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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채식 건강

에이즈는 콘돔으로 예방할 수 없다

by 이윤기 201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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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가? 20세기 산업화 시대를 열었던 인간의 역사는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만들었지만, 21세기 들어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데 성공할 수도 없고, 자연은 결코 인간에게 지배당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전염병은 어떤가? 한때 인간은 지구상에서 인간에게 해로운 세균과 바이러스를 하나씩 몰아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지만, 지금은 그것이 자만이었음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1960년대 말 미국 공중위생국은 "전염병을 끝장낼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3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전염병은 여전히 인구 3명당 1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1999년에 나온 WHO(세계보건기구) 보고서는 한 때 정복한 듯 보였던 질병들이 다시 위세를 떨치고 있고, 어떤 것들은 내성을 획득해 과거보다 더 강해지고 퇴치가 불가능한 전염병도 생기고 있다고 한다. 미국 CIA는 앞으로 20년 동안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전염병'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때 인간은 1300년대 유럽 인구 1/3을 쓸어버린 흑사병이나, 1910년대에 2천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스페인 독감 같은 전염병은 다시 지구상에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믿었었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인간들은 더 강해진 말라리아와 결핵 그리고 에이즈, 광우병, 사스와 같은 새로운 질병을 만나면서 자연과 질병 앞에 무릎 꿇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전염병이 두 가지 일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과거에 통제했다고 믿은 옛 질병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는 새로운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경향은 새로운 질병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WHO는 1980년 이래 에이즈를 비롯한 새로운 질병들이 30종 이상 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20세기 말에 시작된 죽음의 병 에이즈는 30년 전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3년까지 전 세계에서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5천만 명 이상을 감염시켰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질병인 결핵 역시 매년 2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이한음 옮김, 책세상 펴냄)은 수의사이면서 언론학을 동시에 전공한 마크 제롬 월터스가 썼다. 그는 하버드 의대 초빙 강사를 거쳐 지금은 사우스플로리다 대학 언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그는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을 통해 1980년 이래 지구상에 새롭게 나타나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30여 종의 질병 중에서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여섯 가지 질병, 즉 광우병, 에이즈, 살모넬라 DT104, 라임병, 한타바이러스, 웨스트나일뇌염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국내 독자들에게는 광우병과 에이즈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소한 전염병이지만, 살모넬라 DT104, 라임병, 한타바이러스, 웨스트나일뇌염은 모두 현재 미국에서는 심각한 보건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질병들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여섯 전염병이 어떻게 발생해 어떤 경로로 전파되는지,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교란하는 행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마치 '나비효과'를 설명하듯 바다 건너 새로운 대륙으로 전염병이 옮겨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추적하고 있다. 아울러 전염병 피해를 직접 겪은 사람들과 그것을 막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이런 전염병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소에게 '소'를 먹여 생긴 전염병 '광우병'

 

소머리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다리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난폭한 행동을 하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병. 광우병이 절정에 달한 1993년 1월까지, 소 100만 마리가 이 병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에서는 2000년 11월까지 3만5000마리 이상이 감염됐으며, 유럽대륙을 거쳐 일본과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로 퍼져갔다.

 

인간 CJD와 유사한 이 전염병은 한동안 인간에게 전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과학자들과 정치인 그리고 공무원들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2002년 초까지 전 세계에서 모두 125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988년 영국정부가 재순환시킨 동물 단백질을 가축에게 먹일 수 없도록 한 후에 소와 사람에게서 발생하던 광우병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광우병을 비롯한 전염성해면상뇌증(TSE)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이 양이며, 밍크, 사람(쿠루), 사슴 등 여러 종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은이는 1990년대 영국에서 광우병이 절정에 달한 원인으로, 1980년대 말 영국에서 양이 1000만 마리 이상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는 TSE에 걸려 죽은 양 부산물을 더 많이 먹은 영국 소들에게서 집중적으로 광우병이 발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소 해면상뇌증(BSE)은 동물 단백질을 반추동물의 먹이로 재순환시키는 집약 농업의 결과 전염병으로 발전했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이 방식이 결국 재앙을 불러오는 처방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지은이는 1984년 12월 22일, 광우병이 처음 발병한 피츠햄 농장을 방문하여, 농장 주인인 '피터 스텐트'를 인터뷰하는 것을 시작으로, 2001년까지 미국에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사슴해면상뇌증에 해당되는 CWD 발병에 이르기까지 전염성해면상뇌증을 추적하고 있다.

 

<죽음의 향연>이나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에 비하여 상세하지는 않지만, 양에게서 시작된 이 몹쓸 전염병이 어떻게 소, 밍크, 사슴, 그리고 사람에게로 퍼져가는지 추적해 나가고 있다. 또한 모든 책임이 왜 사람에게 있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아프리카 원시림 파괴와 '에이즈'

 

1981년 미국질병통제센터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면역억제질병을 발견하여 에이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바이러스는 면역계를 공격함으로써 몸을 다른 감염에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고 한다. 그후 연구자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유럽에서 비슷한 환자가 있었으며, 얼마 후 말라리아를 연구하던 의사들은 그 병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는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흔히, 우리에게 문란한 성생활 혹은 동성간 성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진 에이즈는 사실 인간들의 무분별한 야생동물 사냥과 원시림 파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지은이가 연구자들로부터 확인한 사항이다. 독일 출신 미국인 의사 '한'은 에이즈가 여러 번에 걸쳐서 전염되었으며, 두 종류 이상이라고 한다.

 

"전 세계 에이즈 환자의 거의 99%가 지니고 있는 HIV-1같은 바이러스들은 적어도 세 번에 걸쳐 인간에게 유입되었다. 두 번째 인간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2는 적어도 일곱 번에 걸쳐 동물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파되었다."

 

'한'은 인간 에이즈 바이러스와 가장 가까운 것이 원숭이에게 감염되는 SIV라고 한다. SIV는 HIV-2와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결국 HIV-1 바이러스 역시 아프리카 숲속에 사는 수백 종의 원숭이와 야생동물 중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 후 과학자들은 침팬지가 HIV-1 바이러스의 자연창고임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인간이 감염된 동물의 고기를 다루다가 에이즈에 걸린다는 이론"을 더 깊이 탐구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 결과를 보면 아프리카 시장에서 유통되는 고기는 모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들의 창고와 같다고 한다. 이 바이러스들은 사냥꾼과 상인 그리고 고기를 구입하는 사람들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그런 바이러스를 가진 원숭이 피와 체액에 더 자주 접촉하면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로 넘어올 새로운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는 야생동물 사냥을 생계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아프리카 깊은 숲속까지 벌목작업이 진행되어 수많은 야생동물이 식량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을 쓴 마크 제롬 월터스는 에이즈 예방은 안전한 관계와 콘돔사용, 일회용 주사바늘 사용과 같은 '기회감염'을 줄이려는 노력이나 치료약 개발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 아프리카 원시림과 야생동물 생태계를 지키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 살모넬라 DT104

 

1997년 미국 농가에서 2개월 된 송아지가 눈이 퀭하니 들어가고 배가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채 생기가 없어졌다. 강력한 항생제 주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숨을 거두었으며, 다음날 다른 송아지 서너 마리가 같은 병에 걸렸다고 한다. 잇달아 어른 소들이 죽어간 후에 이 살모넬라균을 분석한 결과 네 가지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DT104균이었다고 한다.

 

항생제를 비롯한 약물에게 자주 공격당하는 세균들은 자연선택이라는 현상을 통해 그 약물에 익숙해지게 된다. 세균이 항생제에 자주 노출되는 대표적 환경은 대규모 가축사육시설이다. 좁고 비위생적이기 때문에 사육동물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자주 약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적으로 보면 동물들을 늘 깨끗하게 돌보는 것보다는 약물을 쓰는 편이 비용이 적게 든다. 또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동물들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면 좀 더 빨리 성장하므로, 생산자들의 소득이 더 높아진다. 게다가 농민들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송아지들에게도 항생제를 먹이곤 한다."

 

결국, 이런 항생제 살육현장에서 살아남은 세균들은 항생제에 강한 저항력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이런 내성을 띤 세균들이 조리가 덜 된 고기나 다른 오염물질을 통해 사람 몸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균주들은 새, 양식어류, 소, 양서류 등 많은 종들을 감염시킬 수 있고 고속도로, 항공편 그리고 배를 이용해 세계 여러 나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때문에 미국 쇠고기에 관심이 높은 우리에게 미국 도축된 쇠고기에 살모넬라균이 감염되었다는 뉴스는 이제 별로 낯설지도 않다. 문제는 사람에게 감염된 살모넬라균들이 이미 항생제 내성균이기 때문에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거나 혹은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1988년 FDA가 워싱턴 지역 슈퍼마켓 체인 세 군데서 닭, 소, 칠면조, 돼지고기 시료 200점을 채취해 조사한 결과 다섯 점당 하나꼴로 DT104를 비롯한 다양한 살모넬라 균주에 오염되어 있었다. 또 FDA는 12가지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균주도 찾아냈다."

 

이미, 1970년대에 영국과 미국 보건 당국은 가축사육에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제약업계의 반발에 부딪쳐 지금까지도 항생제는 가축사육과 성장촉진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전염병이 몰려온다

 

이 밖에도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은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오래된 숲을 훼손함으로써 점점 더 많이 발생하는 새로운 관절질환 '라임병', 엘리뇨로 인하여 비가 많이 오면 생쥐 개체수가 이상적으로 늘어나는 것에 맞추어 증가하는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 그리고 나일강 지역에서 미국까지 옮겨온 '웨스트나일 뇌염'에 대하여 상세히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여섯 가지 환경전염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보다는 자연과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라임병이나 사상 유래 없는 전파속도를 보이고 있는 웨스트나일 뇌염 역시 어렵지 않게 우리에게도 재앙으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이 책을 쓴 마크 제롬 월터스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특별한 종이 아니라 기후와 생태계 그리고 서로 얽힌 생태계 그물망 속에 있는 종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세계를 인간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들려는 근시안적인 시도들을 하다가 오히려 질병을 일으키는 수많은 미생물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새로운 질병에 대하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전염병을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치료법과 치료약을 개발하는 방식 대신에 원인을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건강의 토대가 되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파괴를 중단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점점 더 큰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 - 10점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