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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한국 축구의 혁신...홍명보에 거는 기대

by 이윤기 201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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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펴내는 사람도서관 시리즈 3권의 주인공은 홍명보입니다. <오마이뉴스>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살아 있는 인물 평전', 사람도서관 1권은 문성근 편, 2권은 안철수 편이었습니다. 1권 <새로운 연애 문성근을 읽다>는 문성근이 직접 들려주는 '문성근 이야기'입니다만, 2권 <안철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오연호 대표기자와 김헌태가 쓴 동시대인 안철수에 대한 인물평전입니다.

 

최근 나온 3권 <새로운 세대의 맏형 홍명보> 역시 홍명보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탁월한 칼럼니스트 정윤수와 이태웅 PD, 손병하 기자가 함께 쓴 홍명보 인물 평전입니다.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런 기획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면 '사람도서관' 시리즈보다는 '인물 평전' 시리즈가 더 어울리는 분류가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문성근, 안철수에 이어 세 번째 탐구 대상인 홍명보 역시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남자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극히 우연이겠지만 이 시리즈 1, 2, 3권의 탐구 대상이 모두 남자였네요.

 

한국 축구의 신화, 우상 그리고 권력

 

홍명보는 명실상부한 한국축구의 신화이자 권력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리즈가 문성근, 안철수에 이어 홍명보로 이어지는 것은 별로 어색하지 않습니다. 홍명보는 앞선 시대의 걸출한 선수이자 지도자였던 차범근과 후배 선수 박지성과 분명히 다른 '신화'이자 '권력'이며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독도 세리머니의 주인공 박종우 선수가 시상대에도, 해단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의기소침해 있을 때 홍 감독이 직접 전화를 걸어 환영 만찬에는 반드시 참여하라고 지시했다거나, 박주영 선수가 병역 문제로 심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을 때 '박주영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내가 대신 군대에 간다고 말하려 나왔다'며 기자 회견장에 함께 나왔다거나… 등의 에피소드는 축구팬을 넘어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본문 중에서)

 

이 책에서 기억해낸 홍명보 신화는 축구팬이라면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법한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입니다. 요약하자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걸출한 스타 선수 홍명보가 멘토 시대의 '멘토' 역할로 축구계 안 밖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누군가는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힘든 선수의 곁을 지키는 감독이자 선배 역할을 해내는 '의리'의 리더십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저자 정윤수는 이런 홍명보의 모습을 '불확실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강력한 이미지로 다가 간다'고 평가합니다.

 

선배다운 선배가 없고 스승다운 스승이 없는 시대에 선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묵했으나 말에 무게가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충격의 한마디를 던짐으로써 상황을 반전시켜왔다. 선수일 때도 그랬고 코치일 때도 그랬다. 이제는 감독으로서 그렇게 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그러나 탁월한 칼럼리스트인 저자는 축구계의 영웅이자 우상이며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가는 주인공 홍명보에게 후한 평가만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홍명보를 영웅이자 우상으로 추켜세우기만 했다면 이 책 역시 성공한 스타를 찬양하는 수많은 인쇄물 중 하나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홍비어천가 아닌, 한국 축구의 혁신을 위한 제안서

 

그러나 저자 정윤수는 홍명보 신화의 절반은 홍명보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히딩크 이후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야 하는 한국 축구계의 절박한 상황이 '홍명보'라는 예고된 영웅을 불러낼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1980년대에 기러져 1990년대를 전성기로 삼고 2002년에 화룡점정을 한 후 행정가로 입신했다가 지도자로 변신하면서, 20여 년 이상 한국 축구의 중추로 성장해왔다. 그가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감독이 되고 그 성과로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되었으며 장차 한국 축구 성인 대표팀의 후계자로 도약해갈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거니와 이렇게 예고된 영웅은 홍명보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현역 선수를 찬미하는 최고의 형용사가 동원되었고, 런던 올림픽 동메달 이후에는 '홍비어천가'가 난무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발론과 이의제기가 이루어질 수 없다면 한국 축구의 바람직한 발전에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예컨대 은퇴 이후 축구 행정가로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지만 수년 동안 노출된 축구협회의 수많은 병폐에 대하여 발언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수뇌부로 표현되는 막후권력 집단이 절차와 원칙을 무시할 때도 홍명보는 발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야 있겠지만 어쨌든 발언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홍명보 같은 걸출한 스타가 축구계의 현실적 문제를 개선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 승부조작과 같은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한 스포츠 문화 전체의 개혁이나 좀 더 구체적인 대안마련에 나서지 않는 것은 크게 아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허약하고 모순에 가득 찬 한국 축구계와 스포츠 문화를 바꾸기 위한 고민과 치유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영웅신화는 화려한 수사로 채워진 공허한 미담집'이 되고 말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인종차별에 저항한 지네딘 지단이 있고, 국제 축구계의 권력자들을 조롱하며 반세계화 운동에 가담한 마라도나가 있으며, 군부 파시스트를 위한 경기에는 참여할 수 없다며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보이콧한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쿠루이프도 있다." (본문 중에서)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과 구조적 개혁을 위하여 이들과 같은 맨파워를 발휘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쉽게도 홍명보뿐이며 그가 그런 역할을 해주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홍명보 장학재단과 성탄절 드림 매치 같은 행사를 통해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부조작과 선수 복지 문제를 비롯한 축구계 내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축구의 낡은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맨파워

 

차범근 감독이 "초등학교 선수가 기초 공부조차 하지 않고 축구만 하는 나라, 10세도 안 되는 선수들이 하루에 세 번씩 프로 선수처럼 훈련하는 현실, 합숙을 하던 어린 선수들이 불에 타서 세상을 떠나고 지도자에게 맞아서 세상을 떠난" 축구계의 현실에 대하여 통렬한 반성을 하였던 연장선상에 있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홍명보에게 거는 기대는 바로 이런 맥락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축구의 구조적 모순과 한국스포츠의 허약한 시스템을 모른 체한다면 홍명보 신화는 반쪽짜리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저자정윤수가 한국 축구팬을 대표하여 홍명보에게 거는 기대는 이렇습니다.

 

"선수, 행정가, 지도자로서 홍명보는 많은 것을 이뤄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축구를 포함한 한국 스포츠의 낡은 전근대성, 폭력과 비리와 파벌에 의해 각 지역의 뛰어난 경기장과 유능한 선수와 열혈 팬들이 있음에도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권위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퇴행하고 있는, 이 낡은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제는 차분히 자문해볼 때가 되었다." (본문 중에서)

 

왜냐하면, 한국 축구계에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 만한 결단과 능력과 권위를 가진 사람은 홍명보뿐이기 때문이랍니다. "그것이 한국 축구의 불행이며 또한 행운"이라는 것이 저자 정윤수의 무거운 결론입니다. 저자의 기대와 바람대로 홍명보가 그만이 할 수 있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신화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이 책에의 공동 저자인 이태웅 PD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본선 진출 과정을 담은다큐멘터리 <공간과 압박>의 제작 과정과 손병하 기자가 쓴 '홍명보의 지도자 생활 7년의 기록'을 각각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공간과 압박> 제작 과정에서 가장 특이한 일은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홍명보 감독이 먼저 요청하였고, '무제한적인 접근과 촬영'에 흔쾌히 동의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출 없는 제작' 역시 그가 먼저 요구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축구는 런던 올림픽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는 런던 올림픽 성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선수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기록해서 남겨주고 싶은 마음 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선수들이 아빠가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런 소박한 기록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직전, 팀 미팅에서 "올림픽은 여러분의 축구 인생을 길게 봤을 때 하나의 점"에 불과할 것이라고, 어쩌면 10년 뒤 생각해보면 이 경기가 생각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저자 정윤수의 바람처럼 한국 축구의 신화와 우상인 홍명보가 10년 뒤 하나의 점으로 남을 것이 뻔한 승리와 성공에만 안주하지 않고, 한국 축구와 스포츠계의 전근대성을 뛰어 넘는 혁신을 이끄는 진정한 '영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아봅니다.

 

 

 

새로운 세대의 맏형 - 10점
정윤수.이태웅.손병하 지음/10만인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