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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세대차이’야 말로 진보를 위한 동력이다

by 이윤기 2009.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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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의 정신적 스승 지셴린이 쓴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간다>는 중국인들로부터 ‘나라의 스승’이라는 호칭을 받을 정도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원로학자 지셴린이 쓴 단편 산문들 중에서 사람들에게 울림이 큰 글들을 가려뽑은 에세이집이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1911년생으로 올해 98세인 지셴린은 원자바오 총리, 리자오 싱 전 외교부장 등이 스승으로 모시는 인물이며, 많은 중국인들로부터 ‘태두’, ‘국보’ 불리며 공경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어교사로 지내다가 천재일우의 독일 유학기회를 만나 10년간 독일유학을 다녀온 후 1945년 베이징대학에 부임하여 동방학부를 개설하여 1978년 부총장을 지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학내정치투쟁으로 린치, 강제노동, 지식인을 가둬놓은 ‘우붕’ 수감생활를 거치는 고초를 당하면서도 방대한 양의 인도고대 서사시 <라마야나>를 번역하는 지식인의 삶을 실천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16년이 지난 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이데올로기와 집단적 광기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우붕잡억>를 펴냈는데, 자신을 핍박한 이들에 대한 복수심을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세대차이야 말로 진보를 위한 동력이다.

100세를 내다보는 지식인의 열린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세대차이를 지지하는 이유’라는 글의 한 대목을 소개해 본다. 그는 자신에게도 노인에게 찾아오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들이 죄다 못마땅해 보이고, 그들이 하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특히 요즘 새로 등장한 신조어들은 들을 때마다 불편하다. 그들의 옷차림, 태도, 언행, 사람을 대하는 예절, 좋아하는 대상과 취미까지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볼 때마다 고개가 가로 저어지고 한숨짓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본문 중에서)

그는 젊은이들이 벌건 대낮에 남들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입을 맞추는 모습이나 그 보다 더 노골적인 광경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차이 자체에 대해서는 적극지지하고 진심으로 찬사 보낸다고 한다.

세대차이야 말로 인류의 진보를 촉진하는 바탕이었다는 것이다. 원숭이가 진화하면서 세대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모든 원숭이가 네 발로 기어 다닐 때, 일어서서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탄생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98세의 지셴린은 나이든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이 쏟아내는 신조어가 국어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말하지만, 젊은이들이 만드는 새로운 단어가 언어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세계의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신조어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막는다면 그 언어로는 새로운 개념과 사물을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언어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세대차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변화를 상징하고 진보를 나타내며 인류의 전진을 의미한다는 것이 지셴린의 생각이다.

성공은 70%의 근면과 30%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

에디슨은 ‘천재는 99퍼센트의 근면과 1%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로 성공을 위해서 갖장 중요한 것은 노력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100년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 온 노학자인 지셴린은 조금 다른 생각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성공 = 천부적인 소질 + 근면 + 기회

그는 성공이란 ‘천부적인 소질 + 근면 + 기회’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말 한다. 그는 대학에서 언어를 가르쳐도 일 년 동안 똑같이 수업을 받아도 학생마다 분명 실력차이가 존재하며 어떤 학생은 평생을 배워도 언어를 익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천재는 70퍼센트의 근면과 20~30퍼센트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근면함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재능은 없이 근면함만으로 성공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학문의 세계는 더욱 그렇다고 한다.

한편, 성공의 비결 가운데는 재능과 근면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바로 기회라고 한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기회가 성공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가장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 세계를 달군 베스트셀러 <마지막 강의>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랜디 포시 교수 역시  ‘행운은 준비와 기회가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공에 있어서 재능과 기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고 하였던 노학자는 성공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어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력’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성공의 세 가지 조건을 분석해보면, 천부적인 소질은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소관이 아니고, 기회 역시 생각지 않게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근면함 밖에 없다.” (본문 중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기회를 얻지 못해 성공하지 못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은 사람 능력 밖에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근면’ 뿐이라는 것이다.

100세를 살아 온 인생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지혜

<다 지나간다>에는 98세의 나이에도 날마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학문에 대한 한결 같은 열정을 이어가는 지셴린이 전하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학문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삶을 사는 지혜, 세상과 소통하는 법, 아름답게 나이 드는 비결”을 전해주고 있다.

철학자로서, 언어학자로서, 문학자로서 학문적 성취를 이룩한 저자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고전을 적절하게 인용함으로써 독자들을 더욱 사로잡는다. 프롤로그에서 ‘나는 왜 사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라던 저자는 도연명의 시 <신석>의 일부를 인용하여 인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불안정한 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고 한 순간의 기쁨과 한 순간의 고통에 집착하지 말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100세를 살아 온 인생에서 길어 올린 사색과 명상의 결과물이다. 세상을 달관하는 듯 경지에 이른 지식인의 경륜이 담겨있지만, 그의 생각과 지혜는 대지에 디딘 두 발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는 인생을 사는 동안 “사회 발전이라는 기나긴 강물 속에서 어떤 세대에든 그들에게 지워진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인류 전체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결국 인류 전체의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불안정한 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와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결국 인류 전체의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서로 모순되게 들릴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100퍼센트 유물주의 철학가도 없고, 100퍼센트 유심주의 철학가도 없다”는 지셴린은 “유물론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전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다 지나간다 - 10점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추수밭(청림출판)