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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독일 사람들은 전부 나치였나요?

by 이윤기 2008.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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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람들은 전부나치였을까? 당시 독일 사람 중에 나치 당원이었던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도 안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너무 멀리나간 교실실험 '파도'>는 바로 이 질문에 답을 주는 책이다.

벤 로스는 역사 수업에서 나치의 만행에 대한 역사적 사실 몇 가지를 학생들에게 요약해주었다. “수용소에서 이렇게 나치가 학살한 사람의 수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이들을 포함해서 천만 명이 넘는단다.”


이어지는 아이들의 질문 “독일 사람들은 전부 나치였나요?” 벤 로스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독일사람 중에 나치 당원이던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도 안 돼.”

“근데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했지요? 90퍼센트 넘는 사람이 그걸 막을 수가 없었나요.”

“나치가 그렇게 사람을 잡아다 죽이는데,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평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게다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주장까지 해요?”

단지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 사실을 암기하기만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심코 놓치고 지나갔을지 모르지만, 인간과 역사의 진실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가질 만한 질문이다.

작가인 토드 스트라써는 <파도>를 통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던져주고 있다. 

만약 당신이 천만 명 이상이 죽어간 유대인 학살의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면?
역사가 당신 앞에 반복되어도 절대로 나치의 만행에 가담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혹은, 나치의 만행을 눈과 귀를 닿고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면?
뿐만 아니라 내 몸뚱아리 속에 잠자는 파시즘 따위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반드시 이 책 <파도>를 읽어보아야 한다.


<파도>는 왜 나치가 그렇게 사람을 잡아다 죽이는데도 대다수 독일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평하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직접 아이들이 참여하는 교실 실험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현기증 나는 대답을 전해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파도>가 그냥 작가 토드 스트라써의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 소설적 상상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파도>는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는 고든 고등학교(소설에서)의 역사 수업에서 실제 벌어진 일을 각색한 소설이기 때문에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이라는 수식어가 제목에 붙어있다.

일치와 단결을 가져다준 교실 실험

이 학교의 역사 교사인 벤 로스는 제2차 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전혀 몰랐다고 하는 독일 사람들의 현실을 아이들에게 경험시켜주기 위하여 새로운 사회실험을 고안해냈다. 그 실험의 제목이 바로 ‘파도’이다.

벤 로스는 어수선하고 무질서하며 자유분방한 자신의 아이들에게 ‘파도’라는 조직의 결성을 제안하는 교실 실험을 시도한다.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실천을 통한 힘의 집결”

이것이 바로 ‘파도’를 상징하는 구호이고, 책을 읽는 이에게는 나치의 문양을 빗대었다는 느낌을 주는 ‘파도’를 상징하는 ‘문양’을 제안하고, 그들만의 인사법을 가르친다. 아주 짧은 기간동안에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묘한 일체감을 맛본 후, 순식간에 배타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기쁨에 빠져든다. 뿐만 아니다.

학교 식당에서 다른 아이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을 만큼 심각하게 따돌림을 당하던 로버트 빌링즈 조차도 ‘파도’ 회원이라는 일체감과 함께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로버트는 ‘파도’ 회원이라는 자부심을 통해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는 놀라운 변화를 보이게 된다.

실험 초기에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들은 만년 꼴지 팀이었을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마음도 맞지 않았던 고든고등학교 축구팀에 ‘일치와 단결’을 이루는 혁신의 바람을 몰고 오고, ‘파도’에 속한 아이들은 마치 군대와 같은 규율과 질서를 스스로 만들고 지켜나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도자인 ‘벤 로스’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추앙하게 된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rmfkdldjs님, 저는 트렉벡을 걸어주신 정철상의 커리어노트 에서 퍼 왔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파도' 실험을 설계한 벤 로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들이 속출하게 된다. “아무리 숙제를 많이 내줘도 제 날짜에 모두들 제출하고,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질문에 아이들은 숨 고를 겨를도 없이 척척 기계처럼 대답했다” 솟구치는 열정과 무서운 단결력으로 파도는 더욱 힘을 받았다.

그러나,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파도’는 히틀러의 돌격대, 보안대, 소년단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훈련도 소용없고 공동체 역시 의미가 없어, 훈련을 통해 우리는 실천하는 힘을 기르고, 공동목표를 갖는 집단을 통해 목표에 이를 수 있거든.”(본문 중에서)

내 안에 숨어있는 ‘파시즘’이 깨어나면

‘파도’의 “힘이 커지면서 거기에 속한 개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자기 권리를 포기할 뿐만 아니라 엉뚱하게도 자기가 속한 집단 밖의 사람들을 향해서 함께 집단의 권력을 남용하고 점점 그악스러워져 얼마 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몹쓸 짓을 일삼는 그런 과정”을 밟는다.

마침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파도’에 가입을 권유하며 하급생에게 협박을 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파도’ 멤버가 아니면 고든 고등학교의 축구경기 응원에도 참여 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집단주의와 획일주의가 파도처럼 퍼져나가면서 생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할 뿐 아니라 기본권마저 위협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실험을 설계한 벤 로스 조차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파도는 거세게 휘몰아치다가 마침내 그 운명을 다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하던 벤 로스는 우여곡절 끝에 ‘파도’ 실험을 마무리 지을 비책을 마련한다. 전국파도운동연합의 결성과 숨어있던 지도자 공개를 약속하며 전 회원을 체육관에 집결시킨다.

강당에 모인 아이들 앞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숨어있던 파도의 진짜 지도자는 ‘아돌프 히틀러와 그에게 환호하며 충성을 맹세하던 젊은 나치’였다. 벤 로스는 아이들이 어떻게 죽을힘을 다해서 나치가 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었는지를 깨우쳐 준다.

“너희는 저 히틀러 소년단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던 거야.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저런 제복도 입었을 테고, 팔을 높이 올리며 ‘하이 히틀러!’도 크게 외쳤을 거야. 같은 편이 아닌 친구들은 감옥이나 수용소로도 보냈지.”

처음 히틀러와 2차 대전에 대한 수업을 하면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역사상 벌어진 일이 다시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어느새 파시스트가 되어 있었다.

“설마 너희가 파시스트가 될 줄은 몰랐지? 너희 안에 파시즘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지? 수업 중에 나치의 역사를 배울 때 너희들은 내게 물었어, 독일인들은 왜 죄 없는 사람을 수백만이나 잡아다 죽여 버렸냐고?”

벤 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파시즘을 이기는 길은 “나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고 집단의 목표를 위해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일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늘 묻는 버릇을 가져”야 한다고.

<파도>를 우리말로 옮긴 김재희는 독일에서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은 이 책이 한국과 일본 학생들에게도 꼭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았다고 한다.

독일이 통일될 무렵 리햐르트 폰 바이체커 독일 대통령은 “과거에 눈감는 자는 현재에 대해서도 눈멀게 된다. 비인간성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자는 새로운 감염의 위험에 놓이기 쉽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