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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아이 출생신고 조차 거부한 무정부주의자

by 이윤기 201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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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걷기>는 한 미국인 남자가 정부로부터 발급 받은 공인 자격증인 운전면허증을 어떤 이유로 정부에 되돌려주기 위하여 한겨울 8일 동안 걸어간 이야기입니다. 직접 나무를 잘라 만든 침엽수 지팡이 하나와 자신의 두 발에만 의지하여 200여킬로미터를 걸어 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오하이오주의 반즈빌을 출발하여 주도인 콜럼버스시까지 걸어가면서, 걷는 동안 보고 느끼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겨 책으로 엮었습니다. 스콧 새비지는 도시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가 시골의 농부로 변신한 퀘이커교도입니다.

"가족의 크기에 적당한 마당과 마차를 이용한 이동, 깊은 고요, 신앙심 깊은 공동체, 손수 만든 소박한 옷, 힘든 육체노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깊어만 가는 땅에 대한 애정으로 이러우진 생활을 선택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영혼의 여행기이다."

스콧 새비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2년 TV 안보기를 시작하였을 무렵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이가 방학 동안 하루 종일 TV에만 매달려 지내는 것을 보고 고민하다가 'TV안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가족회의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쳤지만 엄마, 아빠의 결단에 따라 TV를 안 보고 지내는 생활을 시작하였고, 지금도 TV는 주말에만 시청하는 규칙을 지키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때 아이들과 TV를 안 보고 지내는 삶을 소개하는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었는데, 제가 쓴 기사를 보고 어떤 독자분이 소개해준 책이 바로 스콧 새비지가 엮은 책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입니다.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은 비영리단체인 '소박한 삶을 위한 모임'이 창간한 플레인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기계 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스콧 새비지는 두 번째 러다이어트(첫 번째는 영국의 직조공들이 기계 반대 운동을 일으켰다) 모임이 있었던 1996년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기 위해 집이 있는 반스빌에서 콜럼버스까지 120마일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100년을 살리는 환경책 100권에 포함된 <플러그를 뽑는 사람들>에 언급되었던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기 위한 걸었던 기록을 담은 책이 바로 <행복한 걷기>입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장면입니다.


운전면허증 반납하러 200㎞를 걷어가다

그는 유효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폐기되는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기 위하여 팔일 밤낮을 걸었습니다. 정부에 운전자격 취소요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함으로써 정부에 완벽하게 운전 면허증을 반납합니다.

먼 길을 걸어오는 동안 다시는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넘어서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평소 현대의 개인주의적인 자유 관념과 차를 이용해 쉽게 이동하는 습관에 익숙한 우리는 사람과 공동체 그리고 신의 필요성을 망각해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곳으로 걸어오는 도중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나는 장소를 말살하는 근본적인 수단인 자동차를 완벽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야 현재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콜럼버스 시로 가는 것이 내가 열여섯 살 때 자동차 키를 받으며 미국시민으로서 얻은 넓고 얕은 세상을 반납하러 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사람과 공동체 그리고 신과 소통하는 삶을 위하여 운전면허증을 반납하였다는 것입니다. 퀘이커교도인 스콧 새비지는 퀘이커의 생활방식 보다 더 근본적인 아미쉬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입니다.

아미쉬와 퀘이커교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박한 삶을 위한 모임'을 이끌고 있는 스콧 새비지는 단순히 농촌으로 돌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기계와 문명이 신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을 떠난 첫째 날 '플레인'의 사무실이 있는 반즈빌 거리를 지나면서 그는 자신이 신던 장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입니다.

"나 역시 낡았지만 수수하고 아직 튼튼한 장화를 수리해 쓸 작정이어서 들뜨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직 새 신을 사기보다는 수리하는 게 가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신도 2년 전에 산 것이었는데, 이미 한 해 전 겨울에 요더씨는 밑창을 갈아주며 구두 뒤축이 닳는 것을 줄이기 위해 쐐기도 박아주었다."

단순히 물건을 아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지역 경제권내에서의 순환을 강조합니다. 지역경제권내의 순환이 위험한 세계화로부터 공동체를 지켜주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요더씨 가게가 그곳에 계속 있기를 바란다면 월마트가 세일한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서는 안 될 일이다. 아미쉬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몇 푼 안 되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월마트로 간다면 결국엔 더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다."

지역경제권내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돈을 지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지역 경제의 순환은 돈을 법인(기업)이 아니라 진짜 사람에게 돌려주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어느 시의원이 자신의 건물에 SSM을 임대해주었다고 하지요. SSM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자동차 포기는 자본주의로부터의 탈옥

그는 자동차를 포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욕망과 그 속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굳게 합니다. 아울러 그는 완벽한 '무정부주의자'로 살겠다는 정치적 입장도 동시에 표현합니다.

첫째 아이를 병원관료제의 도움없이 산파의 도움으로 출산하였습니다.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얻은 출생신고서에 등록하였지만, 둘째 아이부터는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첫째 아이의 출생신고가 이루어진 뒤 복지부 간호사가 나타나 아기에게 부모가 원하지 않는 면역주사를 놓고 뒤꿈치를 찔러 채혈을 하고 매독을 예방하기 위하여 안약을 넣는 폭력(?)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이부터는 정부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등록되지 않은 이 아이들의 지분을 세금환불 시에 적용받을 수 없다.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에 불복종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엄청난 세금을 매년 물고 있다."

스콧 새비지가 자동차면허증을 반납하기 위하여 먼 길을 걸어간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법에 대한 불복종의 수준을 더 높이려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사회와 맺은 근본계약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고 싶어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사회와 맺은 계약으로부터 벗어나는 대신에 종교공동체나 이웃과는 더 친밀하고 따뜻한 삶을 나눌 수 있으며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형제들과 이웃들이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돕고 보살피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단순한 행위가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식하는 능력을 되찾아 줄 것이라고 합니다. "가정과 공동체의 교육이 제도권 의무교육을 대신할 수 있고, 지역공동체의 상부상조가 국가의 의료보장제도나 사회보장제도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으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스콧 새비지는 더 행복한 삶은 가족과 이웃과 공동체 속에 있으며 경제적 풍요와 물질문명에서 멀어져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최근에 읽은 또 다른 책 <상식 : 대한민국 망한다>를 읽어보면 석유를 기반으로 성장한 현대산업사회는 석유생산의 정점에 도달함으로써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인류 새로운 삶을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걷기>를 통해 스콧 새비지가 강조하는 '소박한 삶'이 석유와 자원이 바닥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콧 새비지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대로 사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