파파이스'에 나올 때는 개그맨처럼 웃기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더니, 막상 광화문 광장에는 하루 종일 진중한 모습으로 앉아 있더군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3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이날은 낮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였기 때문에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동안는 비닐로 덮어두고 있었습니다. 


소리지르고 싸우는 일에 지쳤는지, 유가족과 삼보일배단은 큰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마치 수행하는 사람들처럼 북소리에 맞춰서 절만하고 있더군요. 



맨 앞에 서 있는 유가족들은 얼굴조차 볼 수 없을 만큼 기자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경찰과 별다른 충돌이 없었는데도 하루 종일 사진에 보시는 것처럼 유가족과 대표단을 둘러싸고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한겨레 신문 1면에는 세종대왕 동상앞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유가족들의 사진이 실렸더군요. 



많은 시민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삼보일배단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루 종일 저렇게 서서 절을하고 나면 '무릅다 나간다'며 걱정을 하시더군요. 절을 하는 분들도 힘이 들었겠지만 절 하는 분들을 지켜보고 있는 분들도 안타까워 어쩔줄몰라 하였습니다. 몇 시까지 하고 돌아선다는 기약도 없이 아침부터 하염없이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노란색은 세월호 사고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청와대를 향해 절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이 들고 있던 노란 상자마다 담긴 천만인 서명용지에는 3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특별법 제정 요구 서명이 담겨 있습니다. 



취재진들에게 둘러 싸이기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함께 광화문 광장에 있던 동료가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입니다. 맨 앞에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분이 유가족인듯 합니다. 


광화문 광장을 지키는 시민들과 활동가들은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자발적 참가자들이 한 켠에서는 리본을 만들고 광장 입구에서는 서명을 받고, 동조 단식을 하는 시민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날도 서명을 하고 가는 시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다니는 시민들은 이미 서명을 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호가 바뀌어 보행자들이 길을 건널 때마다 3~5명의 시민들이 서명대에 들러서 서명을 하고 갔습니다. 



오후부터 광화문 광장 건너편에서는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어버이연합에서 나와 집회를 하더군요. 귀찮아서 길 건너까지 가보지도 않았는데, 위의 사진은 페친인 김태훈 선생이 페북이 올린 사진입니다. 제가 페북에 올린 글을 보고 찾아와서 광화문 광장에서 잠깐 만났었는데, 건너편 집회에 '변희재'도 왔더라는 이야기를 전해주더군요. 


아마도 어버이연합 회원들 앞에 서 있는 빨간 셔츠를 입은 전사(?)가 변희재인 것 같습니다. 어버이연합 집회를 진행하는 자는 청산유수더군요. 인터넷에서 보던 온갖 험담과 악성루머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간간히 횡단보도를 건너 광화문 광장으로 와서 시비를 거는 어버이연합 회원들도 있었습니다. 단식하는 분들에게 욕을 하거나 광장에서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더군요. 세월호 유가족들을 지원나온 시민들은 자극적인 표현에도 일체 대응을 하지 않았고 경찰들이 이분들을 길 건너편으로 되돌려보내는 일이 하루 종일 반복되었습니다. 


저녁 6시 조금 넘어 광화문 광장을 떠났습니다. 원래는 하루 밤을 자고 올 계획이었습니다만, 사무실에 긴급한 일이 생겨 되돌아 와야 했습니다. 오전 11시쯤부터 삼보일배를 시작한 분들은 오후 6시가 다 되어 청와대로 가기를 포기하고 천막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추석이 끝나도 아무런 진척이 없네요. 이 지난한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저들은 지치기를 바라고 있겠지요. 광화문 광장에서 하루를 보내며 지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이 싸움의 본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칠 때마다 서로 힘을 합치고 어께를 걸고 격려하며...긴 싸움을 지켜야 할 것 갔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하루를 보내보니 슬픔보다 분노가 점점 더 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