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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27세 서울시장, 우린 언제나 가능할까?

by 이윤기 201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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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유럽은 어디까지입니까?' <유럽 속의 발트 3국>을 쓴 서진석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그리스·네덜란드·스페인·포르투갈·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룩셈부르크·벨기에·폴란드·스위스·오스트리아...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20개 이상을 떠올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유럽에 속한 나라들 전부입니다. 서진석이 소개하는 발트 3국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분명 들어본 듯한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 나라입니다. 영국 하면 런던, 프랑스 하면 파리, 그리스 하면 아테네, 노르웨이 하면 오슬로. 이렇게 나라 이름만 대면 떠오르는 수도나 도시 이름도 없습니다. 세 나라 모두 생소합니다.

 

서진석이 쓴 책을 읽어도 세 나라 모두 낯설고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생소하기만 한 게 아니라 헷갈리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를 따로따로 나눠 책을 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들 세 나라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나라 이름도 낯설고, 도시 이름도 낯설고, 책에 언급한 그 나라의 유명인들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앞장에서 읽었던 내용이 에스토니아였는지 라트비아였는지, 아니면 리투아니아 이야기였는지 헷갈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책을 읽으면서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읽던 책을 앞으로 넘겨 앞서 봤던 내용을 다시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그럼 이 낯설고 독특한 나라를 우리에게 소개한 저자 서진석은 누구일까요?

 

저자의 이력 역시 평범하지는 않습니다. 1991년 북방 정책의 영향 아래 한참 뜨고 있던 동유럽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외대에 폴란드어과에 입학한 저자는 그해 한국과 함께 유엔 회원국이 된 이들 세 나라에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 같은 나라 대신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원에서 발트어문을 전공했으며 에스토니아 타르투 대학교에서 비교민속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현재 그는 리투아니아의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교 아시아지역학과에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의 학력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한국발트친선협회의 대표도 맡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문학과 설화 등을 번역해 발트 3국에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발트 3국 전문가, 저자의 독특한 이력

 

그는 이런 경력을 활용해 <오마이뉴스>에 수년간 발트 3국을 비롯한 동유럽 소식을 전문적으로 기고하는 해외통신원으로 활약했으며 교육방송을 비롯한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코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 책 <유럽 속의 발트 3국>은 저자 서진석이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으로 활약하면서 쓴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합니다. 책의 전반부는 발트 3국의 문화·역사·종교·전통·역사에 대해 쓴 글들입니다.

 

예컨대 2006년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리투아이나에서 예수 형상을 한 인형이 등장한 맥주 광고가 논란이 됐다는 '춤추는 예수가 맥주를 판다고?' 같은 글은 사건 당시의 사실 관계를 가십이나 해외 토픽처럼 언급하는 게 아니라 예수 조각상에 얽힌 역사를 두루 조명합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예수상 '루핀토옐리스'의 배경은 기독교에 있지만, 이는 여러 문화가 혼합된 것이며 이교도적인 형태의 모습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그는 루핀토옐리스를 수집해 전시해놓은 전시장에 찾아가고 민속목공예 장인을 만나 심층 취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먼 나라의 가벼운 해프닝 같은 이야기를 읽는 게 아니라 '예수가 등장한 맥주 광고'라는 사건을 통해 리투아니아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역사까지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짧은 시간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전하는 흔한 여행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깊고 넓은 역사문화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보면, 에스토니아에서 벌어진 '구소련 군인동상 논쟁'에 관한 글도 흥미롭습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유럽 건축 양식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불립니다.

 

"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탈린의 구시가지는 북유럽·서유럽·제정 러시아 등 유럽의 주요 건축양식이 한곳에 모여 조화를 이루고 있어,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유럽 건축양식의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본문 중에서)

 

아울러 소련 연방 시절 지어진 소련식 건물들도 고풍스러운 유럽 양식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역사 도시 탈린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2차 대전 이후 소련의 일개 공화국으로 전락했다가 소련 해체 후 독립한 에스토니아에서 소련 지배 시절 세워진 러시아 붉은 군대 추모 동상의 철거가 쟁점이 됐다고 합니다.

 

이런 복잡한 일이 벌어진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동상이 독일의 침략과 나치를 반대하는 상징물임과 동시에 2차 대전 이후 에스토니아를 지배한 소련 붉은 군대의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동안 독일은 동지에서 적으로 바뀌었고, 독일에 맞서기 위해 해방군으로 들어온 러시아는 2차 대전 종료 후 발트 3국을 지배했습니다. 이런 기구한 역사 때문에 논란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치하에서 세워진 많은 건축물을 친일 잔재로만 볼 것인지, 근대 문화유산으로 볼 것인지 논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발트 3국, 러시아 붉은 군대는 해방군일까 점령군일까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더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 이유는 발트 3국에 소련 지배 당시 이주해 살고 있는 러시아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된 에스토니아 탈린시만 하더라도 러시아인들이 인구의 40%를 차지했습니다.

 

실제로 1년 뒤 에스토니아 국회가 동상 철거 법안을 통과시키고, 강제 철거가 이뤄지자 러시아계 주민 1500여 명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때 1명이 숨지고 43명이 크게 다치는 유혈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뒤 가장 심각한 유혈사태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 사건의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 에스토니아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각도로 현재 러시아에 살고 있는 러시아 1.5세대들의 문제까지 폭넓게 살펴봅니다. 군인 동상은 나중에 탈린 인근 국립군인묘지에 다시 세워졌다고 합니다. 결국 에스토니아뿐만 아니라 발트 3국 모두 함께 살고 있는 러시아 출신들과 조화롭게 공존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저자 서진석은 발트 3국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건들의 겉모습만 살피는 게 아니라 그 배경과 역사적 근원까지 접근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에스토니아에서 벌어진 동성애자 시위, 발트 3국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집시 문제 등과 같은 심각한 사회 현상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풀어냅니다.

 

한편,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좀 더 가볍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라트비아에서 열린 금발머리 대회·에스토니아 키흐누섬 원주민들의 독특한 문화·인터넷 제공과 기내식까지 나오는 발트 3국의 유럽 국제버스 이야기·인구 200명의 초미니 민족 리브인 이야기 등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리브인은) 현재 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민족 중 하나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라트비아 전체에서 자신들을 리브인의 후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200명 정도에 불과하고, 그중 고유어인 리브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200명에도 못 미친다." (본문 중에서)

 

한 민족과 한 언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25살 시장, 31살 장관 우리는언제나 가능할까요?

 

한편, 25세의 젊은 시장과 31세의 장관이 정치에 참여하는 에스토니아 이야기는 희망적으로 다가옵니다. 에스토니아는 유럽연합 정식회원국이 되기 전부터 가입 1순위로 꼽히는 나라였다고 합니다.

 

"최근 전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료 인터넷 전화 'Skype'(스카이프)도 에스토니아 젊은이들의 기술로 개발됐으며, 2005년 10월에 열렸던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로 인터넷을 통한 전자선거가 진행되기도 했다."(본문 중에서)

 

에스토니아에는 2005년 10월 전자선거가 도입되기 전에도 능력을 인정받는 30대 장관들이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젊은이들이 정치·경제·국방 등 주요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게 된 것이다. 1974년생인 우르마스 파에트는 외무부장관으로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간 관계개선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수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같은 나이인 타비 배스키매기, 켄-마릐바헤르는 재정부장관·법무부장관을 역임하다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본문 중에서)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2005년 10월에 실시된 전자선거로 치러진 총선 이후에는 20대 정치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서울 같은 수도 탈린 시장에 27살 젊은이가 뽑힌 것입니다.

 

"11월 16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시장에 오른 유리 라타스는 당시 27살, 그리고 에스토니아 제4의 도시 패르누 시장인 마르트 비시탐은 그보다 나이가 더 어린 25살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청년 비례대표 1~2명으로 생색을 내는 게 아니라 젊은 청년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고 젊은 나이에도 장관직·시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게 놀랍더군요. 에스토니아에서는 전자선거를 통해 젊은이들의 관심을 받는 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했고, 투표율도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한편, 저자는 한국에 발트 3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일뿐만 아니라 발트 3국에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일에도 열심입니다. 한국의 소설·신화·민담 등을 리투아니아어와 에스토니아어로 번역해 출판했고, 발트 3국의 민속문화와 한국을 비교하는 연구 논문도 많이 발표했답니다.

 

이 책에는 발트 3국에 씨름·선불교·한국 음식·케이 팝·한국 드라마 같은 우리 문화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럽 속의 발트3국>은 다소 무거운 역사·종교·문화이야기에서 출발해 뒤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가볍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낯선 발트 3국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부담스러운 독자들이라면, 책의 후반부서부터 거꾸로 읽어도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발트 3국의 생소한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첫 만남을 부담스럽게 할 수도 있지만, 저자 서진석의 넓고 깊은 연구와 취재의 결과를 담은 글들에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서진석이 전하는 유럽 속의 발트 3국 - 10점
서진석 지음/명지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