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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아들 둘이 모두 신종플루에 걸렸습니다.

by 이윤기 2009.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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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가지 못한 신종플루 담담하게 맞이하기

지난주 제주도로 출장을 가 있는데 아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여보 학교에서 건호가 신종플루 아닌지 검사 받아보라고 하는데..."  출장에서 돌아온 토요일 오후 둘째 아이와 함께 보건소에 갔습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당직을 서는 직원 한 분만 계시더군요.

아이의 증상을 확인한 후에 체온계로 열을 재어보더군요. 아이의 체온은 37.5도였습니다. 보건소의 신종플루 지침에는 37.8도 이상 되어야 의심환자로 분류하여 신종플루 검사를 한다더군요. 세상에 체온이 0.3도 낮기 때문에 검사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기가 막히더군요.

▲ 신종플루 검사와 치료를 위하여 기다리는 시민들
천막 오른쪽에 모여있는 남자분들이 검사와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거점병원으로 간 일반인들



37.3도와 37.8도의 차이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고 버티고 서 있었더니, 당직 서시는 직원이 어딘가로 인터폰을 하였습니다. 잠시 후에 공중보건의로 보이는 젊은 남자 직원이 왔습니다.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더군요. 열이 37.8도 이상 되어야 의심환자로 분류하여 검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일단 검사를 해드리겠다고 하더군요.

검사장비는 별것 아니었습니다. 면봉 두 개와 나무 막대로 콧구멍과 목에서 분비물을 채취하여 시험관에 담아 봉인하여 검사하는 곳으로 보내는 모양이더군요. 토요일에 검사를 하고 왔는데, 월요일 오후에 검사결과가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선 동네 병원에서 감기약을 처방 받아서 먹이고 학교는 등교를 시키지 말라고 하더군요.

어렸을 때, 소아천식을 앓은 아이는 항생제 치료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자라면서 천식이 낳은 후에는 가벼운 감기에는 병원치료를 잘 받지 않습니다.  몇 가지 민간요법으로 대략 일주일 정도 감기증상을 완화시키면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감기증상이 있을 때 먹는 귤껍질, 파뿌리, 도라지, 배, 무우, 콩나물......을 달여 먹였습니다. 열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감기 증상 역시 더 심해지지 않은 채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학교를 쉬는 것이 약간 신나는 일인듯 하였습니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아이의 검사결과를 깜박 잊고 있었는데, 오후 3시쯤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검사결과 아이가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보건소로 와서 약을 받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곧장 보건소로 갔더니, 주말 보다 많은 환자들이 신종플루 검사를 받거나 '타미플루' 처방을 받아가고 있었습니다.

보건소에서는 '타미플루'를 아침, 저녁 하루 두 번씩 먹고, 증상이 완화되어도 약을 중단하지 말고 5일치를 꼭 먹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월요일 저녁부터 둘째 아이는 타미플루를 먹고 있습니다. 설마설마 했는데 결국 가족 중에 환자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학교 마다 신종플루 환자가 자꾸 늘어나고 있다고 하고, 얼마 전에는 사촌 여동생 딸 아이가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고, 지난주 출장 때는 제주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신종플루에 걸렸더군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결국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겨 버렸습니다.




저희, 집에도 '신종플루' 그 분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확진 판정을 받고 타미플루 처방을 받아오는 그 시간, 주말을 집에서 지내고 월요일 아침 학교 기숙사에 들어 간 첫째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동생어찌되었냐고 묻너니, 기침, 재채기 나고, 콧물도 나오는 등 저도 감기 증상이 있다는 겁니다. 다행히 열은 높지 않다고 하더군요. 일단 지켜보자고 하고 그냥 두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서 막 컴퓨터를 켜는데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첫째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 아침마다 열을 재는데 37.9도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보건교사가 병원에 가서 신종플루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답니다. 급한 일을 처리해놓고 첫째 아이와 함께 보건소로 갔습니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였는데, 신종플루 검사를 하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략 세어보니 20명이 넘는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수시로 보건소 직원이 나와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에게 마스크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긴 줄의 중간쯤에 직장인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 6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보건소 직원이 나와서 일반인은 보건소에서 검사, 치료를 받을 수 없으니 거점병원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 벌써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차례가 다 되었는데 거점 병원으로 가라고 하니 황당한 모양이었습니다. 보건소 직원은 안내 표지판에 일반인은 보건소에서 검사, 처방을 받을 수 없다고 적혀있다고 확인을 시켜주더군요.

그러면, 뭘 합니까? 1명도 아니고 6명이나 되는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스크 나눠주기 전에 일반인은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어야 하는데 말 입니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 직원이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이 분들도 열이 나고 감기 증상이 있어서 보건소에 왔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목소리 높여 항의하지 않고 비교적 순순히 거점병원을 찾아서 가더군요.

아래 사진에 보시면 고위험군이 아닌 외래환자는 보건소에서는 검사도 치료도 해주지 않는다고 되어있습니다. 고위험군이 아닌 환자는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투약도 하지 않고, 일반적 대증치료와 적절한 휴식으로 완치될 수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뉴스 검색을 해보니 급속하게 환자가 늘어나자 정부 방침이 변경되어 열나고 기침나면 무조건 타미플루를 처방한다고 하는군요. 학교, 군대, 복지시설 등 집단환자가 아니면 보건소에서 진료를 해주지 않는 방침도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보건소에서 신종플루 검사를 받으면 무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데, 거점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면 적지 않은 검사비용(약 8만원)을 환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이면 누구나 가리지 않고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동생이 확진환자면 형은 검사 필요없어요

대략 1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아들 순서가 되었습니다. 증상을 확인하고 열을 다시 재었는데 이번에는 38.5도가 나왔습니다. 양쪽 귀를 번갈아 측정하였는데 마찬가지더군요. 담당 선생님은 어느 학교인지 물어보더니, 이미 확진 환자가 나온 학교인지 아닌지 확인 하였습니다. 저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이미 확진 환자가 여럿 있더군요. 

뿐만 아니라 동생이 토요일에 신종플루 검사를 받아서 월요일에 확진 판정을 받고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이런 경우에는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고열과 감기증상 그리고 확진 판정을 받은 가족이 있기 때문에 검사없이 신종플루로 판단한다는 것 입니다.

아들은 감기약과 타미플루 처방전을 받아 거점 약국에서 약을 타 왔습니다. 학교에 들러 보건소에서 발급해 준 자가격리 확인서를 제출하고, 기숙사에서 짐을 챙겨 점심 때쯤 집으로 왔습니다. 거점 병원은 이미 병상이 없기 때문에 고위험군 환자가 아니면 모두 자가 격리 조치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두 아들 녀석은 이번주 내내 꼼짝없이 집에서 자가 격리되어야 합니다. 잠깐이긴 하였지만, 신종플루만 아니면 방학도 아닌 공짜(?) 휴일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이나 다녀왔으면 좋겠다하는 태평스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주말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가을 여행을 하기에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지요.

아이들이 신종플루에 걸렸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걱정이 많습니다. 하나는 우리 아이 둘이 모두 한꺼번에 신종플루에 걸렸으니 어쩌냐하는 걱정이고, 또 하나는 가족이 신종플루에 걸렸으니 당신과 접촉하는 우리는 위험하지 않느냐하는 걱정이었습니다.

보건소에서는 마스크 착용하고 개인위생 철저히 하면 가족들에게 전염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주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신종플루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 보다는 내가 신종플루에 걸려서 함께 일하는 실무자들이나 단체 회원들에게 전염되는 상황이 되면 참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유아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으니 가족 중에 환자가 있다고하면 학부모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일거구요. 저는 아무 증상이 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염려(?) 때문에 오후에 휴가를 내고 집으로 왔습니다. 아내는 아들 둘이 한꺼번에 신종플루 판정을 받고 약을 먹고 있으니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고위험군이 아닌 건강한 사람들은 신종플루로 생명을 잃는 일도 없고, 어차피 한 번 앓고 나면 백신을 맞은 것 처럼 항체가 생긴다고하니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만 아니라면 그냥 독감처럼 한 번 앓고 지나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니까요.

사실, 불과 몇 개월의 짧은 시간에 개발, 공급되는 신종플루 백신의 부작용이 충분히 검증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한 번 백신을 맞으면 항체가 평생간다는 보장도 없으니 건강할 때 한 번 앓고 항체가 생긴다면 나쁘지 않다는 것이지요.

맞벌이 부부에게 신종플루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아이 둘이 한꺼번에 신종플루를 앓고 있는 것도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부부가 모두 직장에 나가야 하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둘째 아이만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것 보다는 형과 함께 '자가 격리'되어 있는 것이 차라리 잘된일이다 싶더군요.

아이 둘이 번갈아가며 신종플루에 걸린 것 보다 둘이 한꺼번에 앓고 함께 회복되는 것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잘 된 일이지요. 고1, 초6인 저희 집 아이들은 이제 혼자서도 지낼 수 있을 만큼 자랐지만, 만약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라면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을 것 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런 난감한 경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저희가 잘 압니다. 아이가 아프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없고(지금 같은 신종플루는 더욱 그렇겠지요), 그렇다고 부모가 마냥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돌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하는 난감한 상황 말 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두 녀석 모두 아주 어린아이가 아닌 것도 참 다행한 일이더군요.

솔직히 맞벌이 하는 저희 부부는 신종플루도 걱정이긴 하지만,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아들 둘을 집에서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여야 하는 일이 더 걱정입니다. 첫째 아이는 기숙사에서 지내고, 둘째 아이도 점심은 학교 급식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였는데, 앞으로 하루 세번 환자 둘을 위한 식사준비를 하는 일도 적은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아이 둘은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방학도 아니고, 결석도 아닌 공짜(?)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충분히 쉬고 면역력을 회복해야 한다며 잠깐씩 공부하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말 입니다.

불안 불안한 뉴스를 들으며 조심조심 했지만, 결국 저희 집에도 '신종플루' 그 분이 오셨습니다. 어차피 오셨으니 별일 없이 일주일 동안 푹 쉬었다 아무일 없이 떠나시기를 바랄 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