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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7인의 작가, 7개 도시를 7편의 소설로 담다

by 이윤기 2014.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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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백영옥 외 6인이 쓴 여행 소설집 <그 길 끝에 다시>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단편소설집 <그 길 끝에 다시>의 부제가 바로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입니다. 백영옥 외 6인의 작가가 쓴 이 단편 소설집은 속초, 정읍, 원주, 제주, 부산, 여수, 춘천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특이한 소설입니다. 


출판사에서 작가들에게 원고를 부탁할 때 특정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부탁했고, 작가들은 각자 다른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엮어냈습니다. 도시를 주제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더군요.


속초를 배경으로 한 백영옥의 '결혼기념일', 정읍을 무대로 한 손홍규의 '정읍에서 울다', 이기호가 원주 주제로 쓴 소설 '말과 말 사이-원주 통신2', 윤고은이 쓴 제주 이야기 '오두막', 부산이 무대인 함정임 소설 '꿈꾸는 소녀', 제목에도 여수가 등장하는 한창훈 소설 '여수 친구' 그리고 춘천이 배경인 '만보 걷기'까지 모두 7편의 작품이 담겨 있습니다.


결혼과 이혼은 미분과 적분


7명의 작가가 쓴 7편의 소설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아무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7편의 소설은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게 유일한 공통점입니다. 어떤 이야기에는 도시의 특성이나 모습이 잘 드러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백영옥의 '결혼기념일'은 속초 여행을 하면서 이혼 후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입니다. 잘나가던 방송국 드라마 PD였던 주인공의 남편은 드라마 제작사를 차린 후 빚더미에 앉았고, 끝내 결혼생활을 지탱할 수 없어 이혼까지 하게 됩니다. 


이혼을 해본 사람들만 알게 된다는 이야기는 낯설면서 동시에 흥미롭습니다. 결혼과 이혼을 미분과 적분에 빗대었더군요. 


"결혼이 조금씩 쌓여가는 적분이라면, 이혼은 가장 작은 것까지 나누어야 하는 미분이라는 것. 공정해지기 위해 서로의 물건을 나누다보면, 결국 모든 게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함께 공유했던 시간이나 추억, 영혼까지도 말이다. 이혼의 핵심은 공정한 분배이다." (본문 중에서)


이혼하는 날 남편과 재규어 승용차를 누가 소유할 것인지를 두고 다투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낡은 재규어를 몰던 여자 주인공은 견인차도 오지 않는 눈 내리는 시골길에 갇혀버립니다. 


이혼 후에도 다시 제기하지 못한 그녀의 남편은 고향 도시에서 술을 마시고 새벽에 택시를 잡다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49재가 끝난 후 시동생에게 남편의 사망 전해들은 날은 하필 그들의 결혼기념일이었답니다. 


손홍규가 쓴 <정읍에서 울다>는 정읍이라는 도시를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파킨슨 병에 걸린 아내를 돌봅니다. 파킨슨 병에 걸린 아내는 병세가 심해지면서 자주 정신을 잃었고 그때마다 '정읍댁'을 찾아달라고 합니다. 남편은 준위로 퇴직할 때까지 오랫동안 직업 군인으로 타지를 돌았습니다. 주인공은 '정읍댁'이 그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확신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정읍댁'이 누구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봅니다. 결혼 전 애틋한 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순자와의 우연한 재회는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하지만 몇 차례 만남에 "연애하느냐"는 아내의 추궁이 들어와 그만두고 맙니다. 


"그가 아내와 결혼하여 일가의 가장으로 삶을 꾸리게 된 순간부터 그가 꿈꾸었던 모든 것들과 이별해야 했고 그토록 비장하게 그가 바라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왔음에도 결국 초라한 늙은이밖에 되지 못했다는 서러움만은 확실히 그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대부분은 결국 초라한 늙은이가 될 테니까요. 나도 조금씩 초라한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기까지 했답니다.


"그들도 그와 그의 아내처럼 서로를 의심하고 조롱하고 힐난하고 할퀴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여기에 이르렀으니 그들은 잘 견뎌낸 셈이다. 무관심의 늪에 빠질 위험을 간신히 피해가며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고군분투했는지 알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이 구절 역시 각자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보게 하는 문장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먼 길을 돌고 돌면서 한 평생을 보내지 않을까요. 백년해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희노애락의 세월이 뭉쳐진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맨발로 집을 나간 아내를 찾아냈을 때, 아내는 잠깐 정신이 돌아옵니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정읍댁'이 어려서 잃은 첫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설의 제목이 '정읍댁'이었던 것도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성폭행 사건 목격하고 침묵하는 자들의 죄책감


이기호가 쓴 '말과 말 사이 - 원주 통신2'는 섹스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윤고은이 쓴 제주이야기 '오두막'은 성폭행 사건을 목격하고도 구조나 신고를 하지 않고 도망친 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함정임이 쓴 '꿈꾸는 소녀'는 사진작가인 주인공의 카페에 도둑고양이처럼 머물다 사라진 소녀의 미스테리한 인연을 담았습니다. 


한창훈이 쓴 '여수 친구'는 세계 챔피언을 꿈꾸던 형과 여수 친구의 모질게 질긴 인연을 이야기 합니다. 한국 챔피언을 거머 쥔 후, 세계 챔피언을 꿈꾸던 형이 링에서 죽습니다. 그 후 '여수 친구'는 공부에 매달립니다. 가난을 이기고 검정고시를 치르며 사법시험 1차까지 합격했지만 끝내 최종합격자가 되지는 못합니다. 


어느 날 '챔피언 신'이 내린 여수 친구는 권투 챔피언을 신으로 모신 점집을 열게 되는데, 이 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길 밖에 없다는 기구한 인생 이야기입니다. 


김미월이 쓴 '만보걷기'는 춘천에서 살게 된 주인공 미래가 만보기를 차고 작심하고 걷기를 하러 나선 날이 시간적 배경입니다. 만보를 찍는 순간에 만났던, 그림 그리는 여행자 아미와의 사랑과 여행 이야기입니다. '만보일기'에는 춘천의 특산품들이 드라마 속 간접광고(PPL)처럼 등장합니다만 조금도 귀찮지 않고 오히려 흥미롭습니다. 


"새벽에 소양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 적 있어?"

"거기에 춘천의 특산품이 있어."


이런 식입니다. 춘천의 특산품이란 물안개를 말합니다. 소설 속에는 춘천 소양강 물안개에 대한 길고 자세한 묘사가 신비롭게 이어집니다. 


유명한 춘천 닭갈비 식당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팔호광장의 꼬마김밥과 즉석떡볶이, 조각공원과 춘천여고의 목백합 등 춘천 사람들만 알 것 같은 숨겨진 명소도 등장합니다. 다른 단편들에 비하여 '춘천'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소설 속에 가장 많이 등장시킨 작품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앞서 짧게 소개하고 지나친 윤고은이 쓴 제주이야기 '오두막'이었습니다. 성폭행, 살인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남녀가 다른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삽니다. 비밀을 간직한 서로가 주고받은 고민과 상처의 이야기입니다. 


3년이 지난 후에 제주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녀는 "서로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상대이기도 했지만, 그 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안도감을 나눕니다. 제주 어느 오름에서 목격한 강간과 살인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발버둥치던 남녀입니다. 작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잔혹한 상처를 남기고 헤어졌다가 다시 재회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냈습니다.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은 일상과 여행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마음속에 또 다른 고향을 만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를 주제로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작가들의 이야기 솜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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